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126화 (126/612)
  • < 마교의 무사 >

    “뭐? 어디서? 필스는?”

    “바, 바로 이 근처입니다. 필스 팀장과는...아마 엇갈린 게 아닐까 합니다.”

    그 말에 레칼스가 혀를 찼다.

    이렇게 되면 몸소 직접 움직여야 한다. 허나, 그래도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약속은 지킬 수 있을 테니까.

    “병력을 소집해라 직접 잡으러 간다.”

    “예!”

    길드원이 부리나케 바깥으로 달려가자 의자에서 일어선 레칼스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나서자 벽에 몸을 기대고 서 있던 무사가 눈에 밟혔다.

    “발견했나 보군.”

    “그렇습니다. 지금 바로 잡으러 갈 생각입니다만...”

    레칼스의 뇌리 속에 방금 전 무사의 행동이 떠올랐다. 자신과 부하를 깔보는 듯한 그 거만한 눈.

    “바람도 쐴 겸 같이 가시겠습니까?”

    실력을 보여주리라. 레칼스는 그리 생각했다.

    실소를 내뱉은 무사가 별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갑갑했는데 잘됐군. 따라 가도록 하지.”

    * * *

    감옥을 지키던 최소한의 병력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을 한데 모은 레칼스는 곧바로 도망치기 시작한 생존자들의 꼬리를 물었다.

    타다다다!

    무수히 많은 인원이 풀숲을 가른다.

    후방에 위치한 레칼스의 뒤로는 무사가 바짝 붙어있었다.

    남들이 세 걸음을 뛸 때 홀로 한 걸음 뛰는 무사의 발걸음은 투박한 인원들과 달리 무척이나 가벼워 보이는 모습이다.

    주위 지형지물을 세심히 살피던 무사의 눈이 번쩍 빛났다.

    양 옆으로 높게 치솟은 봉우리.

    평소 궂은일을 도맡아 했던 무사는 이런 장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굳이 레칼스에게 충고하지 않았다.

    지금의 그는 관중.

    정말 바람을 쐬러 온 것이지 레칼스를 도우러 온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때였다.

    새내기들의 최후방에서 필사적으로 도주하던 남성이 몸을 획 돌렸다.

    하늘을 향해 높게 치솟는 칠흑의 검.

    레칼스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 행동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잠시 뒤.

    슈슈슛!

    각 봉우리에서 발사 된 광역 스킬이 레칼스를 향해 날아왔다. 레칼스는 그 순간 정말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부가 이 장소에 매복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유인을 한 것이라는 말이 되기 때문.

    그들은 쫓기고 있던 게 아니었다.

    되려, 목숨을 위협하는 범을 잡기 위해 올가미를 치고 기다렸다.

    ‘이 빌어먹을 놈들이!’

    땅을 높게 세우는 스킬, 대지의 장막을 사용하여 인원들을 지킨 레칼스는 혹시 모르는 마음에 고개를 돌려 의뢰인을 살폈다. 무사는 이미 예상 했는지, 뒤에 있는 나뭇가지 위로 피신한 상태였다.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들어...’

    레칼스는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앞에 서 있는 유세현을 향해 툭 말했다.

    “이딴 기습이 통할 줄 알았냐? 각오는 돼 있겠지?”

    그 말에 유세현이 곧바로 반격했다.

    “의외긴 하군. 탈만과 알번트라는 놈들은 잘만 걸렸었는데.”

    “...?!”

    레칼스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지며 동요가 일었다.

    그 이름을 이놈이 어떻게 알고 있는가!

    “네놈! 탈만과 알번트를 만난건가?”

    “그렇지.”

    “말도 안 된다! 네가 어떻게 걔들을 보고 아직까지 잡히지 않을...”

    레칼스는 그 순간 다음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남자의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의도하는 바도.

    “어디서 주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딴 개소리 나는 믿지 않는다! 전원 공격해라! 목숨만 붙어있다면 사지를 전부 잘라버려도 상관없다!”

