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170화 (170/612)
  • < 홍등점주(2) >

    유세현은 마음속으로 실소를 내뱉었다.

    특수한 심법을 익힌 사람들은 심법을 운용 할 경우 그에 맞게 마력이 변화하는 꼴을 보였는데, 이강호 같은 경우 뜨거웠으며, 남궁시영 같은 경우에는 칼처럼 예리하게 벼려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내심 궁금했다. 꽁꽁 감춰둔 홍등점주의 마력은 어떨지.

    설마 마력 주제에 쌔끈하기라도 한 것일까.

    장난삼아 한 생각이었지만, 그 생각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살짝 어두우면서도 질척한 느낌. 허나, 그렇다고 해서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포근한 것이 뭔가 이상야릇한 느낌을 준다.

    그녀의 마력은 유세현의 내부로 자꾸만 침투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남궁시영이 동공이 일순간 수축됐다.

    유혹할 것이라고는 진즉 알고는 있었지만, 설마 두 눈 똑바로 뜨고 있는 자신 앞에서 이렇게 대놓고 절기를 사용하다니.

    “점주님! 지금 이게 무슨 짓이십니까!”

    “호호, 소가주께서는 왜 그리 갑자기 열이 나셨을까.”

    홍등점주가 고혹적인 미소를 지어보이자, 남궁시영의 손이 천천히 검 손잡이로 향했다.

    그때였다.

    “나라면 그 검, 안 뽑을 텐데?”

    매서운 살기. 몸을 움찔거린 남궁시영이 못내 차분히 입을 열었다.

    “...이 두 분은 제 은공님이십니다. 술법에 당한 것을 그냥 지켜보고 있을 수 없습니다. 당장 술법을 해제하지 않으신다면 무력으로라도 제압하겠습니다.”

    “흐음...네가 나를?”

    “......”

    2차 적인 도발에 남궁시영은 이윽고 검에 손을 갖다 댔다.

    홍등점주가 고혹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재빨리 손사래를 쳤다.

    “후후. 농담이야 농담. 나도 남궁세가와 전쟁을 벌이고 싶진 않으니까 말이지. 하지만 이 남자가 궁금한 것도 맞긴 한데 말이지...”

    반달 같이 꺾인 홍등점주의 눈꼬리가 유세현을 향했다.

    그녀는 유세현이 가게 내부로 들어온 순간부터 묘한 이끌림을 느끼고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느껴보지 못했던, 그가 지니고 있는 패도적인 감각 때문이었다.

    만약 이 남자를 채음보양하게 된다면 새로운 경지에 다다를 수도 있는 듯한 느낌.

    “흠...역시 해보고 싶은데...”

    중얼거린 홍등점주가 남궁시영의 손을 불쑥 잡았다.

    “소가주님! 그냥 눈 딱 감고 한번만 모른 척 해주면 안 될까? 어차피 이젠 내력 빨려서 죽는 일도 없는데. 그리고 이 분도 많이 좋아할 걸? 내가 워낙 잘해야지. 응? 어때?”

    “...이손 놓으시고 빨리 풀어 주세요.”

    “에이~그러지 말고. 아니면 우리 소가주님도 같이 할래? 이 언니가 신세계를 보여줄게. 응? 응? 어때?”

    갑자기 변환한 말과 태도에 남궁시영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재빨리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힘이 어찌나 강한지 뿌리칠 수 없었다.

    “우리 소가주님 아직 처녀 맞지? 그럼 딱지 떼기 딱 좋네! 은공이니까 딱히 거부감도 없을 테고.”

    “으...빨리 이거 놔주시고 술법을...”

    “후후, 이런 세계에서는 모름지기 즐길 수 있을 때 즐겨 두는 게 좋은 법이야. 설마 이런 세계에서 좋은 낭군을 만나 애 낳고 잘 사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거기까지만 하세요. 더 이상 저를 모욕하신다면...”

    남궁시영은 독기를 잔뜩 품은 눈으로 홍등점주를 바라봤지만, 그녀는 그저 웃고 있을 뿐이었다.

    동시에 몽롱해지는 의식.

    남궁시영은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 또한 홍등점주의 환희공에 당했음을.

    “으...당장 이 술법을 푸...”

    그때였다.

    -탁.

    유세현이 마시고 있던 물잔을 탁자에 툭 내려놨다.

    -솨아아

    뻗어 나온 흉폭한 기운에 주위를 장악하고 있던 마력이 흩어져간다. 홍등점주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혼미양전화(混美樣展花)를 파해했어?’

    한 번 걸린 이상 남궁제 수준의 경지를 지닌 자가 아니라면, 그녀의 술법을 파해하는 것은 힘들다. 그런데 상대는 복장을 보나, 이야기를 들어보나 이 남자는 아르카드 제국인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홍등점주는 뭔가 모순이 있음을 깨달았다.

