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152화 (152/612)
  • < 대마법사 키만 올란드(4) >

    “마을...에 대한 거지?”

    “예! 맞아요! 역시 선배님도 눈치 채셨군요!”

    “둘만 알고 있지 말고 자세히 말해봐.”

    이강호의 물음에 김주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저 기사 말인데요. 말이 앞뒤가 안 맞아요. 분명히 이교도를 처리하러 간다고 했었는데 그러기에는 숫자가 너무 부족했잖아요. 그래서 되려 당할 뻔...”

    그녀의 설명은 유세현이 생각한 것과 완전히 똑같았다.

    분명 자신처럼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며 고찰한 것이리라.

    “그러니깐 기사단이 가려했었던 행선지가 마을이었던 것 같다는 거지?”

    “예, 맞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앞뒤가 딱 맞아요.”

    “확실히...”

    “아이들과 관련이 있는 것 같군요.”

    마찬가지로 눈치를 채고 있던 이벨린도 한마디 거들었다.

    이로서 유세현이 말하고자 한 키워드는 전부 나온 상태.

    “좋아, 그럼 일단 키만이 있는 마을로 돌아가 보자.”

    “그래, 그게 좋을 것 같다.”

    그들은 곧장 떠날 채비를 했다.

    * * *

    “자, 자네들은...”

    “또 뵙는군요.”

    일행을 보는 키만의 눈에는 당황이라는 감정이 한가득 자리 잡고 있었다.

    불안감 때문에 환영마법까지 추가로 걸어놨는데 그것을 뚫고 이곳까지 다다르다니.

    지팡이를 잡고 있는 그의 손아귀에 살며시 힘이 들어갔다.

    “왜, 이곳에 돌아 왔는가?”

    “우...”

    “우연이라는 말은 말게나. 그런 식으로 해서 찾아 낼 수 있는 곳이 아니니.”

    키만의 눈빛이 착 가라 앉았다. 이에 유세현이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예, 맞습니다. 사실 저희가 이곳에 다시 찾아 온 것은 여쭤보고 싶은 게 있기 때문입니다.”

    “뭔가?”

    “이곳에 혹시 악마를 소환하는데 필요한 제물이 있습니까?”

    “...?!”

    키만의 마력에 공명한 주위 마력이 일순간 거칠게 요동쳤다. 그냥 한 번 떠본 것인데 너무 격하게 반응하니, 이렇게 반응하면 확신이 안 들래야 안들 수가 없지 않는가.

    “무, 무슨 소리를...”

    “시치미 떼지 않아주셨으면 합니다.”

    “...교단이 정보를 흘렸을 리는 없고. 어디까지 알고 온 겐가?”

    너무도 뜬금없는 말. 허나, 유세현은 곧 이해했다.

    ‘하긴 너무 직설적이긴 했지.’

    신을 모시는 자들도 결국에는 인간. 신탁이라는 내용을 속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분명 숨기고 있던 것이 있으리라.

    예를 들자면.

    “아이들이 제물이라는 것까지?”

    “......”

    키만의 입이 꾹 닫혔다. 빙고였다.

    그래, 이 유적에 들어와 함정에 걸려, 마을에 도착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이 마을이야말로 핵심!

    “그런 표정 안하셔도 됩니다. 저희는...”

    키만이 지팡이를 지긋이 들어 올렸다. 이벨린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모, 모두 자리에서 벗어나세요!”

    외침과 동시에 일행의 발아래에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직경 10m에 달하는 실로 엄청난 크키였다.

    5서클 마법.

    [플레임 필러]

    -후우웅!

    거친 바람과 함께 불기둥이 하늘위로 솟구쳤다.

    이강호의 불길을 보는 듯한, 엄청난 수준의 화력.

    재빨리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한순간에 재가 되어 사라졌을 것이다.

    “멈추시기 바랍니다! 저희는 전투를 하러 이곳에 온 게...”

    문답무용.

    키만의 앞에 수많은 마법진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다. 유세현은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그를 너무 자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뇌전이 흩뿌려지고, 냉기돌풍이 일행을 향해 휘몰아친다.

    엄청난 시전속도.

    이 정도의 마법을 계속 난사하면 마력이 금세 고갈 되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우습게도 키만의 마력을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메, 메모라이즈로 저장해놓은 마법을 사용하는 것 같아요! 이래서는 접근도 못하고...”

    잔뜩 울상이 된 이벨린의 말에 유세현이 발을 박찼다.

    키만은 확실히 무척 강하다.

    허나, 이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단점은 마력과 힘의 수준이 동등하지 않다는 것.

    “큭!”

    암흑투기가 몸을 짓누르자, 키만은 황급히 온몸에 각종 마법을 도배했다.

    몸을 지켜주는 프로텍트 쉴드부터 속성저항을 올려주는 엘레멘탈 레지스터까지.

    “이, 인도자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빠, 빨리 애들을 데리고 도망가게 내가 시간을...큭!”

    4명을 동시에 견제해야 하는 키만은 말을 내뱉을 틈조차도 없었다.

    “이, 인도자님을 이곳에 두고 갈 수는 없습니다!”