    타다닥!

    명을 받든 지부원들이 맹렬한 속도로 유세현을 향해 돌격했다. 유세현은 입맛을 쩝 다셨다.

    똑같은 지부장이라도 공급지부와 판매지부는 역시 급이 좀 다른 모양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결과가 변하는 일은 없겠지만.

    유세현은 암흑투기를 발동시켰다.

    * * *

    “큭! 무, 무슨!”

    곳곳에서 경악 섞인 탄성이 터져 나왔다. 몸을 짓누르는 무형의 힘. 이것 때문에 그들은 새내기들에게 밀리고 있었다.

    또한 더 나아가 리더 격으로 보이는 남녀는 미친 듯이 전장을 휩쓸고 있다.

    레칼스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켰다. 그녀의 뇌리 속을 잠식하고 있는 여러 생각들은 이전 당한 여러 인원들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이 자식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

    그렇게 말해봤자 누가 알려준다고 묻는 것인지. 유세현은 거칠게 몰아쳤다. 베고 찌르며 적을 압박한다.

    그리고 틈이 만들어진 순간.

    챙!

    휙휙휙. 푹.

    검을 올려치자 레칼스의 검이 튕겨져 나가며 지면에 꽂혔다. 어느새 유세현의 검은 레칼스의 목 바로 앞에 맞닿아 있었다.

    완벽한 패배.

    “양손만 목뒤로 붙여라. 그 외의 움직임이 있을시 벤다.”

    “으...”

    입술을 곱씹은 레칼스의 팔이 스르륵 위로 향했다. 이 행동으로 인해 결투는 종결 될 참이었다.

    허나, 그 순간 전혀 예기치 못한 검격이 쇄도해 들어왔다.

    지금까지 마주했던 그 어떠한 것보다도 날카롭고 예리한 공격이었기에 유세현은 황급히 거리를 벌릴 수밖에 없었다.

    레칼스의 앞에 검을 내던진 무사가 입을 열었다.

    “관망하며 바람을 쐬기에는 너무 고전하고 있는 게 아닌가?”

    “...며, 면목이 없습니다. 최대한 빨리 제압...”

    “아니, 넌 저놈을 제압 할 수 없다. 이미 스스로 느꼈을 텐데?”

    “...그러면...”

    “특별히 내가 상대해주도록 하지.”

    무사가 흥미 가득한 어조로 말하자, 레칼스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 지경에 이르러서 자존심 때문에 도움을 받지 않는 다는 것은 미련하다 못해 머저리 같은 짓이다.

    “그럼 저는...”

    “창을 들고 있는 계집을 맡아라. 현재로서는 너 말고는 상대할 자가 없다.”

    “...그러도록 하죠.”

    레칼스가 김주희에게 뛰어가는 것을 확인했음에도 유세현은 좀처럼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현재 그의 온 신경은 현재 의문의 남성에게가 있었다.

    ‘저놈은 대체 뭐지?’

    대화로 보건데 팀은 결코 아니었다. 허나, 근본적인 문제는 이것이 아니다.

    진정한 문제는 D랭크의 마력을 지니고 있는 듯한 그가 어떻게 암흑투기를 이겨내고 있냐는 것.

    유세현의 날카로운 눈이 남성의 육체를 세심히 살폈다.

    몸 전체에 마력이 퍼져있는 일반 생존자들과는 달리 배꼽 주위에 마력이 모여 있다. 마음대로 삐져나오려고 하나 억지로 잡아두고 있는 듯한 느낌.

    유세현의 머릿속에 무엇인가가 퍼뜩하고 떠올랐다.

    배꼽아래의 마력. 그리고 그것을 잡아두는 힘.

    ‘심법?’

    유세현은 마력을 보기위해 더욱 집중했다.

    그리고 마침내 보였다. 특수한 막 때문에 가려져 있던 남성의 진정한 마력을.

