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237화 (237/612)
  • < 인형(2) >

    “레제먼님 드디어 저희는...”

    “기다려봐라. 직접 확인하기까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말하고는 있었으나, 레제먼의 표정은 환희에 가득 차있었다.

    고유특성은 개화하기 전까지 정보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

    게다가, 뻔히 들킬 거짓말은 하지 말라고 미리 엄포도 해놨지 않는가.

    “지금 당장 유세현이란 놈을 불러와라! 직접 확인해 봐야겠다!”

    “예!”

    답한 부하, 레반코프가 기쁜 황급히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 * *

    “유세현, 지휘관께서 당신을 찾으신다.”

    레반코프의 통보에 유세현은 마음속으로 실소를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혹시나 해서 미끼를 뿌려봤는데 이렇게 쉽게 반응해주다니...

    정말 고맙기 그지없는 행동.

    방안으로 들어서자 레제먼이 그를 반갑게 맞았다.

    “어, 왔는가. 거기 앉게 나.”

    “예.”

    앞에 놓인 의자에 앉자, 레제먼은 유세현의 스테이터스가 적힌 종이를 꺼냈다.

    그 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칭찬일색.

    어찌나 말을 잘 늘어놓는지, 정말로 눈앞에 고래가 있었다면 덩실덩실 춤을 췄을 것만 같았다.

    물론, 유세현은 별 감흥이 없었지만.

    마침내 긴 서론을 끝마친 레제먼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말인데...고유특성을 개화했다고?”

    “예.”

    “심신약화라고 적혀있던데...한 번 선보여 보게나. 진실이라면 추천서를 써줄 것이고 거짓이라면...”

    지금까지 잘 연기한 레제먼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건 그만큼 중요한 것이었으니까.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한 유세현은 암흑투기를 시전했다.

    최대한 약하게 발휘한 것임에도, 레제먼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에는 충분.

    “오...”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는 레제먼의 눈동자가 강렬한 불길을 토했다.

    약하게나마 몸을 짓누르는 압박이 느껴진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능력.

    “이 능력을 발현하는게 고유특성이라고?”

    “예.”

    “한 명에게만 걸 수 있는 겐가?”

    “아뇨, 최대 10명까지 가능합니다.”

    “호오...10명?”

    B랭크인 자신의 육신에 이 정도 영향을 끼친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

    그런데 총 10명에게까지 적용이 되다니...이건 거의 장난이 아닌 수준.

    레제먼은 확신하고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드디어...드디어 찾아냈다.’

    이 지옥에서 자신들을 해방시켜 줄 제물을.

    “대단하군. 내, 추천서를 써줌세.”

    “감사합니다.”

    볼 일을 마친 레제먼은 이만 유세현을 내보내려했지만 그가 먼저 선수를 쳤기에 그럴 수 없었다.

    “잠시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말해보게나.”

    레제먼은 적당히 꾸며 유세현의 질문에 답해주었고, 덕분에 유세현은 완벽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이놈들은 인간의 편이 아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알베타스인 것 또한 아니었다.

    감염충은 숙주가 일정행동을 취하도록 유도할 수는 있지만, 이런 식으로 세밀하게 컨트롤 할 수 없기 때문.

    또한 감염충이 몸을 조종하기 시작하면 육신이 붕괴된다.

    ‘노리는 것이 뭐지?’

    연관 지을 수 있는 것은 고유특성.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유세현은 일단 좀 더 지켜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당장에 때려 부수고 나갈 수도 있었으나 처리해야할 일도 있을 뿐더러, 추후를 위해서라도 원인을 확실히 규명하기 위함이었다.

    * * *

    놀고, 먹고, 자고.

    생존자들은 근 1년을 통틀어 가장 안락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른 한 몸.

    허나 마음은 그와 반대로 무척 무겁기 그지없었다.

    유세현이 이렇게 가만히 있을 인물이 결코 아닌데.

    이에 카텐이 고민하는 모습의 케트리나를 향해 말했다.

    “아 몰라! 일단 즐겨! 우리가 언제 이렇게 또 쉬어보겠냐?”

    “어휴, 넌 단순해서 정말 좋겠다.”

    “뭐? 단순? 내가 얼마나 머리를 잘 돌아가는지...”

    또 다시 티격태격 싸우기 시작하는 둘.

    한편, 레제먼의 수하 레반코프는 두 생존자가 다투거나 말거나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누워있는 유세현을 감시하고 있었다.

    누워서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 완벽하게 나태에 빠진 모습.

    추천서를 약속 받았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만.

    레반코프는 마음속으로 혀를 찼다.

    ‘자기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유세현의 팀이 이곳에 도착한지도 벌써 2일이 지났다.

    그리고 앞으로 2일이 더 지나면 그녀가 오기로 되어있었다.

    수확관.

    ‘그때가 오면 비로소...’

    레반코프의 입꼬리가 자신도 모르게 살짝 올라간 순간이었다.

    뇌를 찢어발기는 것 같은 강렬한 두통이 매섭게 몰아쳤다.

