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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221화 (221/612)
  • < 해킹(2) >

    몸을 바꾼 개체를 만난 것이겠지.

    “너, 너무 강해서 대응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도망쳤다고 한다.

    내용을 들어보니 전부 당한 것은 아니었다.

    약 2500명의 인원 중 던전을 나아가면서 생긴 사망자가 약 350명.

    마크와 조우했을 당시 야시로는 팀을 재차 4분할했기에 500명가량 되었었는데, 지금은 눈앞에 있는 사람은 100명뿐이니 당한인원은 400명 정도였다.

    자괴감 어린 표정이 된 야시로가 연신 바닥을 내려쳤다.

    “젠장! 젠자아아앙! 에리스가...에리스가...”

    그는 난데없이 유세현의 발을 와락 붙잡았다.

    “도, 도와주십시오. 제 팀원들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허튼 희망을 가지고 하는 개소리가 아닙니다. 놈들은 왜인지 몰라도 저희 팀원들을 죽이지 않고 포획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 당신이라면 부, 분명히 할 수 있으실 겁니다.”

    “......”

    죽지 않았다는 것은 그도 잘 안다. 허나, 과연 그들의 상태가 온전할까?

    필요한 것은 코인뿐인데?

    잠시 고민한 유세현은 수락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도록 하죠.”

    의무감이나 정의감 때문은 아니었다.

    어차피 던전에 있는 마크 놈들을 싹 쓸어버릴 생각이었고, 어쨌든 이들 또한 인간 세력의 전력이었으니까.

    ‘그리고 뭔가 이상하기도 하고.’

    하루.

    그들과 떨어져있던 시간이다.

    스텟의 차이가 나는 만큼 나아간 거리의 차가 차원이 달라야만 정상이었다. 그런데 야시로는 옆 통로에서 나타났다.

    이는 길뿐만이 아니라 공간도 꼬여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야시로는 기억을 되짚어 왔던 길을 조심조심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광활한 필드에서는 유세현의 마력탐지가 엄청나게 빛을 발했지만, 마력 수준이 엇비슷한 적과 아군 그리고 몬스터가 몰려있는 던전에서는 피아를 구별하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거기다가 구역까지 나뉘어져 있는지 마력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반복하여 특정 하는 것도 불가능.

    전투의 흔적은 있었지만 몬스터들의 사체는 보이지 않았다.

    ‘회수해 간 건가.’

    그렇게 한 구역을 더 지났을 때였다.

    이 앞에 있는 자들의 마력이 비로소 느껴진다.

    도합 500명.

    야시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제, 제가 기억으로는 이 다음 다음 방이었습니다. 이 바로 앞에 보초가 있을지도...”

    벽에 밀착한 유세현은 고개만 살짝 내밀어 주위를 흘끗 살폈다.

    그 말 그대로 보초가 10마리.

    신호를 받은 그의 팀원들이 우르르 몰려나가자 보초들은 기계답지 않게 당황하는 티를 냈다.

    삐리릭.

    [저, 적이다! 적이 쳐들어왔다!]

    [대응 사격을...]

    콰득.

    그들은 채 마법탄환을 몇 발 쏘지도 못하고 박살나는 신세가 되었다. 한 통로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야시로의 팀원이 야시로를 향해 말했다.

    “대, 대장님 저들이 강하긴 정말 강하다만 정말 그놈들을 이길 수 있을까요?”

    “모, 몰라! 일단 구해! 정 안되면...”

    야시로의 말에 따라 사람들은 다음 장소로 나아갔다. 유세현이 했던 것처럼 고개만 살짝 내밀자.

    콰득.

    펑!

    아주 개 박살이 나고 있는 마크들이 보였다.

    그 옆 공터에 붙잡혀있는 생존자들.

    “에, 에리스!”

    야시로가 제일먼저 부리나케 뛰어갔다.

    다리는 남아있지만 팔은 잘려나간 상태.

    옆에 있는 그물망에는 팔이 모아져있었으며, 특이한 밧줄이 생존자들의 몸을 칭칭 동여 메고 있었다.

    “야, 야시로!”

    “에리스! 내가왔어. 에리스!”

    유세현의 팀이 전투를 하고 있는 동안 야시로는 검을 뽑아 밧줄을 자르려 했다.

    그러나.

    치지짓.

    평범한 밧줄이 아니다.

    “제, 젠장 도대체 무슨 아이템이기에...”

    “야, 야시로 뒤! 뒤!”

    그 와중 담벼락위에 위치한 커다란 통로에서 다수의 마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존의 양산형과는 다른 형태.

    놈들은 머신건 형태의 팔이 아닌 제대로 된 팔을 지니고 있었는데 넓은 어깨에는 미니건과 미사일 탱크를 장착하고 있었다.

    트르륵!

    불꽃을 토하는 총구.

