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194화 (194/612)
  • < 2존(4) >

    “큭큭큭...그렇게 나오시겠다는 말이지...그래, 뭐 좋아. 여기서 멀지도 않으니까. 바로 가자고. 아, 행여나 틈을 봐 허튼 수작을 부릴 생각인거면...어떻게 될지는 잘 알지?”

    검신을 들어 보인 이성철이 인원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10여명의 선발대를 출발시켰다.

    나머지 인원도 두 사람을 에워싸는 형태를 유지하며 걸음을 옮겼다.

    카텐은 이동하는 내내 유세현을 줄 곧 응시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혹시, 행여나 죽을 지도 모르는 자신을 위해서 틈을 만들 생각인 것인가?

    ‘제발 그래야만 하는데...’

    허나, 그러기에는 평소 자신에 대한 관심이 너무 없었다.

    결국 이동하는 내내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은 유세현.

    카텐이 입술을 악물었다.

    이 정도나 되는 강자가 진심으로 인간을 배신한다면...

    ‘끝이다.’

    카텐이 손이 부르르 떨렸다.

    현재 유세현은 완전한 무방비.

    지금이라면 어떻게든 기습에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성공? 크흐흐...’

    그렇게 생각한 카텐은 스스로의 생각에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를 내뱉었다.

    목 근처에 검이 있었을 때도 실패했는데 기습은 무슨 기습.

    ‘그래도...해야 된다.’

    위대한 독립투사같이 목숨을 버려가며 영웅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단지, 지금까지 함께해 온, 자신을 도와준 아린을 배신할 수 없을 뿐이다.

    그이 손이 검으로 향하려던 순간, 유세현이 카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마치 무슨 행동을 할지 알고 있다는 표정.

    그 순간 카텐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결국 적진에 도달하기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 우리들의 요새에 온 것을 환영한다.”

    이성철이 요새라 자처한 곳은 나무로 외벽을 만들어 무척 허술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곳이었다.

    “크크, 왜? 별로라고 생각하나? 뭐, 확실히 구름섬이나 1존에 있는 요새에 비하자면 확실히 별로긴 하지만...”

    구름섬 그리고 1존.

    그 말에 유세현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D랭크 중급에 달하는 사람들의 마력과 여러 상황이 이성철이 하는 말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자들은...

    ‘구름섬에서 판도라로 바로 넘어가지 않았다.’

    분명 1존이란 곳으로 떨어졌으리라.

    ‘하지만 왜지?’

    이유는 모르지만 아무튼 이것은 뜻밖의 수확.

    “...하하하! 뭐 어때? 어차피 다 가라 앉을 장소인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동지?”

    이성철이 절친한 동료의 행세를 하며 유세현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

    “그리고 이 가라앉을 장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동지의 정보가 필요하지.”

    내부로 들어서자 막 복귀한 듯 보이는 무수히 많은 인원들이 다가왔다.

    대표 두 명이 이성철을 향해 동시에 물었다.

    “네가 말한 자들이 이 둘인가?”

    “그래, 맞아.”

    “조건은 이미 들었다. 너희 둘은 이성철 팀이 아닌 우리 팀에 넣어주도록 하지. 그러니 이제 말해봐라. 잔당 세력은 어디에 있지?”

    그 말에 웅성거리던 지방방송이 꺼지며 주위가 차분히 가라앉았다

    모든 이목이 두 사람을 향한다.

    카텐은 눈을 감았다.

    이자가 말을 한다면...그러나 막을 힘과 용기가 없다.

    유세현이 입을 천천히 열었다.

    “카텐씨.”

    허나, 튀어나온 말은 위치에 대한 정보가 아니었다.

    배신자들로서는 상황에 맞지 않는, 정말로 쌩뚱 맞은...

    “이들 중에 혹시 이중첩자가 있습니까?”

    “...예?”

    “이중첩자 말입니다.”

    지그시 뜬 카텐의 눈이 점점점 동그랗게 커지며 놀라움으로 물든다.

    그가 중얼거렸다.

    “그런 게 있을 리가...”

    이중첩자는 정보를 얻기 위험을 감수하고 적진에 위장 잠입한 이를 말한다. 허나, 첩자란 것도 어느 정도 상황이 들어맞아야 할 수 있는 것이다.

    갑자기 무너진 파워밸런스, 그리고 갑작스럽게 배신한 사람들.

