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135화 (135/612)
  • < 사냥개시(3) >

    -스륵, 스르륵.

    해가 저편으로 넘어가고 빛이 사라진 숲속.

    평소에 입던 옷과는 달리, 전신 전신타이즈로 얼굴과 몸을 가린 레피아 레벤은 20명의 검은꽃들을 이끌고 흔적을 쫓아 이동 중에 있었다.

    ‘...?!’

    계속 달려가던 이동하던 레피아가 순간적으로 손을 치켜세웠다. 이에, 검은꽃들은 먼지도 나지 않게 사뿐히 멈춰 섰다.

    “왜 그러세요. 언니?”

    “발자취가 끊겼어. 레베카!”

    레피아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레베카라고 불리운 검은꽃이 고개를 황급히 저었다.

    “냄새도 끊겨있어요 언니. 무슨 수를 쓴 거 같은데...”

    주위를 서성이며, 냄새감지 스킬을 사용하던 레베카가 황급히 입과 코를 막았다.

    이 향은?

    “레피아 언니! 다들! 숨을 멈춰! 절대 숨을 쉬면 안돼!”

    “흡!”

    바로 외쳤으나 조금 늦었다. 레피아가 입을 악물었다.

    익숙한 향의 냄새. 그리고 점점 새하얗게 피어올라 일대를 메우는 안개까지.

    ‘이게 지금 왜...’

    이건, 흑접림(黑蝶琳) 중에서도 오직 레피아만이 제조할 수 있는 특수한 마비안개였다. 판도라에 온 뒤로 여러 실험을 걸쳐 도달해낸 산물.

    그런데 사용도 하지 않은 향이 지금 왜 퍼지고 있단 말인가.

    레피아는 황급히 해독약을 마셨다. 그리고는 동생들에게 해독약을 건네주기 위해 움직이려는 찰나, 레베카가 외쳤다.

    “소용없어 언니! 이건 언니가 제조한 게 아니야! 미묘하게 냄새가 달라! 빨리 이곳을...쿨럭 쿨럭...”

    안개의 효과는 레피아가 제조한 것보다도 훨씬 뛰어났다.

    ‘어, 어떻게 막 들어온 새내기가 나도 제조하지 못한 이런 향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과는 별개로 사지가 마비되어간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그때.

    스르륵.

    숲풀이 거칠게 좌우로 흔들렸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3개의 인형(人形).

    “...?!”

    “또 보게 되는군.”

    챙! 챙! 챙!

    순식간에 3합의 공방이 이루어졌다.

    레피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호흡 부족 현상이었다.

    “이런 식으로 다시 만날지는 몰랐지만.”

    이대로는 더 이상 전투의 지속이 불가능 한 상황.

    “푸...후흡!”

    숨을 한번 크게 들이 쉰 레피아와 검은 꽃들은 직감했다.

    다음 호흡을 하는 순간이 자신들의 끝이 라는 것을.

    ‘그래도 아직 승산은 있다.’

    무려 21:3의 비율이다.

    그들은 설마 7명이서 1명을 상대하지 못할 것이라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만큼 그들은 자신이 있었고 실전경험이 많았다.

    허나.

    -쿠구궁.

    ‘이, 이게 무슨 스킬...’

    암흑 투기가 짓누르자 그 판단이 오산이란 것을 깨달았다.

    “허억 허억...쿨럭 쿨럭. 어, 언니.”

    결국, 제일 약한 막내를 시작으로 검은꽃들은 하나 둘 점점 쓰러져나갔다.

    그렇게 5분.

    그들의 앞에 서 있는 것은 레피아 뿐이었다.

    이강호가 살짝 어깨를 건드리자 간신히 버티던 레피아의 몸이 힘없이 뒤로 넘어간다.

    내려다보는 이강호를 두눈동자를 살핀 레피아가 눈을 질끈 감았다. 죽음을 각오한 그런 행동이었다.

    “살려달라고 애원하진 않는 건가?”

    “......”

    “아, 효과가 너무 강해서 말을 못하겠군.”

    미리 준비한 미량의 해독 향을 코에 갔다대자 레피아가 눈을 부릅떴다.

    “너...왜...”

    “대답을 듣지 못해서.”

    “......살려달라고 하면, 살려줄 거냐?”

    “물론. 조건만 맞는다면.

    “......원하는 게 뭐지? 돈? 길드?”

    레피아의 말에 이강호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내가 그런 걸 원할 것 같나?”

    “그럼 뭘...”

    “난, 너희를 가지고 싶다.”

    “......”

    노예가 되라는 뜻인가. 그러면 그렇지. 레피아는 헛웃음을 지었다.

    대상자가 된 자들에게 뭘 기대했단 말인가.

    “난 싫어. 그냥 깨끗이 죽여줘. 하지만 내 동생들의 경우에는 의사를 물어서...”

