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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88화 (88/612)
  • < 발각(2) >

    [이강호, 유세현]

    게릭의 눈꺼풀이 맹렬하게 닫혀다 뜨였다를 반복한다. 단순한 망상이라 치부하고 있던 그는 지금의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간 쌓인 경험이 현 상황에 대해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하지만.

    ‘이놈들은 진짜다.’

    구름섬의 생태를 알고 있는 게릭은 억지로라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험난한 튜토리얼을 뚫고 구름섬으로 올라오는 수많은 인종의 생존자들.

    그중 한국인이란 것을 고려해서 확률을 계산했을 때 본디 한 개의 이름이 겹치는 것 또한 좀처럼 흔한 일이 아니다.

    헌데 한 개가 아닌 두개의 이름이, 그것도 연속적으로 겹치다니 이건 사실상 말이 아예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들이 1개월 차라고 가정을 한다면, 지금까지 그저 막연히 이상하게만 생각되던 것들이 얼추, 아니 완전히 짜 맞춰진다.

    에드워드의 실종 이유를 단번에 파악한 게릭이 혀를 찼다.

    그는 에드워드가 종종 제법 쓸만한 스킬을 지니고 있는 새내기들을 노린다는 것은 얼추 알고 있었다. 단지, 상부에 잘 둘러 대주면 약간이나마 떨어지는 콩고물이 있었기에 모른 척 했을 뿐.

    그렇기에 처음 실종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저 막연히 추격이 더뎌져 돌아오는 게 늦어지고 있는 것이라고만 생각 됐을 뿐, 진심으로 에드워드가 죽었을 거라고 전혀 생각지 않고 있었다.

    게릭은 미간을 좁혔다.

    지금 이 상황은 별로 좋지 않다.

    신예인 터라 주둔지의 일원임에도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려 했는데, 만약 추측이 사실이라면 에드워드 때문에 팀 헤르메스에게 악감정을 품고 있을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게릭은 잔머리와 우수한 판단력 그리고 빠른 행동력으로 추후 팀 헤르메스를 이끌 재목으로 거론되고 있는 만큼 적당한 선에서 빨리 일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젠장, 퍼질러 놓은 똥 한번 제대로 치워야 되는군.’

    게릭은 우선 진상규명부터 확실히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곧바로 팀에 들어온 새내기들을 개인적으로 불러 모았다.

    별로 큰 이유는 아니었다. 행여나 유세현과 이강호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해서였다.

    “여기서 유세현이나 이강호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나? 만약 알고 있다면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니 개인적으로 나를 찾아오도록 해라. 그럼 이만 해산!”

    게릭의 말에 우르르 새내기들이 이동을 개시했다.

    이윽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뭐지?”

    “아까 말씀 해주신 건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오~들어와라.”

    게릭이 허락을 내리자, 천막내부로 한 남자가 제식을 간춘 절도 있는 모습으로 걸어 들어왔다. 빠릿빠릿 움직이는 것이 사뭇 군기가 바짝 든 모습.

    남자는 이참에 게릭에게 눈도장을 콱 찍을 생각임이 분명했다. 고개를 90°로 숙인 그가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1-1팀에 속해있는 ‘이한철’이라고 합니다.”

    “오, 1-1팀? 제법하나 보군. 이한철이라...그래, 우선 앉아라.”

    “예!”

    게릭은 이한철과 간단한 질의응답시간을 가졌다. 이한철은 권력과 안정성 때문에 이용석의 팀에 나온 만큼 아는 것에 대해 최선을 설명했다.

    내용을 듣는 게릭의 눈이 점점 커져간다.

    공백이 있긴 하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무용담이었다.

    제단을 완전히 클리어하고 미로에서 보스를 잡았다니.

    ‘하긴 이 정도가 아니라면, 그렇게 까지 강해질 수는 없지.’

    궁금한 내용을 거의 파악한 게릭이 마지막으로 대놓고 물었다.

    “그래서, 너는 둘의 스킬까지 알고 있나?”

    “전부는 아니지만 얼추 알고 있습니다.”

    “호오...혹시 말해줄 수 있겠나?”

    “예.”

    “...지금 네가 하는 행동이 걔네들을 배신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이유는 안 물어봐도 괜찮은 거냐?”

    “저는 현재 팀 헤르메스의 소속입니다.”

    이한철이 망설임 없이 답하자 게릭의 입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출세를 위해서라면 과감히 버릴 것을 버릴 줄 아는 냉철한 인간.

    게릭은 이런 자들을 싫어하지 않는다.

    제법, 아니 많이 유용하니까.

    “크흐...이름이 뭐라고 했지?”

    “이한철 입니다.”

    “그래, 이한철 어디한 번 말해봐라.”

    “예.”

    이한철은 곧장 유세현의 프로즌 디퓨전, 이강호의 파이어 에로우 등에 대해 설명해 나갔다.

    말을 들은 게릭은 광역스킬을 사용한 인간이 단번에 유세현이라는 알 수 있었다.