    이 남자의 마력은 결코 D랭크의 수준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높은 C랭크 최상...아니, 수준에 도달해보지 못해 감히 판단할 수 없다.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던 남성이 물었다.

    “네놈, 재미있는 사술을 쓰는 구나! 호신강기로 방어를 했는데도 이정도로 육신의 힘을 격하시키다니. 이름이 어떻게 되지?”

    “...타인의 이름을 물을 때는 자신의 이름부터 밝히는 게 예의 아닌가?”

    “크흐흐. 호기로운 놈이구나. 너의 그 가상함에 특별히 일러 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게 안타깝군.”

    무사가 검을 치켜세웠다.

    정보를 캐내는데 실패한 유세현이 마른침을 삼켰다.

    심장이 고양되고 이마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런 놈이 튀어나오다니.

    파앗.

    경쾌한 발놀림과 함께 도검이 바람을 가른다. 유세현은 정말 모든 정신과 힘을 집중해 방어해야만 했다.

    사선 베기로 시작하여 곧바로 이어지는 찌르기와 올려치기.

    마교의 부교주, 그 산하 음영대(陰影大)의 일원들만 전수 받을 수 있는 수라검법 제 3초식.

    그 날렵하고도 강대한 힘 앞에 유세현의 균형이 와르르 무너졌다.

    만약 무사가 이대로 베어버린다면, 유세현은 치명상을 면치 못할 것이다.

    허나.

    ‘흑암!’

    유세현은 이 전투에서 질 수 없었다. 아니 져서는 결코 안 된다.

    어떻게든 승리하여 동생의 행방을 알아낸다.

    솨아아!

    검은 연기가 주위를 순식간에 잠식해 들어갔다.

    호신강기로도 막을 수 없는 마왕 루시뷀트의 권능이 집약된 스킬.

    여유 넘치던 무사의 얼굴에 당혹감이 감돌았다.

    ‘이, 이건 대체!’

    연기가 손에 닿기 무섭게 신체의 이상을 발견한 그가 황급히 자리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오감을 빼앗는 모종의 스킬로부터 잠시 회피하는 것이다.

    유세현은 그런 무사의 뒤를 재빨리 쫓았다.

    흑암이 끝날 때까지 처리하지 못해, 그래서 다시 그가 돌아온다면 형세는 단번에 기울 것이다.

    끝을 내려면 지금이었지만, 유세현의 스텟으로 뒤쫓기에는 무사는 너무도 빨랐다.

    ‘젠장, 스텟의 차이가...이렇게 되면!’

    마력을 아끼는 것은 포기한다.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일격에 적을 말살한다.

    유세현의 발이 허공을 밟기 시작하며 가속하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뒤를 살핀 무사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저, 저건? 허공답보(虛空踏步)?’

    판도라에 정착한지 꽤 된 무사지만, 그 또한 지금까지 하늘을 나는 스킬만 봤지, 밟는 스킬은 듣도 보도 못했다. 오직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무공의 극의를 깨우친 자들만이 할 수 있는 허공답보 뿐.

    ‘아니, 그럴 리 없다.’

    무사는 장담했다.

    놈이 사용하는 것이 허공답보일리가 없다고.

    애초에 놈은 심법도 익히지 못했을 현대인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저건 모종의 스킬일 터인데...’

    무사는 입맛을 다셨다.

    무척 탐이 난다. 놈을 죽인다 하더라도 스킬을 떨어트릴 확률은 적지만, 그래도 시도를 해보는 것과 안 해보는 것은 천차만별이다.

    만약, 스킬을 얻게 된다면 자신은 안주하는 지금으로부터 탈피 해 훨씬 다른 높은 자리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래, 계속 따라와라. 네놈의 몸을 지켜주고 있는 새까만 연기가 더 이상 뿜어져 나오지 않게 되는 순간 그곳이 너의 끝이 될 것이다.’

