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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188화 (188/612)
  • < 붕괴(3) >

    일순간 귀걸이에서 회색빛의 연기가 피어올랐다.

    작동이 정지한 기계처럼 완전히 멈춰버린 유세현의 육신.

    “크하하하! 스승과 제자! 결국 둘 다 내손에 죽게 되는 구나! 이게 네놈들의 한계다! 죽어라아아!”

    장사월은 광소와 함께 곧바로 검을 휘둘렀다.

    이강호가 커버해주려 황급히 몸을 틀었지만.

    너무 빠르다.

    망설임이 티끌만큼도 없다.

    “유세현혀어언!”

    이강호의 행동을 보는 셀론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아무리 특수한 존재일지언정 저기까지 갔으면 이미 끝이기 때문.

    -쉬이익!

    예리한 칼날은 어느새 목덜미 근처에 다가와 있었다.

    남은거리는 고작 수십 센치.

    장사월은 끝났음을 확신했다.

    하지만.

    -후웅!

    검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가르며 공허한 울림을 내뱉는다.

    “...?!”

    장사월, 셀론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의식이 없을 터인데, 허리가 젖혀지며 공격을 피했다.

    단순한 운?

    유세현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자세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싸한 느낌이 등골을 타고 올라온다.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진 장사월이 재차 검을 휘두르기 위해 팔을 들어 올린 순간.

    유세현의 몸이 갑작스럽게 스프링처럼 튕겨 올라왔다.

    살기로 번뜩이는 눈동자.

    “끌끌끌끌끌!”

    그리고 평소의 유세현과는 전혀 다른 음색.

    -쉬이익.

    -챙!

    검이 맞부딪치며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3m정도 뒤로 밀려난 장사월은 인상을 와락 구겼다.

    ‘제기랄 분명히 통한 것 같았는데 도대체 뭣 때문...’

    그때 생각하고 있던 잡념이 뚝 끊겼다.

    순식간에 다가온 유세현이 검을 휘둘렀기 때문.

    장사월은 재빨리 쳐내려했지만.

    -챙!

    -치지직!

    ‘뭐...뭐냐! 이 검술은!’

    무수히 많은 변칙. 그리고 기이함.

    전혀 생각지 못한 부분으로 검이 파고든다.

    허나, 그렇다고 전혀 약하지 않았다.

    아니, 되려 이전 놈이 선보인 검술보다도 힘이 온전하게 실려 있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실력 차!

    ‘어...어떻게 놈이 이런 실력을! 놈은 분명 검술을 익히지 못한 것이 아니었...큭!’

    안 되겠다 생각한 장사월은 재빨리 블링크를 탔다.

    -치직.

    목덜미 부분의 피부가 찢겨져 나가며 피가 흘러내린다. 만약, 블링크를 조금이라도 늦게 사용했다면 허무하게 죽었을 것이다.

    “허억, 허억...네...네 놈 대체 어떻게 그런 검술을...”

    유세현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손을 쥐었다 폈다 하거나 제자리 뛰기를 하는 등의 묘한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셀론! 이게 어떻게 된 거냐! 고작 1초도 못 잡아두지 않았더냐!”

    “......”

    셀론은 답할 수 없었다.

    지금 상황은 그로서도 정말 믿을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분명 마법에 걸렸다. 그것은 확실했다.

    그런데 이렇게나 빨리 회복을 한단 말인가?

    고작 인간이?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셀론 뿐만이 아니었다.

    흘깃 보던 이강호의 눈매도 살며시 좁혀졌다.

    ‘저건 세현이의 검술이 아니다.’

    수준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남궁제가 온전한 팔을 지니고 있었더라면 이정도였을까?

    어느새 마지막으로 루베르크를 이리저리 살핀 유세현의 눈동자가 장사월을 향했다.

    장사월은 마른침을 삼켰다.

    육신을 짓누르고 있던 무형의 힘은 사라졌다.

    그런데 왜일까?

    수천 근에 달하는 암석이 심장을 짓누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유세현이 툭 말했다.

    “오랜만이로구나. 장사월.”

    그러면서 장사월을 향해 달려 나간다.

    “...?!”

    장사월은 재빨리 검을 휘둘러 대응했지만 그는 이리저리 신묘하게 움직이며 전부 회피해 나갔다.

    ‘크...저 움직임은 대체 무슨...’

    유세현이 손을 들어 올렸다.

    천마혈사장의 검붉은 빛이 날아온다. 그는 재차 황급히 블링크를 사용해 자리를 옮겼다.

    그때 등 뒤에서 들려오는 한마디.

    “끌끌끌. 역시 이쪽으로 이동했구나!”

    “무, 무슨!”

    -서걱.

    “끄으으윽!”

    장사월의 등에 순식간에 기다란 자상이 남았다.

    폭포처럼 흘러나오는 피.

    ‘어, 어떻게!’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유세현이 검이 궤적을 가른다.

