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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236화 (236/612)
  • < 인형(1) >

    유세현은 곧바로 윌 페이더를 꺼내 착용했다. 적은 마력으로 고열을 낼 수 있었으며, 주변에 미치는 영향력이 적기 때문이다.

    천마혈사장은...아예 이 주위를 싹 날려버리리라.

    -쿠우웅!

    빠르게 암석을 융해시키며 통로를 만들어내는 입자포!

    유세현과 아린이 앞장을 서고 팀원들은 조심스럽게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나아가기를 삼십여 분.

    슬슬 출구에 다다랐다고 생각해 위력을 줄인 유세현의 눈동자에 이채가 어렸다.

    녹아내린 암석의 틈사이로 비치는 붉은색의 빛.

    생존자들은 1분도 지나지 않아 바깥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기 무섭게 튀어나오는 헛바람.

    “아...”

    사원의 바로 앞에는 과거 인간이 주둔했다는 흔적이 남아 있었다.

    부서진 울타리와 막사. 이곳저곳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깃대.

    마지막으로 구더기가 들끓고 있는 시체.

    온통 새빨갛게 물들어 있는 세계는 이러한 것들을 좀 더 그로테스크하게 보이도록 연출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새빨갛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적색의 땅.

    유세현은 나아가야 될 방향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적색의 땅은 최하단부.

    이강호가 위치해 있던 불타는 대지로 가기위해서는 무너진 도시를 지나서 용천로라는 바람의 길을 건너야 된다.

    하지만 이강호가 불타는 대지에서 활동하고 있던 시기는 몇 개월 전.

    그렇기에 무작정 불타는 대지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멍청이 같은 짓이리라.

    더군다나 이 주위가 이 꼴이 되었다는 것은 엄연히 적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때문에 그는 우선적으로 생존자를 찾기로 했다.

    아르카드 제국인과 조우한다면, 최신정보를 들을 수 있을 것이기에.

    그들은 습격에 대비하며 끝없이 이어진 밀림을 걸어 나갔다.

    허나, 적은 커녕 그 흔한 마물조차도 등장하는 일이 없었다.

    고요하기 짝이 없는 마력의 흐름.

    마치 이 세상에 자신과 팀원밖에 남지 않는 느낌이다.

    ‘대체 뭔 일이 있었기에...’

    이내 높게 떠 있던 붉은 달이 지면으로 떨어지자 칠흑과도 같은 어둠이 지면에 내려앉았다.

    적색의 땅에는 해가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있는 것은 달.

    붉은 달이 떨어지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덕분에 유세현은 어떻게 해야 될지 잠시 고민을 해야만 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인원들을 한곳으로 몰아넣은 뒤 사방에 경계인원을 배치했겠지만 이것은 경우가 너무 심하다.

    그렇다고 숫자도 적은데 적에게 발각 될 위험이 횃불을 사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나무 위 취침.

    유세현의 옆자리에 있던 아린이 한마디 내뱉었다.

    “요상한 밀림이구먼. 이 곳에는 우리 밖에 없는 것만 같이 느껴지네.”

    유세현도 동감이었다.

    허나, 그때.

    쉬이익-

    미세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유세현은 잽싸게 소리의 근원을 낚아챘다. 한 주먹에 잡힐 정도로 작은 생명체였다.

    “영감님 잡으셨습니까?”

    “나도 잡았네.”

    “그럼, 라이트 마법을...”

    “알겠네.”

    아린이 밝은 구슬을 만들어냈다. 유세현은 별 생각 없이 그 작은 생명체를 살폈다.

    4개의 다리와 등에 박혀있는 무수히 많은 알갱이.

    유세현의 눈가가 순간적으로 움찔거렸다.

    그는 이 생명체를 지금 처음 보는 것이 아니었다.

    ‘이, 이건 감염충!’

    군체종족 알베타스의 케르가나가 생산하는 개체로서 숙주의 몸을 잠식할 수 있는 특수능력을 지닌 놈들.

    판도라 내부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더 이상 조우할 일이 없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는데!

    ‘이런...또 어딘가에 시공의 균열이?’

