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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160화 (160/612)
  • < 보물 탈취(1) >

    눈보라를 뚫고 나아가던 일행의 눈동자에 이채가 어렸다.

    이 세계와 판도라를 이어주고 있는 장소, 마침내 그곳으로 돌아온 것이다.

    유세현이 등에 업고 있던 아퀼라를 슬쩍 살폈다.

    여전히 깨어나지 않는 그녀.

    -크르르, 캬아악!

    이제는 지배를 받지 않는, 야생의 마수들이 그들을 반갑게 반겨주었다.

    이전이었다면 조금이라도 스텟을 올리기 위해 환호했겠지만, 마족을 잡은 이후로는 안타깝게도 그 어떠한 몬스터를 잡아도 코인이 떨어지지 않았다.

    “적당히 죽이면서 돌파하자.”

    유세현이 검을 빼드려는 순간이었다.

    물컹물컹한 감촉과는 별개로, 등이 난데없이 들썩였다. 근원을 파악한 그가 재빨리 아퀼라를 지면에 내려놨다.

    물고기가 펄떡이듯 발작을 일으키고 있는 육신.

    ‘이건?’

    아퀼라의 내부에서는 지금까지 줄곧 잠잠했던 어둠의 마력이 폭풍처럼 이리저리 휘몰아치고 있었다. 유심히 살피는 유세현의 미간이 좁혀졌다.

    ‘폭주? 이제 와서? 아니, 아니군. 그런 게 아니야.’

    피부가 허물처럼 벗겨지며 그 속에서 새살이 모습을 드러낸다. 동시에 구부러져 뿔이 하늘을 향해 서서히 펴져나갔다.

    적을 죽이며 순간적으로 모습을 살핀 이강호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는 저런 형태의 뿔을 가진 서큐버스를 이미 만나본적 있었다.

    ‘서큐버스 퀸?’

    아퀼라가 눈을 번쩍 떴다.

    [권능의 부여로 인해 아퀼라 라즈베리의 신분이 서큐버스에서 서큐버스 퀸으로 상승 합니다. 권능의 부여는 최대 3명까지 가능 합니다.]

    [서큐버스 퀸, 아퀼라 라즈베리가 직속 권속이 되었습니다.]

    [아퀼라의 신분이 소환수에서 대리자로 대체됩니다.]

    그녀는 유세현과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무릎을 굽혔다.

    “서큐버스, 아퀼라 라즈베리. 군주님을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

    유세현은 이 상황이 얼떨떨했다.

    단순히 마력을 나눠줬을 뿐인데 난데없이 권속이라니.

    권속이 되어서인지 그녀의 충정심이 가슴속에 와 닿았다.

    처음 느껴보는, 실로 묘한 기분이었다.

    그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다시 만나서 반갑다.”

    “황송하옵니다. 군주시어 명령을...”

    사실 이곳에서 E 랭크의 스텟을 지니고 있을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유세현은 별 기대 없이 툭 말했다.

    “적당히 보조해, 대충 죽이면서 이곳을 빠져 나갈 거야.”

    “알겠습니다.”

    유세현은 일행을 향해 달려 나갔다. 마수들은 죽어나가면서도 일행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고 있었다.

    이교도들은 지금까지 먹잇감을 주지 않고 무리하게 놈들을 조종했는데, 공복 때문인지 놈들은 힘의 차이를 느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역으로 자신의 동족이 죽기를 바라는 것일 수 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힘 안들이고 먹잇감을 구하게 되는 것이었으니까.

    -크어엉!

    좌우로 유세현을 향해 5마리의 마수가 달려들었다.

    제법 민첩했으나, 안타깝게도 유세현의 스텟은 인간 중에서 탑 급.

    순간적으로 좌측 마수를 베어버린 그가 우측을 바라본 찰나였다.

    여러 개의 화염구가 마수를 휩쓸었다.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상당한 위력이었다.

    ‘호오? 서큐버스 퀸이 되면서 강해진 건가?’

    그러고 보니 마력이 상당히 올라있다.

    E랭크가 아닌 최소 C랭크.

    마수의 발톱에 반응하기 힘들어 하는 것을 보니, 육체적 스텟은 아직도 많이 빈약한 것 같았지만, 별로 여념치 않았다.

    대리자가 되었다는 뜻은 코인을 흡수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괜찮군...’

    지금까지도 환영마법만으로도 엄청난 도움이 되었는데, 강해지기까지 하면 더할 나위 없다. 그들은 곧 포탈을 향해 몸을 던졌다.

    * * *

    -파앗.

