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96화 (96/612)
  • < 급습(1) >

    이강호가 송글 송글 맺혀있는 땀을 팔로 훔치며 말했다.

    “여기까지 하자.”

    “후...그럴까.”

    둘은 이내 들고 있던 병장기를 거두었다. 그와 동시에 이강호의 육신을 짓누르고 있던 압박도 사라졌다.

    당장이라도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이 무척이나 가벼워진 몸.

    제자리 뛰기로 상태를 체크한 이강호가 쓴웃음을 내뱉었다.

    ‘이건 내가...진 거군.’

    어느 정도의 힘으로 창을 휘둘러야 멈출 수 있는지 알고 있는 자신과 달리 유세현은 불안감 때문에 마무리 일격에는 거의 힘을 줄 수가 없다.

    때문에 만약 그가 온 힘을 다해 휘둘렀다면 반격을 커녕 자신의 발목이 날아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정도라면...’

    정정한다. 그는 E랭크 80%가 아니라 D랭크로 올라간 1.5년차의 생존자들과 당장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물론, 장기전으로 이어지게 된다면 마력이 버티지 못하겠지만.

    아무쪼록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일.

    “자, 지금부터는 어제처럼 덤벼봐”

    잠깐을 휴식을 취한 그들은 곧장 훈련을 재개했다.

    * * *

    저벅 저벅.

    쟁탈전이 벌어지는 위치로 이동을 개시한 생존자들의 얼굴에는 여지없이 긴장이 잔뜩 어려 있었다.

    오늘은 또 얼마나 많은 인원이 죽어나갈 것인가.

    항상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그들이었지만, 전면전이 펼쳐지는 이 쟁탈전만큼은 몇 번을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강한 힘과 동료 그리고 팀플레이 뿐!

    이러한 연유로 최전방에 서서 나아가고 있는 유세현 일행의 귓속으로는 팀 라이트 인원들의 중얼거림이 연신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저들이 정말 소문만큼 그렇게 강할까?”

    “흠, 글쎄? 쟤네들 팀 합 맞추는데 한 번도 안 나왔잖아. 솔직히 나와서 기량을 좀 보여줄 줄 알았는데...권한을 양도 했다고 들었을 때부터 설마 설마 했는데 그렇다고 아예 안 올지는 정말 꿈에도 몰랐다.”

    “...역시 일부러 피한 거려나?”

    “몰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분명한건 소문이 너무 비약된 것 일 수도 있다는 거지.”

    “흠...역시 그렇겠지?”

    “뭐, 상부에서 직접 스카웃을 하러 나섰던 만큼 상당히 강하기는 하겠지. 하지만 너무 기대하지는 마. 어차피 그들도 우리와 같은 6개월 차다.”

    “하긴...”

    직접 눈으로 확인 하지 못해 소문을 믿지 못하는 자들.

    여러 군데에서 울려 퍼지는 지방방송은 생각보다 시끄럽고, 명확하게 들렸으나 일행은 굳이 왈가왈부 하지 않았다.

    100마디의 말보다 직접 눈으로 보는 편이 훨씬 이해가 빠를 것이기에.

    상부에서 미리 언질을 들은 토마스가 머쓱한 표정이 되어 옆에 있는 이강호를 향해 연신 고개를 꾸벅 숙였다.

    “부하들의 무례 정말로 죄송합니다. 소문만 났지 두 눈으로 직접 본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

    “아니에요.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이해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토마스도 사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힘을 그렇게 믿고 있진 않았다. 팀원들의 말처럼 소문은 비약되기 십상이니까.

    그는 그들이 얼마나 강한지 한번 두고 볼 생각이었다.

    * * *

    이윽고 쟁탈전이 시작되었다.

    6개월 차인 그들의 역할은 중심부에서 오른쪽에 위치한 적의 날개 진형을 격파하여 균형을 부수는 일.

    전두지휘를 맡은 토마스의 명령에 따라 팀 라이트의 인원들은 진형을 유지하며 적들과 싸워나가기 시작했다.