    사람이 사람을 배신할거라는 가정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첩자라는 집단을 구성할 시간이 있었겠는가.

    이성철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야...지금 여기까지 와서 지금 뭐하자는...”

    그러나 유세현은 전혀 개의치 않고 할 말을 계속했다.

    “없다는 거군요.”

    “다, 당연하죠!”

    “알겠습니다.”

    “허...”

    이성철이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그의 얼굴은 무척 일그러져, 세상 모든 짜증이란 짜증은 전부 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야, 이 씨발 놈아. 니 새끼가 감히 날 가지고 놀아?”

    “......”

    “하...그래 뭐 됐어...결국에는 불게 될 테니까. 그리고 마지막에는 존나 고통스럽게 죽여주마.”

    이성철이 손가락을 튕기자 개미같이 바글바글 몰려들었다.

    카텐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가 배신자가 아닌 건 무척다행이다. 그런데 대체 어쩌려고 이제야 본 모습을 드러낸 것인지.

    1천명...

    그도 사람인데 과연 칼 한번 찔리지 않을 수 있을까.

    유세현의 손이 천천히 검을 향했다. 사람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들었다.

    허나.

    고요하게 가라앉아있는 유세현의 눈동자가 주위를 훑어본 순간.

    세상이 정지했다.

    * * *

    -툭

    무엇인가가 유세현의 발밑으로 떨어지며 묵직한 음색을 자아냈다.

    그것의 정체는 방금 전까지만 살려 달라 아우성치던 남자의 목이었다.

    잘린 단면으로부터 뿜어져 나와 주위를 새빨갛게 물들이는 피.

    무수히 많은 시체가 발에 치였으나, 유세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치 기계처럼. 아무 감정도 내보이지 않으며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죽여 간다.

    여자건, 남자건. 청소년이건 상관없이.

    그 어떠한 말도 유세현에게는 소용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들이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지만.

    “사,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지금 빌고 있는 여성은 남자의 심금을 꽤나 울렸을 것 같은 외모의 소유자였다.

    “살려주세요.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어요! 어, 어떠한 거라도 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목숨만은...”

    그러나 유세현은 이번에도 묵묵히 검을 치켜세웠다.

    옆에 있던 남자가 모든 힘을 다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야! 이 새끼야! 살려줘! 살려달라고! 이렇게 부탁하잖아! 니가 정녕 그러고도 사람이냐!”

    그 말에 유세현의 고개가 남성을 향해 쓱 돌아갔다.

    여태까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던 그 입이 천천히 열린다.

    “적반하장도 유분수군.”

    유세현은 남자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더욱 뻣뻣이 굳는 남성의 표정.

    변명하듯 말이 이어진다.

    “너, 너야 이렇게 강해서 모르겠지만, 우리는...우리는 어쩔 수 없었다고! 그래! 정말 어쩔 수 없었어! 우리라고 해서 같은 사람을 팔아먹고 싶었겠냐!”

    그들은 하나 같이 죽음이 다가올 때면 ‘어쩔 수 없었다.’라는 강조했다.

    마치 억울하다는 듯이.

    허나, 그렇게 따지자면 끝까지 저항한 사람들은 뭐가 되는 것인가.

    그들은 바보라서 같은 사람들을 팔아먹지 않은 것인가?

    과거 유세현이 살았던 나라, 대한민국에도 이런 자들이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는 말만 들먹이며 같은 민족의 피를 빨아먹은 이들.

    친일파.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고 알아서 기어야 될 이들은 일제강점기가 끝나자마자 모아놓은 자본으로 되려 대한민국의 정권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최상류층으로서 무척 당당하게 활동했다.

    마치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듯이.

    그리고 그런 그들의 대다수는 외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행여나 전쟁이 나면 도망치겠다는 의미리라.

    유세현은 이득을 위해 사람이 사람을 이용해 먹는 것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

    사람에게는 욕심이라는 감정이 있으니까.

    예를 들자면 구름섬에서의 3대 팀이 그랬다.

    자신이 강해지기 위해, 약소 팀을 압박하고 새내기들을 이용한 자들.

    허나, 그런 그들도 여타 종족에게 고개를 숙이진 않았다.

    궁지에 몰리자 개인적인 감정을 청산하고 힘을 합쳐 저항했다.

    패배하지 않기 위해서.

    유세현은 그런 의미에서 이들 만큼은 절대 봐줄 수 없었다.

