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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204화 (204/612)
  • < 재활용(2) >

    ‘젠장! 젠장! 젠장!!!’

    캐런은 당장에 터져 나올 것 같은 욕을 몇 번이고 집어삼켰다.

    스스로 죽을 장소를 향해 기어들어가야 되다니.

    마음 같아서는 사방팔방으로 퍼져 도망치고 싶었지만 유세현은 무척 주도면밀한 자였다.

    증표를 회수해간 상태라 도망쳐봤자 오크들에게 죽을 것이며, 여차하면 광역스킬을 퍼부으라는 명령을 내렸으니까.

    더 나아가 이상한 낌새를 보이는 순간 그 사람을 즉결처분 할 것이라 엄포를 놓았기에 다른 마음을 먹을 수 있는 인원은 없었다.

    벌써 외곽에 다다랐는지 주위를 지키고 있는 오크 경계병들이 눈에 들어온다.

    ‘젠장...벌써...’

    -피잉!

    유세현의 손가락에서 붉은빛이 한순간 번뜩였다.

    적은 관측할 수 없는, 통신계열의 스킬로서 레피아의 전서구처럼 세세한 정보전달을 할 수는 없었지만, 여러 가지 색을 이용해 신호를 주고받는 것이 가능하다.

    예를 들자면 지금의 붉은빛은 적과 접촉한다는 뜻.

    캐런은 유세현이 나눠주기 시작한 증표를 받아들었다.

    싸늘한 목소리가 귀를 찌른다.

    “지금부턴 네가 앞장서라.”

    -스륵.

    캐런은 결국 증표가 잘 보이도록 양팔을 높게 올린 뒤 오크들을 향해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 * *

    “취익? 던전?”

    “예, 그래서 저희를 발견하지 못하셨던 겁니다.”

    “그럼, 놈들은 어디로 갔지?”

    “놈들은 더 남하한다고 했습니다.”

    “취취취, 남하 말이냐?”

    일대를 빽빽이 둘러싸고 있기에 오크들은 조소를 내뿜었다.

    “예, 제가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이곳을 통솔하시는 장군님께 직접 보고 드리고 싶습니다만...”

    캐런의 말에 오크들은 다시 한 번 증표를 이리저리 확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간은 알아볼 수 없는 모종의 장치를 해놓은 것이리라.

    역시 대충이라도 증표를 복제해보려고 하지 않은 것은 무척 탁월한 선택이었다.

    “잠시 기다려라.”

    오크 경계병이 짧게 함성을 외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아래에서 수많은 오크들이 우르르 몰려 올라왔다.

    인간에게도 신호가 있듯, 이것은 오크들의 신호.

    이놈들은 체계가 정말 잘 잡혀있었다.

    “따라와라!”

    사람들은 오크들에게 삥 둘러싸인 채 인솔을 받았다.

    내부로 들어서자 엄청난 수의 시선이 그들을 향했다.

    카취가 미리 언질 해놓은 덕에 대놓고 적의를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마음에 들어 하는 눈빛은 결코 아니었다.

    유세현은 마음속으로 실소를 내뱉었다.

    쓸모가 다한 배신자들의 말로가 너무도 훤히 보인다.

    대충 만든 울타리 속으로 사람들을 몰아넣은 오크들이 캐런을 향해서 말했다.

    “네놈만 따라와라.”

    유세현이 재빨리 캐런의 등을 툭 쳤다.

    “얘도 데려가야 됩니다.”

    “...어째서지?”

    “마지막까지 놈들의 동향을 파악한 게 이놈입니다.”

    유세현은 다시 한 번 빛을 내뿜었다.

    이번에는 보랏빛.

    약 10분 후 공격하라는 신호였다.

    캐런은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이제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간들이 기습을 감행해오면, 속았다고 생각한 오크들은 인간들을 증표를 가지고 있던 말던 전부 죽일 것이다.

    허나, 모든 이가 캐런 같은 생각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유세현이 저편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추기 무섭게 바르모프가 그들을 지키고 있는 오크를 향해 외쳤다.

    “저, 저기 할 말이 있습니다!”

    “취익, 뭐냐?”

    “바, 방금 캐런 뒤를 쫓아간 놈! 그놈은 배신자입니다!”

    “...뭐?”

    “인간들은 남하한 게 아닙니다. 지금 이곳을 향해서...”

    짧은 설명.

    오크 병사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놈의 노림수는 하나일 것이므로.

    * * *

    커다란 천막.

    오크 장수의 막사로 추정되는 이곳 주위에는 강자들이 상당수 배치되어 있었다.

    이놈들만 처리해도 일이 훨씬 수월해진다.

