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169화 (169/612)

< 홍등점주(1) >

“......”

“흠...”

유세현의 손이 천천히 검 손잡이로 향하자 나무위에서 10명의 사람들이 뚝 떨어졌다.

붉은 색상의 구름 자수가 박혀있는 도복.

적풍대원들이었다.

최전방에 위치해 있던 남성이 일행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늦게 모습을 드러내 죄송합니다. 저는 적풍대의 대주 남궁찬이라고 합니다.”

유세현이 살며시 남궁시영을 바라보자 그녀가 신원을 보증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흠...그러시군요. 그런데 이곳에는 왜...”

줄곧 미행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진즉 알고 있던 유세현이었지만, 그는 일부러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

남궁찬의 말문이 한순간 막혔다. 아무리 호위를 위해서라지만, 미행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무척 불쾌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

또한 더 나아가 그들은 적당한 때에 도움을 주지도 못했다.

과연 어떻게 말해야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며 이 작전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그때 남궁찬의 귓속에 남궁시영의 전음이 울려 퍼졌다.

[적당히 대꾸하고 물러나세요.]

[흠...알겠습니다. 다음에는 들키지 않게 조심...]

[아뇨, 제 말은 완전히 물러나라는 뜻입니다.]

[...?!]

남궁찬의 눈썹이 아주 미묘하게 살짝 움찔거렸다.

[소가주님 그게 무슨...]

[세가를 이끌 소가주로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뭐하지만 저들은 무척 강합니다. 저보다도, 그리고 여기 있는 적풍대원 그 어떤 분보다도 말이죠. 처음부터 밝히지 않은 이상, 그들과의 관계를 계속 지속해 나가기 위해서는 이

렇게 하는 게 맞다 판단 됩니다.]

[...하지만 소가주시여 벌써 2번의 습격이 있었습니다. 향후 놈들이 또 다시 습격하지 않을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그것에 대한 것입니다만...눈치 채지 못했던 건 적풍대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실제로 맞는 말이었기에 남궁찬은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제 몸은 제가 알아서 간수 할 테니 대주께서는 돌아가서 이 일을 가주님께 알려주세요. 마교 놈들 아무리 봐도 뭔가 움직임이 이상합니다.]

[...알겠습니다.]

남궁찬은 그제야 침묵을 깨고 일행을 향해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놨다.

특명을 받았는데 때마침 우연히 이곳을 지나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었지만, 굳이 파고들 이유는 없었기에 유세현은 그냥 넘어가 주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더 이상 미행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으므로.

“그럼, 저희는 일이 있어 먼저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파바밧.

적풍대원들은 빠르게 일행에게서 멀어져갔다.

일행은 잠시 그것을 지켜보다가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 * *

“큭...졌다.”

육신이 무너지기라도 하듯 무사가 무릎을 털썩 꿇었다. 이연검공이라 불리는 비전무공의 계승자로 방금 전까지만 해도 유세현을 향해 추파를 날렸던 인물이었다.

개방과 여러 문파의 인원들이 한데 어울려 사는 도시에 도착한지도 어느덧 이틀째.

적당한 상대를 찾아 여러 번의 비무를 펼친 유세현은 무림인들의 고질병이 얼마나 심각한지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

오만함과 자만감.

황보세가에서도 살짝 엿볼 수 있었듯 그들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무공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강했다.

그리고 그래서인지 강자라 불리 우는 자들의 대부분은 스텟이 B랭크 초, 중반부에 머물러 있었다.

마수를 사냥해 코인을 얻는 것보다도 깨달음을 얻어 무공의 경지를 올리는 게 무의 극을 추구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흠...강해질 수 있는 법을 눈앞에 두고도 명상이라...”

물론, B랭크 정도쯤 되면 웬만한 수준의 마수로는 스텟이 잘 오르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일행도 이곳까지 도달하며 많은 마수를 잡았지만, 스텟은 미미하게만 오른 상태.

반면, E랭크의 스텟을 지니고 있던 아퀼라는 무척 큰 성장을 이룩하고 있었다.

힘과 민첩이 D랭크를 넘어 C랭크에 도달한 것!

여관 침대위에 누워있던 유세현은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잠시 거리를 거닐 생각이었지만, 현재 이강호와 김주희는 자신에게 맞는 무공의 입수를 위해 발등에 불나듯 움직이고 있었기에 남아있는 인원이라고는 아퀼라와 남궁시영 뿐이었다.

-똑똑.

그는 옆방의 문을 두드렸다.

본래라면 하나만 잡았겠지만, 큰 방도 없었기에 그러지 못했다.

문득 남궁시영이 안도하던 표정이 떠오른다.

남녀칠세 부동석이라나 뭐라나.