    환한 빛이 사라지며 일순간 어둠이 드리웠다.

    김주희가 침침해진 눈을 비비며 물었다.

    “후우...드디어 돌아왔네요. 선배, 이제 뭐한다고 하셨죠?”

    허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선배님?”

    김주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을 내렸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엄청난 수의 장병들이 자신이 서있는 장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맞아...돌아가면 병사가 있을 수도 있다고 했었지.’

    유세현에게 줄곧 업혀있던 아퀼라에게 자꾸 신경이 가는 턱에 까먹고 있었다.

    “네, 네놈들은 누구냐!”

    장군은 어딜 갔는지 병사 한명이 대표로 외쳤다.

    -치잉!

    동시에 일제히 뽑혀 나오는 병장기.

    횃불에 비쳐 보이는 병사들의 표정은 무척이나 굳어 있었다. 하기야 그들의 입장에서 자신들은 침입자였으니까.

    “소, 소속을 밝혀라 그러지 않는다면...”

    -끼익.

    -트드드득.

    병사의 말이 채 끌날 새도 없이, 일행의 뒤에 위치해 있던 커다란 문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렬해 있던 장병들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지금까지 그들이 봐온 바. 판도라에서 문이 닫힌다는 뜻이 의미하는 바는 오직 단 하나였기 때문.

    “서, 설마?”

    -쿵!

    -스스슥.

    양쪽 문짝이 맞물리자, 문은 순식간에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췄다.

    “어, 어떻게...”

    동요가 일었다.

    그 사이 이벨린의 어깨에 살포시 손을 얹은 이강호가 지긋이 말했다.

    “제가 이전에 얘기한 것,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이라면 현명한 판단을 하리라 믿습니다.”

    “......”

    “그럼, 저희는 이만...가자 세현아!”

    말을 마친 이강호가 병사들의 머리위로 순식간에 도약했다.

    “치, 침입자들을 막아라!”

    병사들이 황급히 대응했으나 무용지물이었다.

    병사의 방패를 발판삼아 달려 나가는 일행들!

    좁은 길을 통과할 때는 검등을 이용해 후려쳤다. 생명에 지장은 없겠지만 충격이 커 아마 당분간은 움직이지 못하리라.

    “크윽! 후방의 병사들은 도주한 적을 뒤, 뒤쫓아라! 전방의 병사는 남아있는 잔당을 감싸라!”

    병사가 우르르 몰려들었다.

    잔당의 얼굴을 확인한 병사의 턱이 떡 벌어졌다.

    그간 행방불명이 되어 있었던, 황실의 최고위 마법사. 이벨린 발디안이었던 탓이다.

    “마, 마법장님! 여, 역시 던전에 들어가셨던 것이었습니까?”

    “예.”

    “그, 그럼 그들은?”

    “저도 잘 모르는 자들이에요. 지금까지 납치 되었었습니다.”

    “나, 납치!”

    이벨린의 말에 부대장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그녀를 납치할 수 있는 자들을 일개 병사가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기 때문.

    “하, 하지만 납치라면 어떻게...”

    무사할 수 있었느냐.

    추후 해명하겠다고 하자, 병사들은 창을 들이밀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잠시 함께 있어 주셔야겠습니다. 아무리 봐도 말의 앞뒤가 안 맞아서...죄송합니다.”

    “아뇨, 저도 이게 타당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도록 하죠.”

    이벨린은 사실 병사들의 행동은 신경 쓰지도 않았다.

    현재 그녀의 뇌리 속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얼마 전 이강호가 해주었던 말 뿐.

    머지않아 대륙이 붕괴를 일으킨다.

    다른 지역으로 진출하지 않으면 엄청난 인원수가 허무하게 사라진다.

    ‘진짜일까?’

    유세현이라는 남자는 페토리안의 지형 조종권을 얻었다. 그리고 정황상 페토리안은 이 근처 지형을 뜻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의도적으로 붕괴를 일으킬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들이 그런 짓을 해서 이득을 볼건 하나도 없었을 뿐더러, 더 나아가 자신을 살려줄 필요성도 없었다.

    또한 그들은 그 누구도 헤쳐내지 못했던 유적까지 단번에 열지 않았던가.

    분명 어딘가에서 단서를 얻었던 것이리라.

    ‘역시...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의 말은...’

    그녀는 판단은 어느새 생각을 거듭하면 거듭 할수록 점점 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 * *

    발칵 뒤집힌 황궁.

    모든 문이 일제히 틀어 막히고, 비밀통로를 포함한 복도 곳곳에는 병사들이 배치되었다.

