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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220화 (220/612)
  • < 해킹(1) >

    완전공략은 유세현도 몇 번 해보지 못했다.

    던전 마다 조건이 전부 다른 탓이다.

    가령 몽환의성은 보스인 아퀼라가 직접 등장해야만 했고, 물빛의 사원의 경우에는 막대한 증표를 모아 모든 통로를 개방해야만 했다.

    레이커드만의 실험실처럼 발견하는 것 자체가 힘들고 난이도가 높아 클리어만 해도 되는 던전도 몇 있으나, 이미 여러 번 탐사가 이루어 졌다는 것에서 이번 던전은 단순한 걸 기대하긴 힘들었다.

    들어가면 샅샅이 조사해야겠지.

    유세현이 목청을 가다듬었다.

    “잠시 여러분께 드려야 될 말씀이 있습니다.”

    앞으로의 들어갈 던전에 대해 차분히 설명을 이어나가자 지켜보고 있던 병사들은 경악했다.

    저렇게 상세하게 말하다니!

    특히나 방금 유세현이 언급한 몸체를 바꾸는 것은 던전을 들어가지 않은 새내기에게는 기밀사항이었다.

    조우하는 즉시 웬만해서는 전멸인 만큼, 대개 패닉이나 폭동이 일어나 버리니까.

    그러나.

    “하아...산 넘어 산이네요 정말...”

    “그래도 그 정도 수준이라면...”

    생존자들이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자 병사들의 표정은 아이러니하게 바뀌었다.

    아니, 돌이켜보면 유세현이라는 자는 어떻게 저 정보를 알고 있는 거지?

    “설마, 총지휘자님이?”

    “나도 몰라 짜샤. 그런데 쟤네들 뭐 저리 침착하대냐...난 던전에 들어갔다 나왔을 때 정보 안 알려준 상부새끼들 다 조지고 싶었는데.”

    병사들은 모른다.

    그들이 얼마나 정말적인 상황을 이겨내고 이곳에 다다랐는지.

    병사들은 모른다.

    그들이 얼마나 유세현을 믿고 있는지.

    “세현씨, 출발은 언제죠? 보시다시피 부상자들이 많은데.”

    “일주일 뒤 입니다.”

    “휴...그나마 다행이네요.”

    일주일이라면 사지가 잘려 나간 것 정도만 제외하고는 웬만큼 완치가 된다.

    가령 가텐의 심장도 원래대로 되돌아오는 것.

    그렇게 시작된 일주일간의 방공호 생활.

    방공호의 생존자들은 새내기들에게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다.

    던전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배려라면 배려라고 볼 수 있었지만, 사실 그것보다는 새내기가 뭔가를 만지게 되면 일이 커지기 때문이었다.

    한 구석에 걸터앉아 루베르크를 품에 끌어 앉고 천마심법을 운용하고 있던 유세현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우측을 향했다.

    그곳에는 한 여성이 있었다.

    백발 그리고 핏기 없는 새하얀 피부와 붉은 눈.

    방어계열의 고유특성을 지니고 있는 루시아 아인셰르.

    최근 유세현은 이따금 루시아의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러는 것인가 싶기도 하지만, 가까이 다가와 어필하는 다른 여성들과 달리 그녀는 항상 일정거리를 유지한다.

    그리고 자신이 슬그머니 쳐다보면 루시아는 항상 저렇게 시선을 돌리곤 했다.

    아린이 다가와 말했다.

    “허허, 인기가 좋구먼.”

    “......”

    요 근래 6일간 유세현은 10명 이상의 여성에게 잠자리 권유를 받았다. 유세현의 성격을 아는 만큼 뭔가 목적이 있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즐기자.

    그런 뜻이었다.

    허나, 유세현은 전부 거절했다.

    그가 고자이거나 해서는 아니다.

    그도 혈기왕성한 남자였고, 한때는 여자친구와 밤낮을 안 가리고 한 적도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그가 거절한 이유.

    섹스는 마약과도 같다.

    하면 할수록 중독되고, 심각해지면 목적 달성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리고 결정적인 이유.

    그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팀원들을 믿고 있지만 개인적인 감정까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사실 정감이 가지만, 정감이 가는 자신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을 믿고 따라준 그 한 번의 행동이 이렇게 마음을 뒤흔들 줄이야.

    지금까지 정감이 가는 사람들이라고는 기껏해야 이강호, 유혜인, 김주희, 그리고 이태광 정도였는데.

    유세현은 애써 부정했다.

    “제 힘 때문에 그런 겁니다.”

    “허허, 힘 때문도 있겠지만, 다른 이유가 더 크다고 보네만...”

    “......”

    “나는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자네를 따를 거라고 생각하네.”

    “......”

    “껄껄, 뭐 그건 그렇고 이 늙은이가 잘 기억이 안 나서 그런데 혹시 갈색머리에 주근깨가 인상적인 여성의 이름이 뭔지 기억하면 말해줄 수 있겠나?”

    “...로네 루체스씨 아닙니까.”

    유세현이 대답해주자, 아린이 껄껄 웃으며 몸을 돌렸다. 속삭이는 듯한 작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이러니 사람들이 따를 수밖에...”

