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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102화 (102/612)
  • < 물빛의 사원(2) >

    결국 고블린들은 채 3분을 버티지 못하고 전멸하고 말았다.

    “허...”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이것을 지켜본 게릭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아무리 스텟의 차이가 있어 보인다지만 이렇게나 압도적이라니.

    이 같은 것은 자신의 팀이 살아있다는 가정 하에도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모든 생명체들은 위기가 닥쳤을 시 몸을 지키기 위해 본능적으로 발악을 하기 때문.

    그렇기에 간혹 재수 없는 생존자들은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눈먼 검에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러니 본래라면 지금 또한 매섭게 저항하는 게 맞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눈앞의 고블린들은 좀처럼 맥을 추리지 못했다. 마치 그들과 싸울 때 잘 움직이지 못했던 자신처럼.

    육체를 옭아매는 힘!

    분명 스킬임에는 틀림없다.

    문제는 티가 전혀 나지 않아 누가 사용하는지 모르겠다는 것. 또한 보통 생존자들이 스킬을 남발해 몬스터를 빨리 처리하고 휴식을 취하는 반면, 일행들은 적재적소 때만 스킬을 알맞게 사용한다.

    덕분에 게릭은 그들의 밑천을 도무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괴물 같은 놈들...’

    마음속으로 혀를 찬 게릭이 이내 일행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 정도 다가가자 고개를 힐끔 돌려 게릭을 쳐다본 김주희가 잽싸게 그의 앞에 다가와 섰다.

    게릭은 그런 그녀의 행동에 몸을 살짝 움찔거렸다.

    자신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든 것!

    물론, 게릭은 이것을 스스로 의식하진 못했다.

    “뭐, 뭐지?”

    게릭이 조심히 묻자 김주희가 양팔을 앞으로 뻗었다. 그녀의 손에는 석판이 잔뜩 들려있었다.

    “석판 좀 들어주세요. 선배님 포켓이 그쪽 팀원 아이템으로 꽉 차서 넣을 수가 없어요.”

    “......”

    안 좋은 아이템 몇 개 정도는 버려도 괜찮은데.

    게릭은 왠지 모르게 차마 이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그저 얌전히 그녀의 부탁을 들어줘야 될 느낌이다.

    “...줘봐라.”

    이내 게릭은 그 우람한 손으로 석판을 받아들었다.

    * * *

    “키아악!”

    5단계를 지키고 있던 보스가 이강호의 창에 힘없이 쓰러졌다. 일행들은 코인의 분배를 마치기 무섭게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도무지 멈출 줄을 모르는 행보.

    도대체 언제쯤 이 던전에서 나갈 생각인지.

    ‘설마 이 석판을 다 쓸 때까지 정말 나가지 않으려는 생각은...’

    막연하게 생각하던 게릭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이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

    6단계부터는 몬스터의 질이 이전에 비해 확연히 높아진다.

    더 이상 구름섬 3층이 아닌, 구름섬 4층 스텟을 지니고 있는 몬스터가 등장하게 되는 것!

    아무리 강하다지만 그 물량을 봤는데 설마 계속 나아가겠는가.

    ‘곧 돌아가겠지.’

    그렇게만 생각하던 게릭은 곧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정말 상상이상, 아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미친놈들이었다.

    슈우욱!

    콰과광!

    “이런 미친!”

    게릭은 세이렌의 상위 계층 나가사이렌이 난사하는 마법에 맞아 죽지 않기 위해 정말 필사적으로 몸을 굴렸다

    그렇게 6층의 끝에 다다랐을 때였다.

    보스의 목이 유세현의 검에 의해 떨어지는 것을 확인한 게릭이 재빨리 석판의 수를 셌다.

    이제 남은 것은 고작 수십 개.

    게릭은 마음속으로 안도했다.

    이 다음을 끝으로 여정이 완전히 끝날 것이기에.

    그때였다.

