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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148화 (148/612)
  • < 황성(2) >

    “그럼 나중에 봐 오빠.”

    “어, 그래. 주위사람들에게 민폐 끼치지 말고.”

    “아오! 나 오빠보다 사회생활...아니 판도라 생활 선배거든?”

    그들은 유쾌하게 갈라졌다. 아니, 그러는 척을 했다.

    껴안거나하는 촌극은 결단코 벌이지 않았다.

    그들은 죽으러가는 게 아니라 강해지러 가는 것이었으니까. 무조건 다시 살아서 만날 생각이었으니까.

    “신분 확인되셨습니다. 통과하셔도 좋습니다.”

    벌써 세 번째 방문이건만, 수도 칼벨로움은 언제 봐도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웅장하고 단단해 보였다.

    20m는 가뿐히 웃도는 높은 담벼락.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눈을 부라리고 있는 경계병.

    외부만 해도 이정도인데, 황제가 살고 있는 황성은 오죽 어떻겠는가.

    황성은 볼프강 가(家)의 저택과는 비교도 안 되는 다양하고 격 높은 보조방어마법과 무수히 많은 병사들로 지켜지고 있었다.

    유적으로 향하려면 반드시 이곳을 통과해야 하지만, 어찌나 철통같은지 아무리 봐도 일개 자유 시민 세 명이 침투할 수 있을만한 장소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강호야 이거 진짜 뚫을 수 있는 거냐?”

    빈틈을 발견하지 못한 유세현이 묻자 이강호가 피식 웃었다.

    “물론. 잘 봐.”

    석벽을 유심히 살피던 이강호가 검지손가락을 이용해 어느 한 장소를 꾹 눌렀다. 그러자 두터운 외벽의 틈이 벌어지며 각기 다른 8개의 문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독수리, 사자, 뱀 등.

    일정한 패턴으로 문양을 누르자 마치 무엇인가가 끼워 맞춰진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털컥.

    이강호가 벽을 살며시 밀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요지부동 하던 외벽이 회전문처럼 너무도 잘 돌아갔다.

    “이건...”

    “그래, 비밀 문이야.”

    “와...이런 게 진짜 있네요? 비밀번호 누르신 거죠?”

    “응, 맞아.”

    내부로 들어서자, 벽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던 여러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강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의 집이라도 되는 것 마냥.

    저벅. 저벅.

    그들이 몸을 숨긴 건널 다리 위로 발소리가 울렸다. 일행은 숨을 죽인 채 그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바깥에는 비밀통로가 없기에 벌어진 일.

    들키면 최소 사형이었기에 그들은 마치 첩보영화를 찍듯 전진해나가야만 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우열곡절 끝에 시선을 피해 내부로 들어온 그들은 재빨리 비밀통로로 들어갔다.

    “야, 오늘 조식 메뉴는 뭐냐?”

    “낸들 알겠냐? 그냥 가서 주는 대로 그냥 처먹어 짜샤.”

    곧바로 들려오는 목소리.

    조금만 늦었으면, 발각 당했으리라.

    “후...차라리 적과 싸우는 게 훨씬 나은 것 같아요 선배.”

    “마족이나 천족보면 그 소리 안 나올 거다.”

    “......”

    아직 조우하지도 못한 존재들.

    그들은 곧바로 이동을 개시했다.

    비밀통로가 비상구의 역할을 하듯, 평소 사용하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이강호도 이곳에서 만큼은 안심하고 있었다.

    허나, 예기치 못한 일은 항상 이럴 때 벌어지는 법.

    “...?!”

    모퉁이를 도는 순간 일행의 표정이 꼿꼿이 얼어붙었다. 일직선상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 길 끝에는 한 여성이 서 있었다.

    서로 교차하는 눈빛.

    -타다닥!

    여자가 황급히 몸을 돌렸다.

    유세현은 잔여마력이고 자시고, 전력으로 암흑투기를 발산했다.

    “헉!”

    이윽고 재빨리 접근한 이강호가 순식간에 여성을 제압했다.

    손가락이 뱀의 문양 쪽에 가 있는 것이 버튼하나만 더 눌렀으면 비밀 문이 개방되었을 것이다.

    실로 아슬아슬했던 상황.

    “꺄아아악!”

    여성은 다짜고짜 비명을 질렀다.

    도망치라고 지른 것이겠지만, 이강호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비밀통로에는 방음 마법수식이 걸려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

    여성의 얼굴을 확인한 이강호가 씨익 웃으며 검지를 입술에 갔다 대었다.

    “그렇게 소리질러봤자 소용없다는 건 네가 더 잘 알텐데? 이벨린 발디안.”

    “......”

    그 말에 여성의 황금빛 금안이 잔잔히 떨렸다. 그녀가 입을 뗐다.

    “저를 알고 계시나요?”

    “모르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

    이벨린 발디안.

    회귀 전 이강호의 동료.

    알테리아 대륙에서도 그녀는 다양한 이명을 가지고 있었다.

