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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205화 (205/612)
  • < 데레아펜다(1) >

    양옆으로 활짝 펴지는 날개.

    -후웅! 후웅! 후웅!

    가르쿠라가 날개를 펄럭이자 무수히 많은 바람의 칼날이 유세현이 위치한 장소를 향해 빗발쳤다.

    -쿠구구궁!

    순식간에 초토화 되는 일대.

    흙먼지가 피어올랐으나 가르쿠라의 눈은 유세현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유세현은 지그시 혀를 찼다.

    설마 이거에 반응할 줄이야.

    딴 놈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는데.

    ‘돌연변이는 돌연변이라는 건가.’

    아무튼 이제는 전투를 피할 수 없다.

    본래의 목적은 보다 더 신중히 움직여 놈들에게 들키지 않고 던전에 도착하는 것이었지만.

    ‘그래, 이놈을 여기서 죽여 두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지.’

    -슈욱!

    흙먼지 속에서 유세현이 튀어나오자 제대로 모습을 확인한 가르쿠라 아니, 그 몸을 잠식한 데레아펜다가 광소를 내뿜었다.

    날개가 없는 인간은 허공에서 방향을 바꿀 수 없기 때문.

    “캬하하하. 죽어라 인간!”

    수많은 돌개바람이 연이어서 공간을 갈랐다.

    이것에 닿으면 전신을 뒤틀려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한다.

    가르쿠라가 지니고 있는 스킬 중에서도 상당히 악랄한 스킬.

    ‘끝났군!’

    가르쿠라는 확신했다.

    그러나 돌개바람이 닿기 직전.

    -스르륵.

    유세현의 육신이 순식간에 좌측으로 이동했다. 데레아펜다를 포함한 가루다들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지금 무슨?’

    그저 허공을 발길질을 했을 뿐이다. 매개체가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방향을 틀다니?

    어느새 유세현의 신형이 데레아펜다의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슈우욱.

    데레아펜다는 순식간에 더 높은 곳으로 날아올랐다.

    그것을 뒤쫓는 유세현.

    처음에는 의구심을 품던 가루다들의 표정은 어느새 완전히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인간이 하늘을 날다니!

    그것도 자신들보다 빠른 가르쿠라와 대등하게!

    “저, 저건 뭐냐! 어떻게 인간이...”

    “떠들 시간에 가르쿠라님이나 도와라!”

    “크!”

    수많은 가루다들이 유세현의 주위를 까맣게 뒤덮었다.

    그 순간.

    -치지직.

    검에 깃드는 흑뢰.

    유세현은 재빨리 몸을 빙그르르 돌며 검을 휘둘렀다.

    -콰과광!

    새까맣게 타들어가 추락하는 가루다 무리.

    허나, 그럼에도 아직 남아있는 병력은 무척 많았다.

    유세현은 쏟아지는 스킬들을 이리저리 피해나갔다.

    지상이었다면 훨씬 더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었을 텐데.

    아니, 적어도 광역스킬의 사용이 가능하다면 이런 고민은 할 필요가 없었다.

    전부 요격해버리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지금 생각나는 건 귀걸이에 내제되어 있는 흑뢰와 천마혈사장!

    하지만 이상한 공간을 통과해 온 현재, 두 절대강자들의 스킬은 그저 그림의 떡이 되어버렸다.

    아이템명: 일그러진 영혼의 귀걸이

    등급: 유니크 [B Rank]

    상세정보: 영혼석으로 만들어진 귀걸이 입니다. 오랜 시간 밴시 퀸의 몸속에 위치해 있어 죽은 영혼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생겼었지만, 현재는 그 기능을 대부분 상실 했습니다. 영혼들에게 스킬을 빌려오는 것이 더 이상 불

    가능합니다.

    사용효과: 없음

    수집한 영혼: 루시뷀트. 독고천.

    유니크 급이라지만, 드래곤도 죽은 마당에 완전히 파손되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정말 운이 좋아서. 혹은 자신과 영혼이 약간이나마 이어져 있어 형태를 유지한 모양인데. 이제 더 이상 그들의 스킬에 기대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야의 공유도 완전히 끊긴 모양.

    천마의 무공이야 이제 익혔기에 상관없지만, 흑암과 흑뢰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것은 무척이나 아쉬운 일이었다.

    ‘뭐, 애초에 반쯤은 운으로 얻은 것이었으니...’

    불평불만 하지 않고 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다.

    유세현의 흑뢰검이 재차 공간을 갈랐다.

    흑뢰검은 다 좋은데 범위가 작은 것이 단점.

    아니,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스킬은 애초에 마왕이 1:1 구도를 위해 창조한 것이었으니까.

    -치지지직!

    -쿠구궁!

    하나, 둘, 계속해서 가루다들이 떨어져 나가자 데레아펜다의 눈이 부들부들 충혈 되기 시작했다.

