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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168화 (168/612)
  • < 보이지 않는 적(2) >

    “흡!”

    아주 짧은 외마디의, 당혹감이 잔뜩 서려있는 목소리.

    남궁시영은 그 순간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정도로 가까이 왔는데 모르고 있었다는 것인가?

    자신이?

    ‘말도 안돼!’

    고개를 홱 돌려 목소리의 근원지를 살핀 남궁시영의 눈동자가 보름달처럼 커졌다.

    유세현이 베어버린 장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의 검에는 분명 붉고 찐득한 대량의 피가 묻어있었다.

    순식간에 반격을 취하려던 이강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마치 안개가 끼듯 미미하게 느껴지는 기척과 마력의 흐름.

    시야에 확인 되지 않는 적.

    ‘이건?’

    그의 뇌리 속에 어떤 스킬이 번쩍 떠올랐다.

    6서클 마법 인비지빌리티(invisibility).

    이 마법은 상을 외곡 시켜 시전자의 모습을 은폐시켜주고, 마력의 흐름도 한층 옅어지게 만든다.

    -슈우욱!

    -촤작!

    이곳저곳에서 강풍이 일었다.

    “선배님! 안 보여요! 이놈들 대체 정체가...”

    “너희들은 일단 뒤로 빠져! 뒤에는 없으니까!”

    유세현의 외침에 4명이 순식간에 거리를 벌렸다.

    흐름을 보다 세밀하게 파악해 나가고 있던 이강호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이건 아무리 봐도 고위마법이 분명했다.

    ‘그런데 어떻게?’

    천재마법사인 이벨린조차도 아직 도달하지 못한 마법의 경지이다. 그런데 인간 중에서, 그것도 무림인이 마법을 사용한다?

    이는 아인슈타인도 못 풀던 문제를 지나가던 초등학생이 풀어 버린 것과도 같은 이치.

    즉,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챙! 챙!

    그새 유세현의 간격에서 빠져나온 적들이 일행을 향해 몰아쳤다.

    보이지도 않는데다가, 수적에서도 열세인 상황.

    김주희나 이강호는 워낙 기본 스텟이 높았기에 신체능력을 활용해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었지만, 아퀼라나 남궁시영은 아니었다.

    “김주희 네가 아퀼라를 도와줘라!”

    “예!”

    평소 아퀼라에 대해 얄밉게 생각하던 그녀였지만, 미운정도 정은 정.

    그녀는 유세현의 권속을 죽게 할 수 없다는 이념 하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움직였고 이강호도 곧바로 남궁시영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때였다.

    -챙!

    남궁시영의 팔이 한순간 붕 떴다. 남궁시영은 입술을 악물었다.

    아무리 보이지 않는다지만 이렇게 쉽게 빈틈을 내주다니!

    ‘어쩔 수 없어, 지금은 틈이 더 커진다고 해도.’

    당장 눈앞에 있는 불부터 끄는 것이 최우선.

    절기를 사용하기위해 그녀가 내력을 일순간 폭발시키려는 찰나였다.

    -화르륵!

    피부를 녹여버릴 정도로 뜨거운 고열이 순간적으로 적과 그녀의 사이를 갈랐다.

    ‘이, 이건? 대체 누구의...’

    생각을 마칠 틈도 없이 옆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강호가 남궁시영을 낚아챘다. 순간적으로 반응하지 못했을 정도로 무척 빠른 속도였다.

    남궁시영을 한품에 안아들은 이강호가 크게 외쳤다.

    “김주희, 해일로 일대를 싹 쓸어버려!”

    “예! 선배!”

    트라이던트가 빛을 발했다.

    무지막지하게 높이 솟구치는 파도!

    전방에서 대치하고 있던 유세현이 재빨리 도약했다.

    -슈욱! 콰아앙!

    해일은 낙엽, 풀잎 등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닥치는 대로 휩쓸었다.

    동시에 강한 바람소리가 유세현의 귓가에 일렁였다.

    전혀 보이지 않아, 어디서 날아오는지 알 수 없는 공격.

    허나, 그 공격이 유세현의 육신에 닿는 일은 없었다.

    루베르크를 일자로 들어 방어하자, 미미하게 일그러짐이 생긴 공간 속에서 당혹어린 탄성이 터져 나왔다.

    “흡!”

    압도적인 힘으로 적의 무기를 밀쳐낸 유세현의 루베르크가 허공을 갈랐다.

    -트드득.

    무너져 내리는 공간. 그 속에서 남성이 마침내 얼굴을 드러냈다.

    남자는 차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대체 어, 어떻게...”

