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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134화 (134/612)
  • < 사냥개시(2) >

    “......”

    길드원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착 가라앉았다.

    흑접사(黑蝶死), 베일에 쌓여있는 정보길드의 길드장.

    흑접사의 존재를 알고 있는 자는 VIP 고객 중에서도 최고 등급을 가지고 있는 몇 명밖에 없다.

    상대는 돈이 많아봐야 평민, 때문에 알래야 알 수가 없는 정보일 터인데.

    ‘도대체 정보가 어디서 새어 나간거지?’

    길드원은 웃음기 머금은 얼굴로 다시 표정을 바꿨다.

    “하하, 누군 찾으시는 건지 모르겠군요. 그런 분은 저희 길드에 없...”

    “쓰잘데기 없는 말을 많이 하는군. 난 너와 입씨름을 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이 정도의 돈을 지불했으면 만날 수 있을 텐데? 아니면 부족한가?”

    이강호가 마석이 든 보따리를 한 개 더 테이블 위에 올리자, 길드원이 시선을 유지하지 못하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이 정도의 마석이라면 수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3년은 지낼 수 있을 정도의 거액이다.

    “그, 그래도 없는 사람은 없는...”

    “그만.”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잔잔히 울려 퍼졌다. 황급히 뒤를 살핀 길드원이 고개를 푹 숙였다.

    C컬로 웨이브가 들어간 흑색의 단발머리. 풍만한 가슴을 잡아주고 있는 탱크탑과 하의를 아슬아슬하게 가려주고 있는 레이스스커트.

    어둠침침한 저편에서 갑자기 등장한 여자는 아퀼라 보다는 아니었지만, 꽤나 선정적인 복장을 하고 있었다.

    “너는 이만 나가봐라.”

    “예!”

    길드원을 내보낸 흑접사가 테이블 위에 차분히 손을 얹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이밀며 이강호의 얼굴을 지긋이 살폈다.

    “나를 찾았다고 들었는데.”

    “그렇다.”

    “신기하네.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지?”

    고혹스런 눈빛을 발산하는 흑접사의 손이 쓰윽 이강호의 턱으로 향했다. 김주희의 눈이 날카로워 지는 반면, 이강호는 그저 쓴웃음을 지었다.

    ‘짓궂을 거라는 게 이런 뜻이었나.’

    흑접사(黑蝶死), 레피아 레벤.

    갖은 고난을 겪은 뒤 판도라 내부로 돌입했을 때, 고유특성 잠영술을 사용하여 항상 목숨을 걸고 정보를 가져와 주던 동료.

    표면으로 활동하는 정보 길드 말고도 음지에서 활동하는 살수단, 흑접림(黑蝶琳)을 이끌고 있는 이 여자는...

    “흠, 정보길드의 길드장이 그것도 몰라 물어보는 건가?”

    “...훗, 듣고 보니 그렇네.”

    돈을 밝히는 것 치고는 의외로 자존심이 무척 높다.

    분명, 떠나고 나면 개인적으로 자신들에 대한 조사가 대대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몸을 물려 의자에 털썩 앉은 레피아가 별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나를 보자고 한 이유는?”

    “네가 계속 엿들은 그대로다.”

    “......”

    레피아의 눈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진짜로 눈치 챈 건지 아니면 떠보는 건지.

    곧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내 앞에서 그렇게 당당히 말할 수 있다니 너...정말 재미있는 남자네.”

    “유머감각이 없진 않지.”

    “큭, 말하는 것도 참 청산유수네. 다 알고 온 것 듯이 말하는데 그렇다면 자세한 설명은 굳이 하지 않아도 무방하겠지?”

    “그렇다.”

    “......”

    정말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일까. 레피아의 굳이 더 언급하지 않았다.

    “단순한 정보제공 치고는 받은 마석이 많은데 혹시 추가할 의뢰는 있어?”

    “일단은 없다. 추가로 지급한 마석만큼의 정보는 나중에 받도록 하지. 상관없겠지?”

    “훗, 좋을 대로. 그럼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레피아의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에도 이강호가 왼손을 내밀었다. 레피아는 진짜 다 알고 있다는 듯한 그 행동에 잠시 움찔거렸으나 곧 스킬을 발동시켰다.