    ‘일단은 장군부터.’

    그가 막사로 들어가려던 찰나였다.

    “멈춰라! 취게프! 그놈을 둘을 당장 죽여! 놈들은...”

    캐런이 입술을 악물었다.

    설마 그새 분 것인가?

    어차피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짓인데?

    아니, 되려 생존확률만 낮추는 행위다.

    아직 유세현이 장군의 암살도 하지 못했...

    그 순간 온순하기 짝이 없던 유세현의 눈빛이 확 뒤집혔다.

    -치지직!

    -콰아아아앙!

    일대를 쓸어버리는 낙뢰의 폭풍.

    제대로 휘말린 다수는 비명도 질러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해야만 했다.

    “으!”

    캐런은 머리를 감싸 쥔 뒤 지면을 털썩 엎드렸다.

    휘말리는 순간 정말로 끝이었으니까.

    “무슨 일이냐!”

    장군이 천막을 걷히고 모습을 드러냈다.

    추정마력 B랭크 20%.

    힘 스텟은 그보다 더 높겠지만.

    지면을 힘껏 박찬 유세현의 신형이 오크장군을 향해 순식간에 날라들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회전력을 더해 검을 내리꽂았다.

    -쿵!

    단번에 짓눌리는 장군의 육신.

    “이, 이 무슨...”

    날이 빠르게 목 끝으로 다가온다.

    재빨리 스킬을 사용한 장군의 육신이 부풀어 오름과 동시에 수많은 병사들이 유세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모두 덮쳐라!”

    “우워어어!”

    얼마 지나지 않아 비명 섞인 외침이 주위를 가득 메웠다.

    * * *

    불의 비가 하늘에서 쏟아지고 엄청난 폭발이 일대를 뒤덮는다.

    수많은 광역 스킬이 난무하는 오크진형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캐런은 살기위해 계속 도망 다녔지만 한계가 있었다.

    등으로 날아 들어와 박히는 도끼의 날.

    “씨발! 씨바아알!!”

    목숨이 위태위태한 상황 속에서도 유세현의 정체를 까발린 놈에 대한 분노가 수그러들지 않았다.

    본래 유세현은 광역스킬이 시전 될 때를 맞춰서 장군을 죽이려 했다.

    최대한 효율을 고려한 것이다.

    그러나 망했다.

    상황 파악하지 못한 병신들 때문에!

    “꺄악!”

    “크허헉.”

    이미 수많은 인원들이 오크들에게 둘러싸여 난도질을 당하고 있었다.

    유세현은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혼자서 날뛰는 상황.

    “바르모프 개자식아! 여기까지 와서 그걸 말하면 어떻게 해!”

    사람들은 바르모프를 원망하며 계속해서 죽어나갔다.

    열 명, 백 명.

    “폭열진연참!”

    스텟의 차를 그나마 극복시켜주는 뛰어난 스킬도 끝없이 몰려드는 오크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캐런은 그냥 지면에 쓰러졌다.

    서있는 것보다는 죽은 척하는 게 훨씬 나을 것이므로.

    수많은 오크들이 무자비하게 밟고 넘어선다.

    내장이 터졌는지 각혈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캐런은 생존을 포기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있으면. 조금만 더 버틴다면...

    ‘대, 대체 언제 오는 거냐! 언...’

    -푹

    전투로 인해 튕겨나간 눈먼 검이 캐런의 육신을 향해 날아와 꽂혔다.

    * * *

    -휘이잉.

    세찬 바람을 타고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마침내 끝난 전투.

    인간들의 승리였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한 아린의 광역 스킬과 내부에서 미친 듯이 날뛰어 준 유세현 덕분이었다.

    유세현은 지면에 드러누워 있는 한 남성을 향해 다가갔다.

    인류를 배신하면서까지 생존을 그렇게 갈구했던 인물, 캐런.

    “꿀럭...꿀럭...”

    그는 연신 피를 토하고 있었는데 심장, 가슴, 복부, 팔, 다리 등 전신에 수많은 병장기가 박혀있었다.

    캐런의 눈가에 고여 있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사, 살려...꿀럭...”

    “......”

    “죽고 싶지...않...”

    그는 채 한마디를 다하지 못하고 숨을 멈췄다.

    유세현과 같이 들어온 500명 중 살아남은 이는 단 1명뿐이었다.

    만약 작전을 따라줬더라면 조금 더 많이 살아남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썩은 물에 썩은 고기라고, 어차피 자업자득이었으므로 유세현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지쳐 쉬고 있는 인원들에게 말했다.

    “약 15분 뒤에 이곳을 떠나겠습니다.”

    알아서 전리품을 챙기라는 뜻.