    “뭔가 착각한 것 같군. 노예가 되라는 게 아니다.”

    “뭐? 그게 아니면 대체...”

    “말 그대로의 의미지, 너희 흑접림(黑蝶琳)은 앞으로 나만을 위해 움직여 주었으면 한다. 물론 그에 맞는 보수도 지불할거다. 전체 의뢰에서 전속 의뢰로 바뀌었다고 생각하면 편할 거다.”

    “......”

    생각보다도 너무 파격적인 조건.

    레피아는 현재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죽이려 한 자를 수하로 두려고 하다니. 그것도 노예계약이 아닌, 일반계약의 형태로.

    “...그게 진짜로 원하는 전부인가?”

    “그렇다.”

    “......”

    이강호의 단호한 말에 레피아의 어깨가 살짝 들썩였다. 웃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 그러고 보면 이 남자는 만날 때부터 뭔가 이상하긴 했었다.

    항상 자신감에 찬 당당한 모습.

    그들이 판도라에 온지 얼마 안 된 새내기라는 것을, 실버어레스트의 타겟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얼마나 놀랐던가.

    “정말 흥미로운 남자야 당신은...보수를 지급한다고 했지? 참고로 우리는 무척 비싸. 더군다나 개인의 소유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다른 의뢰를 거절해야 되니깐. 이에 따른 소정의 기본 생활비도 지급해줘야 될 거야.”

    당차게 말하는 레피아의 눈동자는 어느새 되살아나 있었다.

    “기본 생활비에 대한 건은 추후 합의하도록 하지.”

    이강호가 완전한 해독제를 레피아에게 넘겼다.

    그 모습에서는 강자로서의 여유가 흐르고 있었다.

    몸을 추스른 검은꽃들이 황급히 자세를 다잡았다.

    허나.

    “철수하자. 의뢰는 실패야.”

    “아니야 언니! 지금이라도 처리하면!”

    “맞아! 아까는 약 때문에 당한거지만 어차피 새내기, 우리가 합세한다면...”

    “너희들...내 성격알지?”

    레피아의 고운 음색이 한순간 착 가라앉았다. 검은꽃들은 주춤거리다가 모습을 보이다가 이내 검을 거두었다.

    “...알았어. 언니.”

    “그래, 그래야 내 동생들이지. 돌아가자.”

    레피아가 몸을 돌렸다. 떠나기 전 그녀가 고개만 돌린 채 툭 말했다.

    “그...살려줘서 고마워.”

    -스르륵.

    그들은 어둠에 섞여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생각보다 향의 효과가 뛰어나 별로 한 게 없는 유세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 향 장난 아닌데? 이정도로 잘 먹히다니...”

    “그렇지. 그런데 이거 누가 만들었는지 알아?”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후후. 알면 놀랄 거다.”

    “...설마?”

    사실 그가 사용한 향은 미래의 레피아가 개량에 개량을 거쳐 발명한 비술이었다. 위력이 어찌나 강한지 B랭크까지의 인원에게도 통한다.

    단, 큰 흠이 있다면 재료를 구하기 힘들다는 것.

    “알려준 애한테 사용 한 거냐...”

    “뭐, 그러라고 알려준 거였으니깐.”

    “......”

    이쯤 되면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순간적으로 마력의 흐름을 살핀 유세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연기를 확인한 것인지 30명가량 되는 인원들이 이곳을 향해 질주해 오고 있었다.

    추정랭크는 D랭크 정도지만...

    ‘이 속도!’

    유세현은 확신했다. 지금 접근하고 있는 자들이 단순한 D랭크가 아니라는 것을.

    “강호야! 그 향 얼마나 더 쓸 수 있냐?”

    “범위만 좁게 잡는다면 어떻게든 한 번 정도는 더...그보다 왜?”

    “계획이 살짝 빗겨나간 거 같아. 무림인들도 실버어레스트에 같이 속해서 수색을 하고 있던 모양인데...”

    -트득.

    말을 끝낼 새 없이 나뭇가지 위에 복면을 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에서는 유세현의 의해 외팔이 되어버린 장곽도 있었다.

    “저 중에 누가 제자지?”

    “중간에 있는 자입니다. 보고 드렸듯이 육신을 약화시키는 모종의 능력을 주로 사용합니다.”

    “잘 알았다. 장곽을 포함한 1부대는 나를 따르라. 제 2, 3 부대는 나머지를 처리해라.”

    “충!”

    지면으로 뛰어내리는 것을 확인한 유세현이 곧장 암흑투기를 전개했다. 이전보다도 한차례 더 올라간 중압감.

    “선배님! 어떻게 하실...”

    “처리하자!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화르륵.

    이강호가 강한 불길을 정면을 향해 쏟아냈다, 음영대원들은 이것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회피했다.

    보법이 있는 자들과 없는 자들의 차이.

