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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112화 (112/612)
  • < 결과와 대책(3) >

    찬 공기가 눌러앉은 새벽.

    근무교대 이후, 유세현이 취침에 들자 이강호는 자리에서 쓰윽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현재 6층 포탈이 위치해있는 라플레시아 숲 외각에 있었다.

    6층은 5층보다 많이 위험하기에 이곳에서 자고 이동하기로 한 것.

    전부 이강호의 노림 수였다.

    “선배 어디 가세요?”

    “화장실. 조금 시간이 걸릴 거야. 그동안 경계 잘 부탁한다.”

    “아...예.”

    말을 대번에 자른 그가 숲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튜토리얼 때와는 달리 상당히 신뢰하고 있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김주희는 그런 이강호가 사라진 장소를 몇 번이고 바라봤다.

    모른 척 넘어가 줘야 되나 아니면 유세현을 깨워야하나.

    평소 눈치가 100단이던 그녀는 최근 이강호가 뭔가를 계속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진즉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그 뭔가가 무엇인지, 뭐 때문에 주시하는지도 대충 예상

    이 갔다.

    허나, 김주희는 착각하고 있는 게 하나 있었다.

    스윽.

    눈을 살포시 뜬 유세현이 몸을 일으키자 김주희가 깜짝 놀라 몸을 움찔거렸다.

    “선배님! 안 주무시고 계셨어요?”

    “뭐, 이때쯤 움직일 거 같아서.”

    “아...”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투로 이야기하자 김주희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하기야, 자신이 눈치 챘는데 15년 지기 친구인 그가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리라.

    “왜 우리를 두고 갔을까요? 평소라면 그냥...”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

    그들은 여태까지 목숨을 노려오는 적들만 처리해왔지, 의견 차를 보인다고 해서 마구잡이  식으로 검을 휘두르진 않았다.

    이것은 미친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마지막으로 남은 최소한의 양심.

    헌데, 이번에는 그 룰이 깨트려야 되는 상황이 온 것이다.

    ‘혼자 짊어지겠다는 건가.’

    지금생각하자면 결정적인 이유는 그것밖에 없다.

    기억을 잃어버리고 있었던 1차 튜토리얼 당시에도 그는 혼자서 움직이려고 했었으니까.

    고독하게, 나란히 마주하는 사람 없이.

    지금의 자신들이 없었다면 그는 계속 쭉 혼자였을 것이다. 그를 따라가기에 다른 생존자들은 너무 느렸으니까.

    “선배님 당연히 따라 가실 거죠?”

    “물론. 가자.”

    “옙!”

    둘은 이동을 개시했다.

    * * *

    라플레시아는 식물 중에서도 꽃의 형태를 띠고 있는 몬스터다.

    그들은 강한 환각제를 포함하고 있는 향이나 마비가루를 이용해 생존자들을 사냥하는데, 밤이 되면 식물이라는 특성상 잠이 들어 충격을 받기 전까지나, 빛을 쬐기 전

    까지는 좀처럼 깨어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숲에서는 횃불사용이 금기시 되어있다.

    이는 누군가를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하기에 최적화 되어있는 장소라는 뜻.

    바람을 가르며 빠른 속도로 숲을 내달린 이강호는 고작 5분이라는 시간 만에 에단 팀이 있는 위치에 도착해 있었다.

    “아퀼라 두 명을 잠재워라. 죽이지 않는다면 정기를 흡수해도 상관없어.”

    “호오...알았다.”

    결계를 발동시킨 아퀼라가 순식간에 이동하여 그들의 내면 속으로 파고들었다.

    낮이라면 붉디붉은 결계의 색 때문에 걸렸겠지만, 달도 뜨지 않는 밤이라 그런지 전혀 알아  채지 못한 눈치.

    이강호는 한 명 한 명 재워가며 내부를 나아갔다.

    현재 에단의 팀은 보스 추적을 위해 구름섬 곳곳에 분산되어있는 상태였기에 생각보다 병력이 없어 그가 있는 천막에 도달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퀼라. 이곳에 있는 놈의 정기를 전부 빨아들여 죽여라. 그리고 죽였으면 끌고나와.”

    “후후...알았다.”

    아퀼라는 오랜만에 하는 포식에 신이 나서 천막내부로 들어갔다.

    허나.

    따르르르! 따르르르!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가 갑작스레 공간에 파다하게 울렸다.

    이강호는 이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단번에 깨달았다.

    3서클 보조마법 알람.

    누군가가 범위내로 침입하면 시끄러운 소리로 경고를 해주는 이 마법은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무척 얻기 힘들다.

    그런데 그런 마법을 하필 에단 팀원이 가지고 있다니.

    ‘귀찮아 졌군.’

    고블린의 가죽으로 머리카락과 얼굴을 가린 이강호가 천막내부로 뛰어 들어갔다.

    한번 암살에 실패하면 추후암살은 더더욱 힘들어질 뿐더러 이런 쓰잘데기 없는데 사용할 시간 따윈 더 이상 없었기 때문이다.

    내부에서는 병사 2명을 포함한 에단이 아퀼라를 향해 무기를 치켜세우고 있었다.

