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95화 (95/612)

< 친선대결 >

“흠...아무리 그래도 그것과 지휘는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확실히 그렇긴 하죠. 하지만 그 건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실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께서 지휘를 맡는 것에 대해 인원 대부분이 흔쾌히 수락했거든요.”

“호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결국 셋은 제안을 수락하기로 했다.

이제 남은 기간은 약 4일.

일행은 다음날 곧바로 취임식을 가졌다.

조촐하게 마련 된 단상위에 세 명이 천천히 올라서자 쟁탈전을 함께할 인원들의 시선이 집중 되었다.

수는 약 100명.

셋을 바라보는 그들은 정말 의외라는 눈빛을 발산 하고 있었다. 착용하고 있는 무기나 갑주가 생각보다 조촐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평범해 보이는데?”

“그러게.”

“뭐, 아무렴 어때? 어차피 상관없잖아?”

“하긴. 그렇긴 하지.”

옆에 있는 사람과 느낀 감상을 주고받는 인원들. 그런 그들의 느슨한 행동은 상관으로 대할 자를 면전에 둔 병사의 모습이 결코 아니었다.

마치 막 입대해 자대를 배치 받은 민간 부사관을 대하는 듯한 느낌.

아니, 소문이 나돌고 있는 만큼,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상관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강호는 낮게 실소를 내뱉었다.

지극히 예상하고 있던 반응이었기 때문.

그들은 이끌어줄 자가 정말 필요해서 자신들을 원한 것이 아니라, 강한 무력을 지닌 사람이 있을시 보다 더 안전해지기 때문에 원한 것이리라.

‘괜찮군.’

이렇게 되면 굳이 귀찮게 직접 지휘를 할 필요가 없다.

지휘를 할 사람은 분명 이미 정해져있을 것임으로.

아니나 다를까 짧은 취임식을 끝내고 단상을 내려가자 한 남성이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세 명이 없을 때 동안 팀의 임시 중대장 역할을 맡아왔다는 남자, 토마스 릭.

간단한 대화를 이어가던 토마스가 슬쩍 운을 뗐다.

“저 이강호 중대장님. 각 소대의 진형을 어떻게 배치하실 건지 혹시 생각해 두신 게 있으십니까?”

“아, 그것 말인가요? 사실 아직 마땅히 생각해 둔 게 없습니다. 사실 누가 어떤 스킬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거든요.”

“흠, 쟁탈전이 바로 내일 모레인데...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간단히 조언을 해드려도 되겠습니까?”

“오, 그러면 저야 고맙죠.”

이강호는 대화를 이어가다가 모른 척 토마스에게 권한을 양도했다. 생각보다도 훨씬 일이 잘 풀린 토마스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이것이 바로 윈윈 전략.

“그럼, 그렇게 알고 제가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잘 부탁드릴게요.”

이윽고 토마스가 복도 저편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러자 이강호에게 어깨동무를 한 유세현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20년 더 살더니 능구렁이 다됐네.”

“...필요한 걸 했을 뿐이다 짜샤.”

“그래그래. 누가 뭐라냐. 그냥 그렇다는 거지.”

“허...알았다 알았어.”

이강호는 친근하게 구는 유세현을 보며 실소를 내뱉었다.

그는 회귀한 것을 밝힐 때까지만 해도 서먹서먹해 질 것을 고려하고 있었다. 20년이라는 세월의 갭은 그야말로 어마무시 했으니까.

허나, 내용을 들은 유세현과 김주희는 정말 별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외형이 20대와 똑같아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믿고 있기에 그런 것일까.아무쪼록 이것만큼은 이강호로서도 알 수 없었지만 나쁜 기분은 결코 아니었다.

* * *

쟁탈전의 준비로 인해 모두가 분주한 오후.

주둔지의 외각에 위치한 작은 공터에서는 두 사람이 마주보고 있었다.

토마스 덕분에 할일이 없어진 이강호와 유세현이었다.

그들이 이런 후미진 곳을 찾은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스킬은 사용하기 없음이지?”

“응, 최대한 열심히 덤벼봐.”

“크...알겠어. 너무 세서 당황하지나 마라.”

말을 마친 유세현의 두 눈동자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의 손에는 루베르크의 길이만 한 목검이 들려있었다.

이에 이강호 또한 들고 있던 장대를 앞으로 뻗었다.

둘이 하려는 것은 대련!

하루 동안 딱히 할 것이 없기에 이강호가 둘의 움직임을 봐주기로 한 것이다.

심판역을 맡은 김주희가 손을 내리며 외쳤다.

“시~작!”

파앗.

선공은 유세현으로부터 이어졌다.

우측 상단으로부터 쇄도해 들어가는 목검.

