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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206화 (206/612)
  • < 데레아펜다(2) >

    유세현은 곧바로 도약했다.

    바람의 칼날, 회오리 등 수많은 스킬들이 사방에서 쏟아졌지만 그는 날렵한 몸놀림을 선보이며 그 대부분을 회피해 나갔다.

    치를 떠는 가루다들.

    “캬으으...인간이 어떻게 저런 움직임을...”

    그 다음 순간.

    -쉬이이익!

    흡사 미사일과 같은 바람의 포탄이 상공으로 치솟았다.

    가르쿠라의 구체처럼 어마어마한 마력이 압축 되어있는, 범위는 즐겨 사용하는 불의 비보다 범위는 작지만 속도와 순수한 파괴력 면에서는 훨씬 강한 아린의 비전마법.

    [윙 블래스터]

    -트드득!

    경로에 있던 가루다들의 일부가 압축된 포탄에 닿기 무섭게 그대로 우수수 무너져 내렸다.

    “큭! 산개해라!”

    가루다들은 좌우로 갈라지며 재빨리 대응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윙 블래스터를 회피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었다.

    -지지징!

    갑작스럽게 포탄이 뚝 정지한다.

    0.1초.

    -콰아아앙!

    굉음이 터져 나와 일대를 뒤흔들었다.

    지상이었다면 장애물들에 의해 피해가 덜했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공중이라 그런지 죽어나가는 가루다들은 많았다.

    “지금이다! 전원 공격!”

    -슈슈슝!

    -투두두!

    케드리나의 외침과 함께 숲에서 수천에 달하는 형형색색의 빛이 터져 나왔다.

    가루다들을 향해 쏟아지는 광역스킬!

    -퍼버버벙!

    스킬의 등급이 높지 않아 하나하나의 위력 자체는 그리 강하지 않았으나, 대부분 속성이 담겨져 있는데다가 수가 많아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정예 가루다들의 일부 시선이 지상으로 향했다.

    이어지는 반격.

    “이런 하찮은 벌레들이!”

    -콰과광!

    “크아아악!”

    이곳저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유세현은 아린의 근처에 착지했다.

    “영감님.”

    “왔는가!”

    아린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치켜세웠다.

    상공에 그려지는 거대한 기하학적인 문양.

    불의 비가 쏟아져 내리자 날개가 그을리기 시작한다.

    속성 저항력이 버티질 못하는 것!

    “크윽...인간놈들!!”

    가루다들이 불의 비에 시선이 돌아간 순간, 아린이 황급히 외쳤다.

    “지금 퇴각하세나! 지형은 대충 파악해뒀네! 이 옆으로 내려간다면 숲이 우거지고 통로가 좁아져 함부로 추격해올 수 없을 걸세.”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샤샤삭.

    수많은 인원들이 전심전력을 다해 뒤돌아 질주하기 시작했다.

    * * *

    유세현을 돕기 위해 절벽을 건너 공격을 감행한 생존자들.

    그 의도는 좋았으나 결과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망한 인원이 무려 150명에 달하는 것.

    사실 300에 달하는 정예를 상대로 시간 끈 것을 고려하자면, 굉장히 미미한 피해였으나 그들은 결코 좋아할 수 없었다.

    이동하는 도중 유세현이 살짝 팔을 들어올렸다.

    1초.

    무려 연대급에 달하는 인원들이 완벽하게 정지하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훅! 훅! 훅!

    거친 날개 짓 소리가 울려 퍼진다.

    “크으...인간놈들...”

    종대를 이루고 있는 수십 마리의 가루다들이 그들을 지나쳤다.

    울창한 숲 때문에 시야가 한정된 덕에 가능한 일.

    유세현은 꿈틀거리는 데레아펜다의 육신을 재차 난타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 깨어나서는 뭘 캐묻기도 애매하다.

    어딘가 잠시 머무를 수 있을만한 안전한 장소가 필요하다.

    유세현은 가루다들에게 사냥 당하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마력의 흐름에 집중했다.

    이곳에 고작 수십 명의 생존자만 지내고 있을 리가 없다.

    분명, 더 있을 터.

    강한 마력을 제외하고, 빠른 이동을 보이고 있는 마력도 제외한다.

    답은 의외로 가까이 있었다.

    ‘이 근처군.’

    -솨솨솨솨!

    흔적을 쫓아 다다른 곳에는 거대한 폭포가 있었다.

    아른거리는 기억.

    그래, 1차 튜토리얼 때도 저렇게 생긴 폭포 뒤에 제단이 숨겨져 있었지.