    어느새 다가온 유세현이 게릭을 향해 멀찍이 떨어져 있으라는 통보를 내렸다.

    게릭은 그 순간 온몸에서 오한이 끼쳤다.

    이 빌어먹을 통보를 그는 이전에도 한번 들은 적이 있었다.

    ‘서, 설마...고블린이 또 있다는 건...’

    게릭은 정말 설마 설마 하는 마음으로 유세현 일행의 행동을 지켜봤다.

    그리고 이윽고 저편에서 고블린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는 약 300마리.

    후우욱!

    콰과광!

    여지없이 발산 된 천마혈사장과 화염이 고블린들의 무리를 쓸어 담았다.

    잠시 동안 펼쳐진 전투 이후 고블린들의 시체에서 석판을 꺼내고 있는 일행을 본 게릭은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현재 그의 뇌리 속에서는 이전 탐색병이 했던 말이 반복되고 있었다.

    [상당수의 고블린이 사원으로 들어간 것 같습니다.]

    ‘미, 미친!’

    설마 이렇게 계속 석판을 회수해가며 나아갈 생각이란 말인가!

    ‘이런 미친놈드으으을!’

    게릭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통로에 가득 메아리쳤다.

    * * *

    “강호야...이거 뭔가 이상하지 않냐.”

    “...너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냐?”

    미간을 좁히며 하는 유세현의 말에 이강호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넋이 반쯤 나가 있는 게릭에게 석판을 맡기고 돌아온 김주희가 고개를 갸웃거리면 물었다.

    “뭐가요 선배님? 계속 나아갈 수 있으면 좋은 거 아닌가요? 나오는 아이템의 질이 많이 괜찮던데...”

    현재 이 던전에서 일행은 제법 양호한 아이템들을 상당 수 획득했다.

    이강호는 이전 부서진 사슬갑주보다 더 단단한 레어 F 랭크 사슬갑주를, 유세현의 경우에는 이동속도를 좀 더 빠르게 만들어주는 매직 A랭크의 경량화 부츠를, 마지막으로 김주희는 부족한 마력의 회복량을 증가시켜주는

    매직 S 랭크의 세이렌의 핀을 얻었다.

    연계 던전의 특성상 점점 더 보상이 좋아질 것을 감안하자면 추후 몽환의 성과 같은 보상을 얻게 될지도 모르는 일.

    좋은 게 좋은 것인데 뭐가 이상하다는 것인가.

    김주희의 물음에 유세현이 답했다.

    “그게 이상하다는 거야.”

    “예?”

    “연계 던전의 특성상, 앞으로 나아갈수록 보상이 좋잖아?”

    “예. 그렇죠.”

    “그럼, 애초부터 하나의 길로 나아가서 던전의 끝에 다다르는 게 훨씬 효율적이지 않을까?”

    “...?!”

    김주희의 동공이 살짝이나마 확장되었다. 유세현의 말뜻을 이해한 것이다.

    확실히 몬스터와 보상의 질을 감안했을 때, 이런 식으로 분열하여 나눠서 나아가는 것보다는 뭉쳐서 일자로 뚫는 것이 확실히 효율적이다.

    “더군다나 이상한 점은 이것뿐만이 아니야.”

    “또 어떤...”

    “이놈들 너무 딱딱 맞아 떨어지게 석판을 가지고 있어.”

    그렇다. 첫 고블린 팀은 딱 두개의 길이 하나로 합쳐지는 5단계까지 당도할 정도의 석판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두 번째 고블린 팀은 또다시 길이 합쳐지는 7단계까지 다다를 수 있을 정도의 석판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고블린들은 지금까지와는 한결 달리 어마무시 한 숫자의 석판을 지니고 있다.

    적어도 4단계는 더 나아갈 수 있을 정도로.

    즉.

    “이 자식들 아무리 봐도 사원에 있는 모든 길을 열려는 것 같은데? 넌 어떻게 생각 하냐 강호야.”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것 말고는 이렇게 행동할 이유가 없다.