    무사가 그리 생각한 순간이었다.

    스스슥

    유세현의 신형이 무사의 좌측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무사는 그 순간 정말 깜짝 놀라 체면불구하고 경악을 터트릴 뻔했다.

    어떻게, 어떻게 따라온 것이지? 생각할 틈은 더 이상 없었다.

    치지직!

    콰과광!

    검에서 발산된 흑빛의 뇌전이 일대를 초토화 시킨다.

    무사는 황급히 내력을 더 끌어올려 호신강기를 강화시켰지만 어찌나 위력이 강한지 전부 방어하는 것은 무리였다.

    ‘어, 어떻게 내 호신강기를!’

    그는 이 세계에 와서 뇌전다운 뇌전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판매지부에서 사온 노예가 간혹 사용하긴 했지만, 그것은 뇌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나약했다.

    허나, 이 남자의 스킬은 달랐다.

    무엇보다도 위력적이며, 상대를 집어삼킬 만한 흉폭함을 지니고 있다.

    ‘이놈은 대체...’

    “갈(喝)!”

    무사는 그리 외치며 검을 휘둘러 간신히 유세현을 떼어냈다.

    허나, 유세현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흑암의 사용시간은 진즉 끝난 상태.

    당황한 지금, 더욱 거세게 몰아쳐야 된다.

    “놈, 제법이긴 했지만...”

    검을 치켜세우고 있던 무사의 자세가 바뀌었다. 양손 한데모아 옆구리에 댄 찌르기 자세.

    “여기까지다.”

    [수라혼검회(修羅昏劍繪)]

    퍼엉!

    바람이 휘몰아치며 송곳처럼 날카롭게 형상화 된 무형의 기운이 정면으로 달려오고 있던 유세현을 향해 날아갔다.

    저 자세라면 허공을 밟아 궤도를 이탈하려 해도 속도가 감속되는 바람에 벗어날 수 없다.

    무사는 전부 계산하고 무공을 사용한 것이었다.

    허나.

    유세현이 우측 허공을 향해 발을 툭 찼다.

    속도의 감속 없이 몸이 좌측으로 획 꺾였다. 바람의 송곳이 아슬아슬하게 옷깃을 스쳐지나간다.

    무사의 두 눈동자가 휘둥그렇게 변했다.

    허공답보, 더나아가 법칙을 무시하는 힘.

    ‘저, 저건 설마?’

    무사가 미처 자세를 고쳐 잡을 틈도 없이 유세현이 손바닥을 펼쳤다.

    [천마혈사장(天魔血死掌)]

    콰과광!

    검붉은 빛이 광활하게 휘몰아쳤다. 무사가 황급히 몸을 던졌지만 이미 때는 늦은 상황.

    상당한 양의 마력을 머금은 천마혈사장은 그의 보법으로 피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펑!

    “크으윽!”

    빛에 휘말린 왼손이 터져나가며 흔적도 없이 바스라진다.

    고통 속에서도 겨눈 검을 꽉 움켜쥐고 있는 무사의 입에서 당혹어린 음성이 터져 나왔다.

    “네놈! 그 무공을 어디서 손에 얻었지!”

    지금까지는 긴가민가했지만 검붉은 빛까지 확인한 그는 그제야 이 무공의 정체를 확신 할 수 있었다.

    무림의 모든 무공을 통틀어 최강의 무공이라 불리우는, 그야말로 절대적인 힘을 자랑했던, 과거 마교의 부교주 장사월에 의해 천마가 제거된 이후 실전된 무공.

    천마신공(天魔神功).

    이 신공과 비슷한 무공을 만들어내기 위해 많은 노예를 사들여 제물로 삼기까지 했지만 그들은 아직도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쿨럭.

    무사에게서 각혈이 터져 나왔다. 천마혈사장을 피하기 위해 무리하게 내공을 끓어 올려 보법을 운용한 탓이었다.

    < 마교의 무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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