    “자, 자네들은 도움이 안돼! 빨리 가! 이자들은 강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하지만!”

    “빨리!”

    “큭! 죄송합니다!”

    눈을 질끔 감은 마을 주민이, 저편으로 뛰어갔다.

    절대 그치지 않을 것 같던 마법의 폭풍이 조금씩 약해지고 있었다.

    저장해놓은 마법이 끝을 보이기 시작한 것!

    허나, 유세현은 더 이상 시간을 끌 생각이 없었다. 마을사람이 정말 떠나버린다면, 일이 너무 커져버리기 때문.

    유세현이 지뢰처럼 깔려있는 마법진을 피해 도약했다. 이벨린이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위, 위험해요! 거기에는 다수의 마법진이!”

    도약한 상태에서는 회피할 수 없다. 키만의 눈이 번뜩 빛났다.

    [파이어 랜스]

    수많은 불의 창이 유세현을 향해 날아갔다.

    속도와 방향을 고려한 완벽한 공격.

    몇 개는 검으로 받아낼 수 있겠지만 완벽한 회피란 불가능.

    허나, 그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이, 이럴 수가 하, 하늘을 밟다니!”

    키만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스윽.

    어느새 순식간에 접근한 유세현의 검 끝은 키만의 목에 다다라 있었다.

    “여기까지 입니다. 그런데 사람 말을 왜 끝까지 안 들으시는 겁니까?”

    “......”

    “우리는 당신과 싸울 마음이 없습니다.”

    “...무슨 뜻인가?”

    “말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아이를 노리고 이곳에 온 게 아닙니다.”

    “...뭐?”

    키만의 경악에 유세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후...일단은 마을사람부터 붙잡은 뒤에 제대로 대화하시죠.”

    * * *

    “후...큰 무례를 저지른 것 정말로 미안하네...설마, 나 말고도 이들을 도우려는 자들이 존재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네.”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자면 그게 당연한 것입니다.”

    키만과의 오해는 순식간에 풀렸다.

    아니, 되려 이번 전투로 인해 깊은 신뢰를 얻는데 성공했다.

    그들이 제물이 될 아이를 데려가려 마음을 먹고 있었더라면, 진즉 키만을 죽이고 데려갔을 테니 말이다.

    “후...그나저나 정말 대단하구만 나는 자네 같은 자들이 세상에 존재할 줄은 꿈에도 몰랐네.”

    마법사가 접근전에 취약하다고 하나, 키만 정도의 위인이라면 웬만한 기사들은 채 세 걸음을 떼기도 전에 목숨을 잃는다.

    때문에 그는 제법강한 마력을 지니고 있는 네 명에게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물론, 결과는 정반대였지만.

    키만은 자신의 경솔한 행동에 대해 다시 한 번 반성했다.

    도움을 주려고 온 자들을 자칫 해칠 뻔하다니.

    “노르페움으로 향하던 도중 기사단과 조우했습니다. 이 근처로 탐색을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이젠 이곳도 위험하군.”

    현재, 이곳의 마을사람들은 두 세력에게 쫓기고 있는 몸이었다.

    하나는 마족을 부활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이교도들.

    또 하나는 이교도의 퇴치보다도 근원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은 왕국 기사단과 교단의 성기사 들이었다.

    “앞으로의 마땅한 계획이 있으십니까?”

    “있긴 있네.”

    “어떤 것입니까?”

    “남쪽으로 내려갈 생각이네. 도착만하면 아이들은 더 이상 위협을 받지 않을 테지. 하지만...잠시 함께 밖으로 나가 보겠는가?”

    의자에서 일어난 키만이 집을 나섰다. 그는 마을을 거닐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 한참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이 눈에 띠었다.

    “보다시피 성인들이 많지 않지.”

    아이들의 말에서도 유추가 가능하듯 그들은 본래 각기 다른 마을에서 힘겹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갑작스럽게 등장한 기사단들이 1~2살 정도 밖에 안 되는 아기들을 학살하기 시작한 것이다.

    난데없는 살육극에 부모들은 필사적으로 맞서 싸웠고, 그 여파로 대부분이 죽어나갔다.

    사람들은 각 마을을 돌며 전전긍긍했다.

    아이를 타인에게 위탁하고, 희생을 이어가면서 계속 버텼다.

    그러던 와중 진리를 탐구하기위해 여행하던 키만을 만나게 되었고, 5년이란 세월을 안전히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 아이들에게서 들은 바로는 자기가 자란마을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만...”

    “...자괴감을 가지지 않도록 그렇게 일러 둔거네. 부모의 얼굴도 사실은 모르지. 정말 불쌍한 아이들이야...”

    “......”

    “아무튼, 남쪽으로 향하려면 엄청나게 걷지 않으면 안 된다네. 보조해줄 성인도 많지 않는데 연약한 아이들이 버틸 수 있을지...”

    유세현은 그 순간 자신들이 해야 될 일을 깨달았다.

    마을 사람들의 호위.

    그는 지긋이 혀를 찼다.

    ‘난이도가 장난 아니군.’

    단순히 때려 부수는 것이라면 차라리 쉽다.