    심각한 표정에 아린이 질문해왔다.

    “왜, 알고 있는 생명체인가?”

    “......”

    유세현은 아린의 말을 뒤로하고 황급히 색을 살폈다.

    감염충은 몸체에서 내뿜는 빛으로 등급을 판단한다.

    황토빛은 D랭크, 노란빛은 C랭크, 그리고 붉은빛은...

    ‘젠장, 붉은빛이다.’

    B랭크의 마력을 지니고 있는 생존자 조자도 감염시킬 수 있는 강력한 능력을 지닌 감염충.

    ‘사람들이 전부 반응했을까?’

    그 역경을 겪어왔기에 반응했을 수도 있다. 아니, 했을 것이다.

    허나, 지금같이 확실하지 않을 때는 일단 못 했다고 판다하고 움직이는 게 맞았다.

    -빠직.

    감영충을 으깨버린 유세현의 눈이 아린을 향했다.

    “영감님, 지금부터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차분히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 아린의 눈빛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 * *

    “으음...어우 찌뿌듯해. 카텐 목 안 아프냐?”

    케드리가 기지개를 켰다. 카텐도 동감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돌리는 등 스트레칭을 했다.

    그때 조심스레 다가간 아린이 물었다.

    “혹시 자네들, 어제 손가락 만 한 작은 크기의, 눈알이 많이 달린 괴물을 잡지 못 했는가?”

    “음...손가락만한 괴물이요? 글쎄요. 저는 보지 못했는데...”

    케드리나가 고개를 절레 저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는지 반문했다.

    “어? 왜 안 깨우셨어요? 위험한 거였으면...”

    “그 정도까진 아니었네. 한 손에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생명체였네. 하지만 판도라에 위험하지 않은 건 없을 터이니 자네들도 주의는 하게나.”

    “아, 알겠습니다.”

    감영충이 두각을 드러내기까지 걸리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동안 유세현과 아린은 간단하게 주의하라는 충고만 할뿐 철저하게 정보를 숨겼다.

    감염충들은 모체 케르가나에게 정보를 건네주기 귀환하는 습성이 있는데, 능력이 까발려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 완전히 육체를 지배할 때까지 돌아가지 않고 현 상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게 되면, 현재의 유세현으로서는 약물을 제조할 수도 없기에 감염된 생존자들은 끝.

    ‘분명히 3~4일 안에 두각을 드러낼 거다. 그때...’

    모체를 처리한다.

    그렇게 하루 더 지났다.

    눈앞으로 보이는 땅의 끝.

    경계를 지나자 배경이 무너져 내리며 환경이 순식간에 변화하기 시작했다.

    붉은 달이 사라지고 노란빛의 태양이 들어선다.

    어느새 그들의 앞에는 무너진 도시가 떡하니 놓여 있었다.

    동시에 느껴지는 마력.

    B랭크 40% 정도에 달하는, 제법 강한 자들이었다.

    놀란 표정이 된 아린이 다급하게 외쳤다.

    “트랩형 감지 마법이 걸려 있네! 우리가 왔다는 것을 알아챘을 게야!”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유세현이 있는 장소로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 팀원들은 유세현의 지시에 따라 허겁지겁 빌딩 내부로 들어갔다.

    창문 틈을 통해 잔뜩 긴장된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팀원들.

    유세현도 말없이 가만히 주시만 했다.

    알베타스는 구성원들의 대다수가 마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마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정말 특이한 개체 뿐.

    때문에 지금 이곳을 향해 오고 있는 자들은 알베타스가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서서히 드러나는 모습.

    “어...사람!”

    사람들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마크인들을 경험한 그들은 겉모습만으로는 더 이상 상대방을 신뢰하지 않았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고.

    그때 유세현과 일부 생존자들의 눈에 기수가 쥐고 있는 깃대가 눈에 들어왔다.

    독수리 문양의 마크.

    “저건 아르카드 제국의 문양이에요!”

    “오! 저게 그 말로만 듣던...그렇다면...”