    그것을 본 야시로가 황급히 명령을 내렸다.

    “야! 나머지 인원들은 팔이든 그물에 달라붙어! 지금 즉시 이탈 한다! 에리스, 뛸 수 있지?”

    “그, 그렇긴 하지만 그럼 저들은...”

    “어쩔 수 없는 거야! 어차피 우리가 있어도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결국 야시로의 팀은 유세현의 팀이 어떻게 되던 말던 관심도 주지 않고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총알을 받아 쳐내던 카텐이 혀를 찼다.

    “허...저놈들 보게? 도와주지는 못 할망정 그냥 버리고 튀어?”

    야시로의 행동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삐빅.

    트드드드!

    함정을 고의적으로 발동시켜 더 이상 뒤쫓지 못하도록 막은 것!

    유세현은 피식 웃었다.

    그래, 이 413명의 인원들이 예외일 뿐 저런 것이 그가 지금까지 보아온 인간들이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게.

    돈 빌릴 때와 갚을 때가 다르게.

    트르르륵!

    거세지는 마크들의 화력.

    그러나 그 화력은 얼마 가지 못했다.

    타앗!

    유세현이 천마군림보를 사용해 순식간에 접근해왔기 때문.

    아린도 블링크를 사용해 적 바로 옆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몸 앞으로 나타나는 수많은 마법진.

    삐빅. 삐비빅.

    [헉! 이게 무슨!]

    푸부북!

    불의 창이 관통하자 강철도 된 육체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유세현도 검을 휘둘러 놈들을 부숴나갔다.

    [뭐, 뭐냐! 이놈들은! 어떻게 새내기가!]

    [서, 설마 포획조를 깨부쉈다는 인간 놈들이 이, 이놈들...]

    케드리나, 카텐, 루시아.

    마크들의 앞에는 어느 샌가 담벼락을 타고 올라온 수많은 생존자들이 즐비해 있었다.

    [크...모드를 변경해라!]

    지잉!

    그 말에 그들이 착용하고 있던 무기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미니건에서 해머로.

    혹은 검이나 창으로.

    변화하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미니건이 해머가 되는 것은 정말 순식간.

    허나, 그들은 일행보다 확연하게 느렸으며 파워도 약했다.

    쿵!

    치지지직.

    케드리나와 정면승부를 감행한 마크 한 마리가 바닥을 쓸었다.

    다리를 황급히 바퀴화 시키며 자세를 다잡지만, 그보다 더 빠르게 검이 치고 들어갔다.

    서걱.

    잘려나가는 목.

    그러나 마크의 특징은 목이 떨어져도 움직임이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신경회로를 부숴야 비로소 몸이 정지한다.

    케드리나는 그야말로 난자를 했다.

    촤자작.

    치지직-

    마지막 남은 마크가 저주를 토해냈다.

    [크크크, 네놈들은 결국 다 죽을 것이다. 루위드님이 너희들을...]

    삐이잉...

    고열을 내뿜고 있는 화염창에 의해 칩이 타들어가자, 점점점 줄어들던 기계음은 이윽고 완전히 침묵했다.

    유세현은 혹시나 다를까 하는 마음으로 언데드 레이즈를 사용했다.

    역시나 무반응.

    마크들은 언데드 레이즈에 의해 되살아나지 않았다.

    본체가 칩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지만 정확한 이유는 불명이었다.

    ‘키메라 제조법도 통하질 않으니.’

    이 두 가지 만 통했더라면 상당히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을 터인데.

    유세현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눈앞에 있는 통로를 살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높은 위치에 만들어져있는 통로.

    이 앞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것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신호를 보내자 팀원들은 평소처럼 대형을 유지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 * *

    유세현의 팀이 길을 찾아 헤매는 동안 마크들은 앞으로 계속 전진했는지 부서진 잔재들이 표식처럼 남겨져있었다.

    유세현은 일단 그것을 추적했다.

    본래라면 마력의 흐름을 읽어 최단거리의 길을 선택했겠지만, 길이 꼬여있어 도착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렇게 반나절.

    쿵! 쿵!

    지축을 뒤흔드는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돔형처럼 생긴 공터에는 기계로 이루어진 거인과 마크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한 구석에 붙잡혀 있는 생존자들.

    이번에는 폭시터의 팀이었다.

    400명만 포획된 야시로의 팀과는 달리 대부분이 붙잡힌 상황.

    카텐이 중얼거렸다.

    “아니, 이 새끼들은 재수가 없는 거야. 아니면 조심성이 없는 거야. 무슨 하루 만에 이렇게 많이 붙잡혀?”

    유세현도 때마침 하고 있던 생각.

    “어떻게 할 텐가.”

    “......”

    아린의 물음에 유세현이 턱을 어루만졌다.

