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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141화 (141/612)
  • < 군체종족 알베타스(3) >

    마력을 지니고 있는 괴물들은 기껏 해봐야 특이 개체 몇 마리 정도. 특이개체를 이런 탐사에 사용할 일은 없으니, 유세현의 마력탐지는 사실상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

    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유세현이 차분히 물었다.

    “등급에 따라 침식이 가능하다라...외형으로 구분이 가능해?”

    “외형은 아니고, 색으로 가능해. 지금 보듯이 몸통의 빛깔이 황토색인건 D랭크를 감염시킬 수 있는 하급이야. 그리고 순차적으로 노란빛, 붉은빛을 띠어.”

    “그럼 랭크로 환산 되는 건 마법저항력이야? 아니면 물리저항력?”

    “아니, 둘 다 아니야.”

    “그럼?”

    “체력과 마력. 감염충은 방대한 양의 마력을 버티지 못해. 체력은 그들이 체내에서 죽어 사라질 때까지 버틸 수 있게 해주지.”

    “흐음, 그 두 가지가 필수 요소인가...”

    그런 면에서 하급 감염충의 영향을 받지 않는 세 명은 일단 안전했다.

    문제는 여동생, 유혜인.

    감염충들이 매번 이런 식으로 습격한다면, 언제 감염 되도 이상하지가 않다.

    “감염돼도 그걸 풀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거냐?”

    “어, 있어. 딱 두 가지.”

    첫째는 감염충의 조직세포를 파괴하는 특수한 약물을 제조해 마시는 것.

    둘째는 명령을 내리고 있을 모체를 파괴하는 것이다.

    허나, 첫째는 현 상황으로는 불가능. 만약의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자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번째 방법뿐인데...

    “모체? 군체라는 놈이 전체 총괄하는 거 아니었어?”

    “물론 그렇지. 하지만 군체도 생명체야. 정보를 수용하고 직접 처리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어. 때문에 감염충은 만들어낸 모체가 직접 다뤄.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거

    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거다.”

    “피라미드 구조라는 건가...”

    “그렇지.”

    “흠...”

    그렇다면 알베타스가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변도 이강호가 대략적으로 내놓았다.

    “아마도 몰래 이 병력들을 전부 삼키려는 것 같다.”

    “삼킨다고?”

    “응.”

    감염충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면 그 특징상 숙주의 몸이 변화되기 시작한다. 몸에서 서서히 촉수가 생겨나고, 피부가 뭉그러지는 것이, 쉽게 말하자면 인간이라는

    종에서 알베타스라는 종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무사 귀환한 자들은 신체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의도가 너무도 뻔히 보이지 않는가.

    “일정수를 잠식 한 다음, 배신을 하게 하는 건가...그리고 그때 놈들의 전투 병력이 덮친다면...”

    인간측은 패닉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정상인 C랭크의 인원과 감염된 D랭크의 결투 구도가 될 수도 있다.

    암살자들을 포함하여 쥐도 새도 모르게 찾아오고 있는 위기.

    그때 발자크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유세현씨, 이강호씨 교대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

    근무교대 후 유세현은 김주희에게서 팔찌를 건네받았다. 이건 아무리 봐도 미리 언질을 해줘야 된다.

    “선배님...”

    “쉿, 경계가 삼엄하면 그냥 돌아올 거니까 너무 걱정마라.”

    “...예.”

    바깥에서는 이미 이러한 행동을 할 것을 눈치 챈 이강호가 대기하고 있었다.

    “같이 가자. 이렇게 된 거 네 동생에게 먼저가고 만약 된다면 리체에게도 한번 들리도록 하지.”

    툭 던지듯이 하는 말이었지만, 유세현은 그 언사에서 세심한 배려심을 느꼈다. 유세현은 피식 웃었다.

    “그래, 같이 가자.”

    -스스슥

    이윽고 둘의 신형이 어둠에 파묻혔다.

    * * *

    시녀들이 거주하는 천막. 유혜인은 누가 툭 건드리기 무섭게 눈을 부릅떴다.

    “누구! 흡!”

    얼마나 긴장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대목.

    “쉿.”

    재빨리 입을 틀어막은 유세현이 입술에 조심스레 검지를 갔다대자, 유혜인은 깜짝 놀란 표정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 오빠? 어떻게 여기까지...”

    중얼거리는 그녀의 표정은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사병이 주둔하는 곳이다. 귀족가의 자제가 있는 곳인 만큼, 들여보내주지 않았

    을 터인데.

    “몰래 왔지.”

    “...?!”

    유혜인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들키면 일을 어떻게 수습하려고 그런단 말인가! 아니, 그보다 몰래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하단 말인가.

    유혜인의 눈동자가 재빨리 동료 시녀를 살폈다. 긴장으로 인해 평소 깊은 잠에 들지 못하던 동료들이 전부 쌕쌕 고른 숨을 내뱉고 있었다.

    그 옆으로 보이는 한 여자.

