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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143화 (143/612)
  • < 습격 >

    제2 용병 연합단의 총지휘자실.

    회의가 끝나, 모두가 떠난 장소에는 아직 3명의 인원들이 남아있었다.

    한 명은 베크릭, 나머지는 그가 총지휘자의 권한을 이용해 재결성한 암살자 팀의 일원 들이었다.

    여러 팀에 나눠져 있던 인원들을 전력 보충의 이유로 빼돌렸기 때문에 그들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인원이나 마찬가지였다.

    “결전이 바로 내일이다.”

    “즉시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몬스터는 주의하고.”

    “예, 알겠습니다.”

    베크릭은 두 명이 눈앞에서 자취를 감추기 무섭게 천막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람한 점 없는 것이, 한없이 고요하기만 하다.

    문득 베크릭의 미간이 좁혀졌다.

    거슬리던 놈들은 사라졌다. 지형도 잘 잡았다.

    모든 준비는 완벽하건만, 그럼에도 뭔가 자꾸 찝찝했다.

    왜 자꾸 많은 사람들이 사라졌다가 돌아오는 것인지.

    일을 겪은 된 부하에게 물어봤지만 진짜로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아무리 봐도 환각계 몬스터의 능력은 아닌 것 같은데.

    ‘흠...거사를 앞두고 내가 너무 민감 해진건가.’

    베크릭은 이내 상념을 접기로 마음먹었다.

    밤은 더 깊어져가고만 있었다.

    * * *

    저벅. 저벅.

    협곡 내부를 통과하는 인원들의 발걸음은 무척 가볍기 그지없었다.

    이곳에서는 몬스터들도 대량으로 나타나지 못하기 때문.

    허나, 유혜인만큼은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아무리 그녀의 신분이 호위시녀라지만, 카트린을 포함한 여러 기사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이정도로 긴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상함을 눈치 챈 필립이 입을 뗐다.

    “컨디션이 안 좋은 게냐? 안색이 좋지 않구나.”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필립 공자님.”

    유혜인은 얼른 변명했다. 그녀의 오빠, 유세현은 주위 사람에게 아무것도 알리지 말라했다. 물론, 노예로 전락하여 인권이 없어진 그녀는 불확실한 추측을 말하는 것도 불가능 했다.

    지금까지 그나마 잘 지내올 수 있던 것은, 필립이 인격자인지라, 즉 순전히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진짜 그런 일이 벌어질까?’

    유혜인 스스로도 아직까지 오빠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감염충과 암살단이라니.

    하지만 만약 우려했던 것이 현실로 나타난다면...

    악몽 그 자체가 될 것은 너무도 다분하다.

    그들은 계속해서 나아갔다.

    어느새 해가 저편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유혜인은 살짝 안도했다.

    ‘후...오늘은 괜찮...’

    허나, 위기는 항상 마음을 놓은 순간에 발생한다.

    -쾅!

    갑작스레 거대한 폭음이 일었다.

    -솨아아.

    무수히 많은 나무와 흙더미가 필립과 호위 기사들이 위치한 장소를 향해 쓸려 내려왔다.

    정말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일이었다. 더 나아가 굴러 떨어진 바위들이 쌓여 용병들과 사병들을 이어주고 있던 길목을 막아섰다.

    “이, 이게 무슨!”

    용병들의 눈이 당혹감으로 물든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이 적색산맥에서 폭발스킬을 사용하는 몬스터는 단 한 마리도 없었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모, 모두 전투준비!”

    용병들은 검을 빼들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그들의 얼굴에 여유라는 것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과연 어떠한 몬스터가 등장할지.

    허나.

    “뭐, 뭐지? 아무것도 안 나타나는데?”

    “...응?”

    당연한 말이었다. 사태는 그들이 위치해있는 외곽이 아닌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었으니까.

    -스스스!

    검은색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암살자들이 맹렬한 속도로 당황한 병사들 틈을 쇄도해 들어갔다.

    “으아악!”

    병사들은 미처 반응하지도 못하고 픽픽 쓰러져 나갔다. D랭크 중상급의 스텟을 지니고 있는 병사와 C랭크 중하급에 속하는 암살자의 스텟의 차는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스킬의 격차는 그야말로 덤.

    “필립 공자님! 발렌 공자님! 저희들의 뒤로 오시기 바랍니다!”

    어디서 공격이 들어올 줄 모르기에 카트린을 포함한 기사들이 큰 원을 그리며 둘을 둘러쌌다.

    암살자들을 바라보는 카트린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 송글 맺혔다.

    암살자들은 무작정 죽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해가며 힘 낭비 없이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

    아무리 봐도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닌 솜씨.

    ‘이거...쉽지 않다...’

    기사들의 수는 고작 100명.

    반대로 암살자들의 수는 300명에 달한다. 카트린을 포함한 기사들의 수준이 더 높다고 해도 이 많은 암살자들을 한 번에 막을 수는 없다.“으아악!”