    인원들은 유세현의 지휘아래 폭포 내부로 들어갔다.

    -휘이잉.

    바람소리만 메아리 칠뿐 흔적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게 여태까지 살아남은 비결인가.’

    빛도 보지 않은 채, 동굴에만 처박혀 연명한다. 일행은 내부로 계속 들어갔다.

    동굴을 생각보다도 무척 넓었다.

    ‘혹시 다른 장소로도 이어져 있는 건가?’

    아니나 다를까, 무수히 많은 마력이 계속해서 반대편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장작을 확인한 유세현은 일단 이곳에 자리를 잡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 뒤쫓아 접촉해봤자 의미도 없는데다가 가루다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것을 알면 멀리가 가지도 못 할 것이기 때문.

    유세현은 동서남북 네 곳에 불을 붙인 뒤 그 중간에 위치해 놈이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 * *

    [으으...어떻게 된...]

    눈을 번쩍 뜬 데레아펜다는 유세현을 보고 기겁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것이지? 왜 이놈에게 붙잡혀있단 말인가!

    의문과 함께 일순간 손실되었던 기억이 되돌아왔다.

    ‘내, 내가 그렇게 허무하게 제압을 당했다고?’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강호와 같은 최상위 인간이 와도 정신세계에서 그렇게 자신을 쉽게 제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분명 그럴 터인데.

    -꾸우욱.

    온몸이 찢겨져 나가는 듯한 압박이 들어온다.

    “깨어났군. 네게 묻고 싶은 게 있다.”

    [......]

    “넌 뭐지? 뭐하는 놈인데 가르쿠라의 몸에 붙어 있었던 거지?”

    유세현의 말에 데레아펜다는 대답 대신 주위를 살폈다.

    전후좌우.

    너무 밝아 어둠에 숨을 틈이 보이지 않는다.

    “대답하기 싫다는 건가.”

    유세현은 눈과 입부위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을 꽉 움켜잡았다.

    어느 곳이 급소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곳은 아니리라.

    -찌지직.

    종잇장처럼 찢어지기 시작하는 데레아펜다의 육신.

    사지가 떨어져나가는 것은 무척 고통스럽다.

    그것은 초인이 된 인간도 마찬가지고, 데레아펜다도 마찬가지였다.

    “말해라.”

    [......]

    데레아펜다는 죽음을 각오했다.

    어차피 말해도 100% 죽는다. 그렇다면 그냥 죽는 게 나았다. 아니, 살려준다고 해도 그는 죽을 생각이었다.

    자신으로 인해 모든 거사를 망칠 수는 없었으므로.

    그때, 유세현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절대 불지 않겠다는 건가? 뭐 됐어. 네놈들이 뭔지는 대충 예상이 가니까. 너희들...이 섬의 지배자 맞지?”

    [...?!]

    유세현은 상대가 듣던 말던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상대가 말을 하지 않는다면, 반응으로 하여금 자신의 추측이 어디까지 들어맞는지 떠보기 위함이었다.

    “처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었다. 치고 박고 싸우기 그지없던 두 종족이 갑자기 섬을 양분하다니...가루다다나 오크들의 행동을 보아하니 전부 침식한 건 아닌 거 같고, 수뇌부만 장악한 모양이군. 노리는 건 유적의

    보상인가?”

    데레아펜다는 깜짝 놀랐으나 평정심을 유지하기위해 애썼다.

    그래, 육신을 잠식할 수 있다는 것이 발각 되었으니 이 정도 추측은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 딱 여기까지는...

    “말해라. 너희 수뇌부는 어디에 위치해 있지? 최종 목적은 뭐냐.”

    유세현의 말을 들은 데레아펜다는 지그시 조롱 해주려 했다.

    그것을 말하는 놈이 어디 있겠는가.

    허나.

    ‘뭐...뭐냐 저건...’

    매섭게 가라앉아 있는 놈의 눈동자가 점점 붉게 타오르기 시작한다.

    당장이라도 핏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이.

    유세현은 그 변화에 대해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그의 신경은 온통 하나에 쏠려있었으니까.

    ‘말해라. 말해.’

    요청하는 것이 아니다. 부탁하는 것도 아니다.

    지시와 명령.

    [크크크, 어떤 머저리가 그걸 말할 것 같으...]

    ‘위치는 섬의 중앙. 목적은 증폭기를 얻어 인간을 멸살하는 것.’

    귀로 들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머릿속에 직접 놈의 말이 들려왔다.

    유세현은 스스로도 깜짝 놀라 한순간 몸을 움찔거렸다.

    환청?