    -스르륵

    빛에서 나타한 매 한 마리가 이강호의 손등으로 들어간다.

    이것은 두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연결고리였다.

    대상자가 어디 있는지는 시전자도 알 수 없지만, 마법으로 만들어진 매가 자동으로 위치를 추적하여 정보를 보낸다.

    “이것으로 계약은 끝났어. 평소에는 요구한대로 3일에 한 번씩 정보가 갈 거야. 실버어레스트의 인원이 온다면 바로 갈 거고. 아, 그리고 거리가 너무 멀어지게 되면 시간차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이점 명심하고.”

    “알았다. 그럼 다음에 또 보도록 하지.”

    마침내 일행은 VIP룸 밖으로 자취를 감췄다.

    레피아가 손가락을 툭 튕겼다.

    “부르셨나요?”

    “응, 쟤네들의 뒤를 좀 캐줘.”

    “저 평민들이요?”

    “응, 쟤들이 나를 알고 있었거든. 고객이니까 일단은 절대 건드리지는 말고.”

    “알겠어요. 언니.”

    연기처럼 나타난 여성은 이내, 어둠에 스며들어 다시 모습을 감췄다.

    * * *

    실버어레스트, 각 지역에 위치해 귀족에게 노예를 공급해주며 막대한 부를 끌어 모았던 이 길드는 현재 엄청난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

    북서쪽에 위치한 칼닌지부와 동쪽에 위치한 바르덴지부의 파괴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습격이 다시 이어졌기 때문이다.

    주축 간부들은 이를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고 있었다.

    지부를 파괴하기 위해서는 제법 규모의 군사들이 필요할 것이기에, 이건을 이용해서 꼬리를 잡으려고 했지만 감감 무소식.

    결국, 그들은 의견조율을 위해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한곳에 모일 수밖에 없었다.

    “타격이 매우 심각합니다. 이대로 놔두다가는 정말 위험할 수도 있겠어요. 아직 알아낸 바가 없습니까?”

    “너무 주도 면밀 합니다. 북쪽으로 이동하가며 부수고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습니다.”

    “북쪽 말입니까? 거긴 아직 토벌이 되지 않아 몬스터들 천지일 텐데...그리고 대군이 이동한다면 분명 포착이 될 텐데요?”

    간부들은 서로에게 묻기만 할뿐 방향의 갈피를 좀처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들은 벌어먹은 마석으로 계속 안락한 생활만 해왔으니까.

    또한 꽤나 병력을 많이 지니고 있었기에 이러한 테러는 지금까지 한 번도 당해보지 못했다.

    -드르륵.

    그때, 문이 열리며 거구의 남성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실버어레스트의 길드장, 퓌렌트 롬펠.

    퓌렌트는 각각 한 팔씩 여성들을 끼고 있었는데, 그 행동에 의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아니, 되려 그가 시퍼런 두 눈을 흘기자, 몸이 얼음장처럼 굳는다.

    “각 지역에서 일이 발생한지 한 달이 지났다고 들었다. 그런데 일을 처리하기는 커녕 누군지도 알아내지 못 하다니. 내가 임명한 간부라는 게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놈들이었나?”

    “......”

    “한 달. 한 달을 주겠다. 그때까지 범인의 목을 내 앞에 가져와. 만약 못 가져 온다면...”

    퓌렌트가 검지와 엄지를 이용해 나무로 된 테이블을 꽉 쥐었다.

    트드득.

    B랭크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힘에 의해 판자가 압축된다. 간부들은 그것을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길드를 창시한 뒤로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그가 창시자이기 때문이 아닌 것이다.

    “아, 알겠습니다. 어떻게든 대령해 놓겠습니다.”

    분위기를 읽은 한 간부가 재빨리 답했다. 이에, 퓌렌트가 주위를 훑어보자 뒤늦게나마 사람들이 이구동성이 되어 외쳤다.

    “더, 더 이상 신경이 가지 않도록 확실히 처리하겠습니다.”

    “그래, 더 이상 날 실망시키지 않길 바란다.”

    퓌렌트는 회의에 참석한지 불과 5분도 되지 않아 자리를 나섰다.

