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125화 (125/612)
  • < 지부 파괴(1) >

    마커는 간신히 고개를 치켜세웠다. 착 가라앉은 싸늘한 눈동자로 마을 주민과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남성이 눈동자에 새겨든다.

    그 순간 마커는 깨달았다. 눈앞에 있는 존재가 뒤늦게 마을에 들어온 새내기라는 것을.

    “지,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거냐! 다, 당장 스킬을 해제해라!”

    마커가 정말 온힘을 다해 간신히 외쳤다. 현재 그들의 상태는 호흡을 이어나가기 힘들 정도 였으나, 상대가 새내기인 만큼 강경책으로 대응하는 것이 보다 더 효과적이기 때문.

    허나.

    눈앞의 사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되려 천천히 검을 빼어든다. 지켜보고 있던 마을 주민의 눈동자에 당황감이 깃들었다.

    설마, 전부를 죽이겠다는 것인가?

    “우, 우리를 건들면 너희들은 아르카드 제국군에게 계속 쫓기게 된다! 평생 도망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괜한 짓은 하지 말아라! 그보다 지금이라도 이 스킬을 해제해 준다면...”

    “아르카드 제국군이 나를 쫓을 일은 없다.”

    유세현이 말을 잘랐다. 마커는 억지로 비릿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크크크. 판도라에 온지 얼마 되지도 않는 게 말은 잘하는 구나. 법도 모르는 새내기 주제에 어떻게 단언 할 수...”

    허나, 그 다음 순간 마커는 말을 있지 못했다. 유세현이 마을 주민들을 향해 무엇인가를 내민 탓이었다.

    단추처럼 작은 보라색의 수정구. 공급 지부를 부수고 얻은 전리품이었다.

    마커와 마을사람들의 입이 자신도 모르게 벌어졌다.

    “무슨 아이템인지 잘 아나 보군.”

    이윽고 아이템에 마력을 주입하자 생존자들을 팔아먹었을 때의 거래 현장이 3d로 구현화 되어 재생된다.

    보따리를 받고 좋아하고 있는 마커.

    그런 그들을 옮기기 시작하는 실버어레스트.

    이를 지켜보고 있던 마을사람들의 온몸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건 빼도 박도 할 수없는 너무도 완벽한 증거품이다.

    허나,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나면 안 된다.

    “그...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그런 영상으로 살인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네놈들은...”

    “아니, 정당화 된다. 엄밀히 따지자면 현재 우리의 신분은 평민인 너희보다도 좀 더 높은 자유 신분이니 말이지.”

    “...?!”

    “더군다나 너희들은 판도라에 적응하지 못하고 외곽으로 발령받은 쓰레기. 네놈들이 유리할건 하나도 없을 텐데 무슨 자신감이지?”

    유세현의 살벌한 말에, 마커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얼마 안 된 새내기 주제에 어떻게 이 세계의 정세에 관해서 이렇게 잘 알고 있단 말인가!

    정녕 새내기가 맞긴 한 것이란 말인가.

    마커와 주민들은 사람을 잘못 건드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세현은 루베르크를 치켜세웠다.

    공포를 느낀 마커가 황급히 외쳤지만.

    “자, 잠깐만! 그렇게 잘 알고 있다면 우리가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서걱.

    안타깝게도 검은 이미 공간을 가른 후였다.

    털썩.

    육중한 몸이 그대로 지면에 쓰러지고 잘려나간 목이 땅을 나뒹군다. 마을 사람들은 벌벌 떨었다. 도망치고 싶지만 움직일 수가 없다.

    “사, 살려주십쇼. 죽을죄를 졌습니다. 다시는,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시, 시키시는 게 있다면 뭐든 하겠습니다! 목숨만은 제발...”

    그들은 필사적으로 빌었다. 유세현이 툭 말했다.

    “뭐든 하겠다는 건가?”

    “예, 예! 물론입니다!”

    “......”

    유세현은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가 곧 말을 이었다.

    “난, 귀찮은 건 딱 질색이다.”

    애매모호 한 말.

    이에 주민 일동은 말뜻을 해석하기 위해 최대한 머리를 굴려야만 했다.

    부촌장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지, 지금 상황에 대해 말씀하시는 거라면 충분히 묻을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유세현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마을인원을 몰살시키면 당연한 말이지만 조사를 받게 될 수밖에 없다. 정당한 사유와 증거가 있기 때문에 무죄방면이 될 것이 분명하지만, 문제는 상당한 시간을 잡아먹는다는 것.

    그렇기에 유세현은 처음부터 이렇게 할 생각이었다.

    힘을 과시하고 증거를 보여줘 딴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든뒤 소리소문 없이 묻게 한다.

    그들은 백번 죽어 마땅한 놈들이었으나, 지금은 시간이 더 아까웠다.

    유세현은 무릎을 굽혀 부촌장의 눈과 시선을 마주했다. 부촌장의 어깨는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 말 진짜겠지? 만약 거짓말이라면...”

    “어, 어떻게 지금 거짓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르카드 제국군이 귀찮게 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꿀꺽.

