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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142화 (142/612)
  • < 군체종족 알베타스(4) >

    반사적으로 자세를 낮춘 세 명이 움직임을 멈췄다.

    -스륵 스르륵.

    기척이 느껴지는 것이 수풀 저편에는 분명 무엇인가 있었다. 허나, 아무리 집중해도 마력은 역시나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놈들인가.’

    순간적으로 유세현과 이강호의 눈빛이 교차했다. 살짝 고개를 끄덕인 유세현이 풀숲을 옆으로 제치자 김주희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2m가 넘는 커다란 장신, 송곳처럼 우둘투둘 솟아 있는 딱딱한 가시.

    머리는 사람의 두개 만했으며 팔은 날카로운 검 그 자체였다.

    엄청난 물량으로 적을 찍어 누르는데 특화 된 알베타스의 기본 전투체.

    [알비론.]

    양 옆으로 쫙 찢어진 입이 무척 괴기해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만 빼고, 별다른 특수 능력은 없었기에, 일행은 습격을 감행했다.

    맹렬하게 바람을 가르며 적을 향해 날아가는 유세현의 검!

    알비론 한 마리의 목이 순식간에 육신과 분리되며 지면을 뒹굴었다.

    유세현은 다음공격을 위해 곧바로 자세를 다잡았다.

    첫 공격은 암습과도 다름이 없었기에 몇 마리는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허나, 그때였다.

    선두에서 나아가고 있던 개체를 포함한 모든 알비론들의 목이 일제히 일행을 향해 돌아갔다.

    마치,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이것이 바로 군체 종족!

    -캬아아악!

    날카로운 괴성과 함께 무수히 많은 알비론이 달려들었다.

    챙!

    지지직!

    적의 날카로운 팔과 맞닿은 루베르크의 검신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유세현은 그 순간 알베타스라는 종족이 왜 위험한지 몸소 깨달았다.

    일개 병사에 불과한 놈들의 힘은 C랭크를 간단히 뛰어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정도의 막대한 수.

    만약 이들이 우르르 인간들을 덮친다면, D랭크의 스텟을 지니고 있는 인간들은 흉흉한 기세와 압도적인 물량 앞에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죽어나갈 것이 분명했다.

    ‘뭐 이런 종족이...’

    아군의 시체를 짓밟고 덮쳐 오는 게 언데드와 흡사하지만 지능이 낮진 않다. 적에 대한 판단을 끝낸 그의 몸에서 암흑투기가 터져 나왔다.

    -키아아!

    모체의 정신이 흔들렸는지 알비론들이 갈피를 잡지 못했다.

    허나, 그것도 잠시.

    다수의 알비론들이 유세현을 향해 높이 도약했다.

    순식간에 괴물들에게 완전히 뒤덮인 유세현의 육신!

    -치지직!

    내부에서부터 흑빛의 뇌전이 터져 나와 대기를 뒤덮었다. 새까맣게 그을린 알비론의 시체에서 유세현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키릭.

    뇌전을 확인한 알비론들은 쉽사리 달려들지 못했다. 명령을 내리는 모체가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각을 재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남은 알비론들이 일제히 몸을 돌려 풀숲으로 도약 했다.

    ‘어딜 도망가려고.’

    유세현은 팔을 들어올렸다.

    좌표의 설정.

    그는 손을 꽉 움켜쥐었다.

    -쿠구구궁!

    뇌전의 줄기가 일대를 휩쓴다. 나무, 풀잎, 범위 내에 있던 모든 것은 너나 할 것 없이 새까만 재가 되었다.

    지면 위로 떠오르는 붉은색 코인.

    다가온 이강호가 툭 물었다.

    “직접 마주해본 느낌이 어때?”

    “확실히...많이 위험해.”

    “으...정말 징글징글 했어요.”

    스텟이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결국 목이 잘려나가면 죽는 게 인간이다.

    물론, 피부가 단단해지는 내구력 스텟이 있지만 높이기 힘든 만큼 분명 한계가 존재한다.