    간부들은 그제야 한시름을 놨다.

    “후...그나저나 어떻게 잡아야 될지...”

    문제는 아직도 방도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 그때 한 간부가 손바닥을 짝 쳤다.

    “정보길드에 의뢰하도록 하죠. 경로를 말해 준다면 그래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아, 그런 곳이 있었긴 했죠. 흠...확실히 그곳이라면 알아내긴 하겠네요. 하지만 그래서는 정보를 받는 과정에서 또 놓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이제는 어쩔 수...”

    -드르륵.

    또 다시 문이 열렸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간부들이 화들짝 놀라며 문 앞에 서 있는 여성을 바라봤다.

    “후...레니칼씨.,.많이 늦었군요. 지금이 어떤 상황인줄은 아는 겁니까?”

    “물론, 알고말고요.”

    레니칼의 뒤에는 복면을 쓴 남성 두 명이 서 있었다. 레니칼이 이 둘과 같이 자리로 이동하려하자 회의실을 지키고 있던 호위병사가 재빨리 앞을 가로 막아섰다.

    “호위무사를 데리고는 이곳에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호위무사 아니니깐 얌전히 비켜라.”

    쏘아 보는 레니칼의 눈동자에는 강한 살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각 간부 몇 명은 그제야 깨달았다.

    당한 지부 중에 레니칼의 여동생이 관리하는 곳이 있었다는 것을.

    레니칼 필렌, 그녀는 칼닌마을 판매 지부를 맡고 있던 레칼스 필렌의 언니였다.

    “그럼, 이분들은...”

    “이 상황을 해결해주실 귀빈이시다. 그러니깐 비키라고.”

    “아, 그렇습니까. 그럼 무기를 잠시 저희에게 맡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병사가 손을 뻗었으나, 남성들은 순순히 무기를 반납하지 않았다.

    “검은 내 목숨 그 자체다. 맡길 수 없다.”

    “그렇다면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후...귀빈이라고 했지? 그냥 비키라고. 세 번 말 안한다.”

    레니칼이 앞으로 발을 뻗자, 병사는 그래도 막아섰다. 그녀의 손이 검집을 향하려던 순간이었다.

    스스슥. 턱.

    바람처럼 움직인 복면의 남자가 양 손으로 두 호위병의 목을 덥석 붙잡았다.

    간부들은 그 것을 본 순간 정말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스텟이 C랭크 초반정도는 될 터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제압되다니.

    “커...커억.”

    “일이 커질 수 있으니 죽이지는 말아주세요.”

    “...그러지.”

    남성이 손을 놓자, 병사들은 풀려난 목을 붙잡고 숨을 헐떡였다.

    레니칼은 그런 그들을 무시하며 걸어 나가 자리에 툭 앉았다.

    “레니칼 이분들은?”

    “지금부터 설명하도록 하죠. 이분들로 말할 것 같으면...”

    무림인.

    딱 한마디 말했음에도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는 모습을 보였다. 같은 스텟 수준을 지니고 있더라도 활용도가 남달랐기 때문이었다.

    “이분들이 그자들에 대해서 알고 있어요. 이분들 중 한분이 때마침 제 동생과 거래중이였거든요.”

    “...아. 그럼 설마 그때?”

    -으득

    칼닌지부의 모습을 떠올린 레니칼의 이가 꽉 아물렸다. 산산이 무너진 덕에 동생의 시체는 건지지도 못했다.

    더 나아가 마을사람들은 자신보다도 그들이 두려운지 모른 체까지 했다.

    “놈들은 제가 추격 해 끝장내겠습니다. 만약 실패한다면 제가 전부 책임지도록 하죠. 그러니 여러분들은 자본과 병사만 빌려주시면 됩니다.”

    “......”

    간부들은 잠시 눈치를 봤다. 허나, 책임을 전부 진다면, 이보다 좋은 경우는 없다. 공이야 자본과 병사를 대주는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으니까.

    “흠흠...레니칼씨가 그렇게 말한다면...저희는 병사 일 백을 빌려드리겠습니다.”

    “그럼 식량 지원은 저희가 해드리죠.”

    레니칼은 많은 원조를 약속받은 뒤,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그 뒤 그녀가 곧바로 찾아간 곳은 정보길드.

