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109화 (109/612)
  • < 고블린 vs 주둔지(2) >

    “키릭! 적을 죽여라!”

    “하아압! 못 올라오게 막아!”

    적과 아군이 한데 얽히고설켜 서로를 향해 병장기를 휘두른다.

    찰나의 방심은 곧 죽음.

    김주희와 유세현이 위치해 있는 좌측부 후방에서는 현재 엄청난 난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베고 베고 또 베어도 적이 끝없이 몰려든다.

    턱 바로 아래까치 숨이 차오르고, 입 안에서는 단내가 물씬 풍겼다.

    “폭참!”

    “스트랭스!”

    이윽고 저층계 인원뿐만이 아닌, 군세를 버티지 못한 1년차 인원들에게서도 스킬이 하나 둘 발동되기 시작했다.

    “염화검!”

    김다혜도 얼른 스킬을 발동시켰다.

    이대로라면 마력을 아끼다가 죽을 판.

    “키릭!”

    김다혜가 들고 있던 검에서 강한 열기가 피어오르자, 밝은 빛과 화기에 의해 고블린이 순간 주춤 거렸다. 그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곧바로 검을 휘둘러 목을 쟁취했다.

    적의 몸에서 빠져나온 코인을 흡수한 김다혜의 눈앞으로 적을 베어나가고 있는 김주희가 비쳤다.

    아직까지는 별다른 스킬 사용 없이 근근이 버티고 있는 모습.

    전후좌우를 전부 주시해가며 물 흐르듯 창을 휘두르고 있는 그녀의 움직임에 김다혜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파르르 떨렸다.

    자신 또한 못 이겨내고 방금 스킬을 사용했는데 어찌 8개월 차가 순수한 체술로 버티고 있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런 느낌을 받고 있는 것은 김다혜 뿐만이 아니었다.

    유세현의 근처에서 전투를 하고 있는 클락.

    그 또한 현재 엄청난 괴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도, 도대체 뭐야? 저놈들은?’

    고작 8개월 차인 주제에 압도적인 힘으로 고블린을 짓누른다. 척 봐도 비슷한 수준의 적이었건만.

    또한 유세현의 옆에 철썩 붙어 전투를 치르고 있는 한 남성도 만만치 않았다.

    지치칙!

    싸움을 거듭할수록 점점 붉어져 가는 이태광의 몸!

    그는 조금씩 지쳐가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크하하하! 다 덤벼라!”

    “키릭! 별것도 아닌 놈이!”

    포효가 울려 퍼지기 무섭게 고블린 한마리가 이태광을 향해 돌진해왔다. 매서운 속도를 보아하니 고층계 인원임이 분명했다.

    내뱉은 말과는 달리, 느낌이 좋지 않았기에 직접 움직인 것!

    이것은 고유특성에 의해 스텟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이태광으로서도 많이 위험하다.

    클락은 이태광이 당할 것을 예상했다.

    순식간에 접근한 고블린의 배틀엑스는 어느새 이태광의 몸 근처에 다다른 상태였다.

    그러나 그 그 순간.

    눈을 번뜩 빛낸 유세현이 고블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잠시 주춤거리는 고블린의 육신.

    “키릭? 무슨?”

    표정에 당혹감이 잔뜩 어려 있는 것이 스스로 조차도 왜 이런 반응을 보였는지 모르겠다는 눈치였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은 후였다.

    틈을 놓치지 않은 유세현의 검이 고블린의 목을 향해 날카롭게 파고 들어갔다. 한편, 이태광은 재빨리 땅을 굴러 공격을 피했다.

    서걱!

    유세현은 고블린의 몸에서 튀어나온 힘과 체력 마력 코인을 재빨리 흡수했다.

    순도 높은 코인이라 그런지 스텟이 증가하는 것이 똑똑히 느껴졌다.

    눈가로 튄 푸른피를 재빨리 닦아낸 그가 자세를 다잡으며 다른 고블린들을 주시했다.

    마력을 사용하긴 했으나, 지금 취한 이 행동은 결코 나쁜 수가 아니었다.

    우선, 정말 찰나의 순간만 암흑투기를 사용했다.

    계속 유지하는 것이 아닌, 마력을 잠시 불어넣었다가 뺀 것이다. 그리고 결과 적은 마력으로 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는 팔씨름에서 팽팽한 힘겨루기를 할 때, 잠시 힘을 뺐다가 재빨리 다시 주면 상대가 적응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한없이 꼼수에 가까운, 그래서 전투센스가 좋은 적에게는 통하지 않는 힘.

    허나, 마력을 최대한 아껴야 되는 지금은 무척이나 쓸 만했다.

    “고마워 동생!”

    “형님. 말은 최대한 삼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크! 알겠어!”

    유세현의 말에 이태광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묵묵히 적을 베어나가기 시작했다.

    이에 클락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비빌 뻔했다.

    방금 전의 그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튼 뭐가 뭔지는 몰라도 지금은 저들과 함께하는 편이 그나마 안전하다.