    여러 군데에서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세현의 한마디로 인해 생사가 갈리는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가 내려다보는 자세 그대로 말했다.

    “좋아. 한번은 믿어주지.”

    “...아...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마을 주민들이 고개를 숙인 채 몇 번이고 외쳤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유세현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 * *

    ‘하나는 해결 됐군.’

    실버어레스트와 마을주민은 잠시 분리되었다. 그렇다면 아르카드 제국군이 나서는 일은 없을 터.

    이제 남은 것은 쥐도 새도 모르게 실버어레스트의 인원들을 괴멸시키는 일뿐이었다.

    그리고 그 사전 밑 작업은 이미 끝난 상태.

    실버어레스트 지부와 생존자들의 동굴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는 은신처로 돌아온 유세현은 마력을 살폈다.

    마을 주민들의 제보 덕에 상당한 양의 인원들이 동굴 쪽으로 이동을 개시하고 있다. 적의 전력을 고려했는지 C랭크로 추정되는 인원 둘도 껴있는 상황.

    그들은 불쌍하게도 자신이 쳐놓은 미끼를 완벽하게 물었다.

    “김주희, 조금 있으면 놈들이 올 거다. 준비해라.”

    “옙, 선배!”

    두 사람의 몸이 풀숲 사이로 자취를 감췄다.

    * * *

    사사삭.

    장장 150명이라는 무수히 많은 인파가 숲을 가른다.

    한층 심각한 표정이 되어 질주하고 있는 팀장 필스의 곁에는 2명의 남성이 바짝 붙어있었는데, 그들은 역으로 비릿한 조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 중에서 볼에 칼자국이 나있는 남성이 툭 말했다.

    “필스. 특이 병력이 있다면 우리가 맡는다. 알고 있겠지? 만약 끼어든다면 각오해야 될 거다.”

    “예, 알겠습니다.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크큭! 그건 염려마라! 꼭 포획해주지.”

    남성의 말에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뭐니뭐니해도 C랭크의 스텟을 지닌 최고급 병력이었으니까.

    자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리라.

    허나.

    -키아아아!

    괴성과 함께 무수히 많은 구울들이 숲속에서 갑자기 물밀듯 쏟아져 나왔다. 동시에 몸을 짓누르기 시작하는 무형의 힘.

    “커, 컥! 이게 무슨!”

    “저, 저 괴물들은 뭐야!”

    기습을 당한 인원들의 입에서 당혹어린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에 당황한 것은 C랭크의 인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구울은 튜토리얼에서나 볼 수 있는 존재. 더 나아가 이주위에 살고있는 것은 마수밖에 없다.

    그런데 왜 느닷없이 구울이 숲속에서 튀어나온단 말인가!

    “치, 침착하게 대응해라! 이것은 적의 공격이다!’

    필스가 온힘을 다해 외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구울들은 이미 생존자 틈으로 파고들어 그 강력한 턱의 악력으로 육신을 파먹고 있었다.

    울려퍼지는 아비규환.

    그들은 D랭크 초기 스텟을 지닌 구울들과 달리 D랭크 중간급의 스텟을 지니고 있었지만 암흑투기 때문에 좀처럼 몸을 가누지 못했다.

    그나마 버티고 간신히 몸을 가누고 있는 것은 C랭크 인원 뿐.

    “큭...”

    다리의 떨림이 멎질 않는다. 어깨는 한없이 무겁기만 하다.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지금상황은 무척이나 위험하다고. 한시라도 빨리 근원을 찾아 제거해야 한다고.

    두 사람은 구울을 베어나가며 필사적으로 술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문득 등 뒤에서 목을 서늘하게 세찬 바람이 불었다.

    무심코 고개를 돌린 남성의 입에서 경악이 터져나왔다.

    칠흑의 섬광이 눈 바로 앞에서 번뜩인다.

    “탈만! 피해라!”

    “헉!”

    그들은 체면불구하고 땅을 데굴데굴 굴렀다. 필사적으로 자세를 다잡는 그들의 모습에서 이전의 여유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네놈이구나!”

    탈만 덕분에 검을 회피한 남성이 유세현을 향해 바스타드 소드를 있는 힘껏 휘두르려는 찰나였다.

    어디선가 날아온 물의 창이 그의 심장을 정확히 꿰뚫었다.

    단번에 터져 나온 피가 창을 붉게 물들인다.

    “알번트! 이 새끼들이 감히!”

    탈만이 들고 있던 검신이 새빨갛게 색이 변하며 뜨거운 열기가 주위로 퍼져나갔다. 과거 구름섬, 케르베로스의 열화판을 잡고 얻은 스킬.

    지옥의 업화.

    탈만이 허공을 베자 강한 불길이 소용돌이치며 유세현을 향해 날아왔다. 이강호에 결코 비할 것은 못되나 제법 괜찮은 화기.

    유세현은 앞으로 돌진했다. 탈만의 입꼬리가 씰룩거린다.

    설마 이 스킬을 정면에서 받겠다는 것인가.

    얕봐도 정도가 있다.

    탈만이 그렇게 생각한 찰나.