    뿔을 보고 놀란 유혜인은 향해 아퀼라가 방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오, 오빠 이, 이건 대체...마물?”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알려줄게 있어서 왔어.”

    “아, 알려줄 거?”

    “그래.”

    유세현은 알아낸 것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록 유혜인의 낯빛이 시퍼렇게 변했다.

    “오, 오빠 그런 정보는 어디서...”

    “지금 설명할 시간 없어. 아무튼 믿고 조금만 더 버텨라. 꼭 그곳에서 빼내줄 테니까.”

    “......”

    유혜인은 뭐가 뭔지 자세히 알 수 없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현대에서는 항상 티격태격 싸우기만 했었는데.

    유세현이 몇 마디 더 하려는 순간, 천막내부로 이강호가 들어왔다.

    “유세현, 이제는 움직여야 된다.”

    유혜인이 눈을 깜빡였다.

    “어...어? 가, 강호 오빠?”

    “그래, 오래간만이다.”

    “어...가, 같이 떨어진 거야? 이 세계에?”

    “그렇지. 아무튼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세현이가 한말 잘 새겨들었지?”

    “어? 응...”

    “그래, 그럼 나중에 보자.”

    과거의 유세현이었다면 장난으로 꿀밤을 날렸겠지만, 이번에는 머리에 살짝 손을 얹는 것으로 작별을 고했다.

    그렇게 잠시 뒤.

    둘이 사라진 천막내부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적막감만이 감돌고 있었다.

    * * *

    리체가 있는 곳에 숨어드는 것은, 유혜인에게 도달하는 것보다도 몇 배는 난이도가 높았다.

    발렌이 그녀를 침실로 부른 탓이었다.

    밖을 지키고 있는 무수히 많은 병사들.

    천막 내부, 침상의 위에서는 발렌이 리체의 몸을 떡 주무르듯 어루만지고 있었다. 가슴, 허리 그리고 골반.

    “크크, 역시 최고군! 너를 품고나면 딴 여자들은 생각도 안 난다니까?”

    “......”

    발렌은 낄낄 웃고 있는 반면, 목에 걸려있는 펜던트를 열얻다 닫았다를 반복하는 리체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발렌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너도 내가 우습게 보이는 거냐?”

    “절대 아닙니다.”

    “아니긴!”

    발렌이 험악해진 얼굴을 불쑥 내밀자 리체가 방긋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정말로 아닙니다. 어찌 일개 시녀에 불과한 제가 대 볼프강 가(家)의 발렌님을 우습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크크크, 주제는 잘 알고 있군. 암 그래야지. 그래야만 내 밑에서 일하는 동생이 편할 테니까.”

    “......”

    “그나저나, 그 펜던트, 줄곧 차고 있던데 대체 뭐냐?”

    “아, 이건...”

    리체가 펜던트를 꼭 움켜쥐었다. 이것은 남동생의 실수로 노예가 되기 전 던전에서 운 좋게 얻은 보상이었다.

    아이템 명: 기억의 펜던트

    등급: 에픽 [F Rank]

    상세정보: 사용자의 기억 속에 있는 모습을 내부 거울에 형상화 시켜줍니다.

    등급에 맞지 않게 지극히 단순한 효과밖에 없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이 펜던트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했다.

    죽은 가족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

    “막내 동생의 사진이 들어 있는 펜던트에 불과합니다.”

    “그래? 어디 열어봐봐.”

    아이템의 정보는 사용자밖에 볼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리체는 반쯤 안도하며 펜던트를 열었다.

    “호오...벌레 같은 남동생과는 달리 꽤나 미인이군.”

    허나, 그때였다.

    “잠깐, 벗어서 줘봐. 각도가 틀어져서 보기 불편하네.”

    “아...제가 가까이 가겠습니다. 그러니 그냥 이대로 보시면...”

    리체가 더욱 몸을 밀착시켰다. 평소 이런 행동을 잘하지 않는 여자인 만큼, 보통이라면 좋아하며 넘어갔을 발렌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온 신경은 펜던트에 쏠린 상

    황.

    “어쭈? 지금 내 말을 무시 하는 거냐?”

    “......”

    결국, 리체는 펜던트를 목에서 뺄 수밖에 없었다.

    펜던트는 발렌에게 넘어가자마자 다른 기억을 꺼내놓았다.

    에레랄드 머리칼을 지니고 있는 젊은 여성. 허나, 결코 리체는 아니었다.

    “뭐, 뭐야 이건?”

    정보를 살핀 발렌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거...단순한 펜던트가 아니었군. 어떻게 이런걸 아직도 가지고 있을 수 있지?”

    “...브라칸 백작님께서 허락하셔서...”

    “크크크. 아버님이 말이냐?”

    “예.”

    “크크크...크하하하!”

    발렌이 광기어린 폭소를 내뱉었다. 그가 툭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이 펜던트는 내 것이다.”

    “...!!”