    운명을 거부한 귀족.

    대마법사 아린 하이워커의 제자.

    천재 연금술사.

    이강호가 그녀와 처음 대면한 날은 지반이 붕괴한 후인 훨씬 뒤의 일이었다.

    비밀통로의 존재를 알려준 장본인.

    “...저를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

    “......”

    본래 이곳에서 그녀와 조우할 예정은 없었다. 만날 접점도 딱히 없던 데다가 마찰을 빚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

    당시, 이벨린에게 질문 해 봤을 때, 그녀 스스로도 자신이 어떻게 선택할지 모른다고 했었다.

    ‘어떻게 한다...’

    놓아주면 뒤가 불안하다. 허나, 그렇다고 소중한 동료를 죽일 수 도 없는 법이었기에 이강호로서는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이에, 답을 내놓은 것은 유세현이었다.

    “그럼, 데려가야지 뭐.”

    사실 당사자나, 제 3자의 입장에서 볼 때나 이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문제는 상당한 위험을 동반한다는 것.

    이벨린이라는 여자가 상당히 높은 마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C랭크 최상...아니 B랭크인가? 장난 아니군.’

    아마, 원래부터 마력을 지닌 마법사였다는 점이 크게 작용 했을 것이다.

    만약, 자신들이 전투를 치를 때 그녀가 뒤통수를 치기라도 한다면...

    이벨린이 흘끔 눈을 흘기자 이강호가 다분히 말했다.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은 별로 천재답지 않은데?”

    “......”

    마법의 캐스팅을 취소한 이벨린이 입에서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원하시는 게 뭐죠? 아무리 봐도 목적이 있어서 오신 것 같은데...”

    상대가 자신을 아직 죽일 생각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기에 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적어도 이용가지가 끝나면 죽이리라.

    황제의 시해 혹은 보물의 강탈 등 이벨린이 여러 가지를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유세현이 이강호를 불렀다.

    “강호야 일로 와봐. 김주희, 네가 좀 제압하고 있어봐.”

    “옙, 선배.”

    유세현은 이강호가 가까이 다가오기 무섭게 귓속말로 이벨린의 성격에 대해 물었다.

    “머리가 좋고 합리적이다라...호기심은?”

    “꽤 있지. 하지만 호기심만으론 끌어들이기 힘들 거야.”

    “당연히 그렇겠지.”

    그들은 오늘 처음 대면했다. 더군다나 최악의 상태에서.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벗어나려 할 것이다.

    유세현이 이벨린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곧 허리를 숙여 눈높이를 맞추자 그녀가 몸을 움찔거렸다.

    이강호와는 달리 유세현의 두 눈은 싸늘하기 그지없었기 때문.

    “한번만 말할 테니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이벨린씨.”

    “......”

    “지금 저희는 황성 지하에 있는 유적을 탐사하기 위해왔습니다. 그 외에는 일체 관심이 없습니다.”

    “...유적을? 봉인이 되어있어 열수가...아니, 그보다 유적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그걸 당신이 물을 입장은 아니라고 봅니다만?”

    “......”

    “현재 당신의 목숨은 우리 손에 달려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유적으로 가는 길도 다 알고 있죠.”

    이벨린은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비밀통로를 거닐고 있다는 것은 이 황실을 아무렇게나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으므로.

    “그렇기에 우리는 당신의 도움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 함구를 위해서 당장 당신을 죽여도 상관없죠.”

    “......”

    그렇다면 왜 안 죽이는가.

    이벨린은 질문을 하는 과오를 범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들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재인 당신을 죽이고 싶지 않습니다. 때문에 마음 같아서는 놓아주고 싶지만 그럴 시에는 불미스러운 생길 가능성이 높죠. 그래서 말입니다만 이벨린 발디안 씨.”

    “예.”

    “자발적으로 우리와 같이 유적에 들어가 주셨으면 합니다.”

    “......”

    “두 번 말하지만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 아무것도 안하셔도 됩니다.”

    정말 신기한 제안이었다.

    물론, 선택의 자유는 없었지만 목숨 줄을 붙잡고 있는 마당에 누가 이렇게 말한단 말인가.

    유세현은 확실히 말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자신들을 믿으라고.

    “정말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건가요?”

    “예. 다만 저희가 전투를 하고 있을 때 불미스러운 짓을 하려고 하신다면...”

    유세현의 두 눈빛이 다시 착 가라 앉았다. 순식간에 빼든 흑빛의 검신이 그녀의 목 끝에 살짝 닿았다.

    엄청난 예기.

    찔금 튀어나온 핏방울이 목 끝을 타고 흘러내린다.

    “결코, 곱게 죽지는 못하실 겁니다.”

    * * *

    그들은 제안을 수락한 이벨린을 중간에 끼고 이동을 개시했다.

    단 한 번도 틀리지 않고 지하로 내려가는 길까지 도달하자 이벨린의 표정이 당혹감에 물들었다.

