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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240화 (240/612)
  • < 수확관(2) >

    [깔깔깔, 이게 뭐야. 들은 것과는 많이 다르잖아?]

    갑작스러운 수확관 레브레스의 등장.

    팀원들은 깜짝 놀라 황급히 자세를 다잡았다.

    무척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던 그들이다. 온갖 일을 겪어온 만큼, 자그만 한 인기척조차도 결코 놓치는 일이 없건만...

    레브레스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던 지드먼의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그는 지금까지 놈이 다가오는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주위를 훑은 레브레스가 비릿한 조소를 흘렸다.

    [후후후, 좋은 씨받이가 되겠어.]

    “......”

    유세현은 일말의 대꾸도 없이 서서히 팔을 들어올렸다. 이에 구울들이 당장에 달려들 자세를 취했다.

    [크크크, 그 정도로 우리를 이길 수는 없어. 다치지 말고 그냥 얌전히 잡히는 게 어때? 너는 고급 샘플로서 잘 취급해 줄 테니 말이야.]

    유세현이 손을 앞으로 펼쳤다.

    캬아아악!

    성난 들소처럼 돌진하는 구울들.

    [크크, 그렇게 나오시겠다? 뭐, 반항하는 걸 제압하는 것도 하나의 맛이긴 하지!]

    레브레스가 6개의 팔을 날개처럼 일제히 쫙 펼쳤다.

    그리고 그 순간 돌풍과 함께 은빛의 섬광이 번뜩였다.

    촤자작-

    마치 분쇄기로 갈리듯 조각조각 나뉘어 흩어지는 구울의 육신.

    유세현은 그것만으로도 놈의 스텟을 대략적으로 유추하는 것이 가능했다.

    ‘기간트급 이상이다.’

    일개 특수 개체가, 마크의 지도자보다도 더한 능력치라니.

    “영감님. 이놈은 여기서 처리하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엄호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네.”

    파앗.

    지면을 박찬 유세현의 몸이 레브레스를 향해 순식간에 파고들었다. 그의 빠른 속도에 살짝 놀란 눈치.

    [호오, 제법인데?]

    그럼에도 레브레스에게는 여유가 있었다. 유세현의 스텟보다도 자신의 스텟이 더 높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

    챙! 챙! 챙!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공방.

    -키리리릭!

    알비론들 또한 생존자들을 포획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레브레스에 비해서는 덜떨어졌지만 그럼에도 실로 매서운 속도였다.

    “큭! 무슨 스피드가!”

    “침착해! 우리가 수는 더 많아!”

    유세현은 당황한 팀원들을 뒤로한 채 타이밍을 쟀다.

    그는 현재 암흑투기를 사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처음부터 짓누르는 것도 효과가 좋지만, 전투 중에 갑작스럽게 적용한다면 보다 더한 이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에.

    가슴을 향해 쇄도해오는 레브레스의 칼날이 보인다.

    찌르기 공격이었다.

    심장을 파괴해 전투력을 상실하게 만들려는 의도!

    유세현은 허리를 굽혔다.

    순간적으로 붉게 물드는 눈빛.

    쿠웅!

    [?!]

    레브레스의 표정이 일순간 와락 일그러졌다. 본래라면 유세현이 자세를 낮추는 것보다도, 자신의 칼날이 심장에 다다르는 것이 더 빨라야 했다.

    헌데, 속도가 느려져 역전되었다.

    [크으!]

    레브레스는 잽싸게 아랫팔을 들어 올려 가드했다.

    이로서 방어가 되리라.

    그녀는 그리 생각했지만, 큰 오산이었다.

    치직-

    치지직-

    칠흑의 검 주위를 맴도는 흑빛의 뇌전.

    [크아아악!]

    수확관으로서 레브레스가 지금까지 겪어본 그 어떤 뇌전보다도 강렬하고 강력한 뇌전이었다.

    더 나아가.

    새까만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나는 것을 확인한 레브레스는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닿으면 안 될 것 같은 왠지 모를 불안감 때문이었다.

    유세현은 살짝 인상을 구겼다.

    몸을 두 동강 낼 기세로 올려치기를 한 것이었는데 팔 하나 밖에 자르지 못했다.

    루베르크의 현 등급이 유니크 D랭크로, E랭크에서 한 단계 더 올라가 이전 아스모데우스의 지옥창을 흡수한 시절까지 복구되었다는 것을 감안하자면 실로 엄청난 내구력이 아닐 수 없었다.

    ‘역시 에픽 아이템을 먹여뒀어야 했나.’

    자신의 실책.

    허나, 이제와 탓해봐야 의미가 없다. 지금 중요한 것은 놈을 최대한 빨리 죽이고 이곳을 이탈하는 것.