    판단을 내린 클락이 잽싸게 적을 죽이며 유세현의 곁으로 다가가자, 다른 인원들도 조금씩 뭉치기 시작했다.

    유세현은 잠시라도 틈이 날 때마다 타이밍을 재기위해 마력의 흐름을 살폈다.

    분명 많이 줄기는 했지만 밖에는 아직도 엄청난 수의 고블린들이 깔려 있었다. 대체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수성을 해야 되는 것인지.

    “허억 허억...”

    30분이 경과되자 끝없이 이어진 전투로 인해 체력이 고갈된 생존자들의 입에서 연신 거친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주위를 살펴본 유세현은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슬슬 움직여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대로라면 모두 이곳에서 뼈를 묻게 된다.

    파앗!

    그때,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아래에서 전투를 하고 있던 이강호가 외벽을 타고 돌담위로 기어 올라왔다.

    “이제 움직여야 될 거 같다. 더 이상은 못 버텨.”

    “후우후우...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참이다. 클락씨!”

    “허억 허억. 알겠습니다. 바로 움직여서 브라이언씨께 가도록 가죠.”

    최후방 돌담에 위치해 있던 그들은 달려드는 고블린을 죽여 가며 주위 인원들과 함께 입구 쪽으로의 이동을 개시했다.

    얼마정도 나아가자 분투하고 있는 김주희와 김다혜, 이용석이 보였다.

    이용석은 용케 아직까지 살아있었다.

    물론 한계에 도달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대로 계속 전투를 이어나갔다면 분명 몇 분 버티지 못하고 당했을 것이다.

    “후우후우...선배!”

    “허억허억. 크, 큭...유세현? 이강호?”

    둘을 확인한 이용석의 표정이 미약하게나마 밝아졌다.

    상황은 최악이었지만 여태까지 비상한 실력을 보여준 만큼, 이번에도 어찌어찌 타파해낼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길을 뚫겠습니다. 비켜주세요.”

    그새 또 적을 베어 넘긴 고층계 인원 몇 명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길을 뚫는데 있어 저층계 인원들보다는 고층계 인원이 나서 단번에 돌파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갑시다!”

    “예!”

    서걱!

    촤악!

    점점 인원을 불려가며 입구로 향하는 생존자들.

    그들은 곧 브라이언과 조우할 수 있었다.

    팀원에게 간단히 내용을 들은 그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문은 버리고, 이대로 팀 아레스 쪽으로 이동해서 그대로 돌파 하도록 하죠!”

    유세현 일행을 포함한 브라이언과 고층계 인원들이 우측부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이었다.

    쿠구구구!

    파도 소리와 함께 커다란 해일이 팀 아레스의 인원이 위치해 있는 우측부를 향해 높게 솟아올랐다. 돌담을 우습게 웃도는 높이!

    “이, 이게 무슨!”

    고개를 들어 바라본 생존자들의 입에서 경악이 터져 나왔다.

    김주희 또한 살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이 정도의 해일은 그녀가 운디네에게 마력을 전부 쏟아 부어야 만들 수 있는 크기였다.

    촤아아악!

    이윽고 해일이 거칠게 돌담에 휘몰아쳤다.

    급류에 휩쓸리지 않게 위해서 그들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도약.

    해일의 범위 외각 쪽에 위치한 고층계 생존자들이 유세현이 있는 방향으로 황급히 도약했다. 그중에서는 팀 아레스의 전 리더, 제나 로멜로도 있었다.

    돌담위에서 온힘을 다해 도약을 한 것이었기에 그녀는 장풍 같은 장거리 요격에만 주의를 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허나.

    쿠구구궁!

    파도소리와 함께 제나의 등 뒤에 스산한 그림자가 스쳤다.

    “제나! 뒤를 조심해!”

    브라이언의 외침과 동시에 제나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어떻게 이 위치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지?

    그녀는 몸을 틀며 들고 있던 양날도끼를 황급히 휘둘렀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푹.

    입고 있던 갑주를 뚫고 심장을 정확히 관통하는 세 개의 날.

    달빛에 비친 무기의 형태를 본 유세현은 파도를 밟고 있는 고블린의 정체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레콰이크!’

    꿈틀거리는 제나의 목을 단번에 꺾어 마무리를 지은 레콰이크가 그들을 향해 손을 치켜세우며 외쳤다.

    “전부 죽여라!”

    “캬아! 가자!”

    사방에서 그들을 향해 고블린들이 몰아쳤다. 레콰이크 또한 물살을 타고 그들을 향해 돌격해왔다.

    “큭!”

    생존자들은 무기를 치켜세웠다.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생각하고 움직이는 행동이 아니었다.

    그들은 현재 반쯤 패닉상태였다.

    급류에 쓸려간 팀 아레스의 인원이 다시 모이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든다.

    과연 버틸 수 있을지.

    그 순간 이강호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돌담 아래로 몸을 날리며 외쳤다.

    “지금 뚫는다! 이 때가 아니면 기회는 없다!”

    “뭐, 뭐? 하지만 나머지 인원이...”