    적들 또한 스텟이 거의 비슷하기에 전투의 양상은 막상막하.

    토마스는 힘겨운 싸움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허나, 그때였다.

    “키에엑”

    “캬야아악.”

    병장기가 부딪치고 파열음이 울리는 전장의 살벌한 열기 속에서 일방적인 비명이 귓가로 들려왔다.

    무심코 고개를 돌려 소리의 근원지를 살핀 토마스의 두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그곳에서는 고블린들이 정말 일방적으로 학살당하고 있었다.

    흑색의 검과 불길을 머금은 창이 무자비하게 움직일 때마다 고블린들의 육신은 힘을 잃고 지면으로 픽픽 쓰러진다.

    실시간으로 쌓여가는 시체의 산.

    “키릭, 무슨...”

    “너, 너무 강하다.”

    언제나 용맹한 모습을 보이던 고블린들이 주춤 거리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토마스를 포함한 팀 라이트 일원들의 턱이 딱 벌어졌다.

    그 흉폭한 고블린들을 주눅 들게 만들 수 있는 무위라니.

    상부의 인원들을 놀라 게 만들었다는 일격을 아직 확인한건 아니었으나 그들은 소문이 결코 비약된 것이 아님을 단번에 깨달았다.

    토마스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외쳤다.

    “지휘관께서 적들의 사기를 깨부수셨다! 지금이다! 전부 몰아붙여라!”

    “우와와와와!”

    그 외침에 그들의 중대를 포함한 여타 팀들까지 맹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힘의 구도가 무너짐과 동시에 점점점 한쪽으로 꺾여가는 날개.

    이윽고 고블린들을 잡아먹듯 둘러싸는 그림이 만들어지자 세 명은 정말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보다 더 많은 공적치를 올리기 위하여, 보다 더 많은 코인의 흡수를 위하여.

    결국 버티다 못한 고블린들은 퇴각하기 시작했다.

    고블린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춤과 동시에 나타나는 익숙한 문구.

    [쟁탈전에서 승리하셨습니다. 공헌도에 따라 석판이 차등 지급됩니다. 특수필드가 해제 됩니다.]

    일행의 손에는 또다시 수십 개에 달하는 석판이 눈앞에 두둥실 떠있었다.

    재빨리 다가온 토마스가 셋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며 경의를 표했다.

    “정말 대단 하십니다. 덕분에 보다 더 손쉽게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아뇨. 해야 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어차피 서로가 서로를 이용한 것이기에 일행은 겉치레적인 말로 답변했다.

    막 석판을 집은 유세현이 포켓에 집어넣으려는 찰나였다.

    자연스럽게 주변 마력을 파악해 나가고 있는 그의 감각에 거센 회오리가 휘몰아쳤다.

    엄청나게 높은 마력을 지닌 대군이 맹렬한 속도로 이곳으로 접근하고 있다.

    거리도 제법 되는데다가 전투에 온 신경을 쏟은 턱에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

    ‘이, 이건!’

    초원을 감싸듯 넓게 분포 되어있는 마력의 숫자를 읽은 유세현의 눈동자가 파르르 흔들렸다.

    이건 결코 인간이 아니다.

    “이, 이강호!”

    유세현은 황급히 현 상황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러자 이강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대 군세와 높은 마력의 양.

    이것의 의미하는 바는 무척이나 간단했기 때문.

    ‘고층계 놈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건가? 하지만 도대체 왜?’

    고층계 인원들의 경우 스탯이 D랭크로 올라가 있는 만큼, 저층계의 인원을 죽여 코인을 흡수해봤자 별로 의미가 없다.

    또한 아이템도 고층계의 것이 좀 더 좋다. 아니, 스킬이 정말 탁월하게 뛰어나지 않는 한 아이템이 일정 수준 이상 되지 않으면 애초부터 고층계에 도달할 수도 없다.

    즉, 이 뜻은.

    ‘순수하게 우리를 죽이러 오고 있다는 건가? 후배들을 위해서?’