    사람들이 유세현을 바라봤다. 유세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접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르카드 제국의 병사들이 빌딩근처를 이 잡듯이 뒤지고 있었기에 접촉하는 것은 무척 쉬웠다.

    통솔자의 이름은 레제먼 퀌.

    레제먼이 먼저 질문을 던졌다.

    “그래, 유세현이라고. 자네는 어디소속이지?”

    유세현은 미리 생각해둔 말을 꺼냈다.

    “새내기 입니다.”

    “새내기?”

    그 말에 레제먼의 표정이 의아하게 바뀌었다.

    적색의 땅은 새내기가 도착하는 장소가 아닐 뿐더러 숫자도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리라.

    유세현은 숫자에 대한 것은 대충 얼버무렸다.

    팀원들은 순간적으론 어벙한 표정이 되었지만, 끼어드는 인원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하는 말이니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 한 것.

    “흠...그럼 도착한 곳의 지형지물을 좀 설명해줄 수 있겠나?”

    “기본적으로 어둡고 마물들의 뼈가 많은 장소였습니다.”

    제대로 답하자 그제야 레제먼이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호오, 시체의 땅에 있는 곳에 떨어졌던 게로군.”

    “그런 거 같습니다.”

    다른 이름으로는 망자의 땅.

    유세현이 대답한 그곳은 이곳 폐허에서 동쪽에 위치해있는 장소로 게릭이 이전 말해준 새내기가 도착하는 5곳의 장소 중 하나였다.

    그리고 적색의 땅으로도 이어져 있는 장소이기도 했고.

    이로서 밑밥은 깔아 놨다.

    해독제를 얻을 수 있는 밑밥을.

    유세현은 레제먼이 다음 질문을 하기만을 기다렸다.

    적색의 땅과 연결된 이곳에서 자신들을 발견했다면 그 질문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그러나.

    “후...89명이라...많은 역경을 겪었겠군. 그동안 고생 많았네. 따라들 오게.”

    “......”

    유세현의 눈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갔다.

    그들이 지금까지 알베타스와 싸워왔다면 적색의 땅에 감염충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텐데?

    아린과 유세현은 동시에 생각했다.

    ‘뭔가 있다.’

    어쩌면 진지로 돌아가서 하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진지로 돌아가서도 묻지 않는다면...

    유세현의 팀원을 호위하듯 빙 둘러싼 병사들은 운이 좋다느니, 이전보다는 훨씬 괜찮을 것이라느니 입바른 말들을 늘어놨다.

    팀원들은 그냥 어설프게 웃어넘겼다.

    차라리 말이라도 안 꺼냈으면 몰랐을 텐데, 이제는 그들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참이다.

    상황이 좋은데 지원하러 가지 않았다고?

    게릭이란 사람이 이 말을 들었다면 게거품을 물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이곳이 우리 진지네.”

    레제먼은 근처에 위치해 있는 빌딩 중에서도 가장 높은 빌딩을 진지로 사용하고 있었다.

    총원은 약 300명으로 게릭이 몇 천의 군사를 다루고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자면 조촐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는 스스로 대단한 인물인 것처럼 행동했다.

    거대한 대형 홀에 유세현의 팀원을 불러들이기 무섭게 다짜고짜 시작되는 연설.

    그는 다짜고짜 주위에 분포하고 있는 마물이나 적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해나갔다.

    “지금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놈들은 자네들이 지금까지 봐왔던 놈들과는 차원이 다른 놈들이네. 최소 스텟이 B랭크를 거뜬히 웃돌지.”

    놈들이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는 생략.

    게다가 알베타스는 언급되지도 않았다.

    새내기들을 겁먹게 만드려는 의도가 너무도 뻔히 보이는 행동.

    유세현은 일단 잠자코 지켜봤다.

    연설이 절정에 이르고 마침내 레제먼이 결론을 말했다.

    “자네들은 이곳에서 14일간 대기하다가 본대로 이송 된 뒤, 그곳에서 능력에 맞게 각 부대에 재편성 될 것이네. 종이를 나눠줄테니 능력치를 상세히 적어서 넘기게. 좋은 능력치와 스킬을 가지고 있다면 좀 더 좋은 부대로 배

    치 될 것이지만, 욕심 때문에 거짓을 적었다가 밝혀지면 군법으로 엄히 다스려지게 되니 이는 꼭 명심하고.”