대련이라고 하나 유세현은 질 마음이 없었다. 아니, 전력을 다해야지만 이강호의 신묘한 움직임을 이끌어 낼 수 있을 리라.

유세현은 사선방향으로 힘차게 목검을 내리그었다.

후웅!

공간을 메우는 커다란 풍압. 허나, 이강호의 몸에 닿지는 못했다. 순간적으로 좌측으로 몸을 내빼 회피한 것.

그 순간 유세현의 두 눈이 번뜩 빛났다. 노림수였기 때문.

그는 배운 검술 같은 건 없었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인해 어떤 식으로 공격했을 때 적이 어느 장소로 회피하는지 대충이나마 읽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 간격에 이강호가 딱 들어온 것.

유세현은 그대로 몸을 회전시키며 뒤돌려 차기를 했다.

노리는 것은 이강호의 명치.

그러나.

“동작이 너무 커.”

귓가에 일렁이는 목소리와 함께 옆구리에 강한 충격이 이어졌다. 유세현은 황급히 몸을 뒤로 내뺐다.

이강호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 건 상대적으로 스텟이 유리한 상대에게 사용하는 편이 좋아. 비슷한 상대에게는 동작이 큰 뒤돌려 차기 같은 건 되려 역전의 기회를 준다.”

“으...오케이.”

“그래, 다시 한 번 와라.”

이강호가 손을 까딱였다. 유세현은 조언을 토대로 공격을 짧게짧게 이어갔다.

상단베기로 시작하여 좌우베기까지.

허나, 몇 번을 매섭게 공격해도 검신이 이강호의 몸에 닿는 일은 없었다.

툭.

스르륵.

아무리 맹공을 퍼부어도 물 흐르듯 공격을 자연스레 흘려버린다. 만약 그가 단순하게 방어를 했더라면 힘 때문에 나무로 된 창대가 부러졌을 터인데.

퍽.

“큭.”

견제타를 허용한 유세현은 이강호에게 맞선 자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괴물.

그렇다, 그렇게 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다. 어떻게 해도 도저히 틈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후우...정말 장난 아니네.”

“방금 공격은 좋았어. 단지 아쉬운 게 있자면...”

재빠르게 움직인 이강호의 창끝이 유세현의 가슴을 향해 날아왔다. 유세현은 방어를 위해 목검을 황급히 들어올렸다.

그때였다.

갑작스레 창이 뒤로 물러나며 이강호의 몸이 회전했다.

방금 전 유세현이 사용한 뒤돌려 차기.

우측으로 들어오는 발을 확인한 유세현은 재빨리 방향을 꺾어 피하려 했으나 때는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퍼억.

제대로 가격 당해 지면을 한 바퀴 뒹구는 몸.

황급히 자세를 다잡은 유세현의 귓가에 목소리가 재차 울려 퍼졌다.

“공격이 너무 정직해.”

“...정직? 아니 그보다 너 비슷한 상대한테는 뒤돌려 차기 같은 거 하지 말라며?”

“그렇지. 그런데 그건 무차별적으로 정면에서 사용할 때고, 이건 좀 상황이 다르지. 지금 내가 한 동작이 커 보였어?”

“아...”

유세현은 이강호의 말의 의미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확실히 페이크모션으로 인해 반응이 늦어 동작이 전혀 커 보이지 않았다.

“아! 그리고 내가 말한 대로 자잘하게 공격하는 건 좋아. 하지만 검을 너무 그렇게만 휘둘러서도 안돼. 패턴을 읽히거든.”

“...그래서 요점은?”

“적재적소에 맞게 잘해야 된다는 거지.”

“...결국 센스가 필요하다는 거네.”

유세현은 쩝 입맛을 다셨다. 아무리 봐도 자신은 검술에 엄청난 재능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아무튼 계속 덤벼봐.”

“어야. 알았다.”

이강호는 유세현과 김주희를 번갈아가며 대련을 계속해 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해가 저물어가고 있을 때쯤에는 김주희와 유세현이 잔뜩 녹초가 된 채 땅위에 쓰러져있었다.

몬스터를 사냥할 때조차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거친 숨을 몰아쉬던 김주희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강호를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서, 선배님. 해도 떨어졌는데 오늘은 이만 돌아가는 게...”

“처음에는 밤을 새도 괜찮다며?”

“힉!”

“농담이다. 내일 계속하자.”

그들은 곧 유세현과 김주희가 체력을 약간 회복하기 무섭게 팀 라이트의 건물로 향했다.

천막에서 지내는 편이 좀 더 자유로워서 좋지만 지휘관으로 취임해있는 만큼, 팀 라이트의 건물에서 생활해 달라는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간단히 정비를 한 뒤 곧장 취침에 들었다.