    유세현은 영문 모를 소리에 어깨를 살짝 으쓱였다.

    어느 샌가 루시아가 다시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 * *

    대규모이동.

    이럴 때는 대형 디코이가 사용되었다.

    던전의 입구는 1번, 2번, 3번, 4번으로서 총 4군데.

    그중에서 3번이라고 명칭이 붙은 입구로 들어서자 수많은 인원이 눈에 비쳤다.

    1부대와 2부대 쪽의 새내기들이었다.

    양쪽으로 진형을 나누고 중간에서 악수를 하고 있는 각 측의 리더.

    유세현의 팀원을 흘긴, 리더들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한눈에 봐도 인원의 차이가 무척이나 컸기 때문.

    웅성거림이 들려온다.

    “허...3부대는 저게 전부야?”

    “미친, 얼마나 개막장이었길래...”

    각 부대의 리더들이 유세현에게 다가왔다.

    “그쪽 인원은 정말로 저게 전부인 겁니까?”

    “예.”

    “...허...”

    터져 나오는 한숨.

    민둥머리를 하고 있는 다른 한 명은 노골적으로 유세현을 깠다.

    “얼마나 병신같이 운영했으면 이 정도 인원 밖에 유지를 못해? 내가보기에 당신에게는 이 팀을 이끌 자격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말에 발끈한 것은 유세현이 아니었다.

    “뭐? 문어대가리가 뚫린 입이라고...”

    케드리나가 카텐의 입을 황급히 막았다.

    유세현이 사소한 충돌은 피하라 일러둔 탓이었다.

    “야, 이 새끼야! 출발하기 전에 세현씨가 한 말 못 들었냐?”

    “아니! 저 새끼가 세현씨를 욕하는데...”

    “아오, 쫌! 이런 걸 고려해서 미리 일러준 거 아니겠냐. 잔대가리는 좋은 놈이 왜 이런 건 넘어가질 못해?”

    “아니, 내가 다른 건 다 참아도 세현씨 욕하는 건...”

    “지금 나도 모르게 주먹 날릴 뻔했으니까 제발 좀 닥쳐라 엉?”

    “...쳇! 저 아무것도 모르는 병신들이...”

    유세현은 잠자코 있었다.

    마치 할일을 하라는 것처럼.

    그러자 민둥머리의 사내, 2부대의 리더 미하자마 야시로가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거기! 우리 팀으로 올 사람 없나? 그쪽에 있어봐야 클리어하지 못하고 어차피 다 뒤질 텐데?”

    세력을 불리려는 용도일까. 아니면 정말로 사람들을 위한 것일까.

    돌아오는 것은 깊은 침묵이었다.

    의아함에 물드는 생존자들.

    “뭐야? 저런 놈을 따르겠다는 거야? 하! 뭐 좋아.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고.”

    상당히 가시 돋친 말이었다. 그리고 그 가시는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모습을 드러냈다.

    “각 팀당 400명씩 전방 배치시켜서 나아가도록 하지? 어때? 공평하고 좋지 않나?”

    유세현의 팀의 인원들은 거의 쉬지 말라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유세현이 얼굴을 주시하자 야시로가 피식 웃었다.

    “왜? 설마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시겠지?”

    “불공평한건 아니죠.”

    1부대의 팀장 폭시터도 고개를 끄덕였다.

    인원들을 살려오는 것은 개개인의 재량.

    엿 먹어 보라고 한 말이었지만, 유세현은 꽤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죠.”

    수락하자 놀라움에 물든다.

    ‘뭐, 뭔데 저 새끼?’

    불평불만 하지 않는 놈의 팀원 때문에 더욱 신기.

    시작점은 하나였기에, 인원들은 하나로 뭉쳐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 * *

    게릭의 말에 따르자면, 던전은 시시각각 변화한다고 한다.

    덕분에 제일먼저 생각나는 것은 비밀 통로였다.

    유세현은 사람들이 전투를 벌이는 동안 이것저것을 탐색해나갔지만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

    “꺄아악!”

    별안간 울려 퍼지는 비명.

    앞쪽에서는 난리도 아니었다.

    B랭크의 인원이 확 늘어버린 덕분인지 D랭크, 잘해봐야 C랭크에 달하는 새내기들은 궁지에 몰리고 있었다.

    더군다나 형상기억마력코어를 지니고 있는 적들이니 만큼 적의 대다수가 유기질 물질이 아닌 무기질 물질, 합금이라는 게 무척 크게 작용한다.

    쓸데없이 단단한 것!

    부수기 위해서는 관절을 노릴 필요가 있었다.

    쉴 새도 없이 빠르게 로테이션 되가는 야시로팀과 폭시터의 팀.

    유세현의 팀원을 슬쩍 본 야시로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무차별적인 파괘.

    강하다. 무척이나.

    야시로의 팀이 방어를 한 뒤 가까스로 공격을 이어나간다면, 유세현의 팀은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했다.

    회피하면서 무기를 휘두르는 것.

    “크으...다 처리 했으면 우리 팀 좀 도와주세요!”

    결국에는 폭시터가 체면불구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유세현은 받아들였다.