    언데드들을 이용한 인해전술, 혹은 게릴라를 펼쳐 적을 소탕하면 되었으니까.

    허나, 호위는 이야기가 다르다.

    자신이 살아도 남이 죽으면 안 되기 때문에 궁지에 몰려도 발을 쉽사리 뺄 수 없다.

    더 나아가 전투 병력이라고는 자신과 키만 뿐.

    이동 중에 이교도나 기사들이 우르르 몰려와 덮쳤을 때 그들은 과연 제물이 될 아이들을 전부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신물조각이 잠들어있는 중심유적은 괜히 중심유적이 아니었다.

    “어차피 꼭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시간만 끌어봐야 포위망이 좁혀질 뿐입니다. 아이들은 분명 버틸 수 있을 겁니다.”

    “허허허, 우리 넷이서 그들을 지킬 수 있겠는가?”

    “어차피 도움을 줄 사람도 더 이상 없지 않습니까?”

    그말에 키만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하긴...지금 자네들을 만나기까지도 4년이 걸렸지...그렇게 단호하게 말해주니 내가 좀 마음이 편해지는구먼.”

    키만은 지금껏 홀로 고독하게 사람들을 이끌었다.

    의견을 물으면, 뜻대로 하라고 할뿐 제대로 답변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알겠네. 내 당장 촌장에게 말하고 오지. 돌아가서 쉬고들 있게나.”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키만이 약간 홀가분해진 몸을 이끌고 저편으로 자취를 감췄다.

    반면, 일행의 표정은 키만이 사라지기 무섭게 굳었다.

    한참동안 고민을 하던 유세현이 입을 열어 결론을 내놓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 우리로는 모두를 지키는 건 불가능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선배. 그런데 혹시 우리가 잘못된 길로 들어선 건 아닐까요? 그...왕국 편에 서서 아이들을 죽이는 게...”

    “아니, 그건 아닐 거야.”

    이 정도 규모의 유적은 본래 대리자 수천 명을 필요로 한다. 그러니, 난이도 자체만을 고려하자면 별로 놀랄 일은 아니었다.

    다만, 결려있는 제약이 더러울 뿐.

    그래서 유세현은 곰곰이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좀 더 안전하게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 것인가.

    답을 내놓은 것은 이강호였다.

    “호위를 해야 된다고 해서 지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지. 애초에 쳐들어오지 못하게 하면 돼.”

    “...아!”

    발상의 전환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노하우.

    그는 시나리오 같은 것의 파악을 잘못했지만, 전술 및 전투에 관해서 만큼은 스페셜 리스트 그 자체였다.

    “돌아가서 작전을 짜자.”

    허나, 그들은 바로 이동할 수 없었다.

    이전처럼 아이들이 또다시 몰려든 것!

    어른들이 나누는 얘기를 그새 들었는지, 한 아이가 이벨린을 향해 물어왔다.

    “누나! 누나! 누나가 키만 할아버지보다 쎄요? 아니죠? 그렇지 않죠?”

    한눈에 봐도 아이는 키만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믿음일 것이다.

    “응? 아니, 아니야. 당연히 못 이기지.”

    동심을 파괴하기 싫었던 이벨린이 남자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꾸해 주었다.

    그러자 아이는 예상과 같이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배시시 웃었다.

    “역시 그렇죠?  저도 나중에 크면 키만 할아버지처럼 위대한 마법사가 될 거에요.”

    “호호, 그래 꼭 그렇게 되렴. 이름이 뭐니?”

    “아린이요. 아린 하이워커.”

    이름을 듣는 순간 이벨린의 표정이 얼음장처럼 굳었다.

    “아린...하이워커?”

    “예, 원래 성은 없었는데 키만 할아버지가 지어주셨어요. 높은 곳을 걷는 자라는 뜻이래요.”

    “......”

    그러고 보니, 이 세계는 그녀가 살던 세계의 100년 전이었다.

    이벨린은 아이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콧날, 골격 너무 앳된 얼굴인지라, 스승의 노쇠한 흔적은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다.

    ‘진짜, 스승님인가?’

    아린 하이워커.

    어느 순간 갑자기 등장한, 불세출의 마법사.

    그는 이름 말고는 가르친 스승도, 출신도 불명이었다.

    본인 스스로가 말하길 극히 꺼려한 탓이다.

    때문에 하이워커란 성도 스스로 지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스승과 이런 곳에서 다시 재회하게 되다니.

    “다음에 다시 보자. 누나가 지금 할 일이 있어서 말이야.”

    “히히, 알겠어요. 거봐! 내가 뭐랬어~키만 할아버지가 짱이랬지?”

    아린은 옆에 아이에게 으스댔다. 누가 더 쎄다 안쎄다로 다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이벨린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걸렸다.

    지루하던 그녀의 삶을 바꿔준 장본인.

    항상 무표정으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그 또한 웃음을 달고 살던 때가 있긴 있던 모양이다.

    ‘꼭 무사히 남쪽까지 보내줄게.’

    이벨린은 한순간 이곳이 유적임도 잊고 그를 꼭 안전한 장소에 데려다 주리라 다짐했다.

    < 대마법사 키만 올란드(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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