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104화 (104/612)
  • < 물빛의 사원(4) >

    치잉!

    주 무기인 바스타드 소드와 시미터를 각각 치켜세우는 칼륀과 페르도라.

    마주서있는 일행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동족을 위해 움직였었던 놈들이 설마 동족을 희생 해가며 이 장소에 들어올 줄이야.

    이는 두 마리의 고블린들이 얼마나 그들을 경계하고 있는지 잘 알려주는 대목이었다.

    일행의 눈치를 살펴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은 게릭이 황급히 물었다.

    “저, 저놈들의 실력이 얼마나 되지? 내가 상대 할 수 있는 놈들인가?”

    “...판도라로 넘어갈 실력이다. 긴장해라. 괜히 혼자 도망쳐보겠다고 등을 보이는 순간 죽는다.”

    “...뭐, 뭐라고? 판도라?”

    게릭의 얼굴색이 시퍼렇게 질렸다.

    잔뜩 긴장하는 모습 때문에 어느 정도 강할 것이라 예상을 했지만, 눈앞에 있는 적이 설마 최고층계 인원일 것이라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 장난이지? 그런 놈들이 이런 곳에 있을 리가...”

    “......”

    대답이 없자 게릭은 입술을 곱씹었다. 하긴 항상 진지하게 행동해왔던 그들이 지금 이 순간 장난을 할리가 있겠는가.

    자세를 다잡은 칼륀이 무릎을 살짝 굽혔다.

    이것은 공격을 감행하겠다는 뜻!

    “페르도라! 난 우선 저 창잡이 놈을 죽이겠다! 나머지 셋. 붙들고 있을 수 있겠지?”

    “처리할 수도 있다.”

    “크크크! 깜둥이하고 여자는 볼품없겠지만 새까만 검을 쓰는 놈은 조심해라!”

    “말 안 해줘도 잘 알고 있다.”

    파앗!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순식간에 돌진을 감행한 고블린의 무기가 각각 유세현과 이강호를 향해 쇄도해 들어왔다.

    페르도라는 마력을 회복하기 전에 해치우기 위해, 칼륀은 이전 당했던 것에 복수를 위해.

    이에 유세현은 마력을 쥐어짜 암흑투기를 이강호는 창에 내제되어있는 스킬, 발화를 사용해 항전했다.

    치지직.

    맹렬한 스파크를 일으키며 격돌하는 무기들!

    힘 싸움이 시작되자 이강호와 유세현은 페르도라와 칼륀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이전처럼 완전히 압도당하지는 않았다.

    정체된 칼륀과 페르도라와 달리 그들은 이 물빛의 사원에 들어와 무수히 많은 고블린들을 해치우며 제법 성장했기 때문이다.

    “선배님!”

    후웅!

    김주희가 잽싸게 창을 휘두르며 유세현의 엄호에 들어갔다.

    반면 게릭은 잠시 주저했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두 가지의 갈등이 서로 맞부딪치고 있었다.

    이 틈을 타서 지금이라도 혼자 도망쳐야 될지, 아니면 같이 싸워야 될지.

    전자를 선택하게 된다면 당장에야 살겠지만 100%확률로 직위를 잃을 뿐더러 이곳에서 도망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요상한 탐색능력을 지니고 있는 유세현 일행과 달리 그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

    반면 후자를 선택하면 지금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뭘 선택해도 결코 좋지 않은 상황. 그나마 나은 것은 후일을 도모할 수 있는 후자였다.

    “으아아 이런 개 같은 고블린 새끼들! 뒤져라!”

    게릭이 욕설을 힘껏 내뱉으며 페르도라의 뒤를 노렸다. 입을 좀 닫고 공격했으면 좀더 효과적이었을 터인데.

    페르도라를 향해 삼방향으로 들어가는 공격!

    페르도라는 몸을 회전시키며 시미터를 휘두르는 것으로 공격을 전부 튕겨 내거나 회피했다.

    살짝 거리를 벌린 페르도라의 미간이 와락 일그러졌다.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처음의 예상과 달리 생각보다 저항이 거친 탓이었다.

    “그 스킬. 역시 듣던 대로 대단하군. 상대방의 육신을 옭아 메다니...레콰이크가 충분히 신경을 곤두세울만해.”

    “......”

    “그런데 말이야. 네가 사용하는 그 스킬...”

    파앗

    말과 동시에 페르도라의 시미터에서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혹시 어둠계열 스킬인가?”

    갑작스레 페르도라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이것은 설마?

    ‘신성?’

    유세현도 이전 사용해 본 적이 있는 스킬이었다. 스켈레톤 킹을 상대했을 때 저 힘 덕분에 암흑투기에 대응하는 게 가능했다.

    루카스의 검이 부러진 이후 이 스킬을 사용하는 생존자를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하필 이럴 때 얻어걸리다니!

    치지지직!

    “크으윽!”

    암흑투기에서 살짝이나마 해방된 페르도라는 무척 빠르고 강했다.

    그 경탄할 속도에 게릭의 입이 떡 벌어졌다.