    화염계열 능력자는 단신으로 카르차만을 처치했으니까.

    “좋다. 이한철 다시 부를 때까지 쉬고 있어라.”

    “예. 알겠습니다.”

    이윽고 이한철이 빠르게 천막을 빠져나가자 게릭은 곧바로 자신의 수하를 한 명 불러 세웠다.

    이전 에드워드 밑에 있던 로널드보다는 못하지만 제법 괜찮은 추적능력을 가지고 있는 여자, 제이미 그롬웰이 게릭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부르셨나요?”

    “어, 네가 긴히 조사해 줬으면 하는 게 있다.”

    “뭐죠?”

    “에드워드의 시체 좀 찾아봐.”

    “...시체 말인가요?”

    “그래, 이렇게 안 돌아오는 거 보면 분명 죽었을 거다 아마. 같이 간 칑탄이랑 로널드도 같이 당했을 테고.”

    제이미의 표정이 별안간 어두워졌다.

    칑탄과 제이미는 팀 헤르메스에 같이 들어온 동기였기 때문. 그녀가 무겁게 닫혀있던 입을 뗐다.

    “...죽은 게 확실한 건가요.”

    “거의 99%.”

    “...위치는 어디죠? 세 명이 당했다면 제법 위험한 장소 같은데, 제 능력으로는 무리인거 아닌가요?”

    “걱정마라. 가까워.”

    “어디...”

    “요새와 주둔지 사이.”

    게릭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유세현 일행의 이동경로 계산이 끝난 상태였다.

    제이미의 눈썹이 순간적으로 꿈틀거렸다.

    그곳에서 당했다는 것은 이 종족에게 죽은 게 아니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

    “100명을 대동해서 당장 출발하겠습니다.”

    “그래라. 참고로 시신을 발견하거든 무조건 수습해오고. 신체 일부라도 상관없어.”

    “...예.”

    말을 마친 제이미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혼자 남게 된 게릭은 탁자를 검지로 툭툭 내려쳤다.

    이미 에드워드의 죽음은 100%확정 되어있는 상황. 현재 그의 머릿속에는 현재 두 가지 생각이 교차하고 있었다.

    첫째는 슬그머니 사과를 하고, 에드워드 때문에 생겼을 악연을 끊는 일.

    둘째는 그들이 더 성장하여 주둔지의 핵심멤버가 되기 전에 처단하는 일.

    전자가 통한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통하지 않을 경우에는 후자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경우에는 명분이 필요하다.

    요새라면 쥐도 새도 모르게 다수가 덮쳐 처리했겠지만 그들은 주둔지에 있었으니까.

    끌어내기 위해서는 마땅한 사유가 필요한 것.

    그리고 게릭은 이에 에드워드의 시체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누명까지 덧씌워서.

    “후...피곤하군.”

    게릭은 침침해진 눈을 짚었다.

    본래 그는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

    훗날 그들의 파급력이 그만큼 클 수 있다는 뜻.

    만약 에드워드 때문에 앙심을 품은 그들이 추후 팀 헤르메스만을 견제 해온다면, 팀 헤르메스는 팀 아돌프와 팀 솔져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다.

    팀 헤르메스가 최고가 되기 위해 벼르고 있듯, 두 팀 또한 눈치를 보고 있으니까.

    사실상 허울뿐인 동료애.

    ‘시체가 꼭 남아있어야 할 텐데...’

    게릭은 잠시 책상에 머리를 대고 눈을 붙였다.

    * * *

    새내기들의 망명은 빠르게 이뤄졌다.

    그들은 김다혜에게 요청하여 유세현 일행이 위치해 있는 같은 장소에 임시 거주지를 얻었다.

    인원수가 500명밖에 되지 않아서인지, 같이 망명을 선택한 새내기들은 생전 얼굴을 마주하는 여타 팀원들과도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데 어우러져 음식을 먹고 있는 이태광을 슬쩍 흘긴 이강호가 그제야 유세현을 향해 물었다.

    “야, 세현아. 너 도대체 언제부터 이태광하고 의형제를 맺은 거냐. 말 안 해줬잖아?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어? 저도 그게 줄곧 궁금했어요. 선배. 대체 어떻게 된 거에요?”

    “아...그거?”

    유세현이 평소 그답지 않게 머쓱한 표정이 되어 볼을 긁적였다.

    너무 친근하게 구는 그를 떼어내기 위해서, 혹은 이용해먹기 위해서 별 큰 의미 없이 형, 동생 관계를 맺은 만큼 막상 설명하려니 새삼 쪽팔린 것이다.

    “그게 말이지...”

    이내 그는 어쩔 수 없이 그때의 상황까지 덧붙여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러자 이야기가 진행 될 수 록 경청하고 있는 이강호의 표정이 점점 만족스럽게 변해갔다

    내용을 들어본바 이렇게 되면 굳이 자신이 나설 필요도 없다.

    그렇게 내용이 마무리 되고 있던 때였다.