    “흑접사를 만나고 싶다.”

    변태 같은 취향을 가지고 있는 고위 귀족에게 노예를 납품 한 뒤 알아낸 흑접사에 대한 정보도 서슴없이 사용했다.

    “후후, 나를 찾았나요?”

    “살수단을 빌리고 싶다. 단, 죽이는 게 아닌 생포로...”

    “흠...얼마가 드는 지는 대충 알고 오신 거겠죠? 저희는 푼돈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생포라면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합니다.”

    “돈은 얼마가 들던 상관없어. 생포만 하면 돼.”

    “흠...좋은 마인드네요. 그래서 목표물이 누구죠?”

    레니칼은 목표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고, 내용을 듣는 흑접사의 표정은 점점 가라앉기 시작했다.

    * * *

    [실버어레스트의 인원이 찾아왔어요. 이름은 레니칼 필렌.]

    마법 전서구를 수신한 이강호가 유세현을 향해 쪽지를 넘겼다. 이름을 확인한 유세현이 턱을 짚었다.

    “여기에 적혀 있는 여자의 성...내가 이전에 처리한 간부와 성이 똑같은데?”

    “흠...그럼 자매일 가능성이 크겠네. 지부를 부수며 온 덕에 위치도 대충 파악하고 있을 테니 죽자고 달려들겠군.”

    “얼마나 되는 병력을 파견할까?”

    “적어도 300명 이상. 하지만 약자만 노리던 놈들이니 강자는 그 닥 없을 거야. 아마 수색의 용도로만 사용하겠지. 아니면 미끼라던가.”

    “흠...그렇다면...주의해야 될 건 레니칼의 본대인가...”

    “그렇지. 하지만 그 여자도 그렇게 강하지는 않을 거야. 적어도 우리를 압도적으로 이기기 위해서는 길드장...정도는 와야 될 거다.”

    유세현은 스테이터스를 살폈다. 이전에 비해 전체적으로 5%정도 가량이 더 올라있었다. 유세현이 싹 쓸어버린 서쪽과 이강호가 쓸어버린 동쪽을 제외한 북쪽토벌을 단 세 명이서 해버린 덕분이었다.

    또한 그들의 앞에는 이제 막 발견한 던전의 입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일단 들어가자. 스텟을 더 올려야 돼.”

    “그래. 맞는 말이다.”

    그들은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던전을 공략하는 동안 실버어레스트 인원들은 마수를 주의하며 수색을 펼쳤다. 그리고 일행이 공략을 마치고 빠져 나왔을 때는 이미 상당수의 인원들이 넓게 산에 포진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그들이 실버어레스트라는 것을 인지한 유세현이 마력의 흐름을 읽었다.

    D급 중반의 어정쩡한 마력을 가지고 있는 인원들이 있는 장소에서 C랭크 초중반으로 느껴지는 마력이 다수 포착된다. 또한. 그 외에도 C랭크 상급의 마력을 지니고 있는 강자들이 별개로 움직이고 있었다.

    ‘설마 무림인...은 아니겠고.’

    무림인들은 마력을 숨길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놈들은 무엇일까.

    이강호에게 말하자 그가 피식 웃었다. 마치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걘, 다 좋은데 돈을 너무 밝혀서 문제야. 역시 움직였군.”

    “걔?”

    “너도 이미 한번 봤던 여자야.”

    “아...”

    여자라는 말에 단번에 깨닫는다. 그래, 흑접사라는 그 여자도 이정도의 강한 마력을 가지고 있긴 했다.

    “허...정보는 제대로 넘기면서. 우리를 잡으러 와?”

    “그게 그 여자의 스타일이지.”

    줄건 주고, 할건 한다.

    “하나만 할 것이지 뭐 그런 방식이...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죽이지 않고 제압할 생각이야. 위치는 알지?”

    “응. 그런데 제압이 가능할까? 엄청 강한데?”

    “물론. 모름지기 암살자들은 자신이 기습당하는 것에는 약한 법이거든. 그리고...비장의 수단도 있지.”

    이강호가 씨익 웃으며 그간 아껴뒀던 풀더미를 꺼냈다.

    < 사냥개시(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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