    “흠. 역시 어둠계열 스킬이었나. 설마 이 스킬을 사용하게 되는 날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큭!”

    살짝 휘어져있는 시미터의 검 끝이 폭풍처럼 몰아친다.

    지금이야 어찌어찌 막아내고 있긴 하지만 이대로라면 얼마 못가 육신을 내주고 만다.

    “선배님!”

    “어딜!”

    퍽!

    짧은 발에 복부를 제대로 걷어차인 김주희의 몸이 지면을 데굴데굴 굴렀다.

    저항력이 높아진 이후로는 좀처럼 느끼지 못했었던 엄청난 통증이 전신을 괴롭힌다.

    김주희는 그 와중에서도 고통을 이겨내며 재빨리 운디네를 소환했다.

    1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유세현은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페르도라가 시미터를 올려쳐 루베르크를 튕겨낸 것!

    “끝이다! 풍참격!”

    매끄럽게 움직이는 손목에 따라 시미터의 궤적이 횡으로 휘었다. 연이어서 날라 오는 참격과 후폭풍!

    “큭!”

    유세현이 입을 악물었다. 이건 도저히 피할 수 없다.

    “운디네! 빨리!”

    “아, 아쿠아 쉴드!”

    김주희의 경악어린 외침과 동시에 유세현의 바로 앞으로 푸른색의 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지직!

    쨍그랑!

    얼마 버티지 못하고 부서져 사라지는 쉴드!

    허나, 그 덕에 유세현의 육체는 무사할 수 있었다.

    후폭풍에 의해 지면을 구른 유세현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김주희가 1초만 늦었더라도 지금 자신의 육신은 쉴드처럼 조각이 났으리라.

    드르르륵.

    터진 바지주머니에서 푸른 구슬이 빠져나와 지면을 굴렀다.

    어찌나 다급한지 아직 정보도 확인하지 못한 아이템.

    그리고 그 상황은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예, 옘병할! 빠, 빨리 도와줘!”

    페르도라를 향해 뇌전을 쏘아대던 게릭의 입에서 비명을 터트렸다. 유세현이 죽는 순간 승산이 사라질 것을 알기에 시간을 끌고 있던 것!

    자리에서 일어나 창대를 치켜세운 김주희의 눈동자가 주위를 재빨리 살폈다.

    암흑투기가 간신히 이어지고 있었기에 이강호와 칼륀의 전투는 아직까지 대등하다. 아니, 이강호가 조금씩이지만 밀리고 있었다.

    분명 진짜 밀리는 것이 아니라 평소처럼 틈을 보고 있는 것이리라.

    이렇게 되면 세 명만으로 어찌어찌 해야 되는 상황.

    김주희는 입을 악물었다.

    마력이 떨어져 운디네는 다시 역소환 되었다. 아퀼라도 심각한 부상을 입었는지 나타나질 못한다.

    이제 믿을 것이라고는 오직 자신의 창술 뿐.

    분전하고 있는 게릭의 옆을 잽싸게 지나친 김주희가 페르도라를 향해 창을 휘둘렀다.

    찌르기로 시작하여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회전 베기.

    거리를 잘 내주지 않는 것이 특징인 이 창법은 이강호가 평소 즐겨 쓰는 창술이었다.

    문제는 그녀가 이강호의 수준이 아니라는 것.

    서걱.

    순식간에 접근한 페르도라의 시미터가 김주희의 오른쪽 손목을 날려버렸다.

    당찬 행동치고는 너무도 허무한 결말이었다.

    “귀찮구나. 꺼져라!”

    퍽.

    김주희를 걷어 찬 페르도라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유세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 페르도라의 행동은 김주희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 모습이었다.

    “으으윽.”

    한쪽 손목을 잃어버린 그녀의 어깨가 부르르 떨린다.

    무척이나 아프고, 무척이나 괴로웠다.

    허나, 그런 육체보다도 더욱 괴로운 것은 마음이었다.

    같이 다니는 두 사람은 무척이나 강하다. 그녀도 언젠간 둘에게 걸 맞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열심히 했다. 아퀼라를 얻어냈으며 운디네와 합을 맞추고 창술도 단련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두 사람이 지니고 있는 위력적인 스킬.

    자신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으으...”

    김주희는 이 상황에서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스스로 신기했다. 예전의 자신이었으면 다 내팽겨 치고 도망쳤을 터인데.

    드르륵.

    떨어진 손목을 줍기 위해 나아가고 있는 김주희의 앞에 영롱한 푸른빛을 발산하고 있는 구슬이 굴러왔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눈앞에 뜬 알림창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아이템 명: 타락한 에르토락스의 정수.

    등급: 유니크 [S Rank]

    상세정보: 물의 상급정령 에르토락스의 정수입니다. 소지 하고 있을 시 물의 대한 친화도를 50% 높여주며, 상급정령 이하의 정령이 복용할 시 등급이 한 단계씩 올라갑니다.

