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97화 (97/612)

< 급습(2) >

“키키키! 가자!”

고층계 고블린이 뻗은 손끝을 따라 맹렬하게 달려드는 고블린들.

방금 전 패퇴한 7개월 차 고블린들이었다.

“전부 뜯어 먹어치워!”

“이전의 설욕을!!”

총 2번의 패배로 인해 상당수의 피해를 본 그들의 눈가에는 광기가 잔뜩 맺혀있었다.

“크아아악!”

피가 튀고 살점이 난무한다.

맞부딪친 생존자들은 이곳을 돌파하기는 커녕 점점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상황을 그나마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층계 고블린들을 최대한 피해서 싸워야하는데, 적과의 힘을 가늠할 스킬도 없거니와 외관으로 구별하기에는 인간인 그들의 입장에서 고블린은 너무도 비슷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콰직!

압도적인 무력 앞에 픽픽 힘없이 쓰러져 나가는 생존자들!

“크크크크!”

주위 상황을 살피던 고층계 고블린의 입에서 기분 좋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만 몰아붙인다면 증원이 도착하기 전에 싹 쓸어버리는 것을 일도 아니다.

폴암을 든 고층계 고블린이 인간들 진형 틈으로 재차 파고 드려는 찰나였다.

“키아악!”

“키릭! 우, 우리만으로 안 된다! 지원을!”

귀를 거슬리게 만드는 동족의 비명소리가 좌측에서 연신 울려왔다.

“어느 놈이!”

폴암을 든 고블린을 포함한 고층계 고블린 몇몇이 후배를 위해 재빨리 소리의 근원지로 향했다. 그곳에는 2명의 남자와 1명의 여자가 동족을 베어나가며 거침없이 전장을 누비고 있었다.

마치 자신들처럼.

폴암을 든 고블린이 용맹스럽게 외쳤다.

“모두 비켜라! 나 킬가린이 상대하겠다!”

그 말에 고블린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모세의 기적처럼 길이 만들어졌다.

킬가린은 재빨리 그 길을 나아갔다. 그러자 곧 동료 2명이 뒤를 따랐다.

“도와주마. 킬가린!”

“좋아! 각각 한 마리 씩 맡자!”

그들은 전부 1.5년 차로 이번에 게이트 오픈 때 판도라로 올라가기로 되어있던 인원들이었다.

즉 3명이 동시에 달라붙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정리하겠다는 뜻.

킬가린과 그의 동료들이 유세현 일행과 거리를 10m로 좁혔을 때였다.

쿠우웅!

“컥?”

엄청난 압박감이 그들의 몸을 짓눌렀다. 단순히 무게가 증가한 듯한 느낌이 아니었다. 그들의 완력은 이미 자신들의 중량에 3~4배 되는 무기를 손쉽게 다룰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여타 고블린들처럼 그들의 입에서 또한 여지없이 경악이 터져 나왔다.

“뭐, 뭐냐 이건!”

“당황하지 마라! 스킬이 분명하다! 어차피 저놈들은 아무리 해봐야 7개월 차야! 우리가 절대 질 수가 없다!”

“알았다. 킬가린! 하지만 이 느낌 많이 더럽군. 빨리 끝내자!”

“좋아! 내가 암컷!”

“내가 그럼 좌측 수컷을 죽이지!”

“그럼 난 가운데로 하겠다!”

파앗!

맹렬한 속도로 접근한 고블린들의 각양각색의 무기가 유세현 일행을 향해 각각 쇄도해 들어갔다.

근처에 위치해 있던 생존자들은 반응할 수 없을 만큼의,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찰나의 기습.

허나, 그 순간 유세현을 포함한 세 명의 눈동자가 빠르게 교차했다.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을 보이는 그들을 이미 인식하고 있었던 것!

유세현은 퍼트리고 있던 암흑투기의 범위를 좁히는 것으로 힘을 증대시켰다. 본래 여유가 있었다면 마력을 더욱 쏟아 부었겠지만 지금은 조금이라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되는 상황.

투기가 순간적으로 더욱 강하게 몸을 옭아매자 킬가린을 포함한 고블린들이 움찔거리며 틈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틈을, 기회를 엿보고 있던 세 명은 놓치지 않았다.

“하압!”

고블린의 육신을 일격에 반으로 가르는 붉은빛의 미늘창과 흑색의 검.

김주희의 경우에는 안타깝게도 힘이 살짝 부족해 완벽히 베지 못했다.

허나.

“운디네!”

“아쿠아 볼!”

펑!

결국 세 마리의 고블린들은 싸늘한 시체가 되어 지면에 쓰러졌다.

동시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도 높은 코인!

이 위급한 상황에서 차분히 분배를 하겠다는 것은 죽겠다는 것과도 다름이 없기에 그들은 되는대로 대충 코인을 흡수했다.

그러자 생존자들에게 맹공을 퍼붓고 있던 고블린들의 두 눈이 화등잔만하게 변했다.

선배 격, 그것도 8~12개월 차 정도가 아닌 이제 판도라로 진출하려고 하는 1.5년 차의 대 선배가 고작 7개월 차 인간에게 당하다니?

