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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217화 (217/612)
  • < 멸족(4) >

    처음 가루다들이 덮쳐 왔을 때 생존자들은 아연실색했다.

    저 많은 인원을 어떻게 상대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혼신의 힘을 다해 질주하는 것뿐이었다.

    “으아아아!!”

    “계속 달려! 멈추면 죽는다!”

    퍼버버벙!

    마력을 가득 실을 광역기가 사방으로 펼쳐진다.

    그러나 놈들과 스텟이 비슷한 현재, 저 많은 수를 뚫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그간 방어역할을 맡아준 구울들이 부서져 나가고, 함께 해온 동료들은 공격에 차례차례 쓰러져 간다.

    어마어마하게 강한 아린의 광역스킬이 없었더라면 여기까지 뚫지도 못했을 것이다.

    허나, 여기까지다.

    낭패, 좌절 등 무수히 많은 감정이 생존자들의 얼굴에 비쳤다.

    어쩌자고 그때 유세현의 말을 따를 마음이 들었던 것일까.

    스스로 결정한 것이었지만 결과가 이렇게 된 만큼, 사람인 이상 후회하지 않을래야 안 할 수가 없었다.

    전방을 향해 파이어 레인을 시전 한 아린이 외쳤다.

    “포기하지 말고 뛰게! 살 수 있네!”

    사람들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상황상하는 빛 좋은 개살구 같은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는데.

    “그가 지금 이쪽으로 오고 있네!”

    “...?!”

    ‘그’라는 한 마디만 언급했을 뿐인데. 인원들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오고 있다고?

    유세현이?

    그 순간.

    솨아아아.

    상공을 어둠이 가득 메웠다.

    생존자들은 그래도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를 따르길 잘했다고.

    적어도 지금까지 수도 없이 보아왔던 비운의 팀들처럼 버림받지는 않았으니까.

    어느 위인이 한 말이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도 군인들이 싸워나갈 수 있는 이유는 사명감과 유대감 때문이라고.

    아린의 앞으로 5마리의 가루다들이 날아들었다.

    아린이 팔을 들어올렸다.

    그의 앞으로 생성되는 5개의 불의 창.

    “파이어 스피어.”

    2가지를 추가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선택한 마법이었다.

    빠르기나 위력적면에서 윙 블래스터에 따라올 바는 못 되지만 마력효율이 상당히 좋다.

    푸부북!

    3마리는 적중.

    2마리는 빗겨 나갔다.

    아린은 검을 치켜세웠다.

    이전 유세현에게 받은 일침.

    [적들을 전부 마법으로만 상대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게 적절히 조합 되어야 된다. 그 말을 들은 이후부터 아린도 부단히 노력했다.

    마법연구를 할 때처럼 유세현의 검술에 대해 분석하고 따라 연습했다.

    쉬는 시간 잠잘 시간도 쪼개가면서.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못하던 것이 확 잘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챙! 챙!

    적어도 2존 때처럼 압도적으로 밀리지는 않았다.

    아린의 목 끝을 날카로운 발톱.

    2:1은 역시 무리인 모양이었다.

    그가 재차 거리를 벌리고 마법을 사용하려는 순간 풀숲에서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촤자작!

    눈 깜짝하는 사이 가루다의 목숨을 훔친 그 그림자는 생존자들을 공격하고 있는 가루다들을 연이어 벤 뒤 방향을 틀어 아린에게 다가왔다.

    “자네! 계획은 성공한 겐가?”

    “예. 반 정도는.”

    “반? 그럼 아이템은...”

    유세현은 말없이 팔을 들어 올려 팔찌를 보여주었다.

    “그럼 실패한 건 대체...”

    아린이 말을 끝마칠 새도 없이 거센 바람소리가 휘몰아쳤다.

    밀려들고 있는 가루다!

    가리움을 선두로 한 대부대는 도시를 향해 몰아치는 거대 해일과도 다름이 없었다.

    유세현의 눈이 별안간 번뜩였다.

    ‘미끼를 물었군.’

    유세현이 이곳에 온 것은 아린과 생존자를 구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다른 목적도 있었다.

    데오폴론의 왕 데오펠.

    그리고 그의 신하들.

    놈들의 씨를 완전히 말린다.

    대장급의 가루다들이 지상을 내려다보며 외쳤다.

    “씨를 말려라!”

    파앗!

    재도약한 유세현이 한 번 더 부패의 어둠을 흩뿌렸다.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범위의 어둠이었다.

    “회피! 회피해라! 닿으면 안 된다!”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산개.

    그럼에도 다수의 가루다들은 부패의 어둠에 당해 지상을 향해 추락했다.