    게릭의 말에 따르자면 이 거대한 기계거인은 이 던전의 항상 등장하는 일반적인 보스였다.

    놈을 잡으면 보상이 나올 테고 출구가 해방되겠지.

    ‘흠...이렇게 되면 완전 공략은 물 건너 간 건가.’

    수입이 나쁜 편은 결코 아니었다.

    그간 네임드몬스터를 잡으며 아이템도 많이 얻었을 뿐더러, 최대 레어까지 적용되는 형상기억마력코어도 1천 500개 이상 모았다.

    거기다가 마크 놈들까지 잡는다면 더더욱 많이 모일 테지만.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

    어느새 보스의 공략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그을음을 내뿜는 거인을 본 유세현이 말했다.

    “제가 신호를 주면 그때 일제히 공격하도록 하겠습니다. 영감님께서는 광역스킬의 준비를...”

    “알고 있네.”

    타이밍은 보스가 쓰러지는 순간.

    쿵.

    거인이 마침내 무릎을 꿇었다. 유세현이 손을 치켜세우려는 찰나.

    스스스.

    미친 듯이 탄환을 쏘아대던 마크들이 공격을 일제히 중지했다.

    유세현도 행동을 즉시 멈췄다.

    ‘뭐지?’

    아직 보스는 죽지 않았다. 그런데 마무리를 안 하다니?

    대장격으로 보이는, 특수한 몸체를 지니고 있는 놈이 앞으로 나섰다.

    기계거인의 팔에 무언가를 꼽는 듯한 모습.

    [가능할거 같습니까?]

    [으음...]

    묘한 행동.

    좀 더 귀를 기울이려는 찰나 한 마크가 팔을 들어올렸다.

    [누구냐!]

    펑.

    날아오는 마력 미사일.

    루시아가 잽싸게 앞에 마력방벽을 만들어 방어하자 새까만 연기가 일대를 자욱하게 메웠다.

    연기 속에서 유세현이 모습을 드러내자 생존자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오!오! 사, 살려줘! 여기야!”

    “노, 놈들의 충격탄을 조심해! 맞으면 한방에 기절...”

    그러나 유세현은 생존자들을 보고 있지 않았다.

    대장격의 마크, 프루쿠 또한 하던 일을 멈추고 유세현을 주시했다.

    [강한 놈이 있을 수도 있다더니. 사실이었군. 1-2부대를 뚫은 건가?]

    유세현이 툭 말했다.

    “뭘 하고 있던 거지?”

    [...분수에 넘는 질문을 하는군...]

    프루쿠의 눈이 빛을 더욱 강하게 발하자, 마크들이 팔을 들어 올리며 재차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이에 유세현 또한 앞으로 나섰다.

    “영감님 광역마법은 취소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린은 그 말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알겠네. 저 거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주의하지.”

    그렇게 시작된 전투.

    전투가 끝나는 것은 정말 순식간이었다.

    치지직.

    이제는 고철이 되어버린 수많은 마크들.

    프루쿠는 사지가 끊어진 채 유세현의 발에 밟혀 있었다.

    [어, 어떻게...그런 힘을...이 육체를 이길 수...]

    1500마리에 달하던 마크.

    놈들 중 100마리는 B랭크 20%정도에 달하는 힘과 내구력 스텟을 지닌 육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정도의 스펙이라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쥐어준 것 같은데.

    아쉽지만 수준과 양이 다르다.

    유세현은 압박을 더욱 가하며 물었다.

    “저 거인에게 뭘 하고 있었지?”

    트드득.

    장갑이 서서히 짓이겨지기 시작한다.

    지금이야 괜찮지만 이대로 계속 눌리게 된다면 결국에는 핵심 칩이 있는 곳까지 다다르게 되는 상황.

    공포를 조성한 것이었지만 프루쿠는 이전 보았던 포획조장, 아그메크와는 달랐다.

    [우리들이 말할 성 싶으냐? 그냥 부숴라!]

    콰득.

    유세현은 뜻대로 해주었다.

    어차피 이놈이 털어놓을 거라고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놈은 그저 본보기 용.

    “내 질문은 알고 있겠지? 말해라. 살려주겠다.”

    [헛소리! 부숴라! 우리들 중 누구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유세현은 차례 차례 부숴 나갔다.

    일부러 괴롭게 하기위해 세 번째부터는 칩을 꺼내 놈들의 눈앞에서 부쉈다.

    유세현이야 사람이니까 감흥이 없다지만 놈들한테는 어떻게 보일까.

    이제 남은 것은 마지막 한 마리였다.

    “다시 말하지만 살려준다. 말해라.”

    [그 말...지, 진짜겠지?]

    “물론.”

    [...그, 그게 저 거인은...]

    내용을 들어보니 마크도 이 던전의 완전공략에 힘쓰고 있었다.

    < 해킹(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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