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114화 (114/612)
  • < 게릴라전(2) >

    그와 동시에 매섭게 떨리는 동공.

    이상함을 느낀 일리야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왜 그래? 로시노프?”

    “아...그게...아무것도 아니야.”

    평범한 눈빛을 발산하고 있는 유세현을 흘끔 살핀 로시노프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래, 자신은 어찌됐던 약속을 지켰다.

    또한 과정이야 어쨌든 그들이 에단을 처리해줬기에 대책을 빨리 세울 수 있지 않았던가.

    로시노프는 최대한 덤덤해지기로 마음먹었다.

    “반갑습니다. 팀 아돌프의 안드레이 로시노프 입니다.”

    “예, 유세현입니다.”

    허나, 악수를 할 때 땀이 삐질삐질 새어나오는 생리현상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곧장 자리에 착석한 일리야가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우리를 갑자기 모은 이유가 뭐야 게릭. 이번엔 또 무슨 일이 터진 거지?”

    말투와 내용을 보건데 이미 안 좋은 일이라는 것을 지레짐작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게릭이 씨익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 표정 하지 마라. 이번 건 좋은 소식이니까.”

    “뭐?”

    “아무튼 들어 보면 알아. 그보다 너희들 지금까지 우리가 당한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는...”

    게릭은 서론을 시작으로 침착하게 하나하나 내용을 설명해 나갔다.

    현재의 상황, 수세에 몰린 이유 그리고 이것을 타파하기 위한 방법까지.

    이윽고 게릴라전 설명까지 끝낸 게릭이 입을 닫자, 일리야의 두 눈이 차분히 유세현 일행을 향했다.

    부서진 사슬갑옷와 군데군데 찢겨있는 레더아머, 3개월 동안 쉴 새 없이 6층의 몬스터를 상대해온 덕에 그들의 겉모습은 한 눈에 보기에도 무척 좋지 못했다.

    3~4층에서 치열한 전투를 하고 있을 인원들의 상태도 저 정도는 아닐 것이다.

    일리야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결국에는 저 분들이 제공해주는 정보를 토대로 무작정 믿고 움직여야 된다는 거네? 내가보기에는 영 불안한데?”

    “일리야, 내가 보증한다고 했잖...”

    “게릭, 너의 보증만으로 무작정 인원을 움직일 수는 없어. 저번에 잘못 제보 된 정보 때문에 우리 팀원이 전멸할 뻔 했던 거 벌써 잊은 거냐?”

    “...그 건에 대해서는 할 말은 없지만...그것과 이것은 다르다고 했지 않냐. 이분들에게는 정확한 탐색 능력이...”

    “아, 그거? 그것도 솔직히 믿기지 않아, 그런 스킬이 존재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지금까지 그런 능력은 한 번도 본적이 없어.”

    “야, 일리야. 그 능력으로 주둔지 인원들을 구했다고 분명 설명했을 텐데? 설마 그새 까먹은 건 아니겠지?”

    “...솔직히 그것도 잘 믿기지 않아. 이분들 이제 10개월 차라며? 그렇다면 그때는 7개월 차였다는 게 되는데 솔직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일리야의 말투에는 불신이 잔뜩 담겨있었다. 하기야, 그럴 수밖에 없다. 그녀는 지금까지 유세현 일행의 힘을 직접 본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또한 소문은 과장되기 마련.

    초조한 마음으로 이를 지켜보고 있던 로시노프가 입을 열었다.

    “저, 일리야 그냥 한번 따라보는 게...”

    “넌 또 왜 그래? 뭘 따라? 잘못하면 죽는다는 거 잊었어? 남이 죽는 게 아니라 네가 죽는 거야 네가!”

    “아니, 그래도...”

    “그래도는 무슨...너 오늘 좀 이상하다? 너 저분들 직접 본적 있어?”

    “아, 아니!”

    로시노프는 황급히 입을 닫았다. 이정도 했으면 들키지 않는 선에서 정말 최선을 다한 것이다.

    생각보다 일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자, 게릭이 쿄타로를 흘끔 흘겼다. 곧 그의 입가에서 한숨이 지긋이 터져 나왔다.

    “후...게릭, 나는 솔직히 네 말을 믿는 편이다. 하지만 일리야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도 충분히 이해는 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중립에 입장에서 있을 테니 알아서 설득하라는 것.

    답답해진 게릭이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어떻게 해야 단호한 일리야의 태도를 바꿀 수 있을까.

    이에 답을 낸 것은 게릭이 아닌 유세현이었다.

    “요는 실력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면 된다는 거군요.”

    “...그렇죠.”

    “그럼 보여드리죠.”

    “어떻게 말인가요? 고블린 잡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건 아닐 테고.”

    “더 쉽고 간단한 게 있습니다.”

    그래, 멀리 돌아갈 필요 없이 더 쉽고 간단한 방법이 있다. 눈을 번뜩 빛낸 유세현이 말했다.

    “결투를 하도록 하죠.”

    * * *

    레콰이크를 잡고 7층의 던전을 공략하느냐, 7층의 던전을 공략한 뒤 레콰이크를 잡느냐.