    “......”

    팔, 다리 등 마력이 물줄기처럼 온몸 구석구석을 맴돌고 있는 덕에 형체가 다 보인다.

    허나, 유세현은 말이 아닌 검으로 답해주었다.

    -서걱!

    한 명을 처리하고 내려오자, 마법이 벗겨져 버린 이십 여명의 인원들이 눈에 비쳤다.

    놈들은 마법이 간파당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목이 먼저 잘려나간 놈과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네놈...대체 뭐하는 놈이지? 어떻게 이 마법을...”

    “글쎄...그런걸 알려고 하기보다는 네놈들 목숨을 걱정해야 되지 않을까?”

    “킥, 뭐라고?”

    다분한 도발에 남성이 실소를 내뿜었다.

    비록 기습이 실패했다지만, 그들은 마교에서도 꽤나 강자에 속하는 인물들이었다.

    그들이 속해있는 집단은 뭐니뭐니해도 마교의 부교주, 양무원의 제 3전투부대인 혈사대(血蛇大)였으니 말이다.

    그들은 직속이라고 하나 암살과 정보를 얻는데 특화되어 있던 음영대보다도 강한 무력을 지니고 있었다.

    “꼬맹아, 우리가 누군 줄은 알고 하는 소리냐?”

    “글쎄...마교?”

    “크큭...알고 있긴 잘 알고 있군. 이전 변변찮은 놈들을 쓰러트려 우리도 우습게 보이는 모양인데, 지금부터 절망이 뭔지 제대로 보여주마.”

    -스스슥!

    십여 명의 인원이 일제히 유세현을 향해 질주했다. 이강호의 모습을 흘끔 살핀 유세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아니, 보여줄 필요 없어.”

    “크큭, 그런 건 네 까짓게 정하는 게...”

    “아니, 내가 정해. 네놈들의 역할은 방금 전에 끝났거든.”

    -쿵!

    심장을 움켜쥐는 듯한 압박이 주위를 단번에 짓눌렀다.

    * * *

    싸늘한 주검이 되어 널브러져 있는 십여 구의 시체.

    무려 2분전까지 유세현을 향해 입을 놀리고 있던 남성은 필사적으로 경공술을 펼쳤다.

    “허억, 허억...어떻게...우리 혈사대가 단 5명에게...”

    마법이 깨져버린 순간부터, 느낌이 살짝 싸하기는 했다. 허나, 그래도 실력에 자신 있었던 그는 패배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젠장...이 일을 어떻게 대주님께 말씀드려야...’

    무려 절반이 넘는 인원이 당했다.

    혈사대주, 이도명에게 보고하는 순간 그 자리에서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대체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뒤죽박죽이 되어 혼잡한 머릿속.

    그 머릿속을 정리해준 것은 다름 아닌 혈사대원의 비명이었다.

    “크헉!”

    “...?!”

    남성은 깜짝 놀란 눈이 되어 뒤를 쳐다봤다. 아르카드 제국인이 어떻게 경공술을 따라올 수 있단 말인가.

    유세현을 확인한 남성의 입에서 경악 섞인 음성이 반사적으로 터져 나왔다.

    “저, 저게 무슨!”

    하늘.

    놈은 하늘을 달리고 있었다.

    ‘플라이? 아니...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비행 마법은 저렇게 허공을 밟을 수 없다.

    ‘그럼 저건 대체 무슨...’

    움직임이 기묘한 것이 놈이 사용하는 스킬은 마법보다도 신법에 가까워보였다.

    허나, 남성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늘을 밟는 신법은 천마가 사라지면서 실전되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남성의 머릿속에 벼락이 쳤다.

    아니,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있긴 있었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음영대가 추적하던 인물.

    음영대가 몰살 된 것이 밝혀진 뒤 혈사대를 비롯한 여러 대대는 이 인물을 잡기 위해 아르카드 제국으로 향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완전히 자취를 감춰 발견할 수 없었는데.

    ‘설마...이놈이 그놈이란 말인가? 정말로?’

    남성은 설마 설마 했다. 허나.

    -콰아아앙

    천마혈사장까지 본 그는 확신했다. 이놈은 진짜라는 것을.

    “부, 부대주님 저건!”

    “달려라! 달려! 어떻게든 벗어나야 한다!”

    부대주는 이를 악물었다.

    도대체 그간 무슨 짓을 했기에 음영대가 나서도 될 정도로 약한 존재들이 이리 강해졌다는 말인가.

    더 나아가 무림에까지 진출하여 세가와 손을 잡다니.