이 세계에서도 그 말을 외칠 수 있다는 것이 유세현은 정말 신기했다. 얼마나 안전했으면...

-철컥.

아퀼라가 문을 열었다.

“군주시어. 찾으셨습니까.”

“응, 바람이나 쐴까하고. 갈 거냐?”

“예! 물론입니다!”

단순한 권유였음에도 아퀼라는 잔뜩 화색이 되어 순식간에 로브를 뒤집어쓰는 행동을 취했다.

“저도 따라가도 괜찮을까요?”

남궁시영도 살짝 갑갑했던 모양인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던 유세현은 흔쾌히 승낙했다.

그렇게 셋은 거리를 거닐었다.

“싱싱한 고기 있습니다. 보고가세요~”

아르카드 제국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은 전부 그곳에 속한 줄 알았건만, 일반인들은 여타지역인 이곳에도 존재했다.

복장을 보아하니 대부분이 중원 사람인 것 같았다.

“이전에도 느꼈던 것이지만 이곳만 유독 사람이 많군요.”

“예, 사람이 제일 많이 모여 사는 도시에요. 예전에는 저희 세가 근처에도 마을이 몇 개 있었지만...”

정사대전의 여파는 그만큼 무척 컸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람들의 실종사건. 그로 인해 마을사람들은 위협을 느끼고 보다 더 큰 마을로 이동했다고 한다.

“이제 보니까 이것도 마교 놈들이 꾸민 짓 같아요.”

“흠,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저희도 전부 끌고 가려 했었거든요.”

확실히 그런 말을 들은바가 있었지만 유세현은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여자는 전혀 모르고 있다.

내부에서부터 서서히 숨통을 조여오고 있는 인물이 있음을.

유세현은 밑밥을 던져보기로 했다.

“혹시, 저희와 처음 만났을 때 말씀인가요?”

“예.”

“흠...그렇군요. 그런데 그때는 어쩌다가 놈들과 마추지게 된 겁니까?”

“예?”

“만나게 된 경위 말입니다. 경위.”

“아...”

실종된 세가 인원 한 명을 찾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도중 마교 일당과 조우하게 된 것이고.

“매복 당하셨던 거였군요.”

“예? 그게 무슨...”

“아닌가요? 그냥 무작정 움직인 인원치고는 수가 너무 많아 보였는데...그리고 그곳은 외곽이라고는 하지만 남궁세가의 영역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유세현의 말에 턱을 짚은 남궁시영의 표정이 굳었다.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세가의 힘을 아는 마교인들은 좀처럼 확신이 없는 한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만약 자신이 아닌, 남궁표나 적풍대주가 그곳에 갔으면, 그들은 전멸을 면치 못했을 터이니.

유세현의 눈이 번뜩 빛났다.

“그리고 저번에 습격한 그놈들 말씀입니다만...”

“예.”

“놈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눠봤는데, 말하는 투가 저희를 겨냥하고 온 것 같더군요”

“...예?”

사실 직접적으로 거론한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짓말은 아니었다.

잠시 고민하던 남궁시영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있는지 확정지을 수 없다면 그리 완벽한 습격은 할 수 없으니까.

“확실히...일리 있는 말씀이세요. 그런데 그게 무슨 잘못...”

말을 잇던 남궁시영의 입이 순간적으로 굳게 닫혔다.

마음속에서 마침내 무엇인가가 걸린 모양.

너무 압박해 나가면 되려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기에 유세현은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이왕 나온 거 간단히 음식이나 먹고 돌아가도록 하죠.”

“......”

“시영씨?”

“...아, 예! 잠시 뭐 좀 생각하고 있던 터라...실례했습니다.”

“아닙니다. 들어가시죠.”

유세현은 대충 가게처럼 보이는 곳의 문을 열었다.

홍등루라는 간판을 단 곳이었다.

“저...저! 세현공! 거기는!”

내부에는 여러 여성들이 가슴이 푹 파인 차이나 드레스 비슷한 형태의 옷을 입고 있었다.

어떻게 공수해온 것인지, 아니 애초에 이런 세계에서 어떻게 제조가 가능한 것인지.

신기하긴 했으나, 알 바 아니었던 유세현은 신경을 끄고 대충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곧 한 여인이 다가와 메뉴판을 내밀었다.

“흐음~오빠는 어떤 걸로 드시려고? 그나저나 여자라니 이분은 이쪽 취향인가보네?”

“...고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영문 모를 말에 대꾸한 메뉴판을 펼쳤다.

순간적으로 꿈틀거리는 미간.

‘뭐야 이건?’

메뉴판에 써져있는 음식의 종류가 뭔가 조금 이상했다.

[유소연: 마석 50개.]

[장소월: 마석 100개.]