    ‘아니, 이건 환청 같은 게 아니야.’

    놈이 말하는 소리가 재차 또렷이 들려온다.

    그 순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생각을 읽었던, 어떠한 존재가 떠올랐다.

    마왕 루시뷀트.

    그는 분명 신과 대등한 자만이 지닐 수 있다는 권능인 통찰을 지녔다고 했다.

    “인간을 왜 멸살하려는 거지?”

    질문을 바꾸자, 데레아펜다의 육신이 우두커니 멈춰 섰다.

    복수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전혀 없는데.

    이게 어떻게 된 것이란 말인가!

    ‘이강호...데오폴론 종족의 멸망...’

    그러나 정보는 이미 새어나가고 있었다.

    유세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가 되었다.

    인간이 사냥당한 이유. 놈들이 단번에 수뇌부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까지.

    -트드득.

    유세현은 넋이 반쯤 나가있는 데레아펜다를 양쪽으로 찢어버렸다.

    -스스스.

    신물조각까지 얻었던 종족이니 만큼 무수히 많은 코인조각이 튀어나온다.

    ‘반으로 갈라지면 죽는군.’

    2차적으로 좋은 정보를 얻은 유세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황한 아린이 잽싸게 물었다.

    “놈에게 정보를 알아내려던 것 아니었나? 그렇게 죽이면...”

    “아뇨, 정보는 알아냈습니다.”

    “뭐? 그게 무슨...”

    유세현은 아린에게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옆에 있던 케드리나나 카텐의 표정이 의미심장하게 변해갔다.

    하는 말이 뭔가 좀...

    “놈은 원래 이곳에 있던 자가 아니라는 겁니까? 아, 아니 그보다 어떻게 그런 정보를 분명 아무 말도...”

    유세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속마음을 읽었다고 한다면, 인간인 이상 자연스럽게 경계심을 가지게 될 테니까.

    더군다나 유세현의 통찰은 완벽하지 않았다.

    카텐과 케드리나의 속마음을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

    아린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그런 거라면 그런 것이겠지. 그래서 지금 당장 출발하려는 겐가? 하루정도는 쉬고 가는 게 어떻겠나? 사람들도 많이 지쳤...”

    “아뇨, 가는 것은 저 혼자 입니다. 영감님께서는 이곳에서 쉬다가 다른 생존자들을 찾아 주셨으면 합니다.”

    “...혼자 말인가?”

    “예. 지금부터 제가 가려는 곳은 이곳에 있는 생존자들이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곳입니다.”

    “...대체 어딜 가기에 그러는 겐가?”

    “카취.”

    유세현은 딱 한 단어만 내뱉었다.

    그것만으로도 케드리나를 제외한 카텐, 아린 등 카취를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의 표정이 꿋꿋이 굳었다.

    어떻게 안 굳을 수 있겠는가!

    그 최악의 마검을 지니고 있는 소유자에게 간다는데.

    그것도 단신으로!

    “카취에게? 도대체 왜...”

    “제 물건을 이제 찾아와야 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그 말에 두 번 까무러졌다.

    * * *

    [이럴 수가! 데레아펜다가 당하다니!]

    데오펠의 입에서 경악이 터져 나왔다. 주위에 있던 그림자들도 꿈틀거렸다.

    단순한 육체를 사용했다면 몰라도, 가르쿠라의 육체까지 쥐어줬는데 당했다는 건 보통일이 아니었기 때문.

    [왕이시어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 놈을 잡는데 주력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지금 공략을 멈추면 정말 차질이 생깁니다. 데레아펜다가 가르쿠라의 몸을 잘 다루지 못했기에 벌어진 일입니다. 데레오트라면 해낼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의견이 나뉜다.

    왁자지껄 울리는 목소리.

    데오펠의 그림자가 요동쳤다.

    [조용히 해라!]

    그는 고심했다.

    놈의 위치는 아슬아슬하게나마 가루다족과 오크족의 경계선.

    지금 데레오트는 그 주위에 다다른 상태였다.

    ‘확실히 방심한 면이 있긴 했다.’

    설마 그 스킬을 뚫을 줄은 꿈에도 모른 것.

    정말 방심만 안 한다면야...게다가 지금 데레오트의 부대에는 놈을 강제적으로 포함시킨 상태였다.

    ‘카취...’

    놈의 능력을 해방해주고, 늙은 마법사의 능력은 강탈한다.

    그렇게 된다면 형세는 어떻게 될 것인가.

    파단을 내린 데오펠이 말했다.

    [확실히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다. 이대로 속결한다.]

    < 데레아펜다(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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