    잘려나간 자신의 팔을 확인한 레브레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몸을 옭아매는 힘과 검은빛의 뇌전.

    그리고 죽은 자를 되살리는 능력.

    동조되어있는 그녀의 머릿속으로는 무수히 많은 정보가 쏟아진다.

    레브레스는, 아니 알베타스는 이놈을 만난 적이 있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인간에게 관심을 가지게 만들어준 이들 중 한 명!

    [흐흐흐흐하하하하하!]

    몸을 활대처럼 꺾은 레브레스의 입에서 기분 나쁜 광소가 터져 나왔다.

    빠르게 변화하는 레브레스의 몸.

    팔과 다리 각종 근육이 펌핑 되어 부풀어 오르고, 채 1초도 지나지 않아 두터운 비닐이 전신을 감싼다.

    동시에 팀원들을 몰아붙이고 있던 일부 알비론들이 유세현을 향해 몸을 돌렸다.

    [햐햐햐햐햐햐햐! 여기서 찾게 될 줄이야!!]

    쉬이익-

    공간을 찢어버릴 것 같은 거센 바람소리와 함께 쇄도해 들어오는 레브레스와 알비론.

    이에 팀원들은 입술을 악물었다.

    “이런 빌어먹을 새끼가 우리를 무시하고 감히 세현씨를!”

    “너희 상대는 우리다!”

    제일먼저 조취를 취한 것은 아린이었다.

    ‘파이어 월(Fire Wall)’

    알비론을 막아서는 불의 장벽!

    아린이 발휘한 불의 장벽은 어마어마한 고열을 동반하고 있었기에, 기본적으로 저항력이 높은 알비론 조차도 뛰어드는 것이 불가능 했다.

    살짝 놀라는 표정의 레브레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뿐이었다.

    [크크크! 좋아! 좋아! 아주 좋아!]

    그들의 입장에서는 샘플이 많아진 것이었기 때문.

    챙! 챙!

    치이익!

    육신이 변화한 레브레스는 스텟이 10%증가한 것과 비슷한 효력을 발휘했다.

    때문에 힘의 차가 팽팽해져 압도하는 것은 불가능.

    -캬아아아아!

    -키리릭

    알비론의 괴성이 온 숲에서 울려 퍼졌다.

    알베타스의 꼭두각시 인형들을 처리한지도 이제 3분.

    마침내 일반 병사들이 도착한 것이다.

    동굴 속에서도 무수히 많은 적이 튀어나왔다.

    알비론도 있었지만, 처음 보는 생명체도 있었다.

    인간의 형상을 취하고 있지만 온몸이 두꺼운 갑각에 뒤덮인 모습.

    [혼종]

    놈들은 팔 자체가 검의 형태로 되어 있는 알비론과 달리, 진짜 손처럼 되어있었으며 하나 같이 무기를 들고 있었다.

    팀원들은 차분히 심호흡을 했다.

    괴물들과의 격돌은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문제는 어떻게 대응하는가.

    서로의 눈을 흘깃 살핀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맞추어놓은 합.

    시너지를 극대화 시켜 일격에 깨부순다.

    생존자들의 마력이 요동쳤다.

    “분쇄의 칼날!”

    “죽음의 메아리!”

    공명하여 더욱 강해진 바람과 파동계열의 스킬이 전방에 위치해있던 알비론들을 덮쳤다.

    -키아아악

    목숨을 잃고 쓰러지는 수많은 알비론.

    화염계열의 스킬까지 조합했다면 더 큰 피해를 입힐 수도 있었겠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왜냐하면...

    뒤로 살짝 빠진 유세현이 손을 들어 올리자 알비론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작되는 동족상잔의 비극.

    구울로 되살아난 알비론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등 완벽한 상태가 아니라, 전투력은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싸움 자체에서는 우세했다.

    되살아난 알비론은 유세현의 암흑투기의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었다.

    [큭!]

    레브레스가 혀를 찼다.

    ‘무슨 마력효율이...’

    이전 되살린 것 만해도 150마리다.

    그런데 이번에는 딱 봐도 그 이상 살려냈다. 몸을 짓누르는 힘이야 고유능력이라고 해도, 검은 낙뢰나 부패시키는 어둠 등 얼마나 많은 스킬을 유지했는데, 이 정도나 되살릴 수 있단 말인가.

    [언데드 레이즈의 숙련도가 100%에 다다랐습니다. 특수특성 마(魔)에 의해 언데드 레이즈의 스킬 등급이 A랭크에서 S랭크로 향상됩니다. 마력효율이 보다 더 좋아집니다.]

    레브레스가 손짓하자 혼종과 알비론이 유세현을 향해 우르르 달려들었다.

    알비론들은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 놈들이라 휘두르는 데로 거의 다 맞았지만, 혼종은 조금 달랐다.