    만약, 자신이 아니라 비슷한 스텟을 지닌 다른 생존자였다면 그 압도적인 물량 앞에서 목을 내주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언데드 레이즈를 사용해 사용할 수 있는 시체를 되살린 유세현은 계속 진군해나갔다.

    인간측이 협곡에 도착하기 남은 기일은 약 3일.

    해가 떨어지고 새까만 밤이 찾아오자, 그들은 취침을 위해 나무위로 올라갔다. 딱딱 기대는 벽이 까질까질 하기 그지없었지만 이제는 버릇이 되 버려 불편하긴 커녕, 오히려 안락하게 느껴진다.

    경계를 서는 이강호와 유세현을 제외한 김주희가 막 잠이 들려는 찰나였다.

    -푸슉.

    아주 미묘한 소리였다. 눈을 부릅뜬 이강호가 허공을 향해 창을 휘둘렀다. 유세현은 그 사이 김주희를 재빨리 잡아당겼다.

    “...?!”

    난데없이 유세현에게 안기게 된 김주희가 눈을 깜빡였다. 허나, 그것도 잠시.

    -치이익.

    녹아내리는 나무를 확인한 그녀의 두 눈이 화등잔만하게 변했다.

    이것은 독?

    “포이즌레블이다!”

    -캬아악!

    이강호의 외침과 동시에 무수히 많은 알비론들이 달려들었다. 우거져 있는 숲이라 빛도 들어오지 않아 앞이 잘 보이지 않을 터인데 놈들의 공격은 날카로웠다.

    그리고 풀숲에서 날아오는 많은 양의 독.

    “놈들의 눈 역할을 해주고 있는 색적병이 있을 거야! 그걸 죽이면 놈들은 까막눈이 돼!”

    “어떻게 생겼는데?”

    “지렁이 같이 생겼어! 날개도 달려 있다! 길이는 3m 정도!”

    의외로 상당이 컸다.

    문제는 어딘가에 은폐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는 것.

    “라이트!”

    이강호의 손에서 순간적으로 빛의 구체가 튀어 올랐다. 강한 빛으로 기세를 누그러뜨리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색적병은 밝기에 상관없이 다 볼 수 있으니까.

    -치지직

    유세현은 흑뢰를 머금은 루베르크를 휘두르며 색적병을 찾기 시작했다. 허나, 어찌나 알비론들이 맹렬하게 공격해오는지 놈들을 신경 쓰기에도 만만치 않다. 아니, 정확히는 알비론은 괜찮다. 암흑투기로 육체를 상당히 격

    하시켜 놨으니까.

    문제는 독.

    똥인지 된장인지 굳이 먹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듯 이 독은 한눈에 봐도 무척이나 위험하다.

    ‘일대를 다 날려버려라 하나?’

    적의 수를 알고 있으면 그리해도 상관없었다. 허나, 적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는 이상 마력은 최대한 아껴가며 싸워야 한다.

    그때였다.

    -휘이익!

    -콰과광.

    하늘에서 별안간 쏟아진 갈고리가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시선을 살짝 위로 돌린, 유세현의 두 눈동자에 거대한 날개를 지니고 있는 생명체가 보였다.

    공중타격형 전투체.

    [스카이레블]

    “이놈들 단단히 작정했군.”

    10마리의 스카이레블은 틈을 만들기 위해 계속 갈고리를 쏘아댔다. 일행은 날아오는 독 때문에 도약을 하면 안 되었기에 회피범위가 정해져 있었다.

    -치이익.

    재수 없게 스친 레더아머가 서서히 녹아내린다.

    그래도 매직 S랭크라 제법 내구도가 좋건만 가죽의 특성상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다.

    좁은 시야, 물량, 조합.

    우월한 스텟과 스킬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불리했다. 아니, 꽤나 엄선한 병사를 보냈는지 포이즌레블과 스카이레블의 스텟의 수준은 그들보다 높아 보인다.

    그럼에도, 그들이 견제만 할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

    ‘병력손실을 최대한 막겠다는 거군.’

    유세현은 판단을 내렸다. 마력을 아껴봤자 계속 수세에 몰릴 뿐이라는 것을.

    “김주희! 넌 정령화를 해서 하늘을 나는 저놈들을 처리해!”