    허나, 이렇게 행동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 게 있단 말인가.

    의미를 찾기 위해 잠시 고민 하던 유세현과 이강호, 김주희 세 명 시선이 동시에 교차했다.

    “설마? 최종보스?”

    “어? 세현 선배님! 저도 딱 그 생각했어요!”

    “나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100%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물빛의 사원은 그 끝을 알 수 없으니까.

    허나, 지금의 그들에게 있어서 이것밖에는 달리 이유를 꼽을 수 없는 것 또한 사실.

    “세현아. 이 사원에 고층계 인원이 얼마나 있는지 한번 알아볼 수 있겠냐?”

    “음...해볼게.”

    유세현은 의식을 집중했다.

    본래라면 제법 가까이 위치해 있는 만큼, 손쉽게 파악이 가능했겠지만 사원내부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보이지 않은 큰 벽이 탐지를 가로막았다.

    “음...있어 있기는. 그리 많지는 않지만.”

    “마력의 수준과 그 수는?”

    “수준은 대략 E 랭크 80~90% D랭크에 다다른 놈도 있는 것 같긴 해.”

    “D랭크까지?”

    “응. 숫자는 약 삼백...더 멀리까지는 파악 할 수가 없어서 더 있는 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대충 파악했던 바로는 더 있다 하더라도 그리 많지는 않을 거야.”

    “흠...알았다.”

    이강호는 미간을 좁혔다. D급에 다다른 놈이라면 레콰이크일 가능성이 제법 있다.

    ‘은밀히 끌어내서 처리할 수 만 있다면 좋겠지만...’

    만약 추측대로 레콰이크가 있다고 하더라도 상당수의 인원이 그를 보호하고 있을 것이다.

    레콰이크는 고블린들에게 있어서 두뇌와 다름이 없었으니까.

    즉, 이 물빛의 사원에서는 레콰이크가 있으나, 없으나 손을 대기가 힘들다.

    “좋아. 일단은 또 합류지점까지 나아가 보자. 안 될 것 같으면 그때 뒤로 빼도 되니까.”

    “...오케이.”

    “알겠습니다. 선배!”

    그들은 또다시 몬스터를 잡으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 * *

    던전을 계속 탐험하기도 어느새 2주가 꼬박 넘었다.

    그들은 길이 합쳐진 8단계에서 고블린들을 한 차례 더 쓸어 담았다.

    재빨리 시체를 살피는 일행의 눈동자가 예리한 빛을 발했다.

    석판이 없다.

    막연한 추측으로 만들었던 가설이 어렴 풋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역시 이놈들의 목적은 모든 길을 개방하는 게 맞는 거 같다.”

    “동감이야. 어떻게 할까?”

    “일단 10단계까지는 가보자.”

    “오케이.”

    둘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게릭이 말없이 조심히 선두로가 섰다.

    피하지 못하면 즐겨라 라는 말이 있듯, 어차피 그들에게 도망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열심히 사냥하여 이참에 부족했던 여타 스텟을 메우기로 마음을 고쳐먹은 것이다.

    “하아압!”

    날아오는 마법을 온몸을 굴려 피하며 미친 듯이 몬스터를 베어나가는 게릭.

    그들은 그렇게 3일이라는 시간을 더 들여 10단계 보스의 방까지 도달 할 수 있었다.

    “크어어어.”

    쿵!

    대왕 오징어의 모습을 한 보스가 쓰러지자 유세현은 그 어느 때처럼 마력을 탐지했다.

    지금까지 상대해 왔던 고블린과는 사뭇 다른, 강인한 마력이 벽 너머에서 느껴졌다.

    추정마력은 대략 90%

    상대하지 못할 것도 없지만 게릭 등 여러 가지 변수가 있는 만큼 정면에서 대적하는 것은 멍청한 일이다.

