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108화 (108/612)
  • < 고블린 vs 주둔지(1) >

    ‘젠장...’

    유세현의 탐지는 적이 일정 범위 안으로 들어오면 자동적으로 알려주는 마법 같은 것이 아니다. 또한 먼 곳을 탐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정신력을 요하기 때문에 계속 집중하고 있을 수도 없다.

    그래서 항상 이런 식으로 시간차를 두고 살펴봤던 것인데.

    아무튼 지금은 낙담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강호!”

    굵고 짧은, 딱 한 번의 외침에도 이강호는 눈을 번쩍 떴다. 옆에 세워진 창을 집어 들기 무섭게 활대처럼 튀어 오르는 몸.

    “무슨 일이야!”

    “서, 선배 갑자기 무슨...”

    “고블린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어! 엄청난 양이다. 습격당했던 때와는 달라. 고층계인원은 물론 1개월 차까지 다 동원된 것 같다.”

    “예?”

    “뭐라고?”

    이강호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아이템을 강탈해 도망친 것이 레콰이크를 상당히 자극하는 행위였다는 것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거기에 칼륀과 페르도라라는 최고층계 고블린까지 죽였다.

    때문에 레콰이크가 어떤 식으로든 조치를 취하리라 생각을 하긴 했지만...이건 너무 반응이 빠를 뿐더러 무척 극단적이다.

    그렇게까지 위협을 느꼈다는 것인가.

    이대로 전면전을 치르게 된다면 고블린 측도 상당한 피해를 입겠지만, 이쪽은 전멸의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렇다 이것은 승산이 없는 싸움.

    “세현아! 이태광 좀 깨워줘! 그들과 함께 바로 핏빛강 쪽으로 이동할거야. 거기서 운디네의 힘을 빌려 반대편으로...”

    “안돼! 그건 불가능해! 적은 핏빛강 쪽에서도 넘어오고 있어!”

    “...강을 넘고 있다고? 어떻게...”

    “그건 몰라! 하지만 엄청 많은 인원이야!”

    “그럼 틈은? 약간의 틈도 없어?”

    “...응.”

    유세현은 마검의 끝을 이용해 고블린들의 대략적인 분포도를 지면에 순식간에 그려나갔다. 이강호 이마에서 식은땀이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이렇게 되면 남은 방도는 하나뿐이다.

    수성 후 탈출.

    “세현아! 내가 출구로 가서 북을 칠 테니까 너랑 김주희는 지금 바로 두 팀에게 가서 현 상황을 설명해줘! 나도 곧바로 뒤 따라 갈게!”

    “알았어! 김주희! 넌 지금 바로 아퀼라를 소환해서 제 3의 눈을 날리라고 해! 도착하면 바로 볼 수 있도록!”

    “예!”

    파바밧.

    그들은 각자 맡은바 역할을 수행하기위해 천막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퉁! 퉁! 퉁!

    주둔지 내부로 크게 울려 퍼지는 북소리.

    “뭐, 뭐야?”

    “이, 이 소리는? 설마?”

    깜짝 놀란 생존자들은 하나 둘씩 바깥으로 뛰어나오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는 팀 아레스의 인원과 팀 라이트의 중추 멤버들도 있었다.

    허겁지겁 뛰어와 클락을 발견한 유세현이 재빨리 그에게 다가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대군이 이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럼 이 북 소리도 설마 세현씨의 팀원이?”

    그렇게 말하는 클락은 척 보기에도 못 믿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이 신예라고 할지언정 팀 라이트와 팀 아레스, 이 두 강팀이 알아내지 못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건 좀처럼 말이 안됐음으로.

    이에 유세현이 아퀼라를 쓰윽 바라보자, 재빨리 다가온 그녀가 수정 구슬을 내밀었다.

    “예, 우선 이것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이, 이건?”

    수정구슬에는 확실히 엄청난 수의 고블린들이 비치고 있었다.