    “예! 선배!”

    -슈우욱!

    김주희가 트라이던트를 들어 올리자 송곳같이 변한 물줄기가 스카이레블의 육신을 꿰뚫었다.

    “강호야! 내가 한 번에 쓸어버릴 테니깐 넌 마력을 아껴!”

    “알았다.”

    유세현의 루베르크를 검집에 집어넣고 독이 날아오는 장소를 향해 양손을 모았다. 표면적을 넓혀 최대한 퍼지게 스킬을 날리려는 것이다.

    특이 행동을 취하자 알비론들이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그것이 죽음으로 직결될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피잉

    -콰과광!

    검붉은 빛이 휘감자 범위 내에 있던 포이즌레블을 포함한 알비론들은 코인만을 남기고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그 사이 이강호는 나무에 늘어져있던 탐색병을 처리했다.

    -키리릭!

    퇴각하기 시작하는 병력들.

    점점 희미해져가는 불빛 너머로 깨진 거울처럼 산산조각이 나 있는 허공이 흘끗 보였다.

    이강호는 사방으로 보조마법, 라이트를 날렸다.

    균열은 가로 세로 8m정도로 무척이나 컸다.

    “이게...”

    “그래, 균열이야.”

    “엄청 크네?”

    “아니, 이 정도는 별로 큰 게 아니야.”

    어떤 균열은 수천의 병사가 횡으로 정렬하여 이동할 수 있는 것도 있었다.

    “그럼 이곳을 통과하면 최북단이 나오는 건가?”

    “그렇지.”

    “후...진짜 미친 세계군...그보다 이거 강제적으로 닫을 수 있어?”

    “아니, 안돼. 이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라서.”

    “흠...그럼 그것 둘째 치고 균열은 이거 하나겠지?”

    “보통의 경우에는 그렇지.”

    유세현은 이강호의 말에 주위를 둘러봤다. 주위에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만약 인간을 치려는 것이라면 알베타스의 병력이 이렇게 적을 리가 없을 텐데.

    “협곡 방향으로 이동한 건가?”

    “지금 상태로만 보자면 그럴 가능성이 높...”

    이강호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이었다. 균열 저편에서 인간처럼 생긴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동시에 몸을 섬뜩하게 만드는 높은 마력.

    “...?!”

    유세현과 이강호의 검과 창이 반사적으로 팔을 노렸다. 허나, 다음 순간 나머지 육신이 완전하게 빠져나온 알베타스의 병사가 각 오른손과 왼손을 이용해 칼날을 붙잡았다.

    상당한 힘이 실려 있다는 것을 가정했을 때 엄청난 내구력 스텟이었다.

    놈의 정체를 단번에 눈치 챈 이강호가 입을 악물었다.

    인간의 형태와 온몸을 뒤덮고 있는 칼날.

    칼날의 군주.

    [헤드리아]

    이토록 귀한 병사를 불완전한 균열 속으로 집어넣다니!

    “전부 뒤로 빠...”

    -푹.

    말을 채 끝마칠 새도 없이 헤드리아의 우측 옆구리에서 뻗어 나온 칼날이 유세현의 복부를 꿰뚫었다. 한차례 늦게 반응한 김주희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서, 선배님!”

    김주희가 황급히 트라이던트를 내질렀다. 무기의 수준을 경험한 헤드리아는 더 이상 방어의 필요성을 못 느꼈는지 반응하지 않았다.

    허나.

    푹.

    살갗을 찢고 푸른 피가 흘러나온다. 김주희의 아이템 등급은 우습게도 셋 중에서 가장 높았다.

    살짝 인상을 구긴 헤드리아가 복부를 내려다봤다. 그 모습이 뭔가 굉장히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틈을 타 거리를 벌리는데 성공한 유세현이 말했다.

    “저놈 마력양이 장난이 아니야. 너무 높아서 랭크가 뭔지 모르겠어...적어도 B랭크 중반이상인거 같은데...”

    “...B랭크 중반?”

    이강호의 눈이 착 가라 앉았다. 그가 헤드리아를 만났을 때 놈의 스텟은 A랭크 최상으로 S랭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로 치자면 턱없이 낮은 수준.