    순서는 딱히 상관이 없었기에 생각보다 빨리 강해진 일행들은 먼저 7층의 몬스터를 먼저 공략할 생각을 가진 적도 있었다.

    허나, 이는 구름섬의 구조와 레콰이크에 의해 바로 저지되었다.

    구름섬은 그 구조상 다음층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포탈을 거쳐야하는데, 층계를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포탈의 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1층에서 2층까지는 백여 개.

    2층에서 3층까지는 수십 개.

    이런 식으로 점차 줄어든 포탈의 수는 마지막에 이러서 고작 2개에 국한된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일행이 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레콰이크의 경계병들이 상당 수 배치되어 있었다.

    스킬을 사용하면 어찌어찌 뚫고 올라갈 수 있지만, 문제는 그다음.

    뒤쫓아 온 레콰이크의 병력과 토박이 몬스터들의 본의 아닌 협공을 받게 된다면 목숨이 위태로워 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본래 짜놓았던 작전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게릴라전으로 적을 조금씩 갉아먹으면서 명령만 내리는 레콰이크가 직접적으로 움직이도록 유도한다.

    이 과정에서 생존자들을 움직인다면, 그 시간을 훨씬 단축할 수 있다. 에단을 죽여 경각심을 일깨워 준 것도 이 때문.

    유세현의 지시에 따라 결투를 벌이게 된 김주희가 손을 흔들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상대는 팀 아돌프의 리더, 체르늬르 일리야 본인.

    한손 검에 방패를 사용하는 그녀는 무척이나 안정감이 있어보였는데, 그것과 걸맞게 꽤나 자신감 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기야 10개월 차와 16개월 차의 대결.

    이는 생존자들에게 있어서 거의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결투를 시작하기 전 일리야가 유세현을 향해 재차 경고했다.

    “정말 직접 안 나서실 건가요?”

    “예.”

    그의 단호한 말에 일리야가 김주희를 주시했다. 정말 별것 없어 보이는 데.

    대치한 두 여성의 주위로는 각 팀의 수장들이 빙그르르 둘러싸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추후에 있을 의문을 잠재우기 위해 불러낸 것.

    사실 정보전달에 있어 결투가 무슨 상관이냐 하겠냐 만은 그들은 일단 잠자코 지켜봤다.

    “시작!”

    심판 역을 맡은 게릭의 외침과 동시에 김주희가 잽싸게 파고들었다.

    스르륵.

    자연스레 높게 치켜 오르는 창.

    내려치기를 하기 전 취하는 사전 동작이었다.

    김주희의 행동을 확인한 일리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사실 이 결투는 그녀에게 있어 훨씬 유리했다.

    우선, 목적이 살인인 아닌 제압이니 만큼 창의 위력적인 찌르기는 잘 사용할 수 없다. 즉 지금처럼 휘두르는 등 창의 이점을 잘 살리지 못한다는 것인데, 이럴 경우에는 굳이 무리를 할 필요 없이 방패로 방어 한 뒤 빈틈을 노

    리면 된다.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며 방패를 치켜 올렸을 때였다.

    쿠웅!

    거센 풍압과 함께 강한 충격이 그녀의 전신을 감쌌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엄청난 위력.

    일리야의 한쪽 무릎이 자신도 모르게 굽혀졌다.

    ‘뭐, 뭐야?’

    내면에서 피어오르는 당혹감.

    그 충격적인 결과에 여타 생존자들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단 한 번의 일격으로 팀 아돌프의 리더의 무릎 꿇게 만들다니?

    허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크으!”

    일리야가 반격을 위해 몸을 드는 순간, 창끝이 방패와 손목사이를 뱀처럼 비집고 들어왔다.

    치익.

    살짝 스친 일리야의 손목에서 피가 뚝뚝 떨어진다. 허나,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김주희가 몸을 틀며 양손을 치켜 올렸다.

    휙휙휙.

    그러자 일리야가 들고 있던 방패는 너무도 허망하다 시피 상공으로 튕겨져 나갔다.

    “크!”

    일리야는 황급히 검을 휘둘러 항전하려했다.

    허나, 김주희의 창끝은 이미 그녀의 목 앞에서 멈춰있는 상태였다.

    압도.

    “......”

    짧은 정적이 이어졌다. 치열한 접전을 예상했었지, 그 누구도 이렇게 허무하게 결판이 날줄은 차마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직 단 네 명.

    이태광과 클락 그리고 게릭과 로시노프를 제외하고는.

    “김주희 승리.”

    게릭이 손을 들어 올리자 김주희가 일리야를 향해 툭 말했다.

    “이젠 믿을 수 있겠죠?”

    “...다, 다시 제대로 붙어보자. 모든 스킬을 사용해서.”

    “음...”

    김주희가 유세현과 이강호를 주시했다. 유세현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뭐, 1분 정도의 시간을 더 투자해 그녀가 완벽히 납득하기만 한다면 이편이 훨씬 좋으리라.

    그렇게 시작된 2차 대결.

    승부는 너무도 정말 순식간에 결정되었다.

    “어떻게...”