그리고는 아침 일찍 토마스에게 간단히 보고를 한 뒤 또다시 공터로 떠났다.

어제와 같이 마주 선 유세현이 스트레칭을 하며 물었다.

“오늘도 어제처럼 할 거지?”

“물론. 하지만 그전에 한 가지 파악해두고 싶은 게 있어.”

“뭔데?”

“너의 진짜 저력.”

눈을 번뜩 빛낸 이강호가 등에 메고 있던 화염 미늘창에 손을 얹었다. 유세현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설마, 제대로 해보자고?”

“응.”

이강호는 지금까지 줄곧 유세현이 지닌 암흑 투기가 어느 정도의 위력을 지녔는지 궁금했다.

과연 자신에게도 통할 것인가.

유세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흠...아무래도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괜찮아. 화력이 높은 스킬은 사용하지 않으면 되니까.”

“아 그래? 뭐 그렇다면야...그럼 뭐뭐 사용할 수 있다고 할래?”

둘은 곧바로 룰을 정하기 시작했다.

이강호가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은 1~2서클의 보조마법과 가속 마법인 엑셀 그리고 마비독이었고 유세현이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은 프로즌 디퓨전과 암흑투기 그리고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였다.

무기를 쥔 둘은 서로를 주시했다.

손을 치켜든 김주희의 이마에서 자신도 모르게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과연 둘 중에 누가 더 강할지...순수 격투 능력으로 보자면 당연히 이강호가 우위겠지만, 유세현의 스킬은 왠지 모든 것을 커버하고도 남을 것 같았다.

“준비! 시~작!”

훅!

김주희가 손을 내리기 무섭게 두 사람의 신형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강호는 어제와 다르게 전혀 여유를 두고 있지 않았다.

드래곤을 상대할 때 가졌던 필사즉생의 마음가짐.

유세현이 지그시 감았던 두 눈을 뜬 순간이었다.

쿠구궁!

형상화 된 새까만 투기와 함께 스켈레톤킹때와는 차원이 다른 압박이 이강호의 육신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정신력 하나만큼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터인데.

‘이건...정신력 때문이 아니다.’

부족한 속성저항력.

정신력을 떠나, 회귀 전에 비해 유난히 약해진 육신이 버티질 못하는 것이다.

생각보다도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

‘큭!’

이강호는 정신력으로 최대한 투기를 억제하며 유세현의 공격을 받았다.

어제의 유세현이 그랬듯, 이강호 또한 지금껏 유세현을 대적한 자들의 심정이 느껴졌다.

설마 설마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이것을 제대로 상대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D랭크에 속하는 어둠속성 저항력을 가지고 있거나, 이에 버금가는 신성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

챙! 챙!

거칠게 맞부딪치는 병장기와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는 전투의 구도.

순수한 체술만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음을 확실한 이강호가 모든 스킬을 응용하기 시작했다.

‘인탱글.’

뿌리를 솟구치게 해 강제적으로 이동하게 만든 뒤.

‘그리스.’

지면의 마찰력을 순간적으로 없애 균형을 무너트린다.

마지막으로는 맹렬한 빛을 내뿜는 라이트 마법까지

번쩍!

“윽!”

갑작스러운 빛에 잠시나마 시력을 잃은 유세현이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이강호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디그.’

시전과 동시에 푹 꺼지는 땅.

새로이 얻은 2서클 마법서에 속해있는 보조마법이었다.

높이가 약 2.5m정도 되었기에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도약을 해야 되는 상황.

유세현은 예상대로 황급히 벽을 차 도약했다. 그리고 그 틈을 이강호가 놓칠 리가 없었다.

순간적으로 엑셀을 사용한 그는 균형이 무너져 있는 유세현을 향해 창을 휘둘렀다. 자신의 승리를 반쯤 예상하면서.

이제 남은 것은 아슬아슬하게 창을 멈추는 것뿐!

허나 그때였다.

솟아오른 유세현의 신형이 법칙을 무시하듯 갑작스레 땅으로 꺼지며 오히려 이강호의 밑을 잡았다.

법칙을 무시하는 보법,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유세현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맺혀있었다.

쉬이익!

이윽고 매섭게 바람을 가르며 들어오는 마검 루베르크.

이강호는 그 불안정한 자세 속에서도 재빨리 루베르크의 검등을 발로 찬 뒤 지면에 착지했다.

그러자 눈이 동그랗게 변한 유세현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와...그걸 차?”

“......”

이강호는 답하지 못했다. 이것은 그에게 있어서도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오랜 경험이 없었더라면 차마 해내지 못했을 임기응변.

“우와...”

관전을 하고 있던 김주희는 이미 넋이 반쯤 나간 상태였다.

< 친선대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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