    어느 한 남성이 재빨리 반박을 했지만, 이강호는 이미 지면에 착지한 뒤였다.

    그 뒤를 유세현과 김주희가 재빨리 따랐다.

    깜짝 놀란 김다혜가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세, 세현아!”

    “가자! 길태야!”

    “예!”

    이어서 이태광의 팀과 이용석의 팀이 줄지어 이탈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리 신예라지만 뭘 믿고 팀 라이트가 아닌, 저 셋의 말을 따르는 것인지.

    인원들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동했다.

    지금밖에 기회가 없다는 단호한 말 때문이었다.

    적을 베어 넘긴 클락이 외쳤다.

    “브라이언씨! 우리는 어떻게 할...”

    이에, 브라이언이 재빨리 주둔지 내부를 살폈다. 팀 아레스를 포함한 생존자들보다도 고블린들이 훨씬 많이 보였는데, 해일 때문에 전부 분산되어 있어 고층계 인원이라 할지라도 빠져나오기 힘들어 보였다.

    “큭! 우리도 갑니다! 전부 움직이세요!”

    그의 말에 살아남은 인원들이 일제히 우르르 움직였다.

    그사이 유세현은 빠르게 마력을 훑었다.

    처음보다 확실히 수가 줄었다. 그는 적의 수가 최대한 적은 곳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 옆을 바로 이강호가 따랐다.

    선두에서서 나아가는 유세현 일행과 이를 뒤따라가는 생존자들.

    “전부 죽여라! 이곳에서 한 놈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라!”

    그리고 그런 그들을 향해 고블린들의 대군이 사방에서 몰아쳤다.

    허나, 두 사람은 양옆에 다가오는 고블린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런 것을 전부 신경 쓰다가는 나아가지 못하게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돌파!

    “세현아 단번에 뚫는다.”

    “오케이.”

    말과 동시에 나란히 달려다가던 유세현이 살짝 속도를 줄여 이강호의 뒤로 붙었다.

    그런 행동에 어느새 따라붙은 고층계 생존자들의 이목이 자연스레 쏠렸다.

    밝게 빛나기 시작하는 오른손에 새겨진 증표.

    “키아악! 죽어라!”

    이강호는 최대한 아슬아슬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주먹을 전방을 향해 쭉 내밀었다.

    상상할 수 없는 열기를 동반한 푸른 화염이 주위를 불사르며 일자로 곧게 뻗어나간다.

    “캬아악!”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재로 변해 사라지는 고블린들.

    그나마 아슬아슬하게 피한 것은 고층계에 속하는 고블린들 뿐이었다.

    무기를 휘두르려던 고층계 인원 한명의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

    이 광역 스킬은 뭐란 말인가.

    아니, 더 나아가 이정도의 스킬을 사용할 수 있을 만 한 마력을 지금까지 아껴두고 있었다니.

    “허...”

    브라이언 또한 감탄을 금치 못했다.

    투드득!

    턱!

    불길에 휩싸인 나뭇가지들이 지면으로 떨어지며 숲 곳곳에서 불길이 번져나갔다.

    그 덕분인지 흉흉하게 달려들던 고블린들의 공격이 한층 누그러졌다.

    전부 유도한 상황이었다.

    유세현과 이강호는 곧바로 자리를 바꿨다. 유세현은 최대한 가는 데까지 가본 뒤 천마혈사장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으아악!”

    “사, 살려줘!”

    등 뒤에서는 생존자들의 비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추격하는 고블린들이 야금야금 갉아 먹고 있는 것.

    레콰이크가 삼지창을 다시 한 번 들어올렸다.

    돌담을 강타했던 커다란 해일이 재차 용솟음쳤다.

    치이익.

    물에 먹혀 빠르게 사라져가는 불길. 그러자 전방에 있던 고블린들이 기다렸다는 듯 격렬하게 달려들었다.

    물살에 휘말리게 만들어 그나마 유지되는 진형을 완전히 무너트리려는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돌파를 할 수 없게 된다.

    “크윽!”

    브라인언의 입에서 침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무척강하지만 빠르게 다가오는 해일을 저지할 수단이 없었다.

    그때였다.

    “선배님!”

    “사용해!”

    유세현의 대답과 동시에 달려가던 김주희의 몸에 푸른빛이 감돌며 액체로 변모되기 시작했다.

    정령 그 자체로 변하는 스킬.

    정령화.

    이 스킬을 사용하게 되면 엄청난 양의 물을 마력 없이 다룰 수 있게 되지만, 한번 변신 시 엄청나게 많은 마력을 소비할 뿐만 아니라, 숙련도도 부족해 꼴랑 3분밖에 유지할 수 없다는 게 흠이라면 큰 흠이었다.

    본래라면 전방을 완전히 돌파한 뒤에야 발휘되었을 스킬!

    김주희가 손을 들어 올리자, 레콰이크가 타고 있던 해일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역으로 주위 고블린들을 휩쓸었다.

    지면에 착지한 레콰이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김주희가 있는 장소를 주시했다.

    < 고블린 vs 주둔지(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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