    말이 아예 안 되는 건 아니다.

    지능을 얻었다고 하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 턱에 인간처럼 이기적이지가 않으니까.

    허나, 그렇다고 해도 여태까지 관여 않던 그들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도와주러 오는 것은 너무 이상하다.

    그렇기에 나오는 결론.

    ‘누가 이놈들을 움직였다는 거군.’

    순간적으로 이전 쟁탈전때의 일이 생각났으나, 이강호는 일단 상념을 접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곳을 탈출하는 일!

    “세현아 빠져나갈 틈 같은 건 있냐?”

    “아니, 없어...”

    도망쳤던 7개월 차도 그새 합류해 틈이 보이지 않는다.

    “적들의 예상 도착 시간은? 짐작할 수 있겠어??”

    “이대로라면 약 20분...”

    “알았어.”

    고개를 끄덕인 이강호는 재빨리 토마스에게 다가가 빠르게 자초지종을 설명해 나갔다.

    그러자 처음에는 웃으며 내용을 듣던 토마스의 안색이 점점 사색으로 바뀌어져갔다.

    고층계의 적들이 이곳을 향해 오고 있다니.

    그는 마음 같아서는 부정해버리고 싶었지만 정보를 주는 인원이 이강호인 만큼 결코 그러할 수 없었다.

    진짜라면 당장에 대책을 마련해야 했음으로.

    허나, 그 압도적인 힘을 지닌 고블린을 상대로 어떤 대책을 세워야 된단 말인가.

    “저...그, 그럼 어떻게 해야...”

    “양도했던 권한 다시 받아가도 되겠습니까? 제가 알아서 해보겠습니다.”

    “무, 물론 입니다.”

    토마스는 이강호의 말을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이강호가 재빨리 유세현을 향해 말했다.

    “세현아 어깨 좀 빌린다.”

    “어, 빨리해라 얼마 안 남았어.”

    이강호는 곧장 유세현의 어깨 위에 섰다. 주위를 한번 훑은 그가 담소를 나누고 있는 생존자들을 입을 열었다.

    “모두 주모오오옥!”

    일대를 울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

    이강호는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확인하기 무섭게 재차 외쳤다.

    “나는 팀 라이트 A-10조의 중대장 이강호라 한다! 지금 적의 대군이 다시 이곳을 향해 돌진해 오고 있는 것이 포착 되었다! 그중에는 1년차가 넘는 고층계 적들도 포함되어있다! 때문에 지금부터 우리 A-10조는 이곳을 벗어

    나기 위해 돌파하기위해 돌파를 강행할 것이다! 다시 말한다! 나는 팀 라이트의...”

    딱 두 번 반복해 말하는 이강호의 연설은 무척 짧고 임팩트가 있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이강호 스스로의 위신은 결코 아니었다.

    이것은 구름섬 5대 팀에 속하는 팀 라이트의 명성.

    “...살고 싶은 자는 우리의 뒤를 따라라! 설명할 시간이 없다! 앞으로 3분 뒤 팀 라이트는 전원 이곳을 뜨겠다!”

    통보를 한 이강호는 재빨리 유세현의 어깨에서 내려왔다.

    그러자 주위가 일순간 술렁였다.

    메인 팀도 아닌 날개 팀에서 이런 통보를 내릴 줄은 미처 상상도 하지 못한 것.

    때문에 보통이라면 장난이라 자부하고 그저 웃어 넘겼을 것이다.

    허나, 그럼에도 그들이 이렇게 신경 쓰는 이유.

    말을 꺼낸 자가 팀 라이트의 인원이기 때문이었다.

    책임이 따르는 만큼, 단순히 흘려들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강호가 멍한 눈초리가 되어 있는 팀원을 향해 말했다.

    “토마스에게서 권한을 다시 위임받았다. 지금부터는 내가 A-10조를 통제한다. 이건 긴급 상황이다. 때문에 이유를 설명해 줄 시간도 없다. 알겠나?”

    “......”