    ‘심법도 없는 사람이 이런 기운을?’

    흥미가 더더욱 솟는다.

    “대단하시네요. 이걸 파해하시다니. 언제부터 원래대로 돌아오신 거죠?”

    사실 걸리지 않았지만, 유세현은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조금 됐습니다.”

    “흐음...”

    홍등점주가 천천히 다가와 허리를 굽혔다. 푹 파인 가슴골을 강조하는 포즈였다.

    “이렇게 된 거 툭 까놓고 말할게요. 당신이 마음에 들어요. 저랑 하룻밤 같이하시죠.”

    이에 유세현이 피식 웃었다.

    “색공을 사용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렇죠. 그런데 그게 뭐 어때서요? 이제 마력은 자동적으로 회복이 되잖아요? 몸에 지장이 가는 것도 아니고. 수락하신다면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을 최고의 밤을 선사해드릴게요.”

    홍등점주의 말에 남궁시영이 콧방귀를 꼈다.

    유세현이 당연히 거절할 줄 알고 한 행동이었지만.

    “최고의 밤이라...확실히 구미가 당기긴 하네요.”

    “호호호, 그러시죠?”

    남궁시영의 인상이 살짝 구겨졌다. 설마 진짜로?

    “예. 하지만 그전에 짚고 넘어가야 될 게 있습니다.”

    “예? 어떤 걸...”

    “저희에게 술법을 거신 만큼, 그에 대응하는 보상을 받고 싶습니다.”

    당당한 요구였다.

    이를 위해 그는 술법에 걸린 척 했던 것!

    “보상이라...하긴...그도 그렇네요. 마석을 지급해 드릴 게요.”

    “아뇨, 마석은 필요 없습니다.”

    “예? 그럼 어떤 보상을...”

    “점주님이 사용하시는 무공...환희공을 전수해주셨으면 합니다.”

    “......”

    무공을 달라는 말에 홍등점주 및 남궁시영의 입이 꾹 닫혔다. 무공을 달라는 것은, 모든 것을 달라는 것과도 같은 말이었기에.

    비록 무례를 범했다고 하나 너무도 큰 요구였다.

    “흠...아르카드 제국에서 오셨다고 하셨죠? 그래서 이 무림에 대해 잘 모르시나 본데...”

    “아뇨, 대충 들어서 알고는 있습니다. 무공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까지.”

    “그렇다면 제 대답은 잘 아시겠죠?”

    거절.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바였기에 유세현은 재빨리 한 발 물러섰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진정한 노림수였다.

    “제가 말을 잘못했군요. 저는 전수받을 기회를 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기회...말인가요?”

    “예. 비무, 잠자리 대결 아무거나 상관없습니다.”

    “호오...잠자리도?”

    잠자리라는 말이 나오자 탐탁치 못해하던 홍등점주의 눈이 일순간 돌변했다.

    색공을 익힌자에게 잠자리 대결을 청하는 것은 수많은 화기로 무장한 적진을 향해 맨손으로 돌격 하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

    내력으로 육체를 커버할 수 있는 남궁제나, 개방의 방주가 와도 잠자리만큼은 그녀를 이길 수 없는 것이다.

    “호호, 좋아요. 기회를 드리겠어요. 대결은 세현공께서 말씀한 잠자리로 하도록 하죠.”

    “수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호호, 아니에요.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럼 이왕 이렇게 된 거...곧바로?”

    홍등점주의 적극적인 모습을 슬쩍 흘겨본 남궁시영의 시선이 유세현을 향했다.

    그녀는 유세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

    정말로 환희공을 익히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그저 그녀와 뜨거운 하룻밤을 보내고 싶은 것인지.

    아니, 애초에 하룻밤을 보내고 싶은 것이었다면 번거롭게 빙글빙글 돌지 않고 아까 전에 수락했으면 된 것 아닌가!

    ‘그럼 진짜로 환희공을 익히고 싶어진 건가? 그렇다고 해도 승산이 없을 텐데...’

    유세현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홍등점주는 곧바로 안내를 시작했다.

    “호호, 우리 소가주님께서는 먼저 돌아가 보시는 어떠신가요? 오래 걸릴 수도 있을 텐데. 그리고 저쪽 여성분도...”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먼저...”

    남궁시영이 먼저 몸을 돌렸다. 홍등점주는 방안에서 어서 들어오라는 듯 유세현을 향해 손짓을 했다.

    허나, 내부로 움직인 것은 유세현이 아닌 아퀼라였다.

    살짝 당황으로 물드는 홍등점주의 눈.

    “세현공 이건?”

    “예, 보시다 피시 점주님을 상대할 자는 제가 아니라 아퀼라입니다. 아퀼라가 승리할 시 환희공을 그녀에게 전수해주시면 됩니다.”