    유세현은 오크 장군의 품을 뒤져 찾아낸 아이템의 정보를 살폈다.

    아이템 명: 지배자의 관망경

    등급: 유니크 [SS Rank]

    상세정보: 이 섬의 지배자가 사용하던 관망경입니다. 사용자는 이 관망경이 비치고 있는 것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사용제한(지배자)

    의구심이 든다.

    오크 장군이 왜 이걸 지니고 있었을까.

    ‘설마, 이 섬의 지배자가 오크라는 건가? 아니...그럴리가...’

    세력구도를 생각했을 때 앞뒤가 맞지 않는다.

    손쉽게 단정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유세현은 손아귀에 있는 힘껏 힘을 주었다.

    -트드득.

    -콰직.

    으깨져 가루가 되는 관망경.

    관망경은 무척 좋은 아이템이었으나, 어차피 사용할 수 없었기에 미련을 갖지 않았다.

    어느새 다가온 아린이 물었다.

    “몸은 좀 괜찮은가?”

    “예, 괜찮습니다.”

    “그러면 다행이네만...이 정도밖에 도움이 되지 못해 정말 미안하네.”

    “아뇨, 그런 말 하지 마십쇼.”

    미안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유세현은 감정으로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더군다나, 아린의 마법도 엄청나다.

    드래곤을 상대한 이후로 이강호가 왜 그렇게 마법을 손에 넣으려 했던 것인지 이해가 되었다.

    드래곤에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아린이 마법을 전부 사용할 수 있었다면, 형세는 결코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무사히 데려가기만 한다면 인간세력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줄 인물.

    일행은 유세현을 선두로 몇 개의 산맥을 넘었다.

    마침내 지역이 바뀐 순간이었다.

    살짝 구겨지는 유세현의 표정.

    ‘이건...’

    B랭크의 이상의 마력을 지닌 집단이 바로 앞에 보이는 암벽 너머에 배회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수준.

    ‘이곳으로 우리가 올 줄 알고 있었다는 건가? 아니면 단순한 우연? 아니 그보다 뭔가...’

    문득 위화감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유세현은 좀 더 집중해서 흐름을 읽었다.

    강한 자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C랭크 50%정도로 상대적으로 약한 쪽에 속하는 인원들이 존재했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C랭크 집단.

    그 순간 B랭크 집단도 사방으로 흩어지며 C랭크 집단의 뒤를 따랐다.

    ‘이건...설마?’

    유세현이 무릎을 굽혔다.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으세요.”

    “잠깐 기다려보게. 무슨 일인데 그러는 겐...”

    아린이 말릴 새도 없이 암벽을 향해 날아가는 유세현의 육신.

    순식간에 암벽 가까이 접근한 그는 허공을 몇 번 박차더니 그대로 휙 모습을 감추었다.

    * * *

    “씨팔! 가루다가 왜 이곳에...”

    온몸이 부서져라 도망치는 사람과 그것을 여유롭게 뒤 쫒는 가루다.

    유세현은 상황을 지켜봤다.

    “좀 뒤져라! 이 닭대가리 새끼들아!”

    생존자가 들고 있던 창에서 만들어진 수십 개의 돌풍이 가루다를 향해 날아갔다.

    가루다는 공중제비를 돌며 그것을 여유롭게 피했다.

    이윽고 날아오는 반격.

    “하찮은 인간주제에!”

    날카로운 손톱으로 휙 긋자 목을 잃은 남성의 육신은 그대로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 이외에도.

    “꺄악!”

    “크헉!”

    하나 둘, 전부 처리 되어가기 시작했다.

    유세현은 나서지 않았다.

    지금 나서면 돌이킬 수 없거니와 구조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기 때문.

    -후웅 후웅!

    그 어떤 것보다도 세찬 날개 짓 소리가 상공을 가득 메운다. 유세현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돌아갔다.

    보통의 가루다보다도 2배 큰 몸집과 검은빛의 날개.

    ‘저놈이구나.’

    케드리나가 이전에 거론한 적 있었던 특이종.

    [가르쿠라]

    “찾아냈나?”

    “예, 하지만 놈들은 그냥 여기 숨어있던 놈들 같았습니다. 압박을 해도 가르쿠라께서 말씀하신 놈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흠...알았다. 계속 주시해라.”

    가르쿠라가 몸을 획 돌렸다.

    유세현도 돌아가기 위해 방향을 틀었다.

    -스륵.

    아주 약간.

    바람의 스치듯 아주 약간 풀숲이 흔들렸을 뿐이다.

    허나 가르쿠라의 눈은 어느새 유세현이 위치한 장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 재활용(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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