    “제 팀원의 능력입니다. 이것을 통해 멀리까지 감시를 하던 우리는 우연히 고블린의 이동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생존자가 그들의 팀에 있었다니. 아퀼라를 자신도 모르게 슬쩍 흘긴 클락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파르르 떨렸다.

    머리의 양옆으로 나있는 매끄러운 곡선의 뿔과 허리사이로 비치는 날개. 눈앞의 여자는 혼이 빠져나갈 정도로 무척 아름다웠지만 결코 인간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이, 이 분은...”

    “게임에서 나오는 소환수의 개념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연히 얻었죠. 그보다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아...그렇죠. 그나저나 이정도의 대군이라니...혹시 적이 어느 정도 후에야 이곳에 당도 할지 예상이 되십니까?”

    “이 기세라면 약 2시간 정도 남았습니다.”

    “...즉시 이 내용을 전파 하고 긴급회의를 소집하겠습니다.”

    유세현의 진중한 말과 증거에 상황의 심각함을 인지한 클락은 곧바로 움직였다.

    건물로 들어간 그는 곧 어느 한 남성과 함께 다시 밖으로 나왔는데, 그 남성은 곧바로 팀 라이트의 건물위로 올라갔다.

    양손을 모은 그의 입에서 확성기보다도 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팀 라이트에서 알려 드립니다. 현재 저희는 무수히 많은 고블린들이 이동을 포착했습니다. 목적지는 이곳으로 판단됩니다! 이에 팀 라이트는 현 시간부로 비상사태를 선포합니다. 또한 대책을 강구하기위해 곧바로 긴급회

    의를 열 예정이니 각 팀의 리더는 한명도 빠짐없이 중앙 광장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남성은 내용을 서너 번 반복했다.

    어느새 다시 다가온 클락이 유세현을 향해 말했다.

    “가시죠. 세현씨. 이건 세현씨께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셔야 됩니다.”

    “예.”

    목숨이 걸려있는 만큼 사람들은 정말 신속히 몰려들었다. 유세현은 그런 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용을 말하면 말할수록 점점 인상이 구겨지는 인원들. 이윽고 유세현이 하던 말을 끝냈을 때는 안색이 전부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도주할 길도 없다니.

    “젠장! 이게 무슨!”

    “혹시 이거 잘못된 정보 아닙니까? 이제 판도라로 나아가야 될 놈들이 지금 굳이 왜...그리고 아무리 그 구슬로 살펴봤다지만 다가오고 있는 인원이 많은지 어떻게 장담할 수 있습니까? 혹시 당신의 정보가 틀린 거 아닙니

    까?”

    희망이 없다는 것을 느낀 몇몇 사람들은 애써 현실을 외면하려 하기도 했다.

    허나.

    “전 제가 한 말에 목숨을 걸 수 있습니다.”

    “......”

    “크윽!”

    침음성이 광장을 가득 메운다. 그 잘난 고층계 인원들 또한 이번만큼은 방도를 찾기 못하고 있는 상황.

    유세현이 입을 재차 열어 말했다.

    “제가 봤을 때 지금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수성을 하다가 기회를 봐 돌파하는 것 말입니까?”

    답변을 한 것은 전 팀 라이트의 수장이자, 이전 스카웃 제의를 하러 왔었던 브라이언 로저스였다. 유세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적이 조금씩 포위망을 좁혀오며 뭉치고 있는 만큼, 현재 저희의 힘으로는 이것을 뚫는 것이 절대 불가능합니다. 허나, 버티는 것은 그나마 가능하죠.”

    주둔지의 돌담은 무척 높다. 또한 입구도 외벽과 같은 재질로 되어있기에 힘으로 부수는 것은 어렵다.

    즉, 적이 내부로 침투하기 위해서는 도약을 하거나 사다리를 걸쳐야 된다는 것인데, 이때 무방비 상태가 되기 때문에 혼자서도 상당히 많은 인원수의 인원을 상대할 수 있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가 문을 열고 돌파하는 것이다.