    ‘왜...왜!’

    이놈들은 이 섬에서 상위 15%안에 들 정도로 엄청난 정예들이다.

    특히나 가르쿠라는 순수한 힘 스텟만 B랭크 40%를 넘는다.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 인간 하나 잡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 애초에 어떻게 저렇게 강할 수가 있는 것이지?

    성물 덕분에 던전이 된 안식처를 놈들이 클리어 했다고 해도 이것은 훨씬 예상범위 외의 무력이었다.

    “크으으으! 이노오오옴!”

    데레아펜다의 날개가 확 펼쳐졌다.

    새까만 날개 사이로 흩뿌려져 나온 마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점점점 한 곳에 압축 되가는 마력.

    어느새 카르쿠라의 앞에는 4개의 작은 구슬이 있었다.

    가루다들은 그것을 보고 기겁을 했다.

    “저, 저건!”

    “모, 모두 이곳을 이탈해라! 휘말린다!”

    가르쿠라가 팔을 들어 올렸다.

    -슈욱!

    유세현을 향해 날아가는 구슬은 지금껏 본 그 어떤 스킬보다도 무척이나 빨랐다.

    농축된 마력을 확인한 유세현의 이마에서 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반복해 운용해온 천마군림보와 흑뢰검 덕분에 남아있는 마력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마력재생은 스킬과 상관없기에 사용할 수 있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계속 놈들이 추격해올 수 있다.’

    100마리는 상대가 가능하다.

    200마리도 문제없다. 하지만 유세현이 무적이 아닌 이상 높은 스텟을 지닌 놈들이 끝없이, 계속해서 몰려온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결국 언젠가는 지칠 것이고. 한계에 봉착할 터.

    죽일 것이라면, 지금 저 스킬을 뚫고 가르쿠라를 죽인다.

    그게 아니라면 온 마력을 천마군림보에 쏟아 장소를 이탈한다.

    유세현의 눈동자가 데레아펜다의 검은색 날개를 향했다.

    가루다에도 몇 없는 특이종.

    지금 놓치면 더욱 단단히 대비하겠지.

    결정을 내린 유세현이 무릎을 굽혔다.

    전심전력.

    마심원이 미친 듯이 펌프질하며 마력을 재생한다.

    어둠의 마력이 흩뿌려져 나와 유세현의 주위를 일렁였다.

    마력의 구현.

    마족화를 한 것이 아니었기에, 어둠의 마력이 몸을 뒤덮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가루다들을 상당수 주눅 들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그가 보여준 스킬은 하나 같이 괴상하고 강했으니까.

    -쿵!

    발을 내딛자 대기가 요동쳤다.

    맹렬한 속도로 데레아펜다를 향해 질주하는 유세현.

    방향을 틀었기에 구체는 이미 회피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나 그 순간.

    데레아펜다의 부리가 미묘하게 올라갔다.

    “크흐흐흐! 걸렸구나 인간! 죽어라!”

    -피잇!

    구체가 이리저리 꿈틀거렸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것은 마력의 회전.

    -코오오오오!

    구체를 부수고 튀어나온 회오리는 순식간에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휩쓸기 시작했다.

    나무, 바위, 흙먼지.

    -지지지직!

    회오리에서는 쇠를 긁는듯한 마찰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는데, 온갖 물체들은 회오리의 닿기 무섭게 갈려나갔다.

    너무나도 강해 데오펠에게 빼앗겼었던, 초진동과 바람을 이용한 가르쿠라의 비전스킬.

    [파멸의 소용돌이]

    유세현은 입을 악물었다.

    갑주는 이미 순식간에 박살났으며, 팔, 다리, 몸통 등 전신의 피부가 연이어 갈려 나가고 있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위력.

    그러나.

    ‘아직 버틸 수는 있다.’

    찢겨나간 포켓에서 예비로 모아뒀던 수십 개의 검이 터져 나왔다.

    유세현은 균열이 가기 전 재빨리 검을 잡은 뒤 흑뢰검을 사용했다.

    어둠과 뇌전 속성이 부여되며 약간의 저항력 생겼는지 갈려나가는 속도가 더뎌졌다.

    그는 다시 한 번 더 힘껏 발을 박찼다.

    놀라 까무러치는 데레아펜다.

    ‘어, 어떻게 이 스킬을 버티고 있을 수 있지?’

    데레아펜다는 유세현이 나오지 못하도록 연속해서 바람의 칼날을 날렸다.

    하지만 그 무엇도 그의 행보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이전에 상대했었던 대형 도마뱀에 비하자면 이런 조류 따위는...

    -슈웅!

    소용돌이 속에서 튀어나온 유세현은 그대로 데레아펜다를 향해 검을 내리그었다.

    황급히 몸을 틀었지만 무용지물.

    -촤아악.

    검이 육신을 가른다.

    데레아펜다는 몸이 절반이 잘려나갈 때까지도 믿기지 않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쨍그랑!