    -파바밧.

    합을 이어갈수록 장사월의 몸에는 자잘한 생채기가 더해져 나갔다.

    ‘대체 어떻게...어떻게 이런 움직임을 할 수 있는 거냐. 이건 마치, 마치!’

    누군가가 떠오른다.

    자신이 아무리 덤벼도 상대할 수 없었던 한 남자가.

    장사월은 높이 도약했다.

    고개를 치켜세운 유세현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지금부터 무공이란 건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 보여 줄테니 잘 보거라 미련한 제자야.”

    무척 작은 목소리.

    허나, 탁월한 청력을 지니고 있는 장사월, 셀론, 이강호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제자...라고? 설마...아니야. 아닐 것이다. 그럴리가...그럴리가...놈은 분명히 죽었...’

    -파앗.

    똑같이 도약한 유세현의 몸이 빙그르르 회전했다.

    장사월의 면상을 향해 날아가는 발차기.

    -파아앙!

    파공성이 일었다.

    검을 들어 방어했으나 막아도 막은 것이 아니었다.

    압도적인 힘!

    수천 kg 되는 무게를 짊어진 듯한 무거움이 밀려들어 온다.

    천마군림보의 법칙무시를 응용한 기술이었다.

    ‘이, 이건! 그렇다면 놈이 정말로?’

    -쾅!

    비틀거리며 일어난 장사월이 입을 열었다.

    “노...놈! 네가 정말로 천마인 것 이...”

    “끌끌끌. 당하고도 모르겠느냐?”

    유세현, 아니 천마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본좌를 귀걸이에 쳐 넣은 것은 정말 괘씸하기 그지없으나 그래도 제자 놈에게는 고마워해야겠구나. 네놈의 목을 이렇게 직접 칠 기회를 주었으니.”

    “......”

    “자, 이제 그만 끝내도록 하자꾸나.”

    장사월은 입을 악물었다.

    승산이 없다.

    유세현보다도 더.

    들개를 피하다가 사자를 만난 격.

    ‘옘병할...’

    후퇴해야 된다. 놈들은 여기서 죽일 수 없다.

    무공을 창시하고, 마법을 제대로 전수받은 뒤 셀론과 함께 놈을 죽인다.

    그가 셀론의 근처로 블링크를 사용했다.

    하지만.

    “너무 뻔하구나.”

    천마가 순식간에 그의 앞에 나타났다.

    고작 5번의 합.

    그것만으로 장사월이 사용하는 블링크의 한계를 눈치 챘기 때문이었다.

    장사월은 블링크의 원리를 모르는 만큼, 시야가 향하는 곳 밖에 이동할 수 없었다.

    -푹!

    칠흑의 검이 왼쪽 팔을 관통했다.

    “크으으! 이놈이! 고작 해봐야 몸을 빌린 망령 따위가!”

    장사월은 재빨리 뒤로 몸을 물리며 오른손에 있는 검을 치켜세웠다.

    최후의 발악.

    어마어마한 강력한 마력이 일순간 집결된다.

    귀혼마패공, 오의.

    귀혼마패멸천격(鬼昏魔覇滅天激)!

    “죽어라아아!”

    -콰아아아!

    칼끝에서 검신의 형상을 한 거대한 기운이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삼켜가며 천마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너무도 광범위해 이대로라면 이강호는 물론이거니와 같은 편인 셀론까지 휩쓸리는 상황.

    물론, 셀론은 블링크로 탈출할 테지만.

    “쯧.”

    그 순간 혀를 찬 천마가 검을 한번 쓱 휘둘렀다.

    마치 평범한 베기를 하듯.

    허나, 그 여파는 차원이 달랐다.

    -치지지직

    일자로 날아간 기가 모든 것을 잘라버린다. 공기도, 대기중에 있는 마력도 그리고 검신의 형상을 한 기운조차도.

    미친 광룡조차도 단 일격에 베어버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천마광룡참(天魔狂龍斬)]

    “크으으!! 셀로오온! 본좌를 구해라! 지금 즉시이이!!”

    공력을 거두는 즉시 0.1초도 되지 않아 잘려버릴 것이기에 장사월이 할 수 있는 것은 외치는 것뿐이었다.

    셀론도 무공을 포기할 순 없기에 장사월을 구하려했다.

    하지만 날카로운 검기의 속도는 그가 채 두 번의 블링크를 쓸 틈을 주지 않았다.

    -서걱.

    싸늘한 음색이 장사월의 육신을 스쳐지나간다.

    -스스스.

    들고 있던 검신이 반으로 잘려 떨어져 나갔다.

    ‘서...설마 본좌가...본좌가 이렇게...본좌는 최강...’

    장사월은 거기까지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천마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말려 올라갔다.

    드디어 한 놈을 처리했다.

    남은 타겟은 장사월은 도와준 것이 분명한 세레나.

