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229화 (229/612)

< 요새전(1) >

퍼퍼펑.

투두두두-

쫒고 쫓기는 추격전.

마크의 이목을 끌고 있던 각 팀의 조장들은 혀를 찼다.

“젠장. 아무리 지휘관님의 명령이지라만...”

무려 공장이다.

수차례 공격을 감행했어도 끄떡도 하지 않았던.

그런데 놈은 가능할 수도 있다고?

가소로웠다.

던전에서 뭘 얻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쉽게 모든 일이 해결 가능했다면 이 고생은커녕 애초에 밀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팀장님! 적들이 더 몰려들고 있습니다!”

부하의 말에 전투조 1-4팀의 팀장, 룩스가 명령을 하달했다.

“퇴각한다!”

“예!”

이쯤이면 해줄 만큼 해준 것이다.

팀장의 말에 능수능란하게 움직여 장소를 이탈하기 시작하는 인원들.

허나, 언제나 희생자는 나오는 법이었다.

당한 인원이 7명.

추격을 따돌린 룩스는 이를 부득 갈았다. 적은 숫자지만, 전력이 부족한 지금은 그 7명도 무척 귀했다. 거기다 자신의 팀만 피해를 봤겠는가?

다른 팀까지 합치면 족히 40명은 넘게 당했으리라.

‘아무것도 못했기만 해봐라.’

그때 저편에서 귀를 찡하게 만드는 커다란 폭음이 울려 퍼졌다.

콰앙!

콰과광!

핵폭탄이 폭발하면 이런 느낌일까.

룩스는 깜짝 놀라 가파른 절벽 위를 기어올랐다.

설마. 설마?

제일먼저 눈에 비친 것은 새까만 연기. 관측용 마법쌍안경을 들고 있는 부하의 표정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아...아...”

“야! 그만 웅얼거리고 쌍안경 줘봐!”

장비를 빼앗아 눈에 갖다 댄 룩스의 턱 또한 떡 벌어졌다.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그들로서는 단 한 번도 다다르지 못했던 영역이.

* * *

“저 시설을 파괴하다니...당신 대단한데?”

스스로의 이름을 라니아라고 소개한 수인이 감탄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걸을 수 없는 그녀는 현재 유세현의 옆구리에 껴 있는 상태였다.

유세현은 대답 대신 반문했다.

“언제쯤 움직이게 될 수 있을 것 같지?”

“최소 일주일. 그 전에는 좀 힘들 것 같아.”

“알았다.”

유세현은 얼마 걷지 않아 생존자들과 합류할 수 있었다.

이전과는 사뭇 다른 시선으로 유세현을 바라보는 인원들.

부리나케 뛰어온 게릭이 다짜고짜 찬사부터 날렸다.

“하하하! 유세현 나는 네가 해낼 줄 믿고 있었,..”

유세현은 눈동자를 굴려 슬쩍 눈치를 주자 이상하게 생각한 게릭의 시선이 라니아에게로 향했다.

갸웃거리는 고개.

“이, 이건 무슨...진짜 꼬리야? 그리고 이건 귀? 설마 그놈들 사람도 개조할 수 있었어?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분명 이강호의 말로는...”

그의 손이 슬쩍 귀와 꼬리로 향하려하자 유세현은 라니아가 반응하기 전 재빨리 몸을 틀었다.

“싫어하니까 만지지마라. 이 여자는 사람이 아니야.”

“뭐? 사람이 아니라고?”

“그래, 이 여자는 수인이다. 이곳에 오래 있던 너도 몰랐나보군.”

“...자세한 설명을 좀 부탁하마.”

유세현은 라니아를 내려놓은 뒤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타 종족을 경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라니아도 별로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눈치는 아니었다.

설명을 들은 게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확실히 마크 놈들이 우리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감이 있긴 했었지. 수인이라...그럼 그녀를 살려둔 이유는 혹시 모를 우호도를 위해서 인가?”

“그렇지.”

“알았다. 손가락하나 건들지 못하도록 모두에게 전파 해두마.”

그 말을 끝으로 게릭은 곧바로 화제를 넘겼다.

조심스럽게 튀어나오는 말.

“혹시...생각해둔 다음 계획이 있나?”

사실 게릭은 이것이 제일 묻고 싶었다. 유세현이라면 다음을 준비해 두었을 것 같았으니까.

대답은 빨랐다.

“있지.”

“어, 어떤?”

“놈들의 비행정을 파괴한다.”

게릭은 한동안 입을 다물 수 없었다.

* * *

포격요새, 쉘터의 함장실.