    마치 집단에 당연히 들어와야 된다는 모습이었다.

    게릭이 들려준 것과는 무척 괴리가 큰 시스템.

    대륙이 붕괴된 뒤 판도라에 도착한 새내기들은 두 가지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는 아르카드제국의 밑으로 들어가는 것.

    또 하나는 지금까지처럼 개인적인 팀으로서 팀원과 함께 나아가는 것.

    아르카드 제국의 밑으로 들어가면 보다 더 안전해지지만, 명령에 무조건 적으로 복종해야만 되었다.

    말 그대로 불구덩이 속으로 돌진하라면 돌진해야 되는 것.

    허나, 그렇다고 해서 팀원과 함께하는 것이 무조건 적으로 좋은 것 또한 결코 아니었다.

    일반 팀이 되면 고스펙의 생존자에게 떠밀려 무조건적으로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고, 일정 기간마다 항상 분수에 맞는 일거리를 처리해야만 했다.

    사람으로서의 자유? 거부권?

    그런 건 없었다.

    이건 생존권이 걸린 치열한 전쟁이었으니까.

    때문에 싸우지 않는 자들은 제국이랑 정규 팀이 합심해서 없애버린다고 한다.

    허나, 이건...

    ‘선택지도 없다니 이게 뭔 개똥같은...’

    어이가 없어진 팀원들이 표정으로 유세현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 것이냐고.

    이에 유세현은 레제먼을 향해 차분히 질문을 건넸다.

    “무조건적으로 따라야만 되는 것입니까?”

    “그렇네. 생존자들은 하나로 합치게 되어있지. 만약 거부한다면 법에 따라 우리가 자네들을 추격해야하네.”

    협박.

    “...알겠습니다. 그럼 따르도록 하죠.”

    유세현이 수긍하자 팀원들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야만했다.

    대체 그가 무슨 목적으로 이러는 것일까.

    팀원들은 게릭 덕분에 이젠 스스로가 얼마나 강하지를 잘 알고 있었다.

    최상위, 탑 클래스에는 속하지 못하지만 웬만한 생존자들은 그냥 씹어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스펙.

    그때 유세현이 조용히 옆 사람을 향해 속삭였다.

    빠르게 퍼져가는 내용.

    내용은 이러했다.

    [스테이터스를 C랭크 중급정도로 속여라.]

    스킬도 안 좋은 쪽으로 최대한 그럴싸하게 지어내서 쓰라했다.

    ‘그럼 그렇지. 역시 뭔가 생각이 있으신 거군.’

    팀원들은 납득했다.

    때가되면 알아서 설명해주리라.

    그들은 유세현을 믿고 적기 시작했다.

    * * *

    “여기 새내기들이 적은 스테이터스 표입니다.”

    “그래. 줘봐라.”

    부하에게서 종이를 받아든 레제먼이 빠르게 훑어보기 시작했다. 부하는 뭔가 들뜬 표정이었다.

    “전부다 이정도 스펙이냐?”

    “예.”

    “흠...새내기치고는 괜찮은 편이고. 여자의 수는?”

    “34명입니다.”

    “후...그렇다면 그나마 다행이군. 그런데 이번에는 고유특성을 개화한 놈이 있었나?”

    레제먼은 별 기대안하는 말투였다.

    그가 지금가지 보아온 새내기 중에서 고유특성을 발현한 자는 아직 없었기 때문에.

    그때, 부하가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밝게 웃으며 말했다.

    “있었습니다!”

    “그래 있어...뭐? 있다고?”

    레제먼의 눈동자가 빠질 것처럼 커졌다.

    “누구! 누구냐! 누가!”

    “유세현이라는 인간입니다!”

    레제먼은 순식간에 페이지를 넘겨 유세현을 찾아내었다. 정말로 명시되어 있었다.

    < 인형(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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