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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178화 (178/612)
  • < 난투(3) >

    -휘이이잉!

    눈부시도록 새하얀 얼음파편이 몰아친다.

    양미라가 재빨리 얼음의 방벽을 세우며 방어를 했지만 무용지물!

    -콰드득.

    -쾅!

    “크윽!”

    지면을 데굴데굴 구른 양미라의 입에서 헛구역질이 터져 나왔다.

    새빨갛게 충혈 된 눈과 짙게 내리 깔린 다크서클.

    그녀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 믿을 수가 없었다.

    빙제의 빙백신공과 자신의 마라빙공.

    수준 차가 난다는 것은 그녀 스스로도 인정하던 바였다.

    다만 이렇게까지 클 것이라고는 상상조차도 하지 못했다.

    또한 4대 1의 상황이다.

    그런데 몰아치기는커녕 밀리고 있다니?

    빙제는 그 별칭처럼 일반적인 가주들과는 그 격이, 경험의 차이가 확연히 달랐다.

    “제에~기랄! 저 빌어먹을 영감탱이가!”

    성격이 급한 박귀원이 자세를 다잡았다.

    “멈춰라 박귀원! 지금 그렇게 큰 기술을 사용했다가는...”

    무엇을 하려는지 깨달은 백청이 황급히 말렸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은 후.

    “어디 한 번 이것도 받을 수 있나 보자! 음영귀섬멸!(音泳鬼纖滅)”

    -콰아아앙!

    모든 힘이 집약된 거대한 파동이 빙제를 향했다.

    회피하거나 받아치지 못한다면, 육신이 분쇄되어 사라질 정도의 위력.

    허나, 빙제의 입가에는 되려 미소가 맺혔다.

    ‘지금이로군.’

    그는 지금껏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4명중 한명이라도 완벽하게 끝낼 수 있는 그 타이밍을!

    -쉬이익.

    극심한 온도차로 인한 새하얀 연기가 검신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빙공을 연마한 양미라는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노인이 사용하려는 절기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박귀원! 이 머저리 같은 놈아! 빨리 공력을 거두고...”

    말을 끝낼 새도 없이 빙제의 검이 매끄럽게 움직이며 잔상을 남겼다.

    빙백신공(氷白神功) 2섬.

    [빙한제위(氷寒帝位)]

    검 끝을 시작으로 대기가 얼어간다.

    박귀원의 입에서 광소가 터져 나왔다.

    “크하하하! 내 무공은 그 어느 것도 관통하는 최강의 음마공...”

    그 순간 귀를 따갑게 울리던 파공성이 뚝 끊겼다.

    휘둥그렇게 변하는 박귀원의 눈동자.

    얼어간다. 대기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무공까지도.

    “어, 어떻게...”

    -트드득.

    박귀원은 말을 끝내지 못하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재빨리 접근한 빙제가 뻥 발길질을 했다.

    -트특 쿵!

    마치 얼음처럼 조각조각이나 무너져 내리는 박귀원의 몸.

    “큭, 저 병신같은...큭아악!”

    빙제는 기세를 몰아 더욱 거세게 공격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푹

    “크윽...너 이자시이이익!”

    “쯧쯧, 말버릇 하고는.”

    또 한명이 당했다.

    이제 남은 것은 양미라와 백청 뿐.

    “퇴각하자.”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뒤쫓으려던 빙제가 김주희 곁으로 다가갔다.

    “체력은 좀 회복되었느냐?”

    “후우...예. 할아버지 덕분에 괜찮아졌어요. 그보다 저 둘을 추격하지 않으면...”

    그 말에 빙제가 수염을 쓰다듬었다.

    “에구구. 산책 나왔다가 이게 뭐하는 짓인지...수지타산이 맞질 않는 구나 수지타산이!”

    “히히...그건 그렇네요.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할아버지.”

    김주희는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빙제가 헛기침을 내뱉었다.

    “큼큼, 이왕 시작한 거 끝은 봐야겠지. 얼른 쫓도록 하자꾸나.”

    * * *

    “크윽...”

    흑혈대주의 입에서 각혈이 터져 나왔다.

    그의 심장에는 칠흑처럼 새까만 검신이 박혀있었다.

    유세현이 목덜미를 움켜잡자 무슨 짓을 하려는지 깨달은 흑혈대주의 몸이 한순간 경련을 일으켰다.

    “커, 컥. 네, 네 이놈!”

    “......”

    단단히 몸을 고정시킨 유세현이 검을 위로 올려 그었다.

    쇄골을 시작으로 일자로 잘려나가는 육신.

    곧바로 목을 쳐버리자 양무원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곽성한에 이어서 흑혈대주까지 당하다니.

    많아도 1명 정도 잃을 것이라 예상했던 양무원으로서는 큰 손해가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그 대가로.

    “후우...”

    압박이 사라져간다.

    유세현의 마력이 마침내 동이 난 것.

    거기다가.

    -파바밧.

    저편에서 9명의 인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퀼라나, 당운룡 등을 상대한 자들이었다.