    일리야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자신은 모든 스킬을 사용했다. 반면 그녀는 별다른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압도적으로 지다니.

    눈앞의 있는 여자의 힘은 3개월 전 판도라로 나아갔을 최고층계의 인원들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

    “의심한 것 정말 죄송합니다.”

    관중들의 경악어린 시선 속에서 일리야가 사과를 했다.

    그렇게 인간측은 반격의 서막을 올렸다.

    * * *

    구름섬 5층에 위치해 있는 눈 덮인 깊은 골짜기.

    봉우리에서 눈과 나무에 몸을 숨긴 채 골짜기 아래를 주시하고 있던 생존자들의 입가에서는 연신 입김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과연 올까?”

    “무조건 와야지...”

    지금 그들이 행하고 있는 이 매복 작전은 신예들이 나타난 이후, 처음으로 벌이는 작전이었다.

    각 구역 동시, 무수히 많은 인원이 움직인 만큼, 이번의 성공 여부로 인해 계속 이어나갈지 아니면 이대로 끝이 날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몇 시간 지났지?”

    “약 8시간 정도...”

    “작전 기간이 분명 이틀이었지?”

    “그렇지.”

    “크...이게 제발 시간낭비가 아니길 빈...”

    속삭이듯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고 있던 남자의 말이 문득 멈췄다.

    스스스.

    땅이 미세하게나마 진동하고 있다.

    “이건?”

    이윽고 저편으로 검은 그림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의 2/3크기만 한 작은 키와 길게 늘어진 귀 그리고 툭 튀어나온 커다란 코.

    분명 고블린들이었다.

    “지, 진짜 왔어!”

    그들이 매복해있는 이곳은 눈꽃 설인들의 서식지로 가는 길목이었다. 집단적으로 몰려다니는데다가 제법 지능이 높아 대체로 피해가는 그런 몬스터이건만.

    “얼마나 사기가 올랐으면...그보다 언제 덮치지?”

    “기다려. 팀장님이 신호를 주실 거다. 그럼 알지?”

    “물론.”

    후각을 속이기 위한 조치를 취해놓은 덕에 고블린들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길목을 지나가기 시작했다.

    점점 가까워지는 거리.

    꿀꺽.

    목이 타는지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가 군데군데에서 울려 퍼졌다.

    그리고 마침내 범위 안으로 확인한 순간.

    “스킬 발사!”

    팀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생존자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파이어 에로우!”

    “연쇄 폭참격!”

    투투투!

    불의 화살, 폭발 탄알 등 각종 장거리 스킬이 고블린을 향해 빗발친다.

    마력을 아끼기 위해서는 활을 사용하는 편이 좋지만, 안타깝게도 이 세계에서의 활은 무척이나 구하기 힘들 뿐더러, 직접 만들어 사용하기에는 탄성과 내구력을 가지고 있는 마땅한 재료가 없었다.

    “키리릭? 뭐, 뭐냐! 막아...캭!”

    “키아악!”

    고블린들의 비명이 소리가 골짜기를 가득 메운다. 고블린들은 한눈에도 보기에도 무척이나 당황하고 있었다.

    하기야 최근 그들이 이런 기습을 당한 적이 있었던가. 당하는 쪽은 언제나 인간 측이었다.

    “더 쏴!”

    “전부 죽여 버려!”

    생존자들은 울분을 터트리듯 스킬을 쏟아냈다. 그리고 이어진 백병전.

    양쪽 봉우리에 숨어 있던 무수히 많은 인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자 고블린들의 눈에 경악이 맺혔다.

    죽은 고블린들을 포함해도 무려 두 배에 달하는 숫자.

    기습까지 당했는데 물량까지 더 많다니?

    스텟이 딸릴 것을 감안한 유세현의 배치 방식이었다.

    적은 피해로 이겨야, 그들이 자신들을 더욱 믿고 따를 것이기에.

    “캬악!”

    “크윽!”

    붉은 선혈과 푸른 선혈이 흩뿌려지며 새하얗던 주위를 잔뜩 얼룩진다.

    그렇게 한차례 몰아친 격전의 폭풍이 지나간 후.

    고요해진 지면에 우뚝 서있는 생명체는 오직 인간뿐이었다.

    멍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던 남성 한 명의 입에서 얼떨떨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하...하하! 으하하! 이겼다! 이겼다고!”

    이에 다른 사람들 또한 동조되어 크게 함성을 질렀다.

    “우와와아아아!”

    대승. 정말 오랜만에 맛보는 대승이었다.

    * * *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난 습격 및 매복.

    그리고 크나큰 승리.

    생존자들은 일행이 알려주는 정보를 토대로 계속해서 고블린들을 습격해 나갔다.

    던전을 들어간 고블린의 뒤를 친다. 쟁탈전이 끝날 때까지 대기하다가 습격한다. 그들은 당했던 것을 정말 똑같이 돌려주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 록 빠르게 기우는 형세.

    고블린들은 레콰이크의 통치하에 더욱 발 빠르게 움직여 대응책을 세워나갔지만, 마력의 흐름으로 정보를 파악하는 유세현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 게릴라전(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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