이건 아무리 봐도 사람의 이름이었다. 유세현이 고개를 돌려 남궁시영을 찾자, 문에 서 있던 그녀가 순식간에 뛰어 들어와 속삭였다.

“세현공. 가게를 잘못 찾으셨어요. 여긴 객점이 아니에요.”

“...아.”

유세현은 말뜻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유세현이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이었다.

-또각 또각.

흑단같이 곱고 긴 머리카락을 옆으로 한데 모은 여성이 관능미 넘치는 자태를 뽐내며 일행을 향해 다가왔다.

“어머, 이거 남궁세가의 소가주님 아니신가요?”

“...아, 예. 오랜만에 뵙는군요. 홍등점주님.”

“호호, 정말 그러게요. 가주님께서는 아직 무강하시고요?”

“물론이죠.”

척 봐도 아는 사이인 게 분명했지만, 남궁시영은 눈앞에 있는 홍등점주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유세현의 눈이 한순간 홍등점주의 전신을 흘겼다.

마력량이 어마어마하게 높았다. 이 도시에 들어와서 본 그 누구보다도.

“우리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잘 못 들어 온 거라...”

“오호~그렇군요.”

“그럼, 이만...”

“에이 잠시 만요. 소가주께서는 너무 급하시군요. 그래도 오랜만에 본건데 이렇게 그냥 헤어지기는 조금 그렇지 않나요?”

그렇게 말하는 홍등점주의 눈은 유세현을 주시하고 있었다.

“식사를 하시러 오신 거라면, 차려올 테니 한 끼 하고 가시죠.”

“......”

유세현의 시선이 남궁시영을 향했다.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왜냐하면 눈앞에 있는 홍등점주는...

[이 분은 색공을 사용하는 사람이에요! 수락하시면 안돼요!]

색공.

깨달음이 아닌 남자와의 관계로 경지를 올리는 무공.

홍등점주가 다가온 순간부터 유세현을 점찍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다급히 한 전음이었지만, 내용을 들은 유세현의 얼굴은 되려 흥미로움을 띄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무공, 아퀼라랑 딱 맞을 거 같은데?’

“좋습니다. 먹고 가죠.”

유세현이 대번에 수락하자, 남궁시영의 어깨가 살짝 축 쳐졌다.

이런 걸 좋아하는 남자였단 말인가.

“후후. 잘 생각하셨어요. 이쪽으로 오세요.”

그녀에게 안내를 받아 이동하는 와중 미리 구비 되어 있는 방안으로 함께 들어가는 여성과 남성이 눈에 띄었다.

굳이 안전한 도시에서 검을 차고 다니는 것을 보니, 딱 봐도 무사인 것처럼 보였는데, 입꼬리가 귀에 걸려있는 것이 꽤나 즐거운 모양이었다.

“음식을 내올게요.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홍등점주가 문 저편으로 사라지자, 유세현이 그제야 입을 떼 질문했다.

“시영씨 색공이라는 것에 대해 자세히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자세히요?”

“예. 웬만하면 그 전음이라는 걸로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이에, 남궁시영은 어쩔 수 없이 유세현에게 일러주었다.

어차피 마음만 먹는다면 색공에 대한 정보를 얻는 건 쉽기 때문.

색공은 저속하다는 것만 빼면 꽤나 좋은 상승무공에 속했다.

채음보양을 해, 음양이 뒤섞인 덕에 위력 자체는 상당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홍등점주가 사용하는 색공.

환희공(歡喜功)은 수많은 색공 중에서도 최고를 자랑 한다고 한다.

면역이 없는 남자는 한순간에 포로가 되고 여자조차도 스스로 옷을 벗는다하니 말은 다했다 봐도 무방하다.

“흐음...그렇군요.”

“예...그런데 그건 왜...설마?”

“아뇨, 아뇨, 제가 배우고 싶다는 건 아닙니다. 그냥 궁금했을 뿐입니다. 상당한 강자이신 것 같아서.”

“아...”

남궁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하기 싫지만 맞는 소리였기 때문.

‘역시 이 남자는 내력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건가?’

무림인들은 내력을 감추는 덕에 기척을 더욱 읽기 힘들다.

수준이 차이가 나면 날수록 더욱 더.

그런 이유로 남궁시영은 사실 홍등점주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마치 알고 있다는 듯 말한다.

“후후...드시지요.”

마침내 점주가 음식을 내왔다.

일행은 그것을 먹기 시작했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홍등점주의 야릇한 눈이 유세현을 훑었다.

그녀의 손이 어깨를 향해 쓱 올라갔다.

“음식은 입에 좀 맞으신가요?”

“예. 맛있습니다.”

-스르륵.

홍등점주의 육체에서 마력이 서서히 피어올랐다. 모든 이를 현혹하는, 색기가 가득 담긴 힘!

< 홍등점주(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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