    “서제휘,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곽무겸이 부마존님을 뵙습니다.”

    양무원은 그들을 반갑게 맞았다.

    “그래, 처리는 잘 했겠지?”

    허나, 사내들은 그 말에 좀처럼 답하지 못했다.

    “...그게 계집이 사술을 써대는 턱에 아쉽게도 놓쳤습니다. 하지만 치명상을 입혀놨으니 당분간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양무원의 고개가 다른 이를 향해 획 돌아갔다. 곽무겸이 고개도 푹 숙여졌다.

    “당운룡이 만천화독을 퍼트렸습니다.”

    이는 당운룡 조차도 도망쳤다는 뜻.

    마교의 서열 50위 서제휘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검풍대주는 죽었습니다.”

    “호오. 확실한 게냐?”

    “예.”

    “그렇다면 같이 있던 처녀계집은?”

    “자기들 몫은 건드리지 말라고 해서...”

    “크큭. 그렇겠지. 그보다 모일 수 있는 인원은 이게 다인가?”

    처리한 인원은 고작 해봐야 검풍대주 뿐.

    평소였다면 불같이 역정을 냈을 것이다.

    허나, 양무원은 화를 삼켰다. 어차피 그가 노리는 것은 남궁시영과 천마의 제자뿐이었으니까.

    그는 천마의 무공과 더해 놈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스킬만 얻을 수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놈을 포획해라! 사지를 전부 잘라버려도 상관없다!”

    “충!”

    전후좌우. 무수히 많은 칼날이 유세현의 사지를 향해 날아왔다.

    차마 대응할 수 없을 정도의 수.

    -칙!

    검이 왼쪽 어깨를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간다. 유세현은 검을 피하기 위해서 곡예와 비슷한 몸놀림을 보여야 했다.

    그렇게 3초.

    매직SS랭크에 달하는 갑옷은 찢겨져 넝마쪽이 되어있었으며 온몸에는 자상을 포함한 자잘한 생채기가 즐비했다.

    이마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를 닦은 유세현의 눈동자가 착 가라 앉았다.

    최대한 사용하지 않고 적의 수를 줄이려 했지만 이제는 사용해야 된다.

    그의 몸에서 어둠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스킬, [흑암]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원초적인 힘.

    모든 것의 근원.

    어둠의 마력.

    [권능에 의해 5분 동안 100배에 달하는 마력 재생이 이루어집니다.]

    양무원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대체 저건 무어냐...”

    흉흉한 기세에 양무원의 다리가 자신도 모르게 잔잔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내 깜짝 놀란 그가 다리에 불끈 힘을 주었다.

    떨리다니? 자신이 떨다니!

    천마와의 비무를 이래로, 그는 단 한 번도 떤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이 지금 겁을 먹었다는 것인가?

    내력도 다 사용한 저런 애송이에게?

    양무원이 버럭 외쳤다.

    “가라! 저건 구차한 사술에 불과하다!”

    -스스슥.

    망설이던 무사들이 거칠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유세현은 마음속으로 지그시 읊조렸다.

    ‘마족화.’

    -슈우우!

    어둠의 마력이 공명하듯 휘몰아쳤다.

    [마족화.]

    설명 그대로 일시적으로 마족으로 변환시켜주는 스킬.

    유적의 보스격이었던 마벨은 이 스킬을 사용하자 뿔과 날개가 돋아나며 흡사 괴물과 비슷한 흉한 외관으로 변했다.

    허나, 유세현의 경우에는 뭔가 많이 달랐다.

    몸집이 커지고, 뿔이 돋아나는 것이 아닌, 어둠의 기운이 피부를 얇게 감싸며 갑주처럼 딱딱하게 굳기 시작한다.

    장비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어둠이 얼굴까지 완전히 뒤덮이자 짙은 갈색을 띠고 있던 홍채가 피처럼 새빨간 붉은빛을 발했다.

    동시에 터져 나오는 매서운 투기!

    유세현이 루베르크를 휘두르자 검신의 끝에서 어둠이 흩뿌려져 나왔다.

    대악마 아스모데우스를 일격에 골로 보내 버릴 뻔한 부패의 어둠!

    “푸...풍연검!”

    싸한 느낌을 받은 무사한명이 재빨리 바람계열의 무공을 날렸지만 무용지물.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 몸을 날렸다.

    어둠이 미처 회피하지 못한 한 무사의 복부에 닿았다.

    -트드득.

    순식간에 새까맣게 변하며 으스러져 내리는 피부조직.

    “으아악!”

    무사는 괴성을 지르며 떨어져나간 하반신을 잡아끌어 어떻게든 상체에 붙이려 했다.

    허나.

    “왜, 왜 붙질 않는 거냐!”

    잔류하고 있는 어둠이 회복을 방해한다.

    -푹

    유세현이 순식간에 남성의 목을 베어버리자 무사들의 목 너머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부패는 둘째치고 저 미친 속도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때였다.

    -스스슥!