    당황한 만큼 대답이 없었다. 이강호는 다시 한 번 크게 외쳤다.

    “알겠나!”

    “예, 예!”

    본디 계급사회에 있어서 직책은 절대적인 권력.

    갑작스럽게 돌변한 이강호의 태도는 분명 그들에게 적응되지 않을 것이다.

    허나, 반대로 말하자면 심각함을 일깨워주기에는 이것이 제격이다.

    토마스에게 권한을 위임하여 아무 관심 없이 묵묵히 싸워나가던 사람이 갑자기 태도를 바꿀 이유는 전혀 없었으므로.

    이윽고 시간이 지나자 최선두에 서 있던 이강호가 외쳤다.

    “모두 이동하라!”

    “예!”

    100명가량의 인원이 질주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전투를 함께하며 그들의 무위를 지켜봤던 여타 팀의 생존자들이 하나 둘씩 동요를 일으켰다.

    “어, 어떡하실 겁니까?”

    “흠...”

    “마, 만약 사실이라면 지금 이동하는 게 맞습니다. 아, 아니, 아니라도 일단은 따라가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손해도 없는데다가 저들이 갑자기 저럴 이유는 없습니다.”

    “...그래, 맞는 말이다. 우리도 뒤따른다! 전원! 이동하라!”

    하나 둘 뒤따르기 시작하는 여타 팀들.

    이윽고 군중심리에 자극받은 오른쪽 날개에 위치해있던 팀들이 썰물 타듯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중심부에 위치해 있던 팀 라이트의 지휘자들은 살짝 넋이 나간 표정이 되었다.

    설마 저걸 진짜로 뒤따르다니.

    “어떻게 하죠?”

    “A-10조의 이강호라고 했었나? 잘 기억해둬라. 만약 한 말이 거짓이라면 책임을 물어야 될 테니까.”

    “그 말은...”

    “일단은 뒤따른다! 우리 팀 이름을 팔았는데 안갈 수는 없잖아!”

    “예!”

    이윽고 대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뒤따라오는 인원들을 슬쩍 흘긴 이강호가 눈매를 좁혔다.

    이 행동으로 인해 좀 더 시간을 벌었다지만 이 앞은 지옥.

    과연 뚫을 수 있을 것인가. 혹은 버틸 수 있을 것인가.

    4분을 더 달리자 눈앞으로 적의 군세가 눈앞으로 나타났다. 뒤 따르던 인원들의 입에서 경악이 터져 나왔다.

    “지, 진짜라니! 그렇다면 정말로 1년차 되는 놈들도?”

    “정신 줄 놓지 마 짜샤! 놓으면 뒤지는 거야! 이런 대규모 움직임이라면 본대도 알고 있을 테니 지원 올 때까지 버티면 돼! 그리고 우리 쪽에도 호위로 따라온 1년차 몇 팀이 있잖아?”

    “크윽! 씨바아알!”

    이윽고 두 세력이 충돌했다. 생존자들을 팀플레이를 기반으로 하여금 최대한 냉정하게 대처 하려 했다.

    그러나.

    “캬아악!”

    두 눈을 번뜩인 고블린 한마리가 들고 있던 기다란 폴암을 횡으로 휘둘렀다.

    거칠게 휘몰아치는 풍압.

    단번에 차이를 느낀 6개월 차 생존자 2명은 동시에 무기를 맞대는 것으로 힘을 분산시켜 방어를 하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팅!

    단 한 번의 일격의 무기가 날아가자 두 사람의 눈동자가 파르르 흔들렸다.

    “어, 어떻게...”

    “씨, 씨발 이건 너무 말도 안...컥!”

    두 사람은 채 말을 끝낼 수 없었다.

    콰직.

    순식간에 다가온 폴암이 두 사람의 육신을 완전히 짓이긴 것.

    시체를 짓밟은 고블린의 입에서 광소가 터져 나왔다.

    “키히히히히! 전부 죽여라! 강자는 내가 처리 하겠다.”

    < 급습(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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