    죽어나가는 병사. 어느새 근처에 도달한 암살자와 카트린이 격돌했다. 암살자들보다 훨씬 강한 무력.

    -트드득!암살자의 팔이 부들부들 떨린다. 눈이 휘둥그렇게 변한 것이 차마 이정도도 격차가 클 줄은 차마 몰랐다는 눈치.

    그때였다. 카트린이 들고 있는 검신이 푸른빛을 머금기 시작했다.

    스킬명 오러 블레이드.

    무기의 예리함을 강화하는 스킬로 소드마스터의 수준이 아니라 완벽한 것은 아니었지만, 암살자가 사용하고 있던 매직 등급의 순수한 검날이 이 스킬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쩌적.

    검에 균열이 가자, 암살자의 입에서 다급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자, 작열검!”

    -퍼벙!

    한차례 자잘한 폭발이 주위를 휩쓸었다. 암살자는 그 틈을 타 거리를 벌리려했다. 자신의 목적은 암살까지 시간을 끄는 것이었음으로.

    허나, 그 순간.

    검은 연기 속에서 검이 불쑥 튀어나왔다.

    -푹.

    “커...컥.”

    눈에 보이지 않았을 터인데, 너무도 완벽한 공격이었다.

    이것이 백전노장, 경험의 힘.

    카트린이 힘차게 팔을 올리는 것으로 암살자의 목은 대번에 잘려나갔다. 카트린은 옆을 통과하려하는 암살자를 재빨리 베어 넘겼다.

    그가 검으로 땅을 그었다.

    “이 선을 넘어 오려는 자! 누구든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전장에 있는 모두를 주눅 들게 만들 만한 쩌렁쩌렁한 포효였다.

    사태를 무마시키고 있을 베크릭을 대신해 암살을 총괄하게 된, 듀크가 옆에 위치한 남성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펠무드경, 그럼 약속대로 부탁드리겠습니다.”

    “크크. 나만 믿어라. 저딴 늙은이 따위 내 적수가 못되지.”

    펠무드가 검을 손을 치켜세우자, 그의 뒤를 5명의 인원들이 따랐다.

    그는 알폰스 론 발레르크의 직속 호위병으로, 확실한 처리를 위해 투입된 자였다. 평민출신으로 험하게 자라, 실력에 비해 인성이 그다지 좋지 않은 것이 흠.

    -챙!

    펠무드와 검을 맞댄 카트린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지금까지 상대한 자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 것!

    “크으...네놈은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

    이건 일개 암살대가 가질 수 있는 힘이 아니다. 펠무드의 입 꼬리가 살짝 살짝 올라갔다.

    “크크크. 여기서 죽을 늙은이가 말이 많구나.”

    챙! 챙! 챙!

    합이 이어질수록 현재 볼프강 가(家)의 최고 전력인 카트린이 밀리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발렌의 눈이 점점 환희로 가득 채워진다.

    자신을 깔보는 필립과 그 호위병들의 죽음.

    이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려 왔던 상황이란 말인가!

    보다 못한 필립이 검을 뽑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발렌. 우리도 나서야 될 것 같다.”

    “가만히 있으쇼 형님. 지금 나서봤자 더 노려질 뿐이오.”

    “하지만 발렌! 이대로면...”

    암살자들이 기어코 포위망을 뚫었다. 굳이 필립이 나설 필요 없이 이곳저곳에서 필립을 향해 검이 날아갔다.

    조소를 잔뜩 머금은 발렌이 대충 검을 휘두르며 뒤에 위치해 있는 리체를 향해 말했다.

    “내 뒤에 붙어 있어라. 그럼 죽는 일은 없을 테니까. 흐흐흐.”

    “......”

    -촤작!필립은 필사적으로 항전했다. C랭크 중급에 가까운 스텟을 지니고 있어서 그런지 제법 버티는 모습.

    허나, 물량에는 장사 없듯 서서히 생채기가 나기 시작했다.

    찢겨져나가는 피부와 그 틈에서 흘러나오는 새빨간 피.

    호위시녀인 유혜인도 분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녀의 스텟은 필립보다 낮다. 그런 그녀가 그나마 버틸 수 있던 이유는 꽤나 높은 등급의 버프 스킬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발렌이 유혜인을 보며 입맛을 쩝 다셨다.

    ‘저년도 한번 안아보고 싶었는데 아쉽군.’

    마음 같아서는 빼돌리고 싶지만, 행여나 생길 후환을 막기 위해 필립의 측근은 이곳에서 다 죽이기로 되어 있었다.

    아비규환이 일어난 전장.

    자신은 그러한 전장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인물이여야만 했다.

    “하아...하아...”

    유혜인이 거친 숨이 토했다.

    심장은 당장에 터질 것만 같았고, 입에서는 단내가 났다. 또한 이마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눈을 자꾸 뒤덮어 시야를 가렸다.

    상당한 출혈 때문에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오빠...’

    유혜인이 눈이 주위를 흘겼다. 안타깝게도 그녀가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던 이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못...오는 건가...’