    “어쩔래?”

    “흠...”

    유세현의 말에 이강호가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면 이만 미련을 버리고 돌아갔겠지만, 고블린들이 이 사원을 완전 공략 하려는 것을 깨달은 이상 마냥 두고 보기에는 무척이나 찜찜하다.

    몽환의 성 때조차도 유니크 아이템이 나왔는데 이 물빛의 사원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일단, 뒤따라가면서 상태를 지켜보자. 일정거리만 유지하면 걸리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기회가 온다면...”

    결국, 그들은 운디네의 능력을 이용해서 미행을 하기로 결정 했다.

    유세현은 곧장 결정된 바를 게릭에게 통보했다. 그러자 그가 재빨리 반대의견을 표했다.

    “이제는 돌아가는 게 좋지 않겠나? 이 이후부터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위험해질 가능성이 크다. 나도 이 이후로는 가본 적이 없어. 그리고 고블린도 이전 보다 강할 거라며?”

    “아니, 우린 계속 나아간다.”

    “...그렇다면 나는 이곳에서 기다리...”

    “아니, 무조건 같이 간다. 죽기 싫으면 조심조심 움직여라.”

    “......”

    게릭은 일방적인 통보에 입술을 곱씹었다.

    진짜 어쩌자고 이런 미친놈들을 건드렸을까.

    “운디네.”

    “알았어~세현 오빠~”

    소환된 운디네가 손가락을 튕기자, 반투명한 푸른색의 액체가 그들의 전신을 감쌌다.

    이것으로 인해 냄새가 차단되어 후각만으로는 감지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계속 나아가고 있는 고블린들의 뒤에 재빨리 따라붙은 일행이 물웅덩이 속으로 몸을 숨겼다.

    몸을 던지듯이 입수를 한 것이라 물이 거칠게 튈만도 하건만 운디네가 걸어준 특수한 마법 때문인지 물 표면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숨이 쉬어지는 것을 깨달은 게릭은 그제야 자신과 부대원들이 어떻게 기습을 당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잠시 뒤.

    “캬아! 죽여라 전부!”

    “가자!”

    전방에 위치해있던 몬스터들과 고블린들의 격돌이 이어졌다.

    시작하기 무섭게 고블린 쪽으로 기우는 전투의 양상.

    당연한 일이었다.

    등장하는 몬스터들이 제아무리 강해졌다지만, 이 던전은 구름섬 3층에 위치한 던전.

    5층을 휩쓸고 다녔던 고블린들이 상대는 되지 못한다.

    “캬하하하!”

    통로를 가득 울려 퍼지는 고블린들의 기분 좋은 괴성.

    그들은 몬스터들을 처리하기 무섭게 이동을 개시했다. 일행 또한 그 뒤를 조심스럽게 따랐다.

    그렇게 삼일하고도 반나절을 더 미행해 두 단계를 넘어섰을 때였다.

    “키륵 키륵.”

    “키킥”

    수면위로 머리만 빼 꼼 내민 네 명의 귓가로 수많은 고블린들의 웅성거림이 메아리쳤다.

    꺾여있는 통로 옆으로는 엄청난 수의 마력이 느껴졌다.

    유세현이 눈치를 주자 재빨리 아퀼라를 소환한 김주희가 명령을 내렸다.

    “아퀼라! 통로의 저편 좀 밝혀봐!”

    “흐음...알았어.”

    “들키면 절대 안 돼!”

    “걱정마라. 난 네가 아니니.”

    아퀼라가 손을 휘젓자 날개달린 눈알이 조심히 이동을 개시했다. 곧 그녀가 들고 있는 수정구슬 속으로 지금까지와는 크기가 남다른 거대한 공터와 그 공터를 장악하고 있는 수많은 고블린들이 비쳤다.

    그 순간 일행들은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이곳이 물빛의 사원의 끝이라는 것을.

    < 물빛의 사원(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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