고블린 중 한 마리가 바지춤에 있던 뿔피리를 집어 들었다.

원군을 더욱 요청하려는 것!

눈을 번뜩 빛낸 이강호가 재빨리 마법을 시전 했다.

‘파이어 볼!’

쾅!

날아간 화염구는 뿔피리를 들고 있는 고블린을 포함하여 일대를 불태웠다.

“흐아압! 뒈져라!”

“죽어라 이 새끼들아!”

촤악!

서걱!

일행을 포함한 생존자들은 정말 모든 힘을 다해 분전했다. 허나, 고블린들은 전후좌우에서 계속 끝없이 몰려든다. 협공을 피하기 위해, 혹은 뚫기 위해 돌격했던 것이 시간이 지남과 동시에 효력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끄아아악!”

전장을 가득 메우는 처절한 비명. 허나, 전방 쪽은 그나마 양호한 편이었다.

후방에서는 그야말로 지옥, 아비규환이 일어나고 있었다.

“으으! 오지마!”

“키히히히!”

“끄아아악!”

일행이 있는 전방과 달리, 후방에는 고층계 고블린을 막을 사람이 없는 탓이다.

엄청난 무위를 선보이며 고블린들을 계속 죽여가가는 이강호의 눈이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좋지 못한 것을 떠나 무척 심각한 수준이다.

돌파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

그나마 걸어볼 것이라고는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티는 것뿐인데, 이마저도 아슬아슬 하다.

그의 두 눈에 땀을 비 오듯 쏟아내고 있는 유세현과 김주희가 비쳐보였다.

지금까지 척살한 고층계 고블린은 약 35마리.

코인의 흡수로 인해 여러가지 스텟이 상당히 많이 증가했다고는 하나 슬슬 힘이 부치기 시작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5m로 줄어든 유세현의 암흑투기의 범위가 다시 확대되지 않는다.

이 뜻은.

‘마력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D랭크의 적을 압박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양의 마나를 계속 암흑투기에 쏟아 부어야 한다.

벌써 20분 넘게 전투가 이어졌으니, 사실상 마나가 다 떨어졌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

계속 유지가 가능한 이유는 유세현이 마나 분배를 잘했기 때문이리라.

“유세현! 지금 원군이 얼마나 왔는지...”

“후욱, 후욱...큭!”

고층계 고블린 한 마리의 일격을 받은 유세현은 답할 여유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혀를 찬 이강호가 가세하려던 찰나였다.

“키히히히 너희가 레콰이크가 말한 그놈들이군!”

또 다른 고층계 고블린 한마리가 이강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강호의 눈썹이 씰룩였다.

레콰이크라고?

매우 많이 들어본 이름이었다. 이곳이 아닌 판도라에서.

뛰어난 힘과 카리스마로 고블린들을 하나로 규합시키고, 탁월한 전술로 코볼트의 진형을 노예로 만든 장본인.

고블린의 대족장.

그놈이 지금 이 구름섬에 있었다니.

‘설마? 지금까지 고블린들을 움직인 게?’

놈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

더군다나 이 이해가 안 되는 기습까지.

순식간에 짜 맞춰지는 퍼즐.

‘그놈이 이 구름섬에 있었다니...’

동료 이벨린 발디안의 확신이 틀렸다.

레콰이크의 힘을 몸소 체험 한바 있는 그녀는 자신과 레콰이크가 결단코 조우하지 않을 것이라 단언했었다.

그 당시 레콰이크의 스텟은 그만큼 우월하고 강했기 때문이다.

‘젠장. 일이 완전히 꼬였군.’

이강호는 입을 악물었다.

파이어 볼을 사용하면 안 됐던 것인데...

이렇게 되면 잔뜩 혈안이 되어 주시하고 있을 레콰이크에게 직접 위치를 노출 시킨 꼴이 된다.

‘아니, 어차피 비슷했겠군.’

뿔피리까지 준비시킨 것을 막을 수는 없는 법.

이강호는 곧바로 자세를 다잡았다.

“크크크! 많이 지쳐있군. 네놈의 모가지를 따주마! 우리의 번영을 위해서라도!”

슈우욱!

그러자 커다란 바스타드 소드가 엄청난 기세로 이강호의 복부를 향해 날아왔다.

암흑투기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라 치기에는 너무나도 매섭고 빠른 속도.

‘큭!’

재빨리 몸을 뒤로 내뺀 이강호의 체인갑옷에 바스타드 소드의 검신이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 간다.

매직 A랭크의 갑주임에도 일격에 잘려나가는 사슬.

눈앞의 적은 1년차도 1.5년 차도 아닌, 2년차 그 자체였다.

“크크크. 이걸 피해?”

“......”

고블린이 내뱉는 조소 속에서 이강호의 눈빛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체력이 만반인 상태라면 모를지언정, 잔뜩 지친 지금 눈앞의 적을 정면에서 대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오래 버텨야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만 한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지.

“유세현!”

“윽...왜?”