    부셔져나가는 칼날.

    유세현은 검을 버리고 손으로 가르쿠라의 목을 움켜쥐었다.

    워낙 굵어서 한손에 잡히지는 않았지만.

    -트드드득.

    힘을 주면 줄수록 마력이 압축되듯 그 두께가 점점 얇아진다. 유세현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자세 그대로 데레아펜다를 지면에 내리꽂았다.

    -콰아앙!

    -뚜드득.

    기괴하게 완전히 돌아간 목.

    데레아펜다는 지면에 다다르기 황급히 잠식을 해제한 상태였다.

    숙주가 죽으면, 기생체인 그 또한 소멸하기 때문.

    어느새 크레이터를 빙그르르 둘러싼 가루다들이 한 마디씩 내뱉었다.

    “가, 가르쿠라님께서 패배하시다니...”

    “어, 어떻게...”

    코인을 흡수한 유세현이 가루다들을 올려다봤다.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달려들 것인가.

    생각이 있는 만큼 놈들은 후자를 택했다.

    “가르쿠라님의 복수를 해라!”

    “놈도 체력이 많이 바닥났을 거다!”

    유세현은 전신을 살폈다.

    겉가죽이 전부 갈려나가 꼴이 말이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날뛸 힘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제는 적이 더 충원되기 전에 정말 빼야 된다.

    그가 자리를 이탈하기위해 무릎을 굽힌 찰나.

    -슈욱!

    죽은 가르쿠라의 등에서 불쑥 솟아오른 새까만 그림자가 유세현을 향해 커다란 입을 들이밀었다.

    채, 1초도 안 되어 발생한 일.

    처음 데레아펜다는 놈을 잠식해야 할지 말지 고민했었다.

    잠식의 특성상 적의 정신상태가 좋으면 높은 확률로 실패하는데 워낙 정상처럼 보였던 탓.

    그러나 격렬한 전투를 이어온 만큼 데레아펜다는 허세라고 결론을 내렸다.

    정신 속으로 침투한 데레아펜다는 주위를 살폈다.

    보이는 것은 어둠.

    ‘기분 나쁜 놈이군.’

    보통은 회색이나 다른 여러 색을 띠고 있다.

    그는 주위를 경계하며 핵심코어를 향해 나아갔다.

    생명체의 정신 속에는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 있다.

    그것을 부수면 코어를 장악할 수 있는 것.

    ‘슬슬 방어책이 나타날 텐데...’

    그의 생각과 같이 데레아펜다를 향해 더욱 짙은 어둠이 밀려들었다.

    정형화되어 있는, 일반 방어책과는 상당히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크아아악!’

    피라는게 존재한다면 모두 내뿜을 것만 같은 고통.

    데레아펜다는 믿을 수 없었다.

    이런 방어책이 존재하다니!

    그래도 데레아펜다는 정신에 특화되어있는 종족.

    데레아펜다는 어떻게든 이겨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아주 미약했던 빛이 눈에 조금씩 들어온다.

    저곳이 메인 코어.

    저곳만 장악한다면 유세현이라는 인간의 육신을 손에 넣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껄껄껄. 네놈도 이곳에 들러붙으려고 온 게냐? 이곳까지 올 수 있으면 한번 와 보거라. 도마뱀 놈 때문에 연결고리가 잘려나가 기분도 좋지 않은데 아주 작살을 내줄 터이니.”

    요상한 목소리가 별안간 허공에 울려 퍼졌다.

    허나, 목소리의 주인은 하나 뿐만이 아니었다.

    [이 몸은 네놈 따위가 차지할 수 있는 그릇이 아니다.]

    데레아펜다는 깜짝 놀라 자빠질 수 없었다.

    이 정신 세계에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존재는 단 둘 뿐이다.

    자신과 숙주.

    그런데 놈들은...

    “껄껄껄. 당연한 소리를! 누구 제자인데. 암~!”

    [......]

    아무리 봐도 숙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의사가 존재하는 제3자.

    2개의 실루엣이 흐릿하게 보인다.

    ‘설마 이놈들도 방어책? 아니야 괜찮아. 어차피 상관없어. 이 정신세계에서 나를 따라올 자는 없다.’

    데레아펜다가 앞으로 전진 하려던 순간이었다.

    -스슥.

    순식간에 나타난 유세현이 데레아펜다를 와락 움켜쥐었다.

    -슈우욱!

    “헉!”

    어느새 데레아펜다는 현실로 돌아와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유세현의 손.

    “넌 뭐지? 아니...그건 나중에 듣도록 할까.”

    -파바박!

    손에 잡힌다는 건 물리 공격도 통한다는 뜻.

    유세현의 주먹이 전신을 사정없이 강타하자 안 그래도 흐물거리던 데레아펜다의 육신이 축 늘어졌다.

    < 데레아펜다(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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