    유세현의 바로 앞으로 겹겹의 물의 장벽이 생성되며 단번에 불길을 휘어잡았다.

    “아...”

    결코 뚫지 못하리라 생각 했던 스킬이 너무도 쉽게 파해 되어 버리자 탈만의 표정이 멍하게 변했다. 머리 위로 비치는 새까만 검신.

    탈만이 황급히 검을 방어하려는 순간, 더욱 강한 투기가 몸을 옭아맸다.

    이 사기적인 힘은 대체...

    순간적으로 양팔을 뒤로 내빼 베기에서 찌르기 자세로 동작을 바꾼 유세현이 있는 힘껏 팔을 내질렀다.

    푹.

    관통된 자신의 왼쪽 가슴을 흘겨본 탈만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허나, 그는 아직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이대로 검을 휘둘러 놈을 베어버린다면, 그리고 이곳에서 벗어나는 게 가능하다면 다시 재기가 가능하다.

    스륵!

    그런 생각을 완전히 깨부순 것은 풀숲에서 등장한 김주희였다. 뒤를 잡은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머리를 향해 삼지창을 찔렀다.

    푹.

    완벽한 관통. 탈만의 몸이 지면으로 쓰러지고 코인이 솟아오르자, 구울을 상대하고 있던 필스가 경악을 토해냈다.

    두 명, C랭크 인원 두 명이 고작 새내기 2명에게 당하다니!

    “후퇴! 후퇴한다! 저, 전부 어떻게 서든 자리에서 이탈하라! 지부로 돌아가서 이를 알려라!”

    다급히 명령을 내린 필스는 수풀 속으로 몸을 날리려 했다. 하지만 그의 등 뒤로는 이미 쥐도 새도 모르게 유세현이 접근해 있는 상태였다.

    “너희는 여기서 한 놈도 못살아나간다.”

    서걱.

    칠흑의 검이 순식간에 궤적을 갈랐다.

    * * *

    ‘이제 남은인원은 약 150명 정도인가.’

    현재까지의 진행은 무척이나 순조로웠다.

    C랭크의 인원은 이제 한명밖에 남지 않았으며, 자신에게는 120명의 생존자와 구울이 있었다.

    물론, 구울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을 생존자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기에 마지막전투에서는 되도록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긴 하다.

    그렇다면 사용할 수 있는 병력은 약 120명.

    본래라면 잠입을 시도했겠지만, C랭크의 인원은 암흑투기에 제법 발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지부가 부서지지 않는 곳으로 유인해 전면전을 펼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암흑투기로 적의 능력을 격하 시킨다면 생존자들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리라.

    유세현은 마지막으로 변수를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히 없다.

    “바로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들은 실버어레스트의 지부로 이동을 개시했다.

    * * *

    탁. 탁. 탁.

    레칼스의 검지가 새롭게 놓여진 테이블을 일정한 속도로 두드렸다. 그녀의 옆에는 이름 모를 무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본래 금일은 그가 노예 200명을 인계받는 날.

    “일이 잘못됐나 보군.”

    무사의 말에 레칼스가 관자놀이를 짚었다.

    망신중의 개망신이 아닐 수가 없다. 만약 이 사실이 본부에 알려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겨 시간이 지체 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역으로 당한 것은 아니고?”

    “...그럴 리는 절대 없습니다.”

    40~50% 힘을 지니고 있는 D랭크 중간급 인원 150명과 C랭크 인원 2명을 보냈다. D랭크 20~30% 정도의 인원들이야 그렇다 쳐도 그들을 당해낼 수 없을 리가 없지 않는가!

    이에 무사가 툭 말했다.

    “세상에 절대라는 것은 없다.”

    “...물론 일반적으로 보자면 그렇긴 하죠. 하지만 그 정도로 스텟의 차이는 심합니다.”

    “......”

    그 말에 무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실, 그의 입장에서는 레칼스나 다른 인원이나 다 거기서 거기처럼 보였다.

    심법을 익히지 못해, 효율적으로 내공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들. 그들은 너무 스텟이란 것에 목메여 있다.

    또한 이곳에서 새로이 얻을 수 있는 스킬이란 것이 위력이 제법 강하다고 하나, 그렇다고 수백 년 전부터 이어진 무공에 비할 수 있는 것들은 아니었다.

    “그렇게 말한다면 일단은 조금 더 기다려보도록 하지. 앞으로 이틀. 이틀을 더 주겠다.”

    무사는 그 말을 끝으로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추태를 보일 수는 없기에 레칼스가 이를 으득 갈며 분을 삼켰다.

    그녀는 곧바로 부팀장을 불러 세웠다.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거야?”

    “예, 사전에 통보 받았던 동굴로 인원을 보내봤으나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마도 잘못된 정보를 받아 멀리까지 계속 추격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크...필스 이 자식이...알았다. 이만 물러...”

    쾅!

    그때 방문이 덜컥 열리며 부원 한명이 허겁지겁 뛰어 들어 왔다. 방금 전까지 바깥 경계를 서던 인원이었다.

    “새, 새내기들을 발견했습니다!”

    < 지부 파괴(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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