    엄청나게 공들여 만든 것이었지만 이벨린이 적들에게 잡혀 있었던 이상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취한 행동이었다.

    개미새끼 하나 빠져나갈 수 없는 단단한 포위망.

    허나, 병사들은 그 어디에서도 침입자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와! 이 아이템들 등급이 장난 아닌데요?”

    갑옷 하나를 집어든 김주희의 입에서 감탄사가 연신 터져 나왔다.

    현재, 그들은 황실에서 긁어모은 보물이 있는 창고 내부에 진입해 있었다.

    비밀 통로가 이곳까지는 연결되어있지 않았기에, 강해진 지금에서야 비로소 병사들을 돌파해 찾아온 것.

    이강호가 보물을 뒤지며 말했다.

    “최대한 좋은 거로 찾아서 갈아입어.”

    “옙! 선배!”

    최소 레어 F 랭크에서 부터 높기까지는 레어 SS랭크 까지.

    “아퀼라, 너도 알아서 찾아 입어라. 아, 그리고 레어 A랭크 이상의 물품을 발견하면 그냥 가지고 와.”

    “명을 받들겠나이다. 군주시어.”

    일행은 쇼핑을 하듯 아이템을 갈아치웠다.

    얇은 레어아머 위에 경갑옷을 덧입은 유세현이 이리저리 몸을 움직였다.

    낑김은 없는지, 관절에 걸리는 것은 없는지 확인하는 것.

    그들은 마지막으로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포켓 속에 있는 데로 쑤셔 박았다.

    중갑은 너무 불편하기 때문에 높은 등급이라도 넣지 않았다.

    선택한 것은 누구든 입을 수 있는 가죽종류나 불편함이 덜한 경갑옷 종류.

    아이템을 전부 살핀 이강호가 혀를 찼다.

    그가 원했던 아이템은 이곳에 있지 않았다.

    유니크 SSS랭크.

    이프리트의 화염창.

    ‘역시 다른 장소에 거치 되어 있는 건가.’

    그는 이번 전투로 인해 다시 한 번 깨달은 게 있었다. 모든 것에는 변수가 있고, 예측처럼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

    그 많고 많은 던전의 종류 중.

    시간제한이 있는, 그것도 단순한 전투가 아닌 사람을 구출해야 되는 시나리오 던전이 걸릴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조건을 만족한 덕에 그들이 상대한 악마는 여타 종족이 클리어한 메인유적보다도 수준이 높은 편이었다.

    만약 놈이 완벽한 상태로 강림했더라면...

    생각만 해도 끔직.

    그리고 그런 변수가 또 발생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할 수 있을 때 만반의 준비를 갖춰 나야 되는 것이다.

    화염창이 있을 장소는 대충 예상은 갔다.

    국왕의 침소, 침대 뒤.

    그들은 보물창고를 나섰다.

    * * *

    “침입이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아르카드 제국의 통치자. 황제, 투란다스 론 아르카드 3세가 고함을 버럭 질렀다.

    주위에 위치해 있던 대장군들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안 그래도 그간 제국 이곳저곳에 마물들이 튀어나오는 덕에 수습명령을 내리느라 정신이 없는 황제였다.

    이제야 조금 수습하고 근원으로 보이는 유적의 공략을 위해 원정 준비를 끝내놨더니, 난데없이 침입자라니?

    그리고 유적이 닫혔다니?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는가!”

    다시 한 번 몰아치는 호통에, 대장군 페레브 체벨이 조심히 입을 열었다.

    “유적에서 침입자가 나타났습니다. 놈들은 마법사장 이벨린 발디안을 지금까지 납치하고 있었으며...”

    주구절절 이어지는 말에 투란다스의 표정이 멍하게 변했다.

    너무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놈들은 어떤 수를 써서 황궁에 침입하는데 성공했고, 더 나아가 유적을 연 장본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이벨린을 지금까지 납치해두고 있었으며, 이제는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췄다고한다.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 되는가?

    어린아이에게 물어 봐도 단번에 답 할 것이다. 결코 아니라고.

    “경들은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춰?”

    “......”

    “잡아서 내 앞으로 데려오게, 말을 들어봐야...”

    -쿵!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렸다.

    인상을 잔뜩 구긴 대장군들의 고개가 확 돌아갔다.

    어느 누가 감히 왕의 침소에 이렇게 무례하게 들어올 수 있단 말인가.

    “어느 놈이 감...”

    외치던 대장군의 입이 굳게 닫혔다. 처음 보는 놈년 4명이 너무도 당당히 서있던 탓이다.

    < 보물 탈취(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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