    “너, 너희들은 뭐냐! 몬스터?”

    소환수나 마족을 보는 건 처음이었는지 상당히 당황한 눈치였다. 아무쪼록 오해해주면 이강호야 편하다.

    “아퀼라 네가 저 둘을 맡아라.”

    “알겠다.”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쇄도해 들어가는 공격.

    에단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항전했다.

    그들은 이강호가 짐작했던 것처럼 무척 당황한 상태였다.

    식물밖에 없는 라플레시아의 숲에서 뿔 달린 인간형 몬스터가 등장하다니!

    멍한 얼굴이 되어 갑작스레 멈춰 선 부하 두 명을 본 에단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내 부하에게 뭔 짓을 한 거냐! 빌어먹을 새끼들아!”

    슈우웅!

    검이 지나간 궤적사이로 생성된 무수히 많은 바람의 칼날이 이강호를 향해 날아왔다.

    이강호는 몸을 슬쩍 돌리는 것으로 여유롭게 회피하며 창을 내질렀다.

    에단이 아닌 2명을 향해.

    푹!

    싸늘한 음색이 울려퍼지며 두 사람의 목이 동시에 관통되었다. 강자라고 치기에는 너무도 허무한 죽음이었다.

    그때 무수히 많은 인파가 넝마가 된 천막 내부로 뛰어 들어왔다.

    “이, 이건! 에단님! 괜찮으십니까!”

    “보면 모르냐? 눈깔 삐었어? 개소리 지껄이지 말고 빨리 포위해! 보통이 아니니까!”

    “예!”

    쿵!

    휘이잉!

    에단이 허공 위로 강풍을 일으켜 천막을 날려 보냈다.

    치잉!

    그러자 병장기를 치켜세운 인원들이 조심조심 아퀼라와 이강호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차분히 마력의 흐름을 살핀 이강호의 눈이 고요히 가라앉는다.

    ‘약 100명 정도인가.’

    현재 스텟만 따지자면 그는 유세현보다도 높았다. 또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수많은 전투를 치렀던 달인.

    비록 암흑투기라는 사기적인 스킬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조건을 잘만 활용 하면 그들을 전멸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다만.

    ‘세현이에게 들켰겠군. 아니, 이미 알고 있었으려나.’

    견해의 차이로 사람을 죽인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아퀼라! 지금부턴 알아서 싸워라.”

    사사삭!

    어둠에 동화한 이강호의 신형이 순간적으로 적을 향해 파고들었다.

    서걱!

    푹!

    촤악!

    “크아악!”

    “어, 어디야? 어디? 으아악!”

    온갖 비명이 난무하고 시퍼런 쇳소리가 공간을 장악한다.

    그들은 암흑 속을 유영하는 이강호를 도저히 잡을 수 없었다.

    결국, 버티다 못한 한 남성이 나무에 불을 지폈다.

    “미친놈아! 당장 꺼! 라플레시아가 보고 찾아온다고!”

    “아니! 놈을 죽이는 게 먼저다! 이러다가는 라플레시아고 자시고 우리가 허망하게 먼저 당한...”

    반박하던 남성은 말을 잊지 못했다.

    횃불 바로 옆에 가죽으로 얼굴을 가린 남성의 음영이 비쳤기 때문이다.

    우드득.

    남자의 목을 180°꺾은 이강호는 곧바로 가연성 연료가 붙은 나무토막을 손으로 붙잡아 강제로 불을 껐다.

    이에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오른 에단이 외쳤다.

    “전부 불을 지펴라! 적을 찾아내!”

    화르륵.

    일제히 솟아오르는 횃불.

    이강호는 아랑곳 하지 않고 적을 계속 죽이는데 힘썼다.

    그 덕에 이미 100명가량 중 20명이나 넘는 인원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죽어라!”

    문득 한 여성이 휘두른 검이 적을 베어 넘기고 있던 이강호의 얼굴을 스쳤다.

    사르륵.

    가죽이 떨어지며 얼굴이 들어난다.

    얼굴을 확인한 에단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너 이 새끼! 너!”

    누군지 단번에 알아챈 것이다. 오만 욕설이 연이어서 터져 나왔다.

    “이런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씨발 새끼가! 오늘 살아 돌아갈 생각마라! 상대는 똑같은 인간이다! 몬스터가 아니다! 그러니깐 겁먹지 말고 쳐라!”

    그 말에 무수히 많은 인원들이 일제히 아퀼라와 이강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이강호의 손에서 광명이 터져 나왔다.

    1서클 마법 라이트.

    “으아악! 내 눈!”

    “아, 안보여!”

    섬광 수류탄보다도 강한 빛에 의해 에단을 포함한 병사들이 주춤거렸다.

    그리고 그 틈을 이강호는 놓치지 않았다.

    ‘인탱글.’

    엄청난 수의 뿌리가 올라와 인원의 발목을 은근슬쩍 붙잡는다.

    이윽고 창을 앞으로 뻗자 기하학적인 마법진 속에서 수많은 불덩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청염.

    고유능력이 담겨진 이 불길은 엄청난 화염 저항력을 지니고 있지 않는 한 버텨낼 수 없다.