    리체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켰다. 펜던트는 모든 것을 내팽겨 치고 싶은 그녀를 지지 해주는 유일한 물품이었다.

    죽은 여동생의 유언.

    [언니 어떻게든 살아남아.]

    발렌이 육체를 탐할 때마다, 당장 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을 동생의 얼굴을 보며 참았다. 줄곧 이겨 내왔다.

    그런데, 그런 것을 빼앗다니.

    “왜? 불만 있냐?”

    “...아닙니다. 제 것은 발렌님의 것이지요.”

    “크크...잘 알고 있어서 다행이군.”

    발렌은 펜던트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리체의 이가 으득 아물렸다.

    “...발렌님, 조금 갑갑해서 그런데 바람을 쐬고 싶습니다만...”

    “허, 그래? 10분주겠다. 갔다 와라.”

    “감사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리체는 대충 옷을 입었다. 미끈거리는 하반신이 무척 불쾌했지만, 지금 발렌의 면상을 계속 보고 있자면 죽어라 달려들 것만 같았다.

    리체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숲의 차디찬 공기가 폐로 스며들어와 흥분을 가라앉혀주는 느낌.

    허나, 그러한 감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 누나? 왜 벌써 나와?”

    리체의 동생, 토벤 케머런.

    자기 때문에 노예가 되어, 이 수난을 겪고 있는데 남동생이란 놈은 너무도 밝기 그지없다. 아니, 발렌이 제법 신경을 써줘서일까, 노예 신분으로 경계병이 된 그는 되려

    이 생활을 즐기고 있는 듯 보였다.

    ‘난 대체 뭐 때문에...’

    아무리 개념이 없다지만 그래도 희생한 자신을 생각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그것은 착각에 불과했다.

    “누나! 발렌님께 잘 보여서 안방마님이 돼야지! 빨리 다시 들어가!”

    “...토벤. 누누이 말하지만, 난 저놈이 죽도록 싫어.”

    “헙! 그런 말을 여기서 꺼내면 어떡해! 귀에 들어가면 어쩌려고!”

    “......”

    자신이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것 일까. 그저 허탈한 실소만이 터져나왔다. 그녀는 발걸음을 다시 천막내부로 옮겼다.

    -드르렁

    발렌은 이미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완벽한 무방비. 그런 주제에 팬던트는 손에 꽉 움켜쥐고 있다.

    리체의 눈이 침상 옆에 거치 되어있는 무기로 향했다.

    ‘끝낼까?’

    -치잉

    검을 빼든 그녀는 망설였다.

    여기서 내려치면 정말로 끝. 비참한 인생이 완전히 끝나는 것이다. 그리고 동생도 역모 죄로 나란히 처형당하겠지.

    ‘그래, 이렇게 살아봤자...’

    팔을 치켜세우자, 문득 검신에 얼굴이 비쳐 보인다.

    푸른 에메랄드색의 머리카락.

    여동생과 겹치는 것은 오직 그것 밖에 없었지만, 마치 여동생이 자신을 향해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살라고. 죽지 말라고.

    “......”

    리체는 결국 검을 제자리에 돌려놨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후웅!

    뒤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그림자가 리체의 입을 틀어막았다.

    “...?!”

    “놀라지 마라. 우리는 너와 거래를 하고 싶어서 왔다.”

    간만의 재회에 이강호가 번뜩 눈을 빛냈다.

    * * *

    “설마, 그 타이밍에 빼앗겼을 줄이야...”

    알베타스의 등장으로부터 3일. 일행은 알베타스의 흔적을 쫓아 숲을 헤쳐 나가고 있었다. 몇 마리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덮치기 전 수를 조금이라도 줄여놓아야

    될 필요성이 있는 탓이다.

    “만약 놈들이 암살자 일부를 감염시키는데 성공했다면, 이미 정보를 얻었을 거야.”

    “그렇다면, 유력한건 협곡 쪽인가.”

    “그렇지. 물론, 방심은 금물이지만.”

    그래서 그들은 내부에 스파이를 끼어 놨다.

    발렌의 곁에 붙어 동향을 파악해도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을 수 있는 존재.

    리체 케머런. 그녀는 이강호와 대화를 나누더니 이쪽으로 붙는 것을 택했다.

    -푸드득.

    리체가 보낸 마법전서구가 상황보고를 해왔다.

    레피아에게서 인장을 지급 받은 사람은 총 3명에게 각인을 새로이 새길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을 이용한 것!

    “아침마다 실종자가 발생하는 바람에 좀 더 주의해서 진군하기로 했나봐. 며칠 더 걸리겠는데?”

    “흠...그 정도라면 상당히 많이 감염되겠군.”

    하지만 그만큼 적을 깨부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이강호는 점점 더 빛이 들지 않는 깊은 곳으로 향했다. 감염충의 모체는 습한 곳을 좋아하기 때문.

    -스르륵!

    일순간 수풀이 흔들렸다.

    < 군체종족 알베타스(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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