“투기에 더 마력을 쏟아 부어.”

“뭐?”

이강호의 말에 깜짝 놀란 표정이 된 유세현이 반문했다. 허나, 그것도 잠시.

“으~! 알았어!”

의미가 있을 것이라 판단한 유세현은 마력을 더욱 쏟아 부었다.

이것으로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단 5분.

고블린의 인상이 팍 일그러졌다.

“이건?”

더 강해질지는 차마 몰랐던 것.

지금까지 스킬을 전력으로 사용하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니.

틈을 놓치지 않은 이강호의 창이 고블린의 심장을 향해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고블린 또한 재빨리 바스타드 소드를 휘두르며 항전했다.

치지직!

병장기가 맞부딪치며 스파크가 튄다.

상황은 거의 막상막하. 아니, 이글거리는 화염 때문에 이강호가 좀 더 우세하다.

“크윽...무슨 열기가...”

고블린의 입에서 악에 받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고작 해봐야 7개월 차, 또한 상태를 보면 체력과 마력도 거의 바닥이다.

즉, 고블린의 입장에서는 아직도 이런 위협적인 화염을 발산할 수 있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캬아악! 죽어라!”

역으로 쏟아지는 맹공.

이강호는 공격을 흘리며 이전 카르차만 때처럼 적을 붙잡을 기회를 엿봤다. 붙잡기만 한다면 부족한 마력으로도 어떻게든 죽일 수 있을 것이기에.

허나, 2년차라 그런지 아니면 경계심이 높아져서 그런지 적은 의외로 신중했다.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공격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

‘어쩔 수 없군.’

붙잡겠다는 생각은 포기한 이강호는 차분히 심호흡을 내쉬었다.

반대로 부릅 뜬 두 눈동자에서는 진한 살기가 단번에 뿜어져 나왔다.

창대를 고쳐 쥐기 무섭게 이어지는 역공.

상상할 수 없는 빠르기였다.

챙!챙!챙!

육체를 극한까지 몰아붙인 덕에 단숨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심장은 부서질 듯 맹렬히 펌프질을 한다.

육체는 살려달라고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한계라고, 그만하라고.

허나, 이강호는 이런 한계를 몇 번이고 뛰어넘어왔다. 아니 그렇게 해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키륵...무슨!”

적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빨라진 창의 속도에 고블린은 암흑투기를 피해 황급히 자리를 이탈하려 했다. 그러나 눈앞의 인간은 도저히 발을 뗄 틈을 주지 않는다.

당황한 고블린이 이용할 것을 찾기 위해 순간적으로 눈을 데굴데굴 굴린 찰나였다.

챙!

이강호가 창을 힘껏 치켜 올리자 바스타드 소드가 튕겨나가며 고블린의 양팔이 높게 들렸다. 그 순간 오른쪽 주먹을 내지르는 이강호의 입에서 싸늘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죽어라.”

콰과광!

단숨에 일대를 휘감는 청염.

청염은 정말 순식간에 주변을 새까맣게 불태웠다.

그러나.

“크, 크윽. 이, 이 자식이...”

안타깝게도 고블린을 처리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 나타난 고블린의 동료가 그를 구출한 것이다.

“칼륀. 꼴이 말이 아니군.”

“크으윽...페르도라...저 놈들을 죽여...정말 위험한 놈들이다.”

여태까지 이강호를 상대했던 칼륀이 검게 그을린 팔을 치켜세웠다. 그러자 페르도라라고 불린 고블린이 고개를 꺾어 둘을 바라봤다.

긴장감이 공간을 가득 메운다.

체력과 마력을 전부 소진한 셋은 정말 온 힘을 다해 억지로 자세를 유지했다.

그들은 지금 당장에 도망칠 힘도 없었다.

만약, 이런 상태에서 페르도라라는 놈이 나서게 된다면 100% 죽는다.

페르도라가 중얼거렸다.

“그래, 내가 처리하겠다.”

“...!!”

이강호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칼륀을 바닥에 내려놓은 페르도라가 옆구리에 차고 있던 시미터를 묵묵히 꺼내드는 순간이었다.

둥! 둥! 둥!

정말 그렇게 듣고 싶었던 북소리가 초원 가득히 울려 퍼졌다.

격전을 치르던 생존자들의 안색이 약간이나마 펴졌다. 이것의 의미하는 바는 무척이나 간단하기 때문.

시미터를 다시 집어넣은 페르도라가 칼륀을 향해 말했다.

“바로 퇴각해야겠다.”

“주, 죽이고 퇴각해! 얼마 안 걸리잖아!”

“안돼. 북이 울렸다는 건 적이 정말 코앞까지 왔다는 거다. 잘못하다간 못 빠져나갈 수도 있어.”

“크윽...”

칼륀이 입에서 침음성이 터져 나왔다.

페르도라는 그런 칼륀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다시 안아들었다. 타지 않은 한쪽 손에 바스타드 소드를 움켜진 칼륀이 잔뜩 핏대가 선 눈으로 이강호를 노려보며 외쳤다.

< 급습(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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