    유세현이 지면에 착 밀착한 자세로 이동을 시작했다. 어찌나 빠른지 무사들은 한순간 반응하지 못했다.

    ‘흑뢰검.’

    -지지직!

    -콰과광!

    지긋이 검을 휘두르자 검끝에서 뻗어나간 뇌전이 공간에 휘몰아친다.

    양무원은 입을 악물었다.

    한 명...고작 한 명에게 마교의 고수들이 이렇게 당하다니!

    거기다가 저 사술. 보통이 아니다.

    그가 검을 다잡았다.

    “오~냐! 한번 해보자! 네놈을 죽이고 모든 것을 가져가주마!”

    지금까지 수비적이었던 양무원이 마침내 본색을 드러냈다.

    * * *

    빙제와 김주희에게서 도망친 양미라와 백청.

    양무원이 있는 장소에 도달하는데 성공한 두 사람의 입이 떡 벌어졌다.

    평지처럼 바뀐 지형과 흩날리는 잿가루.

    지면에는 수 명의 고수들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쓰러져 있었다.

    그들은 격전의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안 그래도 좋지 않던 양미라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피처럼 붉은 반달의 검기가 그녀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

    -쌔애애액!

    -콰과광!

    “윽...이, 이건?”

    교인이라면 모를 수 없는 절초였다.

    양무원의 독문무공 혈귀신마공(血鬼神魔功).

    장사월의 귀혼마패공(鬼昏魔覇功), 천마의 천마신공(天魔神功)을 제외한다면 마교에서 최고라 할 수 있는 상승무공이었다.

    ‘그런데 절초를 너무 남발하시는...’

    -슈우욱

    -쾅!

    이번에는 곽위의 절기가 사방에 빗발쳤다.

    양미라는 믿을 수 없었다.

    지금 설마 최고수 두 명이 절기를 남발해야 될 정도로 밀리고 있다는 것인가?

    접근하자 잔뜩 머리가 헝크러져 있는 양무원과 곽위가 보였다. 그리고 그런 그를 압박하고 있는 한 남자, 아니 괴물도.

    ‘뭐, 뭐야 저건?’

    그 순간 양무원이 손가락을 뻗었다.

    “혈귀원지강(血鬼元指强)!”

    -지잉!

    유세현을 향해 빠르게 날아가는 붉은빛.

    양무원은 마교의 부마존 그리고 혈사귀라는 별호를 지닌 자 답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 다음 순간, 유세현의 눈동자가 번뜩 빛났다. 아주 찰나의 틈.

    ‘이번에 처리한다.’

    -슈욱.

    단번에 파고들자, 양무원이 아차 한 표정을 지었다.

    잔뜩 흥분하여 틈을 내주다니!

    “마존이시어!”

    곽위가 재빨리 보좌하려했지만.

    ‘늦었어!’

    속도를 따라올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 찰나에 거센 눈보라가 몰아쳤다.

    ‘쳇’

    상당한 냉기를 동반한 절기였기에 유세현은 재빨리 뒤로 빠졌다. 양무원이 잔뜩 환색했다.

    “너는!”

    “괜찮으십니까?”

    “네가 나를 구했구나.”

    -스스스.

    그사이 마력재생이 끝난 유세현의 마족화가 풀리기 시작했다.

    유세현의 입에서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허억, 허억...”

    끝낼 수 있었는데.

    심장이 미친 듯이 고동치며 어깨가 들썩인다.

    양무원이 손을 치켜세웠다.

    “놈의 사술이 끝났다. 포획해라!”

    허나, 그 말에도 양미라와 백청은 움직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머지않아.

    “선배님!”

    김주희가 유세현의 옆으로 착지했다. 양무원이 순간적으로 양미라를 쏘아봤다.

    양미라는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빙제가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빙제라고? 설마 그 빙제를 말하는 게냐?”

    “예.”

    말과 동시에 얼음칼날이 그들을 덮쳤다.

    거리를 벌린 양무원의 인상이 더더욱 구겨졌다.

    “큭...빙제가 왜 여길...”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합니다.”

    “흐음~어딜 가려는 게냐 이놈들아!”

    -콰과광!

    쉴 틈 없이 얼음조각이 쏟아진다. 양미라가 재차 외쳤다.

    “부마존님 망설이셨다가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지금은 퇴각이 맞습니다!”

    “크으...”

    “자꾸 어딜 간다는 게냐! 너희는 못 간다.”

    빙제는 아예 뒤를 잡았다.

    앞 뒤.

    마력이 얼마 안남은 지금, 빠져 나갈 길은 이로서 전부 봉쇄된 것.

    허나 그 순간, 양무원이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기 무섭게 찢어발겼다.

    양무원이 중얼거렸다.

    “천마의 제자 놈아 그 무공과 그 힘. 내가 반드시 가질 것이다. 기다려라...”

    -스스슥.

    그리고 종이가 두 조각으로 완전히 나뉘었을 때는 그들은 일행의 눈앞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 난투(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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