    미로처럼 비비 꼬여있어 황제도 헷갈려 하는 비밀통로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자들은 어찌 이리도 길을 잘 찾는단 말인가.

    ‘도대체 어떻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기대가 되기도 했다.

    연금술사로서의 마법사로서의 탐구열.

    유적을 열기 위해 과거 얼마나 많은 연구자가 달라붙었던가. 허나, 알아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힌트라고는 문에 쓰여 있던 하나의 문장뿐.

    [추억이 눈앞에 펼쳐질 때 길이 열리리]

    그들은 유적 근처에서 비밀통로를 빠져나왔다.

    보수파 세력 덕에, 경계병은 고사하고 개미새끼하나 보이지 않았다.

    방치되어 있는 유적.

    입구로 들어서자 팔을 쭉 뻗고 있는 동상 하나와 문이 시야에 비쳤다.

    문의 크기는 300명이 일렬로 정렬하여 한 번에 진입할 수 있을 정도로 무척이나 컸다.

    반면, 동상의 크기는 정말 사람정도에 불과했다.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동상의 앞에선 이강호가 뽀얗게 쌓여 있는 먼지를 툭툭 털었다.

    “추억이 눈앞에 펼쳐질 때 길이 열리리.”

    “아...”

    유세현은 그 말을 듣기 무섭게 차고 있던 펜던트를 벗었다. 옆에 살짝 떨어져 이벨린의 시선이 집중 되었다.

    정말로, 진심으로 유적을 열수 있다는 것인가?

    저게 대체 무슨 아이템이기에.

    뚜껑을 열고 쭉 뻗어있는 동상의 손에 펜던트를 쥐어 주자 거울에 비치는 동상의 얼굴이 점점 형태를 변화하기 시작했다.

    푸른 하늘, 드넓은 초원, 온갖 절경이 흘러지나간다.

    펜던트가 마지막으로 비춘 것은 어떤 한 여성의 얼굴이었다.

    -뚝.

    동상의 눈가에서 떨어진 눈물이 한 방울이 볼을 타고 흘렀다.

    [지역, 페토리안의 봉인이 해방되었습니다. 감춰져있던 던전들이 전면 해방됩니다.]

    [봉인을 푼 자에게 특전이 부여됩니다.]

    [특전: 페토리안의 지형 조종.]

    -털컥.

    -끼이익.

    육중한 음색과 함께 문이 서서히 열리며 내부에서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동상의 표정은 어느새 변해있었다. 살짝 올라간 입 꼬리와 눈웃음 지어 주름져 있는 눈가.

    이벨린의 심장이 쿵쾅쿵쾅 세차게 뛰었다.

    그녀는 그들이 딴 짓을 하면, 몸을 불사르더라도 막으려 했다. 위기를 황성에 알리려 했다.

    허나, 저자들은 정말 아무런 도움도 없이 이곳까지 도달했을 뿐만 아니라 유적을 열었다.

    유세현이 중얼거렸다.

    “특전?”

    “...이건 나도 몰랐어.”

    과거에는 이 지역에 잠들어 있는 신물조각을 얻지 못했다. 아이템의 존재에 대해서는 깨달았으나 그 끝내 회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알베타스가 가져간 것이거나, 다른 모종의 일이 있었던 것이겠지.

    때문에 지금 그가 알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적을 붙잡고 알아낸 정보였다.

    그들이 레콰이크를 죽이고 판도라에 넘어온 순간부터 이미 미래는 변했다.

    “들어가자. 다시 말하지만 꽤 위험할거야...정신 바짝 차려라.”

    “오케이.”

    “옙, 알겠습니다.”

    일행은 각기 무기를 빼들었다. 이벨린이 황급히 외쳤다.

    “저, 정말 세 분이서 클리어하실 생각인 건가요? 이렇게 큰 유적을?”

    “그래. 그러니깐 가도록 하지.”

    “......”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들의 신형이 빛 속으로 사라졌다.

    * * *

    -휘이잉.

    유적 내부는 바깥과 환경이 아예 달랐다. 휘몰아치는 눈보라와 허벅지까지 차오른 눈.

    일반적인 눈과 달리 상당한 양의 마력을 머금고 있는 특수한 눈은 그들에게 상당한 수준의 육체적 패널티를 부여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 다짜고짜 밀려들어오는 수십 구의 몬스터.

    새하얀 털에, 유인원처럼 생긴 놈들은 설인이라는 존재였다.

    마력을 사용하지 않아 스텟은 추정 불가.

    “괜찮아! 초기에는 아무리 높게 나와 봐야 C랭크의 중급 정도야!”

    때문에 평소의 컨디션이라면 놈들을 쉽게 잡았을 테지만, 지금은 주위 환경이나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특히나 이 눈.

    자꾸 발이 푹푹 들어가는 게 거슬리기 그지없다.

    이벨린은 당혹스러웠다.

    유적을 클리어 하긴 커녕 처음부터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지 않는가!

    < 황성(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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