    애초에 감정싸움을 할 생각 따윈 없었으니까.

    다만.

    “우리 팀원이 잡은 코인은 우리 팀원이 갖도록 하겠습니다.”

    “으...그렇게 되면 우리는 성장이...”

    폭시터의 말이 뚝 끊겼다.

    소용이 없다는 것을 단번에 깨달은 것이다.

    유세현은 그들은 키울 마음이 1도 없었다. 자신의 팀원이 강해지기에도 바빴으니까.

    강자는 약자를 학살한다.

    현재 유세현의 팀원은 체력, 마력, 내구력 등의 여러 스텟이 힘과 민첩 스텟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제단에서 사냥한 바가 있었지만, 그보다도 힘의 치중되어있는 오크와 민첩에 치중되어 있는 가루다와의 전투가 잦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다른 스텟이 더해져 균형을 이룬다면?

    보다 더 안전하고 확실하게 적을 도륙할 수 있다.

    ‘몬스터의 수준이 더 높지 않은 게 살짝 아쉽네.’

    그렇게 조우한 첫 네임드몬스터.

    기여도로 아이템을 가져가기에 야시로와 폭시터도 이번에는 죽어라 싸웠다.

    물론 그래봤자 얻을 수 있는 전리품은 1개 정도로 많지 않았다.

    반면 유세현 팀이 획득한 것은 3가지.

    아이템명: 라푸의 기계방패.

    등급: 레어 [S Rank]

    상세정보: 특수한 부품으로 조립된 기계 방패입니다. 경도가 무척 높고 겹으로 조립되어 있어 충격에 강합니다. 특정 모양으로 형태변환이 가능합니다. 배쉬 스킬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사용능력: 배쉬 [레어 S Rank]

    그 외의 2개는 레어 C등급에 달하는 것으로 기계로 된 기다란 창과 검이었다.

    유세현은 방패는 케드리나에게, 검은 아린에게, 창은 데윈이라는 팀원에게 건넸다.

    “그...이 방패는 저보다 세현씨가 사용하는 게...”

    “아뇨, 저는 됐습니다.”

    방패, 맨 처음에는 사용했었다. 아니, 나중에는 파손 되서 못 꼈을 뿐이지 얼마나 갖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

    그만큼 방패는 안정적인 공방이 가능하게 해주니까.

    허나, 계속 시간이 흐르고, 루베르크의 손잡이를 늘려 양손과 한손을 번갈가면서 쓰게 된 이후로는 방패가 조금씩 번거롭게 되었을 뿐더러, 특히나 천마의 검법은 익힌 후부터는 손이 자유로워야 했기에 생각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럼...잘 쓰겠습니다.”

    케드리나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방패를 꼭 쥐자 카텐이 허공에 주먹을 휘둘렀다.

    “에이~! 저런 좋은 아이템이 케드리나 따위에게 가다니!”

    “아니, 이게 죽다 살아나더니 못하는 말이 없네. 이 방패에 맞아서 이번에야 말로 세상 하직하고 싶냐?”

    “허이고! 쳐봐! 쳐봐! 내가 그런 걸 무서워 할 것 같...”

    유세현은 둘의 애정 싸움을 뒤로 한 채 인원들을 전진시켰다.

    아직 갈 길은 멀었으니까.

    카텐과 케드리나가 얼른 뒤를 쫓았다.

    * * *

    던전은 나아가면 나아 갈수록 길이 나뉘고 좁아져 갔다. 유세현은 갈라질 것을 택했다.

    생존자 진형의 상태가 많이 안 좋은 만큼, 야시로 팀과 폭시터의 팀 또한 생존하는 편이 이롭지만, 그렇다고 해서 몬스터의 수가 줄어드는데 꼬리만 물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

    야시로와 폭시터도 흔쾌히 수락했다.

    던전의 난이도가 높아졌다는 것은 보다 더 높은 순도의 코인이 나온다는 것.

    그들은 피해를 입었지만 어찌어찌 강해지는 데는 성공했다. 아니, 정확히는 대처법을 알아냈다.

    관절부위 외에도 화염 혹은 뇌전 속성이 놈들의 약점이었다.

    갈라지기 직전 처음 내뱉은 말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는지 야시로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감정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상당히 기분이 나쁘셨을 텐데 정말 죄송합니다.”

    유세현이 고개만 살짝 끄덕여 답하자 야시로는 다짐했다.

    앞으로 지레짐작만으로는 결코 입을 털지 않겠다고.

    그렇게 세 팀은 갈라졌고, 그중에서 100명가량은 하루 뒤에 조우할 수 있었다.

    “으아아, 뛰어! 뛰어! 더 빨리!”

    “젠장. 젠장. 무슨 그딴 괴물이...”

    옆에 난 통로를 통해 도망쳐 오고 있는 야시로의 팀.

    뒤에는 마크들이 미친듯이 마법탄환을 쏘아댄다.

    유세현이 검을 뽑자, 인원들이 그 뒤를 따랐다.

    * * *

    “어떻게 된 겁니까.”

    묻고 있었지만, 사실 예상은 갔다.

    < 해킹(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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