    허나, 그녀는 여기 없었다.

    접근한 이강호가 물었다.

    “정말로 천마...이십니까?”

    “끌끌. 지금 통성명을 할 때냐? 네놈에 대한 건 이미 제자 놈의 눈으로 지켜봐서 알고 있다. 저놈들이 무엇인지도...그러니 움직이기나 하거라. 처리한다.”

    “알겠습니다. 영감님.”

    “에이! 영감님이라니! 이놈들은 하나 같이 버릇이 없어!”

    -파밧!

    두 사람의 신형이 빠르게 움직였다.

    셀론은 그때까지도 죽은 장사월의 시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숨이 붙어있다면 살릴 수 있었을 테지만...이 정도는 드래곤으로서도 불가능.

    동공이 날이 서듯 날카롭게 벼려진다.

    오랜 시간 공들인 일을 제대로 망쳐주었다.

    정말 완벽하게. 다시는 되돌릴 수 없게.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이글이글 끓어올랐다.

    [놈]도 한순간 잊어버릴 정도의 맹렬한 분노가.

    “이 빌어먹을 인간 놈들이!”

    -피잉!

    강력한 중력이 천마와 이강호가 위치한 장소를 짓눌렀다.

    처음 발현한 고 서클의 마법.

    그 위력은 무척 대단했지만, 두 사람은 양옆으로 갈라져 손쉽게 피했다.

    “크아아아! 이놈들이!”

    그러자 주위를 자욱이 울리는 괴성과 함께 밝은 빛이 셀론의 육체를 감쌌다.

    폴리모프의 해제!

    셀론의 육신이 빠르게 커져나갔다.

    3m, 5m, 10m, 40m.

    날개와 꼬리가 돋아나고 전신이 붉은 비늘로 뒤덮여진다.

    어느새 천마와 이강호의 앞에는 웅장함을 자랑하는 괴물이 있었다.

    멀찍이서 지켜보던 교인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저런 크기의 괴물은 그들도 난생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강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젠장, 이제 와서 본체화라니!’

    이강호는 지금까지 셀론에게 무슨 제약이 걸려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는 건가?

    “영감님, 세현이가 가지고 있는 스킬을 사용하실 수 있으...”

    “못 사용한다.”

    ‘젠장...’

    이렇게 된다면 어떻게든 틈을 만들어야 된다. 제대로 한 방을 먹일 수 있는 틈을.

    하지만, 상대는 A랭크 이상의 스텟을 지니고 있는 드래곤.

    10~20%에서 정도만 차이나도 길길 메는 것이 현실인데, 놈은 A랭크 중에서도 분명 높은 축에 속할 것이었다.

    또한 본체화를 한 드래곤은.

    [캬아아! 죽어라아아! 인가아아안!]

    -휘익!

    -콰과광!

    세찬 바람이 일었다. 힘을 견디지 못한 일대의 모든 나무들이 꺾여나간다.

    마법을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단순한 꼬리치기!

    드래곤의 난동은 거의 대재앙 수준이었다. 움직일 때마다 땅이 흔들리고 그 주위는 초토화된다.

    도약한 천마가 꼬리를 힘껏 내려쳤다.

    검의 등급과, 힘의 차이. 그리고 단단한 갑옷 같은 비늘 때문에 잘 박히지 않았다.

    “허...엄청 단단하구나.”

    이에 천마는 천마광룡참을 날렸다.

    셀론은 그것을 꼬리로 받아치려 했다.

    장사월이야 그렇다 쳐도, 상상을 초월하는 내구력을 지닌 비늘갑옷은 결코 뚫을 수 없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허나.

    셀론은 꼬리가 닿는 순간 깨달았다.

    이건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을.

    -서걱.

    일부분이 잘려나간다. 셀론은 발광하기 시작했고 천마는 아쉬움에 혀를 찼다.

    1의 마력으로 10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효율을 낼 수 있는 그다.

    허나, 그렇다하더라도 놈의 목숨을 빼앗기에는 마력이 부족할 것 같았다.

    [이놈들이!]

    -콰아앙!

    도망칠 수 없는 전 범위에 중력이 가해졌다.

    몸이 삐그덕 거릴 정도의 위력.

    못 빠져나가면 이대로 짓눌려 죽는다.

    천마가 몸을 날린 순간.

    -찌잉.

    머릿속이 갑작스레 울렸다.

    본능적으로 이 신호가 무엇인지 깨달은 천마가 쓴웃음을 지었다.

    잠시나마 다시 느낄 수 있었던 살아 숨 쉬는 감각.

    돌려주고 싶지 않은 것이 사람으로서의 마음이지만.

    “끌끌끌. 난 여기까지로구나. 나머지는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제자 놈과 함께 하거라.”

    -슈우욱!

    회색빛의 연기가 귀걸이 속으로 되돌아가자 투기가 터져 나왔다.

    < 붕괴(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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