    한 생존자가 외쳤다.

    “그, 그게 말처럼 쉽게 되겠습니까? 엄청나게 죽어나갈 뿐더러 못 뚫을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그렇죠. 하지만 저는 이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다른 좋은 방도가 떠오르신 분들은 지금 바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젠 시간이 없습니다.”

    “......”

    그 말이 있던 후로부터 5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사람들은 마땅히 의견을 내놓지 못했다. 하기야, 무슨 의견을 내놓을 수 있으랴.

    지금 이 현상을 타파해내기 위해서는 사람을 대규모로 이동시킬 수 있는 순간이동 능력 같은 것이 필요한데, 스킬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없거니와 실제로 존재하는 지도 알 수 없다.

    결국 인원들은 어쩔 수 없이 수성하는 것을 택하고 진형을 크게 두개로 나눴다.

    입구를 중심으로 하여 좌측을 지키기로 한 팀 라이트와 우측을 수비하기로 한 팀 아레스.

    나머지 인원들은 개월 수에 따라 적절하게 나눠 분배 배치되었다.

    생존자들은 고층계 인원들을 저층계 인원 사이사이 끼어 넣는 등 인원배치에도 힘썼다. 고층계 인원들이 한곳에 뭉쳐있다면 그곳은 잘 버티겠지만 나머지는 무너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

    이제 8개월 차로 들어섰다고 알려진 유세현 팀은 팀 라이트와 같은 좌측에 배치 되었다. 그리고 개월 수가 달라서인지 운이 좋게도 이태광 팀도 같은 곳에 같은 곳에 속했다.

    이용석 팀이 같이 딸려온 것은 그야말로 덤.

    돌담의 좁은 폭 때문에 하부방어를 쪽으로 배치 된 이강호가 돌담 위로 올라가려는 둘을 향해 말했다.

    “돌파를 위해서는 최대한 마력 아껴둬야 된다는 거 알지?”

    “물론.”

    “예! 선배!”

    “좋아, 그럼 이따가 보자.”

    둘은 곧 적절한 장소에 위치해 섰다.

    유세현은 이태광과 클락의 사이.

    김주희는 김다혜와 이용석의 사이.

    휘이잉.

    돌담 위에서 선 생존자들의 목 끝으로 스산한 바람이 스쳐지나갔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생존자들의 표정에서는 긴장감이 역력히 묻어나오고 있었다.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유세현이 차분히 마검을 들어 올렸다.

    칼륀이 가지고 있던 레어 F랭크 바스타드 소드를 흡수한 덕에 노말 A랭크에서 매직 B랭크로 등급이 단번에 오른 상태였지만 아쉽게도 기대하고 있던 특수 스킬의 사용은 여전히 불가능했다.

    역시 레어 정도는 돼야 사용할 수 있는 것인지.

    스륵 스륵.

    그때 숲이 거칠게 흔들렸다.

    “키륵.”

    익숙한 콧소리와 함께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는 고블린들.

    그들은 그 흔한 횃불하나 들고 있지 않았지만, 포위망을 좁혀 접근한 만큼 굳이 몸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아니, 되려 당당히 돌담의 위에 있는 생존자들을 노려본다.

    “미친...”

    생존자들의 입에서 하나둘 경악이 터져 나왔다.

    개미군단을 넘어선 밀집도.

    “옵니다! 다들 준비하세요!”

    “캬아악! 가자! 전부 죽여라!”

    외침과 함께 새까만 그림자가 돌담을 향해 몰아쳤다.

    투두두두!

    지면이 맹렬하게 진동하고 말발굽 비슷한 소리가 광활하게 울려 퍼진다.

    최대한 높이 도약하여 외벽에 붙은 고블린들이 암벽등반을 하듯 올라가기 시작했다. 생존자 난간 끝에 서서 그런 고블린을 베어 넘겼다.

    “키륵! 이 자식들이!”

    “이 자식은 무슨! 뒈져라!”