    레반코프는 이를 으득 갈았다.

    ‘이 빌어먹을 감염충 새끼가...’

    레반코프, 아니 레제먼의 팀 전체는 현재 알베타스의 감염충에 감염되어 있었다.

    서서히 먹혀들어 간 것이라 알아챘을 때는 이미 90% 이상 잠식당한 후.

    뒤늦게 해독약 제조법이 퍼졌지만 만들어 마실 수는 없었다.

    재료를 구하기도 힘들 뿐더러 약물을 만들 마음을 가지는 순간 얌전히 있던 감염충이 미쳐 날뛰었기 때문.

    몸속에서 촉수가 튀어나오고 피부가 썩어 문드러지는 그 모습이란...

    때문에 처음에는 죽음을 두려워하며 그저 떨기만 했다.

    허나, 머지않아 깨달았다.

    뭔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무려 B랭크 40%나 되는 스텟을 지니고 있는 자신들이다. 일회용 병사로 사용하면 상당한 전력이 되는 것은 것!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을 일회용 병사로 사용하지 않았다.

    무슨 꿍꿍이 인지 생각이 들 때쯤, 그들은 케르가나의 앞에 불려가 있었다.

    그리고 조우했다.

    지금의 수확관이라고 불리 우는 존재와.

    수확관은 그들에게 제안했다.

    일정 기간마다 온전한 인간을 바치라고, 그러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그들은 거절했다. 그래도 지금까지 싸워온 마지막 자존심이 남아있었을 뿐더러, 그런 식으로 연명해봤자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허나, 수확관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을 해왔다.

    [고유특성을 지닌 인간을 데려와라. 데려오면 전원 기생충에게서 완전히 해방되게 해주겠다.]

    뒤가 없으면 사람은 되려 굳건해진다.

    허나, 약간이라도 길이 보인다면 그것을 잡아 보려 발버둥 치는 것 또한 인간이었다.

    레반코프는 마음속으로 힘겹게 외쳤다.

    ‘크으...알았어! 알았다고! 잡생각 안 한다고! 잘 감시한다고!’

    그러자 두통은 언제 그랬냐는 듯 씻은 듯이 사라졌다.

    100% 잠식당한 자에게만 미칠 수 있는 영향력.

    레반코프가 박수를 짝 쳤다.

    “잠시 주목!”

    “......”

    “오늘은 간단히 탐색을 나가도록 하겠다. 안전은 확보해 놨으니 길을 익힌다는 마음으로 따라오면 된다.”

    신뢰를 더욱 얻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날 유세현의 팀원들은 레반코프의 지시에 따라 도시 밖을 거닐었다.

    * * *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새벽.

    몇몇 사람들이 술 취한 사람 마냥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마치 몽유병에 걸린 것 마냥 넋이 나간 얼굴로 출구로 걸어 나가기 시작하는 인원들.

    뒤늦게 일어난 유세현과 아린은 잽싸게 벽에 밀착하여 그들의 뒤를 따랐다.

    과연 이곳의 보초병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귓가로 들려오는 보초병의 목소리.

    “어이, 돌아가라. 너희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시간에 밖으로 나가려는...어? 뭐야? 이놈들 잠식당했잖아? 야 코쿤. 너 뭐 아는 거 있냐?”

    “...적당히해라 미친놈아. 이번 새내기들은 적색의 땅을 통과해 왔다고 통보 했잖냐. 너 졸았지?”

    코쿤이 옆에 있던 병사를 쏘아봤다.

    병사는 멋쩍었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하하하...심란한데 좀 졸수도 있지...아무튼 그럼 뭐 이 팀은 굳이 우리가 아니었어도 끝이었겠네.”

    “그렇긴 하지. 그보다 입조심해라. 그렇게 기밀을 나불나불...목 날아가고 싶냐?”

    “하아...알았어 알았어. 나 참 새내기 무서워서 못 살겠네...”

    보초병들은 그대로 감염자들을 통과시켰다.

    순간적으로 요동치는 아린의 눈동자.

    “세현, 이건 역시...”

    “예. 전부 한통속이었네요.”

    “어떻게 할 텐가?”

    “일단은 뒤를 따르도록 하죠.”

    “어떻게 말인가?”

    “간단합니다.”

    간단하게 방법을 일러준 유세현이 흐리멍덩한 표정으로 보초병을 향해 걸어 나갔다.

    * * *

    빌딩에서 3km가량 떨어져 있는 20층 아파트 단지.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감염자들의 뒤를 따르던 유세현의 눈이 한순간 번뜩 빛을 발했다.

    무엇인가가 이장소를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력은 C랭크.

    숫자는 다섯.

    진즉알고는 있었지만 단순한 마물일 것이라 생각해 무시하고 있던 생명체였다.

    허나, 이 속도는 C랭크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비정상적이다.

    최소 B랭크...그중에서도 최상급의 힘을 지녀야지만 가능한 이동력.

    ‘이건 설마...’