통신을 받은 금발 남성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뭐라고? 제 2공장이 당했다고?”

남성이 손을 한 번 휘젓자 제 2공장, 림 팩토리와 연결되어있는 전속 라인이 화면에 나타났다.

정기적으로 오는 보고만 있을 뿐, 긴급통신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뭔 일이 생겼다면, 분명 보냈을 터인데.

점점 좁혀지는 미간.

함장실을 나선 남성이 복도를 걷기 시작하자 밖에서 대기하던 수많은 마크들이 뒤를 따랐고, 지나가는 마크들 마다 고개를 90°로 숙이며 머리를 조아렸다.

이것이 권력과 인망.

남성, 루크프 루위드는 친위대를 이끌고 제 2공장으로 향했다.

휘이잉-

흩날리는 흙먼지.

정말로 폐허가 되어있었다.

루위드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단 한 번도 침입을 허용한 적이 없던 공장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무너지다니.

게다가 이곳에는 100명이나 되는 고위급 마크가 배치되어 있었다.

긴급통신이 오지 않았다는 것은 그 100명이 눈 깜짝 할 새도 없이 당했다는 것인데.

파악해놓은 인간과 수인의 실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 두 번째 의문점.

비행정까지는 그렇다 쳐도 바깥에서 싸우던 마크들에게까지 통신이 가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그는 폐허가 된 공장을 거닐며 생각했다.

두 번째 의문점은 곧 결론이 나왔지만 첫 번째 만큼은 도무지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해킹을 당했을 리는 절대 없고, 그렇다고 100명을 한방에 몰살시킬 수도 없었을 텐데...’

끝나지 않는 상념.

‘젠~장!’

쾅!

분노가 가득 담긴 루위드의 주먹이 지면을 강타했다.

그는 이번에는 직접 던전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루크아프 라 루크루프의 시스템과 너무도 흡사한 그것을 드디어 해킹을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

그런데 수인이 사방에서 뜻밖의 반격을 취해오는 덕에 그것에 신경 쓰느라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던전은 인간측이 완전 클리어.

그의 입장에서는 두 가지 악재가 동시에 겹친 것이었다.

화가 안 나겠는가?

“인간 놈들의 또 다른 거점은 알아냈나?”

“아직 입니다만 추측되는 부분은 있습니다. 위치는 해안가 근처 산등성이로 현재 인원들이 수색중입니다.”

“그래? 그럼 인원을 더 투입시켜라. 그리고 놈들의 거점을 발견된다면...친히 나에게 알려라. 이번에는 포격요새를 사용할 것이다.”

“예!”

수하가 고개를 숙이자 루위드가 몸을 홱 돌렸다.

* * *

루크루프가 전해준 포격요새의 잠입 방법으로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지상을 왕복하는 수송기를 탈취해 정면으로 당당히 들어가는 것.

또 하나는 드론을 해킹해 그것을 추진체로 사용한 뒤 외벽을 개방시키고 들어가는 것.

첫 번째는 안전하지만 수송기의 위치와 이동경로를 파악해야 했으므로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었고, 두 번째는 빠르지만 재수 없으면 레이더망에 걸릴 가능성이 있었다.

무엇을 선택해야 되는가.

고민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인원은 몇 명을, 과연 누구누구를 데리고 잠입해야 되는가.

들킬 확률과 신속한 탈출을 고려하자면 블링크를 사용할 수 있는 아린 정도만 같이 가는 게 옳았으나, 그렇다고 전투가 일어날 것을 고려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효율성을 보면 역시 둘이 가는 게 맞다.’

유세현은 침투할 날을 정했다.

‘수인을 놓아 준 후. 인원들이 제 2부대에 합류하면 그때 움직인다.’

생각을 마친 유세현이 라니아를 향해 물었다.

“몸 상태는?”

“음...꽤 회복됐어. 앞으로 이틀 정도만 지나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올 것 같아.”

“그렇군. 그런데 정말로 부족까지 혼자 찾아갈 수 있겠나?”

“흐흐흐. 지금 걱정해주는 거야? 넌 역시 이상한 인간이야.”

라니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으로 유세현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일주일 전이었다면 어림도 없었을 일이었다.

유세현은 그동안 라니아와 최대한 많은 대화를 나누려 노력했다.

인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없애 위함.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 중에서도 괜찮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때문에 그는 하지 않는 사적인 이야기까지 꺼냈다.

그 결과가 지금의 상황.

초반 지독한 경계심을 보이던 라니아도 유세현에게 만큼은 조금 누그러져 있었다.

아니, 어쩌면 많이.

먼 치에서 바라보고 있던 게릭이 중얼거렸다.