    유니크 등급으로 오른 루베르크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부패의 어둠은, 공간자체를 가르며 날아가는 천마광룡참의 속도에 비할 바는 못 되었지만 그래도 상당히 빠른 축에 속했다.

    착지한 유세현이 아린을 향해 말했다.

    “영감님께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멈추지 마시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뭐? 무슨 일이 있어도 말인가?”

    “예. 적이 덮쳐 와도 제가 알아서 해드리겠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후...알겠네.”

    아린이 답을 하자 이윽고 유세현이 다시 풀숲으로 모습을 감췄다.

    * * *

    “젠장, 그새 어디로 사라진 거지?”

    가리움의 육신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케르젠은 현재 두 명의 인간을 찾는데 잔뜩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한 명은 유세현, 또 하나는 데오펠이 당장에 숙주로 삼을 늙은이.

    그런데 이 지대는 생각보다 숲이 우거져 있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데오펠에게서 교신이 날아온다.

    [놈이 왔다고? 이 몸께서도 거의 다 도착했다! 내가 사용할 몸은 지금 어디에 있지?]

    케르젠의 더욱 빠르게 눈동자를 굴렸다.

    유세현의 부리는 구울들 또한 이제 거의 근처에 다다랐다.

    난전이 일어나게 되면 더욱 찾기 힘들어지는 상황.

    저공비행하는 그의 망막 속으로 흰 머리에 흰 수염을 지닌 늙은 노인이 들어와 박혔다.

    [왕께서 나아가고 계신 방향으로 부터 11시 쪽. 거리는 약 300m정도 입니다.]

    [그래 알았다. 가서 붙잡고 있어라! 놈의 육체를 취한 뒤 유세현을 잡으러 간다.]

    [예!]

    뒤를 잡은 가리움의 육체가 엄청난 속도로 하강했다. 일반적인 가루다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

    25m. 15m. 5m.

    케르젠은 웃었다.

    마력이라도 다 떨어진 것인가? 달리는데 혈안이 되서 뒤를 보지 못 하다니.

    이제는 알아채도 늦었다.

    그가 딱 그렇게 생각한 찰나.

    휙휙휙.

    푹.

    어디선가 날아와 어깨에 박히는 검신.

    ‘이, 이 검은!’

    아차 할 새도 없이 회전력을 더한 유세현의 발이 케르젠의 척추를 후려갈겼다.

    “크헉.”

    물리저항력을 부숴버리는 압도적인 힘.

    말로 항상 들어왔음에도, 실로 믿을 수 없는 파괴력이었다.

    “크으으 네놈...”

    유세현은 씨익 웃었다.

    ‘그래, 올 줄 알았지.’

    아린의 스킬은 하나하나 무척 대단하다.

    그래서 그는 분명 놈들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데오펠은 법칙의 영향을 안 받으니까.

    유세현이 우측으로 방향으로 몸을 틀자, 깜짝 놀란 케르젠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저 방향은 데오펠이 다가오고 있는 방향이다.

    ‘젠장. 저놈은 어떻게 항상 저렇게 정확하게 알고 있는 거지?’

    그림자는 냄새가 없다.

    여러 물질로 이동해 다니기 때문에 특정 물질 추적도 통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들을 탐지해낸 스킬은 공간지각 스킬이나 마력감지 스킬정도밖에 없는데 공감감지는 100m정도로 범위가 좁고, 마력감지는 한순간의 마력 밖에 탐지하지 못해 움직임은 읽을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이전 유세현의 팀에 2명을 잠입시키려 한 적도 있었다.

    결과는 참담.

    ‘젠장할...’

    카르젠은 스킬을 쏟아 부우며 유세현에게 달려들었다. 발톱을 피한 유세현이 수풀을 향해 검을 내지르자 거대한 그림자가 불쑥 튀어나왔다.

    [네노오오옴! 유세혀어언!]

    2대 1.

    데오펠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수많은 강철의 칼날이 유세현을 덮쳤다. 의체가 없다고 하여 스킬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투두둑.

    그러나 유세현에게는 닿지 않았다.

    날아오는 칼날을 하나 하나 일일이 엄청난 속도로 쳐낸다.

    가리움이 잽싸게 원조를 불렀다.

    쉬이익.

    일단 물량공세로 밀어붙이기로 한 것이었지만.

    -키아아악!

    도착한 구울들이 가루다들을 향해 이빨을 들이밀었다.

    부수고 피가 튀는 난전.

    아린에 육체에 마음을 접은 데오펠이 카르젠을 향해 통신을 날렸다.