    이것을 보고 한다면 적어도 목이 날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지금 목이 날아가지 않는다면 말이다.

    “무슨 급한 볼일이 생겼기에 그렇게 뛰어가는 거지? 우리를 전부 죽이는 거 아니었나?”

    “...?!”

    머리카락이 갑자기 붙잡히자, 부대주는 깜짝 놀라 검을 휘둘렀다. 허나, 그것은 하찮은 발악에 불과했다.

    -쾅!

    지면에 내려꽂히는 육신.

    부대주는 살아나갈 수 없음을 느끼고 수하를 향해 외쳤다.

    “계속 가라! 빠져나가서 대주님께 이를 알려라!”

    이에 유세현이 수하를 쓱 바라보자, 부대주의 마력이 요동쳤다.

    모든 힘을 다해 시간을 끌려는 셈!

    “놈! 뒤돌아 보거라. 그날이 너의 제삿날이다!”

    진원진기까지 긁어모은 덕에 실로 엄청난 양이었다. 허나, 유세현은 부대주의 생각과 달리 도망친 수하에게 관심을 전혀 두지 않았다.

    유세현이 서서히 입을 열었다.

    “걱정마라. 뒤쫓을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으니까.”

    “...뭐, 뭐라?”

    부대주의 눈동자가 파르르 흔들렸다.

    전투 도중 갑자기 사라진 암흑투기.

    도주 시작 후 사용하기 시작한 무공.

    “서, 설마 네놈...”

    “고맙군. 이젠 나를 잡으려고 알아서 몰려들어 줄 테니 말이야.”

    유세현이 천마의 무공을 얻기 위해서는 싫던 좋던 본진으로 쳐들어가야 된다. 그런데 쳐들어갔을 때 수가 너무 많으면, 발목을 잡히거나 쓸데없는 곳에 마력을 소비해야 된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적당한 곳으로 불러들여 수를 줄여놓는 것이다.

    말을 들은 부대주의 인상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네놈...우리 신교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나?”

    “......”

    만만하지 않으니까 이런 짓을 하는 것이었지만.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는 법.

    “내 비록 살아 돌아갈 수 없다 해도, 혈사대의 부대주가 어떤 존재인지 네 육신에 제대로 새겨 주도록 하마.”

    -쉬이익.

    찌르기 자세를 취한 부대주의 검 주위로 새까만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 기운은 곧 용이 입을 쫙 벌리고 있는 형상으로 바뀌어갔다.

    혈사대의 대주와 부대주만이 익힐 수 있도록 허락된 상승마공.

    묵룡혼마공(墨龍昏魔功).

    그중에서도 최강의 절기.

    ‘묵룡혼강궤!!(墨龍昏强軌)’

    한 마리의 커다란 용이 회전하며 유세현을 향해 날아들었다.

    -콰아아아!

    주위 있는 모든 것을 먼지로 만들 만들어버릴 만한 실로 엄청난 위력일 뿐더러 범위도 크고 속도도 빨랐다.

    허나, 유세현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뿐이었기 때문.

    저런 커다란 기술은 모름지기 뒤에서 후려갈겼을 때, 혹은 인원이 뭉쳐 있을 때나 제대로 된 유효타를 낼 수 있는 법이다.

    -푹.

    뒤로 돌아간 유세현의 검이 부대주의 심장을 순식간에 꿰뚫었다.

    * * *

    “그...아까 전에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강호를 향해 포권을 취하는 남궁시영의 얼굴색은 살짝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사랑에 빠졌다.

    딱 봐도 이런 것은 아니었고, 그냥 쑥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현대인과는 확연히 다른 반응.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지금까지 외간 남자와 접촉한 적이 거의 없었다.

    처음 튜토리얼을 진행할 때도 주로 범죄의 대상이 되는 연약한 일반인들과 달리, 그녀는 무척 강했으니까.

    당시 산적, 도적 등 다양한 인간이 있었지만, 감히 그녀에게 손을 댈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아닙니다. 낭자께서 길 안내를 해주시지 않았다면 황보세가에 도착하는데 훨씬 많은 시간이...”

    유세현은 평소처럼 대답하는 이강호를 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두 사람이 예전의 관계를 조금이라도 되찾았으면 하는 바였다.

    김주희가 종종 뛰어와 속삭였다.

    “선배님 혹시 암흑투기 바로 사용하지 않으신 이유가...”

    “......”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눈치.

    모른 척 하라는 신호를 보낸 유세현이 허공을 향해 외쳤다.

    “나오시기 바랍니다.”

    < 보이지 않는 적(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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