    벌써 건물 아래에 도착해 빠르게 치고 올라오고 있다. 위치로 보면...

    스스스.

    더 생각을 이어나갈 틈도 없이 등장하는 케르가나.

    트드득!

    쨍그랑!

    그 순간 유리조각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5개의 그림자가 창문 틈으로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체형을 보니, 여성들이었다.

    소나비 처럼 쏟아지는 암기.

    타다닥.

    -키에에엑!

    구슬픈 괴성을 지르는 케르가나였지만 도와줄 수 있는 인원은 아무도 없었다. 감염충의 잠식률이 아직 많이 낮기 때문이었다.

    -촤자작.

    다섯 명의 여성들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케르가나를 도륙했다.

    감염충이 죽기 무섭게 기절하여 지면에 쓰러지는 팀원들.

    몸을 획 돌린 한 여성이 유세현과 아린을 보고 움찔거렸다.

    “어? 왜...”

    기절하지 않았느냐. 그걸 말하고 싶은 것이리라.

    유세현이 답하려는 순간.

    착각이라도 했는지 센터에 있던 여성이 외쳤다.

    “제압해!”

    타다닥!

    좌우 사방팔방으로 신속한 움직임을 보이며 치고 들어오는 5명.

    허나, 그렇다고 해서 유세현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역으로 제압당한 여성. 반면 그들은 아린을 붙잡지 못했다.

    스피드에서는 밀렸으나 블링크로 잽싸게 빠져나간 탓.

    “무, 무슨!”

    여성이 당황어린 음성을 토해냈다. 그녀는 스스로가 잡힐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는 눈치였다.

    유세현이 목에 검을 갖다 대기 무섭게 정지하는 4명의 몸.

    “어, 언니!”

    “너 이 자식 언니를 놔줘!”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었다.

    먼저 공격하고 놔달라니.

    괘씸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들은 모체를 처리한 이들.

    적이 아닌 바에야 대치하고 있을 이유가 없었기에 유세현은 붙잡고 있던 리더를 놔주었다.

    “어...어?”

    “자, 됐나? 이야기를 좀 하고 싶은데.”

    여성들은 잠시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번갈아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일단 짧게 통성명을 했다.

    “플로라라고 불러.”

    “유세현이다.”

    그 말에 플로라와 나머지 4명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듯한, 만나본 적이 있는 느낌.

    그러나 떠오르지 않았기에 언급하지는 않았다.

    질문은 유세현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하나씩 건네기로 했다.

    “너희 다섯 명은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온 거지?”

    “당연히 너희들을 구하기 위해서지.”

    “......”

    유세현이 지긋이 쳐다보자, 플로라는 혀를 차며 말을 정정했다.

    “그래, 사실은 케르카나를 처치하기 위해서야. 그래서 너희 뒤를 캤지. 그럼 이번엔 내 차례. 너 대체 정체가 뭐야?”

    “네가 구하러 왔던 이들 중 한 명이지.”

    서로 우세를 잡기 위한 고도의 심리전.

    맞받아치자 이번에는 플로라의 눈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갔다.

    “...나도 더 이상 말장난은 하지 않을 테니 너도 말장난은 집어치워. 지금 나는 네가 어느 팀에 속해있는 지를 물어보고 있는 거야.”

    팀.

    그 말에 떠오르는 단어가 있긴 있었다.

    판도라로 넘어와 일행과 합류하기 위해 만들어 두었던 길드.

    [리버티]

    그러나 유세현은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 이강호가 유명인이 되었다는 것은 그가 세운 길드 또한 유명해진 것을 의미했기에.

    그리고 그 길드에서 유세현은 죽어 없어진 사람이었다.

    “정식명칭은 없어. 지금 쓰러져 있는 사람들이 내 팀원이다.”

    플로라는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세현과 같이 다닐 정도라면 제법 강자라는 것인데, 그런 그들이 이제는 기본 중에 기본인 감염충에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기 때문.

    유세현은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는 계속해 봐야 진전이 없겠군.’

    더욱 의심만 하겠지.

    케르가나 하나를 처치했다고 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알베타스와 손잡은 것처럼 보이는 제국군들 보다는 훨씬 났다.

    유세현은 패를 먼저 까기로 결정했다.

    마크인에 대한 것에 늘어놓자, 플로라와 4명의 여성들의 눈동자 잠시나마 매섭게 진동했다.

    이내 끄덕이는 고개.

    그나마 아귀가 딱딱 들어맞기 때문이었다.

    “호오...그곳이 수복되다니...”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전부 말했다. 그러니 이젠 너희도 답해라. 너희는 누구지? 지금 이 상황은 어떻게 된 거냐.”

    그러자 헛기침을 한번 내뱉은 플로라가 가슴에 손을 얹었다.

    “우린 팀 리버티의 산하 정보 길드다. 이 지역을 초토화 시킨, 그리고 지금 너의 팀원을 감염시켰던 군체종족 알베타스에게 맞서고 있지.”

    < 인형(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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