    다른 놈들을 베느라 정확도가 낮아지면 회피하고 반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쌓여가는 시체와 달려드는 놈들에 의해 레브레스에게 향해 있는 시야가 점점 가려진다.

    레브레스는 지금이 기회라는 것을 느꼈다.

    아까부터 호각이었다.

    지금 사각지대로 돌아가 잘만 공격한다면 치명적인 일격을 먹이는 것이 가능하다.

    레브레스는 질주했다.

    하지만 그 순간 머릿속으로 내려오는 경고 메시지.

    ‘잘린다고?’

    레브레스는 일단 황급히 몸을 숙였다.

    어느 샌가 알비론 틈에서 나타난 얇은 선이 등에 있던 팔 두개를 스쳐 그녀의 가슴이 위치해 있던 장소를 지나쳤다.

    ‘이건 무슨...’

    그때까지만 해도 레브레스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변을 눈치 챈 것은 눈앞에 있던 알비론과 혼종의 시체가 와르르 무너진 이후.

    [크으으으!]

    두 팔이 잘려나간 레브레스가 다급하게 남은 3개의 팔을 휘둘렀다.

    고통을 인내하며 공격을 감행해오는 그 모습에서는 더 이상 여유를 찾아 볼 수 없었다.

    유세현은 잽싸게 왼쪽 팔에 전쟁갑주를 둘렀다.

    그리고는 각 한 팔로 두 검을 받아냈다.

    치지직-

    힘겨루기가 이어진다.

    팔이 한 개 더 남아 있는 레브레스가 환색했다.

    이 자세라면!

    레브레스의 검이 유세현의 오른쪽 허벅지를 향했다.

    반쯤 이르렀을 때 레브레스는 승리를 확신했다.

    이번 건 대응이 너무 늦었다.

    [네 몸뚱어리는 우리가 잘 써주도록...]

    허나, 그 순간.

    치지지직-

    마치, 번개가 구현화 된 듯한 보랏빛의 입자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루크루프의 유산.

    과학의 산물이었지만 판도라로 넘어오게 되면서 약간 변형된 아이템.

    라 아닐더.

    “이, 이건 무슨...”

    듣도 보도 못했던 생전 처음 보는 무기에 레브레스의 눈에 경악이 맺힌 순간이었다.

    스스스.

    레브레스의 등 뒤로 새까만 음영이 드리웠다.

    물체가 빛을 가리지 않았음에도 존재하는 그림자.

    그 속에서 튀어나온 레피아가 녹빛으로 물들어있는 두개의 단검을 치켜세웠다.

    [독가일섬(毒加一殲)]

    치이익-

    서걱-

    지면으로 뚝 떨어지는 두 개의 목.

    그러나 레브레스의 몸에서는 곧바로 코인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네년...]

    [어디서 나타난...]

    양측으로 따로 노는 입.

    레피아와 유세현은 마치 미리 말을 맞춰놓은 듯 동시에 머리를 깨부쉈다.

    “코인은 네가 전부 먹어. 난 한 게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유세현은 사양하지 않았다. 몸 안으로 흡수되는 높은 순도의 내구력 코인.

    -캬아아!

    우두머리 급이 되는 수확관이 죽었음에도 알비론과 혼종은 잠잠해지기는커녕 더 기성을 부렸다.

    마치 절대 보낼 수 없다는 듯.

    덕분에 오랜만의 재회한 둘이었지만 대화는 불가능했다.

    할 수 있는 행동은 죽이고 또 죽이는 것 뿐.

    레피아가 외쳤다.

    “지금 뚫어야 해! 늦어지면 다른 네임드가 도착할거야!”

    유세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뚫을 생각이었다.

    그는 일단 잔여마력을 살폈다.

    약 5%.

    전투만 행할 수 있을 정도로 마력을 부여했음에도, 되살린 원본의 스펙이 높아 기본적으로 소비되는 마력의 양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정도 마력으로는 천마혈사장을 사용해봐야 길을 만들 수 없다.

    허나.

    유세현은 개의치 않았다.

    이곳에는 자신 말고도 엄청난 광역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인물이 또 있었으니까.

    6서클 마스터이자 7서클의 길을 걷는 자.

    마력의 양이 높아짐에 따라 점점 눈에 띄는 강함을 보이고 있는 노장.

    “영감님!”

    “준비 끝내놨네!”

    유세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린의 바로 앞으로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온갖 기하학적인 기호와 문자가 얽히고설켜 평소보다도 훨씬 복잡함을 이루고 있는 구조.

    4m에 달하는 거대한 마법진이 빛을 발하자 아린이 조용히 읊조렸다.

    “어스퀘이크(Earthquake).”

    < 수확관(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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