    ‘파이어볼.’

    마음속으로 지긋이 시동어를 내뱉자, 폭탄처럼 날아간 불덩이들이 주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발목을 붙잡은 나무뿌리를 베고 피할 수 있었던 인원은 불과 열 명 남짓 뿐.

    에단의 입가가 부들부들 떨렸다.

    보스 몬스터 사냥을 위해 정예들을 분산시키긴 했지만, 이들 또한 강자다.

    그런데 고작 환경이 하나 바뀌었다고 해서 이렇게 당하다니.

    “너 이 새끼!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 전부 둘러...”

    말을 이으려던 에단의 몸이 갑작스레 지면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 이건...”

    라플레시아의 마비가루.

    이렇게 빨리 퍼지다니? 빨리 해독약을 먹지 않으면 놈이 아니라 라플레시아에게 당한다.

    “크으으...”

    덜덜덜 떨리는 에단의 손이 허벅지에 있는 통을 간신히 향했다.

    안간힘을 써 병뚜껑을 딴 그가 막 통에 입을 대려는 찰나였다.

    퍽.

    갑자기 발길질이 그의 손을 강타했다. 고개를 치켜든 에단의 눈앞에는 팀원 한명의 목덜미를 붙잡고 있는 이강호가 서있었다.

    “라플레시아들이 지레 겁을 먹은 모양이군. 이렇게나 마비가루를 내뿜을 줄이야.”

    “너...어떻게...”

    “지금 죽게 될 네가 알 필요는 없지.”

    그렇게 말한 그는 싸대기를 후려쳐 기절한 팀원을 깨웠다.

    “으어...무슨...에, 에단님?”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남성이 연신 눈만 꿈뻑거렸다. 그런 그를 대충 앉힌 이강호가 창대를 들어 올리며 지긋이 말했다.

    “놈이 어떻게 죽는지 잘 봐둬라.”

    그러자 에단이 억지로 입을 움직여 거친 음성을 토해냈다.

    “자, 잠깐! 너의 목적...알고 있...내가 말을 바꿔주면 되는...”

    “잘 알고 있군. 어떻게 말을 바꿀 거지?”

    “고, 고블...대...책...”

    이강호는 에단의 점점 몸이 굳어 대화가 이어지지 않게 되자 해독약을 아주 살짝 입안에 쏟아주었다. 헐레벌떡 삼킨 에단이 황급히 말을 이었다.

    “고, 고블린들을 토벌하도록 유도하면 되는 거 아니냐! 맞지?”

    “취지를 잘 파악하는 군.”

    “그, 그래...살려만 줘라. 내가 이 전멸을 고블린 탓으로 돌려서...”

    살고 싶다는 마음 때문일까, 에단은 회의 때와는 다르게 정말 열변을 토해냈다.

    말이 끝나자 이강호의 시선이 굳어있는 병사에게 돌아갔다.

    “잘 들었나? 네가 살아나가면 해야 할 말이다.”

    “...?!”

    병사의 눈이 빠르게 깜빡였다.

    에단의 입에서 경악이 터져 나왔다.

    “뭐? 무슨 소리야! 날 살려달라고! 내가 팀 아돌프의 리더라고! 나만 살려준다면 네 뜻대로 병사를 움직여 주겠다는데! 왜! 왜!”

    “......”

    이강호는 말없이 창을 들어올렸다. 어떻게 말하던지 그는 원래부터 에단을 죽일 생각이었다. 이것은 게릭의 경우와는 많이 달랐으니까.

    말을 끝까지 들어준 이유는 단순히 자신이 설명하는 것보다도 에단이 말하는 것이 좀 더 와 닿게 느껴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상 의미도, 이하의 의미도 없었다.

    ‘일격에 보내주마.’

    그것이 최소한의 도리.

    그렇게 창을 내리치려는 찰나였다.

    “잠깐! 멈춰! 이강호!”

    풀숲에서 튀어나온 유세현이 외쳤다.

    푸른피가 흘러내고 있는 것을 보니 주변에 있던 라플레시아를 전부 처리하고 온 것이 분명했다.

    아주 조금만 더 늦게 도착했으면 좋았을 터인데.

    “......”

    창을 멈춘 이강호가 지긋이 유세현을 응시하자 에단이 잔뜩 기뻐하며 외쳤다.

    “그, 그래! 날 살리는 편이 훨씬 좋을 거라니까!”

    이에 어찌 설명할지 생각을 정리한 이강호가 다가오고 있는 유세현을 향해 차분히 입을 열었다.

    “유세현 이건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됐었던...”

    서걱.

    허나, 이강호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검은 섬광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는 목을 잃은 몸뚱어리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털썩.

    힘 없이 쓰러지는 에단의 육체.

    이강호를 스쳐 마비되어 있는 남자에게 다가간 유세현이 무릎을 굽혔다.

    머리채를 붙잡은 그가 조용히 읊조렸다.

    “잘 생각해서 보고해라. 그래야 네 목이 붙어 있을 수 있어.”

    평소에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무척 무거운 음성이었다.

    “...유세현 너...”

    “가자.”

    < 결과와 대책(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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