    “...호오...”

    유세현이 나긋나긋한 어조로 말하자, 그제야 당했다는 것을 깨달은 홍등점주가 실소를 내뱉었다.

    생각을 되짚어보면 주체가 되는 주어가 빠져 있긴 했다.

    “후후, 처음부터 이럴 셈이셨군요.”

    “수락 하신 건 점주님입니다.”

    “호호, 한 입으로 두 마디를 할 생각은 없어요. 세형 공이 더 탐났지만 어쩔 수 없죠.”

    유세현과 비슷한 기운을 내뿜는 여자.

    그렇기에 원하던 최선책은 아니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유세현이 아퀼라를 향해 툭 말했다.

    “그럼, 나중에 보자 아퀼라.”

    “일을 확실히 처리하고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아퀼라가 가슴에 손을 얹고 정중히 예를 갖추자 점주가 한마디를 보탰다.

    “호호,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참에 제가 여러 스킬을 알려줘서 보내 드리도록 하죠.”

    “아퀼라를 얕보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호호호, 그런 말을 들으니 기대되네요. 그럼 나중에...”

    -끼익. 탁.

    문이 닫혔다.

    발걸음을 돌린 유세현이 남궁시영을 따라잡자 그녀는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어? 왜 이렇게 빨리...”

    어깨를 으쓱거리자, 그녀가 깨달은 듯 박수를 쳤다.

    “아! 그분! 그런데 그분이 당해낼 수 있을까요? 홍등점주와의 잠자리는...”

    강하다. 무척이나.

    하지만 홍등점주는 인간. 반면 아퀼라는 서큐버스 퀸이었다.

    과연 누가 더 잠자리에 강할 것인가.

    추후 홍등점주에게 직접 들어본 바. 그녀는 그날 하늘로 승천할 뻔 했다고 한다.

    * * *

    마교의 본산.

    새로운 무공제작은 여전히 난관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중 보고된 천마의 제자에 대한 행방.

    부교주 양무원이 화색이 되어 물었다.

    “뭐? 그 말이 사실인가 혈사대주!”

    “예, 확실합니다! 하지만 놈에 의해 현재 총 30명에 달하는 혈사대의 인원 중 습격을 나섰던 20명과 부대주가 당했습니다.”

    “흠...20명씩이나?”

    피해보고에 양무원의 표정이 꿋꿋이 굳었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놈들은 음영대가 나서도 괜찮을 정도의 실력이었는데 이렇게 단기간에 혈사대가 당할 정도로 성장하다니.

    “마법스크롤을 사용했다고 들었는데. 그런데도 기습에 실패했다는 건가?”

    “예, 과거 세레나님께서 만들어 주셨던 인비지빌리티와 사일런스를 사용해봤으나 간파 당했다고 합니다.”

    이는 무척 심각한 일이었다.

    허나, 양무원은 여념치 않았다.

    천마의 제자가 발견되었다는 것은 아직도 부마존인 그와 3개의 전투부대원 밖에 모르고 있기 때문.

    늦긴 했으나, 천마의 무공만 취할 수 있다면, 장사월을 제치고 부마존에서 마존이 되는 것도 결코 꿈이 아닌 것이다.

    장사월이 알면 안 되었기 때문에 그는 어떻게 해야 될 지 고민했다.

    “놈들을 어디서 발견했다고 했지?”

    “먼지 먹는 숲입니다. 방향을 보건대 개방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것 같았습니다.”

    “흐음...주량성인가...혈사대주.”

    “충!”

    “분명 놈들은 남궁세가의 소가주와 함께하고 있다고 했었지? 자네는 남궁표와 거래를 하고 있었다고 했었고.”

    “예, 남궁표는 소가주를 죽이고 자신이 소가주에 오를 생각이었습니다. 소가주, 남궁시영이 처녀라고 하기에 잡아들이기 위해 거래를 했습니다만.”

    “크큭, 좋아. 놈과 다시 한 번 접촉해서 틈을 만들라 전해라.”

    “충!”

    혈사대주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남궁표를 움직여야 되는 무척 어려운 임무였지만, 양무원이 해놓으라는 것은 몸을 불살라서라도 하는 것이 혈사대다.

    “그리고 혈사대주, 지금부터 불러주는 인물을 은밀하게 불러들이도록 해라.”

    사무월, 최위, 곽성한 등등

    기동대가 아닌, 마교의 네임드로서 양무원을 따르는 최고수들이었다.

    혈사대주, 이도명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런 자들을 소집한다는 것은 단 하나를 뜻하는 것이기에.

    “부마존이시어! 하옵시면...”

    “그래, 이번에는 본좌가 직접 나설 것이다.”

    < 홍등점주(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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