    유혜인은 유세현이 전혀 원망스럽지 않았다. 아니, 되려 잠시 나마 볼 수 있어서 기뻤다.

    이 더럽고 난잡한 세계에 남은 유일한 혈육.

    그녀는 부디 그의 신변에 일이 안 생겼기만을 바랐다.

    ‘신성한 축복. 스트렝스. 고결한 힘.’

    그녀는 남은 마력을 모두 퍼부어 호위시녀가 될 수 있게 해준 버프를 걸었다. 중도에 포기하는 것은 그녀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으아아아!”

    힘차게 내지른 그녀의 검 끝이 아슬아슬하게 암살자의 얼굴을 스쳤다. 갑자기 빨라진 검격에 암살자의 두 눈이 살짝 커졌다.

    허나, 그것도 잠시.

    -서걱.

    암살자는 신속히 반격했다. 유혜인이 빨라진 만큼, 큰 동작은 취하지 않았다.

    -꽈당.

    균형을 잃은 유혜인이 뒤로 넘어졌다.

    필립도 그 주변을 뒹굴었다.

    주위를 새까맣게 뒤덮은 수십 명의 암살자.

    시야가 차단된 것을 확인한 발렌은 그제야 몸을 움직였다.

    한걸음, 또 한걸음.

    암살자들 틈에서 나타난 발렌이 필립을 내려다 봤다.

    “형님, 궁지에 몰린 느낌이 어떠쇼?”

    “허억, 허억...바, 발렌...너가 왜 거기서...”

    “하하. 머리 좋은 형님께서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를 리가 없으실 텐데?”

    “바, 발렌...왜...”

    필립은 표정은 분노에 물들기보다는 정말 왜 그러냐는 표정이었다. 때문에 그 표정에 짜증이 난 것은 되려 발렌이었다.

    “내가 왜 이러는지 정말 모르는 거요? 나는 이때까지 줄곧 계속 궁지에 몰려있었는데?”

    “......”

    “아버님께서는 형님만 총애하셨지. 나에게는 관심도 주지 않았소. 그리고 형님도 툭 하면 나를 무시하곤 했지.”

    “그, 그렇지 않다 발렌! 나는 너를 무시한 적이 없다! 아버님께서도 너를 얼마나 아끼시는...”

    “큭...웃기는 군. 그럼 하나만 묻겠소. 나를 무시하지 않아서 평민 앞에서 꾸짖은 거요?”

    “...그건 예의...”

    “하하하. 그래 맞아. 형님은 그런 사람이오. 가족보다도 예의를 중요시 하지. 그리고 아버님 말씀인데. 잘 생각해 보시오. 그 작자가 나에게 카트린 같은 호위 기사를 붙여준 적이 있었소?”

    발렌이 검을 치켜세웠다.

    동생의 말이 충격이었을까 필립은 그저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을 뿐 대응하지 않았다.

    “크크크. 네년도 운이 없구나. 나한테 붙었다면 살 수 있었을 텐데. 나의 호의를 거절한 네 자신을 원망해라! 둘 다 죽여 버려!”

    발렌의 칼을 땅을 향해 내려찍자, 암살자 둘이 검을 치켜세웠다.

    “필립공자님!”

    상황을 살핀 카트린이 황급히 몸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서걱.

    “크크, 노친네가 어디서 한눈을 팔아?”

    “큭!”

    펠무드의 검이 카트린의 복부를 베었다.

    또 다시 묶여버린 발.

    이 장소에 이제 둘을 구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팅!

    간신히 방어한 유혜인이 검이 두 사람 분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튕겨져 나갔다.

    -쉬이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곧바로 귓가에 울려 퍼진다.

    유혜인은 눈을 질끔 감았다.

    그때였다.

    마치 시간이 정지하듯 갑작스럽게 바람소리가 멎었다.

    고통은 딱히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살아 있는 건가?’

    살며시 눈을 뜬 유혜인의 눈동자 속에 멈춰있는 암살자들이 비쳐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멈춰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팔과 한눈에 보기에도 찡그려진 눈가.

    “허억, 허억...‘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생각할 틈도 없이 암살자들이 거친 숨을 토해냈다. 발렌은 당혹어린 표정이 되었다.

    “지금 뭐하는 행동...”

    -쾅!

    그 순간, 어두워진 상공 위에서 무엇인가가 뚝 떨어졌다.

    “이, 이건 또 무슨...”

    피어오르는 흙먼지 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칠흑의 검.

    검을 치켜세우고 있던 암살자 두 명의 목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무슨!”

    발렌의 경악 섞인 외침과 함께, 암살자들이 일제히 검을 내질렀다. 허나,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흙먼지가 수그러들며 정체불명의 인형(人形)이 서서히 드러난다.

    푸른색의 피를 온몸에 뒤집어쓰고 있는 남자.

    얼굴을 확인한 유혜인의 입가가 달싹였다.

    “늦어서 미안하다.”

    유세현이 손을 뻗어 유혜인의 이마에 흐르는 피를 훔쳤다.

    < 습격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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