    계속해서 줄지어서 개떼처럼 올라오는 고블린들!

    그 압도적인 물량에 결국 스텟이 약한 생존자들이 아껴두었던 스킬을 하나 둘 사용하기 시작했다.

    “폭참!”

    “바람 가르기!”

    콰과광!

    연쇄 폭발로 인해 파편이 튀고 바람이 휘날린다.

    고블린들은 차례차례 빠르게 정리되기 시작했다.

    주위에 적이 없음을 확인한 한 생존자가 난간위에 아슬아슬하게 서더니 양손을 아래를 향해 쭉 뻗었다.

    “연쇄 폭참격!”

    밝은 빛과 함께 무수히 많은 불꽃의 알갱이들이 올라오고 있는 고블린들을 덮쳤다.

    콰콰과광!

    “키아아악!”

    화력이 어찌나 강한지 알갱이는 적중당한 고블린들은 새까맣게 그을려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죽어라!”

    “크아악!”

    생존자들은 그렇게 최소한의 희생자를 내며 어찌어찌 버티고 있었다. 코인을 흡수할 수도 있기에 이대로라면 제법 할만하다.

    이변은 그런 생각이 들 때쯤 갑자기 일어났다.

    후웅!

    여러 마리의 고블린들이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돌담을 오른 것!

    분투하고 있던 생존자들이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큭! 이놈들은! 빠, 빨리 고층계 인원을 불...컥!”

    말을 끝마칠 새도 없이, 대치하고 있던 남성의 심장이 창에 관통 당했다. 뒤에 위치해 있던 또 다른 남성의 목에서 욕설이 대번에 터져 나왔다.

    “차, 창욱아! 이 새끼들이!”

    “피하세요! 당신의 상대가 아닙니다!”

    제법 강한 생존자가 외쳤지만, 남성은 말을 듣지 않고 기어코 달려들었다. 고블린의 입에서 조소가 터져 나왔다.

    “키히히히! 별것도 아닌 것들이!”

    서걱!

    촤악!

    “끄아아악!”

    울려 퍼지는 비명소리와 함께 고층계 고블린들은 삽시간에 주위를 휩쓸며 진형을 장악해나갔다. 그러자 그 틈으로 후배 고블린들이 줄지어 올라왔다.

    멈출 줄 모르는 행보!

    갑자기 생긴 구멍은 빠르게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제, 젠장! 너무 강해! 우리로는 도저히...”

    “비키세요.”

    그때 생존자 틈에서 나타난 방패를 치켜든 남성 한명이 앞으로 나섰다. 팀 라이트의 최강자 브라이언 로저스. 그의 뒤로는 동료 3명이 따르고 있었다. 최고층계 인원답게 한곳에만 위치하지 않고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면서

    밀리는 곳을 돕고 있는 것!

    “키키키! 겁도 없는 놈이구나! 네놈들 따위!”

    고층계 고블린 한 마리가 들고 있던 낫을 힘껏 내리쳤다. 힘에 못 이겨 무참히 짓이겨질 것을 예상하면서.

    허나.

    “합!”

    왼손에 쥔 한손방패를 휘둘러 낫을 튕겨낸 브라이언의 검이 정확히 고블린의 목을 단숨에 베어 넘겼다.

    그 난리를 피었던 것 치고는 너무도 허무한 죽음이었다.

    “키릭! 네놈들이 퀼던을! 죽어라!”

    고층계 고블린 2마리의 연계가 이어졌다. 허나, 수적으로 보나 질로 보나 그들은 브라이언의 기동대를 당해낼 수 없었다.

    촤좌좍!

    이번에는 역으로 빠르게 정리 돼가는 고블린들!

    힘겹게 공격을 받아내고 있던 생존자들이 힘찬 함성을 터트렸다.

    “브라이언씨가 적을 섬멸했다!”

    “우와와와!”

    그렇게 전투는 더욱 치열해지고 있었다.

    < 고블린 vs 주둔지(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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