    단, 타 종족 복용 시 잠시 동안 정령화를 이룰 수 있으며 낮은 확률로 유니크 S Rank 정령화 스킬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상성이 맞지 않는다면 폭주를 일으키게 됩니다.

    ‘이건...’

    운만 좋다면 지금의 상황을 뒤 바꿀 수 있는 아이템.

    김주희는 뇌리 속에는 이전 운디네와 나눴던 대화가 떠오르고 있었다.

    [원래 우리는 물을 다루는데 마력이 필요하지 않아. 우린 물 그 자체니까.]

    “그럼 지금은 왜 필요한데?”

    [그야 다른 세계니깐 그렇지 바보야~ 본체로만 물을 직접 다룰 수 있거든]

    “음...그러니깐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네 몸은 가짜라는 거네?”

    [그렇지. 무식한 주제에 이해는 제법 빠른데?]

    그 뒤로 말다툼이 이어졌지만 분명 운디네는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은 즉 슨, 정령화를 하게 된다면 현재 가지고 있는 마력의 양과 상관없이 물을 다룰 수 있게 된다는 뜻일 것이다.

    이건 기회인가, 아니면 독인가.

    확실히 자신은 운디네와 계약하는데 성공했다. 허나, 일반론적으로 놓고 보자면 결코 상성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평소 티격태격 싸울 뿐만 아니라, 물의 정령의 원래 특성은 바르고 고운 마음씨라고 했었으니까.

    그렇기에 이것은 도박.

    그래 이것은 유세현이 이전, 자신과 이강호를 살리기 위해 데스크라토스의 정수를 먹었던 것과 같다.

    모 아니면 도.

    ‘그래, 어차피 할 수 밖에 없어.’

    두 사람처럼 강해지기 위해서라도. 두 사람 사이에 좀 더 친근히 끼어들기 위해서라도.

    김주희는 에르토락스의 정수를 집어 들었다.

    부글부글.

    파아아!

    아이템을 사용하자 구슬 내부에서 끓어오른 물이 김주희의 전신을 감쌌다.

    무척이나 뜨거웠다.

    온몸의 장기가 타들어가는 느낌.

    허나, 이 느낌이 결코 나쁘기만 하진 않았다.

    견뎌봤자 아무것도 없었던 과거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견디면 확실한 보상이 있었으니까.

    “...?!”

    맹렬히 공세를 퍼붓던 페르도라 칼륀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김주희를 향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육체의 성분이 점점 성분이 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저건 뭐지?’

    페르도라는 싸한 느낌을 받았다. 유세현이 그 틈을 타 재빨리 자리를 박찼다.

    “후욱 후욱...”

    입에서 단내가 나고, 심장이 부서질 듯 뛰는 것이 신체는 진즉 한계에 봉착한 상태였다.

    버티고 있는 게 신기한 상황.

    주시하고 있던 페르도라의 너머로 허공에 떠있는 김주희가 그제야 비쳐보였다.

    “이건...”

    상황파악도 하기 전에 페르도라가 마무리를 짓기 위해 재차 달려들었다. 그 행동에서는 왠지 모를 다급함이 느껴졌다.

    벽에 몸을 기댄 유세현의 육체가 시미터에 의해 점점 짓눌려간다.

    여기까지 한계였다.

    마력도 없고, 체력도 없고, 버틸 힘도 없다.

    칼륀을 상대하고 있던 이강호의 입에서 거친 외침이 터져나왔다.

    “유세현!”

    도와주러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다.

    그때였다.

    꼭 감겨있던 김주희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구구구!

    촤아악!

    동시에 페르도라와 칼륀을 향해 빠르게 날아가는 물줄기!

    흡사 창과 비슷한 모양을 띠고 있었기에 위력을 모르는 그들은 자리를 박차 피할 수밖에 없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유세현의 눈에 가까이 다가온 김주희의 얼굴이 보였다.

    반투명한 것이 사람이 아닌 느낌.

    “서, 선배 괜찮으세요?”

    허나 목소리만큼은 그대로였다.

    “후욱 후욱...”

    숨쉬기에도 벅찼음으로 유세현은 고개만 끄덕인 뒤 몸을 일으켰다.

    다리가 무척이나 후들거린다. 유세현은 상황을 물어보는 것보다도 검을 들어올렸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적을 해치운다는 것.

    김주희가 손을 들어 올리자 문틈으로 에르토락스의 육신이었던 흑빛의 물들이 내부로 쏟아져 들어왔다.

    정령화 한 김주희는 물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또 그 물이 어떤 성분을 지니고 있는지 왠지 모르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강한 파괴적 성분을 지닌 것이 이것이다.

    그녀는 무차별적으로 물줄기를 날렸다.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하는지 몰라 취한 행동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칼륀과 페르도라에게는 충분한 위협이 되고도 남았다.

    콰과광!물줄기가 지형 곳곳에 꽂힐 때마다 확산되어 나가는 커다란 폭음.

    한차례 물의 세례를 피한 칼륀이 중얼거렸다.

    “무슨! 저 계집 마력 다 쓴 거 아니었어?”

    < 물빛의 사원(4)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