    음영대원들은 규율 때문에 조소를 내비치진 않았으나, 입가에 위치한 복면이 잔뜩 구겨져있는 것이 웃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마치 이미 승기를 잡은 듯 마냥.

    ‘그래, 웃을 수 있을 때 마음껏 웃어둬라.’

    이강호는 김주희와 유세현이 전투하고 있는 장소를 일부러 빙그르르 돌며 적의 공격을 방어했다. 그의 손에서는 일정한 간격으로 병이 떨어지고 있었다.

    검은 연기와 함께 뒤섞이는 안개.

    제일먼저 이변을 알아차린 것은 유세현을 있는 힘껏 몰아붙이고 있던 음영대주였다.

    “흡! 이건 무슨...갈(喝)!”

    호흡을 통해 이물질이 들어왔다는 것을 느낀 음영대주가 독소를 몸에서 내보내기 위해 황급히 내공을 운용했다.

    허나, 그 틈을 유세현은 놓치지 않았다.

    수적 불리함을 이기기 위해서는, 적의 몸이 정상이 아닌 이때,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한다.

    [흑뢰검(黑雷劍).]

    루베르크의 새까만 검신에서 전격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모든 것을 꿰뚫을 것 같은 강대한 파괴력.

    치지직!

    음영대주가 황급히 끓어 올린 호신강기와 뇌전이 맞부딪쳤다. B랭크 정도의 높은 마력량 때문에 제법 버티는 것 같지만.

    쩌저적.

    보이지 않는 막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음영대주가 보법을 운용하여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이 모습에 음영대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슨...’

    장곽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유세현을 쳐다봤다. 자신과 호각을 이룰 때가 불과 3달 전.

    아무리 미처 대응하지 못한 모종의 독에 중독되어 감각이 둔해졌다고는 하나, 어찌 음영대주를 물러서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상대는 아직 천마의 무공도 사용하지 않았다.

    ‘사지 멀쩡히 데려가는 것은 힘들겠군...’

    장곽을 포함한 인원들의 표정이 비장하게 바뀌었다. 음영대주 또한 느낌이 왔는지 검을 고쳐 잡고 있었다.

    “계획을 바꾼다. 사지를 없애버려도 좋다. 목숨만 남겨 놔라!”

    “충!”

    “나머질 상대하는 대원들도 신속히 마무리를 지어라! 음영대에 이런 독 따위도 이겨내지 못하는 자는 필요 없다!”

    “충!

    대답과 동시에 대원들의 주위에서 바람이 일렁였다.

    음영대의 인원들에게만 지급되는 비전 무공 수라검마공(修羅劍魔功). 여태까지 독을 막아내는데 사용하고 있던 마력을 절기로 변환시키는데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합!”

    음영대원들이 이강호와 김주희를 향해 거칠게 달려들었다.

    전후좌우, 수라검법의 초식을 운용하며 틈을 비집는다. 그리고 그 틈이 보이는 순간.

    ‘수라검마공(修羅劍魔功)제 3절기 수라마창(修羅魔槍)’

    3개로 나뉜 바람의 창이 이강호를 향해 각기 전, 좌, 우 3방향으로 날아 들어갔다. 진동을 하고 있는 터라 호신강기를 집약시켜 방어 하지 않는다면 신체가 그대로 찢겨져 나간다.

    그리고 상황에 처한 것은 김주희도 비슷했다.

    ‘수라검마공(修羅劍魔功)제 5절기 수라환검(修羅魔槍)’

    단지 차이가 있다면 김주희에게 날아가는 것은 상상 할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많은 칼날이라는 것.

    음영대주는 그 순간 두 사람의 죽음을 확신했다. 바람의 창은 남성이 사용하는 불과 상극이었으며, 무수히 많은 칼날은 여자가 만들어대던 얇은 물의 방패로는 막을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개 조악한 스킬 따위가 무공을 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는가.

    ‘동료가 죽어 놈이 동요한 순간. 그때 사지를 베어버린다.’

    콰과광!

    굉음과 함께 먼지폭풍이 주위를 잠식했다.

    음영대주가 손을 들어 올리자 대원들이 용맹하게 돌진했다.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있을 유세현을 생각하면서.

    허나, 정말 신기하게도 유세현은 시선을 떼고 있지 않았다.

    아니, 되려 공격을 막고 반격까지 취한다.

    “크큭! 동료의 죽음이 별로 신경 쓰이지 않나 보구나!”

    음영대주가 외친 다음 순간이었다.

    굵직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크아아악!”

    “커억!”

    익숙한 목소리에 음영대주의 눈썹이 순간적으로 꿈틀거린다.

    설마...설마!

    유세현이 그제야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내 동료들이 고작 그따위 조잡한 기술에 당할 거라 생각했냐?”

    < 사냥개시(3)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