    처음이 힘들지 두 번째는 무척 쉬우니까.

    똑같은 상황이 닥치면 이들 대다수는 또 다시 적에게 붙어버릴 것이다.

    아니 어쩌면 전부 배신할지도.

    유세현은 여전히 사람이 좋지 않았다.

    허나, 그럼 사람들 중에는 이강호와 가족을 제외하면 전혀 없을 것만 같았던, 마음에 드는 이들이 분명 몇 존재했고, 이런 이들이 행복하게 생활하기 위해서는 그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존재해야만 하는 세상이어야 한다.

    그럼으로.

    “사, 살려주세...꺄아악!”

    -서걱.

    유세현은 남녀 둘 모두를 베어버렸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성철을 향해 다가갔다.

    눈이 풀려 있는 것이 모든 것을 포기한 표정.

    “너 이 새끼...사람이 맞긴 하는 거냐. 무슨 이런 힘을...”

    “......”

    -촤좍.

    단칼에 목을 쳐버린 베어버린 유세현은 이성철의 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카텐은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피를 가득 뒤집어 쓴 것이 혈귀가 존재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아니, 그것보다도 1000명을 베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저 표정.

    너무 무섭다.

    적이 아닌 것에 감사한다.

    “카텐씨.”

    “예, 예?”

    깜짝 놀라 답하자, 유세현이 툭 말했다.

    “아이템 안 챙기세요?”

    “...아, 아! 채, 챙겨야죠!”

    카텐은 이등병이 된 것 마냥 부리나케 움직였다.

    * * *

    배신자들의 전멸.

    이것은 양측 모두에게 너무도 충격적인 이야기로 다가왔다.

    “취익. 놈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당할 놈들이 아닌데...이로서 인간들이 무엇인가를 얻은 게 확실한 것 같습니다.”

    “흠...확실히...”

    “어찌하시겠습니까? 키르갈님.”

    키르갈은 한참동안 고민했다.

    덮치겠다는 작전은 물건너 갔다.

    이제 남은 것은 5관문으로 향할 때 공격을 감행하는 것뿐인데.

    허나, 보고로 듣자면 놈들을 해치운 것은 단 두 명.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 검처럼 대규모 광역 스킬이 내재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상당수의 병사들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키르갈은 아이템을 빼앗는 것이 더 중요하다 판단했다. 아니면 못하더라도 효과는 알아낸다.

    “1000명.”

    “예?”

    “다음 존으로 넘어갈 병력 1000명만 제외하고 전부 5관문 주위에 배치시켜라.”

    “...그 말씀은 저희가 패배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병력의 차만 2배가 넘게 나는데...”

    “하지만 정예의 대다수들은 다음 존으로 넘어갔지. 그리고 누누이 말하지만 2배 차는 아이템으로 커버가 가능할 수 있다. 더군다나 놈들에게는 늙은이가 있지.”

    “...그렇군요.”

    “알아들었으면 확실히 준비해라. 이번 전투,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옛!”

    오크진형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 * *

    카텐의 말을 들은 아린이 검지와 엄지를 이용해 눈가를 꾹꾹 눌렀다.

    그가 보낸 마법 통신구를 통해 진즉 보고를 받은 상태였었지만, 그럼에도 믿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허허...그러니까 정말로 전부 처리했다는 겐가? 단 혼자서?”

    “예.”

    “예! 그렇다니까요!”

    당사자인 유세현은 별 대수롭지 않게 답하는 반면, 카텐이 잔뜩 흥분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린은 유세현을 지긋이 응시했다.

    정적이 흐른다.

    무엇인가 고민하던 아린이 마침내 입을 뗀 순간.

    “자네 혹...”

    “영감님...”

    순간적으로 말이 겹쳤다. 아린은 먼저 말하라는 뜻에서 손을 내밀었다.

    유세현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결코 거만하지 않은, 처음 봤을 때와 똑같은 행동이었다.

    “혹시, 발디안가(家)자녀 중에 제자가 있지 않으십니까.”

    “...?!”

    동그랗게 커지는 눈.

    풀네임은 일부러 거론하지 않았다. 만약 이자가 유세현이 생각하고 있던 이가 맞다면...

    “이벨린을 알고 있는 겐가!”

    ‘역시...이벨린의 스승이었나.’

    “예, 알고 있습니다.”

    유세현이 답하자, 아린이 격하게 반응했다.

    < 2존(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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