“무서운 놈.”

룽겐이 반문했다.

“예? 뭐가요? 사람답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무서운 거야.”

룽겐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함께 해온 생존자들은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이틀 뒤.

지드먼이 검을 휘두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후...이젠 싸울 수 있을 것 같네.”

팔이 잘려나갔던 나머지 인원도 몸을 풀었다.

그사이 유세현은 라니아를 배웅했다.

“약속을 지켜줘서 고마워.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어.”

“조심해서 돌아가라.”

“알았어. 그럼 이만...”

이윽고 라니아는 풀숲으로 자취를 감췄다.

유세현은 이정도 선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수인이 주둔해 있는 곳을 대략적으로 알아냈으니까.

수인들은 공장을 기준점으로 하여 인간진형의 반대 방향에 위치해 있었다.

즉.

‘웬만해선 수인과 마주칠 일은 없다.’

“자 그럼, 출발하도록 할까.”

게릭이 사람들을 이끌기 시작했다.

* * *

산등성이에 위치해 있는 제 2부대.

게릭과 생존자들은 분포해있는 마크 때문에 들키지 않고서는 더 이상의 접근이 불가능했다.

“큭...이곳이 더 위험하군.”

“어떻게...그럼 다시 퇴각 합니까?”

“아니, 어차피 제 2부대도 더 이상 여기 있을 수는 없다. 이놈들 냄새를 맡은 게 분명해. 내가 직접 가서 렉스와 회의를 하고 오도록 하지. 유세현 함께해 줄 수 있겠나?”

“......”

유세현이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몰래 들어가게 된 제 2부대.

“게, 게릭님!”

보좌관이 달려와 게릭을 반갑게 반겼다.

“렉스는?”

“아, 안쪽에 계십니다!”

“안내해.”

“예!”

보좌관은 황급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게릭이 그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

“뚫을 작전은 생각해 놨나? 어떻게 할 거지?”

“아, 아니 그게...아직...”

게릭이 호통을 쳤다.

“우리처럼 급습당한 것도 아니고, 적이 코앞까지 와있는데 아직도 계획은 안 세웠다고?”

이런 것을 보니, 그는 확실히 3부대의 총사령관이었다.

단순히 우르르 몰려다니기만 하던 구름섬 때보다 많이 성장한 느낌.

이전 습격을 당했을 때 인원이 500명밖에 잡히지 않은 것도 게릭이 잘 대처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그게...제가 이런 말씀 드리기 뭐하지만. 렉스님의 상태가...”

“뭐?”

“그게...”

“됐다. 직접 물어 보도록 하지.”

게릭은 구석에 쪼그려 앉아있는 남성의 앞에가 섰다.

“야, 렉스. 너 지금 뭐하고 있는 짓거리냐? 상황이 어떤지 알아?”

“하하하...게릭이냐...”

횃불에 비치는 렉스의 안색은 딱 봐도 피폐했다.

갑주의 틈을 붙잡은 게릭이 단번에 렉스를 들쳐 올렸다.

“야, 너 지금 뭐하고 있는 짓거리냐고 한 말 못 들었냐? 어? 너 여기 지휘관이야. 지휘관이라고 새꺄! 정신 안차려?”

“하하...지휘관...”

게릭의 외침에 렉스는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하하하. 그래...지휘관이지...다 죽어가는 부대의 지휘관...”

“너...”

“게릭...너무 힘들어...너무 지친다고. 우리가 고립 된지 몇 개월 째 인줄 알아?”

“......”

“난 이제 기억도 안나. 그런데 한 10년은 지난 거 같아. 언제쯤 지원이 도착하는 거지? 오긴 오는 거야? 그 이강호라는 놈이 오긴 오는 거냐고! 언제? 도대체 언제? 우리가 다 뒤지고 나서?”

“......”

“놈들이 게이트를 점령하던 때가 떠올라. 그 압도적인 화력에 갑자기 확 밀렸지. 나도 그 빌어먹을 귀족 놈과 같이 게이트로 도망치고 싶었는데...네가 날 붙잡았어. 그리고 지휘관 자리에 앉혔지. 게릭...난 네 말 만 믿고 견

뎌왔다. 꼭 구조가 올 거라고.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못하겠어. 놈들은 우리를 버렸어. 버린 게 분명해! 이젠 더 이상 꿈도 희망도 없는 그 한마디에 모든 걸 걸고 허우적거리긴 싫다.”

원망, 비통, 체념.

렉스의 목소리에는 그간 묵혀 두고 있던 감정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게릭은 잠시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 요새전(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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