    더 나아가 헤드리아의 행동이 뭔가 이상하다.

    헤드리아는 군체의 지배를 받지만, 개인적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존재 중 하나다.

    즉, 스스로 사고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가 아는 헤드리아는 이렇게 어벙하지 않았다.

    놈은 틈이 있으면 확실히 비집고 들어와 적의 육신을 난자했다.

    ‘감염충...그리고 인간형태...설마?’

    설마 이제 막 만들어 졌다는 건가?

    감염충을 이용해 인간에 대한 데이터를 미리 얻었다고 가정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산맥의 아래에는 폴타론마을이 있으니까.

    더 나아가 과거 헤드리아가 조우하지도 않았을 인간의 형태를 띠고 있었는지도 설명이 된다.

    ‘이놈을 여기서 죽일 수 있다면...아니, 아니지...’

    균열 앞은 너무도 위험하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도망친 알비론을 포함한 다른 호위병이 등장 한다면 힘도 써보지 못하고 전멸하는 것이다.

    “일단 퇴각하자.”

    [놓...치지 않아.]

    헤드리아가 맹렬하게 쏘아붙였다. 유세현은 다른 한손에 클락에룬 스태프를 집어 들었다. 재빨리 암흑투기로 짓눌렀음에도 헤드리아의 몸놀림이 장난이 아니다.

    이대로라면 김주희의 해일 덕에 도망칠 수 있다고 해도 금방 따라 잡힐게 분명했다.

    그때, 문득 떠오른 한 가지 방법.

    ‘그게 가능할까?’

    시도해 보지 않는 것 보다는 훨씬 났다.

    “김주희! 조금만 더 시간을 끌어봐!”

    “예!”

    언데드는 부식된다. 허나, 그렇다고 바로 부식되어 뭉그러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방금 죽은 이놈은 아직은 날 수 있지 않을까.

    유세현은 쓰러져 있는 스카이레블을 향해 뛰어가 어둠의 마력을 불어넣었다.

    [언데드 레이즈의 숙련도가 100%가 되었습니다. 권능에 의해 언데드 레이즈의 랭크가 E에서 D로 승격됩니다.]

    [대상자의 육체활용도가 올라갑니다.]

    알림창이 떴지만 지금은 보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날갯짓을 해라!’

    단순 명령에 시범삼아 살린 스카이레블 한마리가 양팔을 펄럭였다. 동시에 서서히 떠오르는 육신.

    날개에 바람구멍이 나, 만약 못 뜨면 고기방패로 사용하려 했었던 유세현은 재빨리 등에 올라탔다. 물컹물컹한 것이 느낌이 이상했지만 지금은 감촉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한 명 밖에 못 버티겠군.’

    그래도 충분하다. 스카이레블은 많이 있으니까.

    그는 남은 마력을 고루분산 시켜서 많은 스카이레블을 살려냈다.

    그 덕에 암흑투기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이제 고작 해봐야 3분 정도.

    “이강호! 김주희! 올라 타!”

    [......]

    이강호가 먼저 몸을 돌리자 헤드리아가 맹렬히 돌진해왔다. 김주희가 재빨리 해일을 일으켰다.

    거친 파도 속에 뒤덮이는 헤드리아의 육신.

    세 명을 태운 스카이레블들은 서서히 상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허나 그때.

    -슈욱!

    파도 속에서 헤드리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높은 육체적 스텟을 이용해 강제적으로 탈출한 것!

    [보낼 수 없다.]

    옆구리에서 튀어나온 칼날이 촉수같이 길게 늘어지더니 김주희가 탄 스카이레블을 노려왔다. 스스로의 육신에도 적응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게 정말 끈질기기 그지없는 행동.

    “꺼져라.”

    [캬아악.]

    -쾅.

    이강호의 불길을 뒤집어쓴 헤드리아는 비명을 지르며 추락했다.

    곧이어 균열에서 튀어나온 새로운 스카이레블들이 뒤를 추격했으나, 그때 세 명은 이미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 군체종족 알베타스(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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