    [어떻게든 틈을 만들어라. 반드시 먹는다.]

    [예, 알겠습니다!]

    협공.

    되살린 구울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병력을 온건히 유지한 가루다들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으깨지고 박살나고.

    유세현은 남은 마력을 모두 부어 마족화를 사용했다.

    그림자 형태의 데오펠은 왕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육체적 전투능력은 없지만, 그만큼 무척이나 날렵했다.

    아까 아차 하는 순간 놓친 것도 그 이유.

    강호가 확실하게 마무리 못한 것도 그때 이해가 되었다.

    그러니 지금 확실히 승부수를 띠운다.

    유세현은 걸리적거리는 가루다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휘익.

    한 번 휘두르자 놈들의 육체가 반으로 잘려나가고, 두 번 휘둘렀을 때에는 서 있는 이가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놈이이이!”

    한 마리가 뒤늦게 옆에서 치고 들어왔으나.

    -캬아악.

    구울이 잽싸게 덮쳐 그것을 막았다.

    케르젠은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3개의 스킬을 모두 사용했다.

    그리고 몸을 버릴 생각까지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틈을 만들지 못할 것 같았기에.

    케르젠이 달려드려는 순간.

    쿠과과광!

    딛고 있던 땅 그리고 하늘. 그 외의 모든 것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여파가 근처에까지 다다른 것.

    중력이 바뀌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때는 지금!

    달려든 가리움의 강화된 클로와 루베르크가 맞부딪쳤다.

    치지직.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

    루베르크의 날이 가리움이 클로의 날을 서서히 가르기 시작했다.

    -서걱.

    가리움은 온몸으로 루베르크를 받았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유세현이 움직이지 못하게 최대한 꽉 움켜쥐었다.

    [왕이시어!]

    스킬을 난사하며 기회를 엿보고 있던 데오펠이 입을 쫙 벌렸다.

    그 안으로 사라지는 유세현.

    하지만 데오펠은 전혀 기뻐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꾹 닫힌 입이 점점 벌어진다.

    유세현의 왼손이 입천장을 밀어내고 있었다.

    [크으으으. 이놈이...]

    지이이잉!

    초근접에서 펼쳐지는 정신계 공격.

    일반인이었다면 당장 기절하거나 지배당했을 정도로 강력한 능력이었다.

    그러나 정신공격이 격해지면 격해질수록 유세현의 붉은 눈이 더더욱 밝고 강렬한 빛을 내뿜었다.

    [어떻게...어떻게!]

    “큭! 더 이상은...왕이시...”

    서걱.

    가리움의 육신이 조각조각 나뉘었다. 유세현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대로 팔을 치켜세웠다.

    푹.

    그림자 사이로 빠져나오는 칠흑의 검신.

    [커억...]

    몸을 돌려 데오펠과 시선이 마주친 유세현의 마음속으로 그의 생각이 쏟아져 들어왔다.

    ‘어떻게 이 거리에서의 내 정신공격을...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정말 묘하디 묘한 감각.

    유세현은 검을 내리 그었다.

    그것을 끝으로 데오펠의 생각은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라이하운드의 지배자가 사라졌습니다.]

    [3가지의 법칙 효과가 상실됩니다.]

    알림창과 떨어진 코인이 모든 것이 종결되었음을 알리고 있었다.

    * * *

    쿠구구궁!

    붕괴의 여파가 비로소 포탈에까지 미치기 시작했다. 넓이가 조금씩 좁아지고 있는 것.

    루시아, 그 외 생존자들은 숲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가루다들이 물살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살아남은 가루다들은.

    “모, 몰려오고 있어요. 어떡하죠? 고, 공격? 아니면 지금이라도 들어갈까요? 들어가 있어도 된다고...”

    “적이 바로 눈앞에 있으면요? 방금 전에도 말 했잖아요.”

    “아으...그럼 어떻게...”

    “이, 일단 조금만 더 지켜보죠.”

    사람들은 초조하게 기다렸다. 빨리 유세현이 돌아오기를 빌면서.

    그런 바람을 듣기라도 한 것일까 저편에서 생존자 무리가 달려왔다.

    “저, 전부 마력이 되는대로 광역 스킬을 날리세요! 빨리!”

    지원사격.

    가루다들도 반격했다.

    콰광!

    “크아악.”

    널브러지는 생존자들.

    “이, 이건 안 돼요! 도저히 못 버텨요.”

    아니나 다를까 아린의 외침이 들려왔다.

    “들어가게!”

    “으아아.”

    사람들은 우르르 포탈 속으로 몸을 던졌다.

    < 멸족(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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