    자리에서 일어선 이태광이 팀원인 김길태와 장원석, 이한별을 데리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하하하! 동생! 저녁은 잘 먹었나?”

    “아. 예. 형님도 식사 잘 끝마치셨습니까.”

    “크흐흐흐. 두말하면 잔소리지! 여긴 자유로워서 더 잘 넘어가던데? 거기는 배급이니 뭐니 귀찮게 했거든. 아! 그보다 이 친구들이 동생이 이전에 말했던 동료 맞지?”

    별안간 돌아간 이태광의 시선이 이강호와 김주희를 살폈다.

    당장이라도 살인이 일어날 것 같은 눈빛.

    김주희는 살짝 움츠러드는 반면 이강호는 호기롭게 손을 내밀었다.

    “이강호라고 합니다. 그간 오면서 세현이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오~진짜? 세현 동생이 내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했어?”

    “예. 호쾌하고 의리가 있으신 분이라고...”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었지만, 사람은 모름지기 맞춰주기 마련.

    아니나 다를까 이태광의 입에서 더욱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크하하하! 내가 한 의리 하긴 하지! 하하하하! 아! 이럴게 아니라 간단히 소개나 하도록 하지? 길태야!”

    “아! 김길태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장원석입니다.”

    “이한별이에요.”

    그렇게 잠시 동안 벌어진 자기소개의 시간이 끝난 후였다.

    이한별이 살짝 미소를 머금은 표정으로 유세현을 향해 말했다.

    “오랜만이네요 세현씨...그때는 급박한 상황이라 차마 말을 걸 틈이 없었네요. 그간 잘 지내셨나요?”

    “아, 예. 한별씨도 잘 지내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전부 세현씨 덕분이죠.”

    유세현의 얼굴을 바라보는 이한별의 눈에는 살짝이나마 애틋함이 담겨있었다.

    그때였다.

    김주희의 두 눈동자가 별안간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했다.

    개버릇 남 못준다고, 그녀는 김다혜 때와 같이 빛의 속도로 이한별의 전신을 스캔하며 점수를 매겨나갔다.

    ‘얼굴 B, 몸매 B, 가슴은...제, 제법인데?’

    김주희는 순간적으로 시선을 아래로 내려 자신의 가슴을 살폈다.

    겉보기만으로는 약간이나마 자신이 우세하다.

    ‘그래. 날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이곳에 있을 리가 없지!’

    김주희는 재빨리 유세현의 옆으로 다가가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가슴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한별을 향해!

    마치 자신과의 차이를 확인하라는 듯이!

    그녀는 팔을 꼬아 가슴을 받쳐 포인트를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자 가만히 지켜보던 김길태와 장원석의 입에서 억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들은 김주희의 얼굴을 본 순간 이미 반쯤 넋이 나간 상태였다.

    별안간 시선을 돌려 김주희의 모습을 확인한 유세현의 고개가 살짝 갸웃거렸다.

    “너 지금 내 옆에서 뭐하고 있는 거냐?”

    “아...아무 것도 아니에요 선배. 말씀들 계속 나누세요...”

    순간적으로 찔끔한 김주희는 이내 쪼르르 이강호의 옆으로 되돌아갔다. 행동을 전부 지켜보고 있던 이한별의 입에서 별안간 실소가 터져 나왔다.

    “저분 정말 재미있으시네요.”

    “예?”

    아무쪼록 유세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

    그는 하던 대화를 끝내고 포켓을 뒤져 3번 석판 이십여 개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미리 빼돌려 놓은 이태광 팀의 석판이었다.

    새내기인데다가 의심을 받지 않을 만큼 석판을 남겨두었기에 걸릴 일 따윈 없었다.

    김길태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미리 말씀해주시기 않았으면 전부 회수 되었을 텐데...”

    “아뇨, 괜찮습니다. 그보다 이 3번 석판을 경매에 내놓으시면 2층의 던전을 열 수 있는 2번 석판과 교환하실 수 있을 겁니다.”

    “예? 던전? 2번 석판이요? 그게 무슨...”

    “아, 아직 요새의 인원들에게 못 들으셨나 보군요. 저희도 이곳에 와서 알게 된 겁니다만...”

    유세현은 이강호가 일러준 대로 우연히 들은 척 설명을 시작했다.

    김길태는 그가 평소 무뚝뚝하고 합리적이었던 만큼, 갑자기 이런 호의를 보이는 게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 됐지만, 주는 정보를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기에 열심히 경청했다.

    그렇게 한차례 내용이 오간 후였다.

    김길태가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호오...정말 감사합니다. 태광형님을 따라 막상 오기는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안 그래도 약간 막막했는데...이 정보를 주신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어차피 길태씨도 금방 알아냈을 정보입니다.”

    유세현은 훈훈하면서도 쿨하게 내용을 마무리 지었다.

    이윽고 석양이 완전히 지고 어둠이 찾아오고 있을 때였다.

    저벅저벅.

    상업지구 저편에서 횃불을 든 무수히 많은 생존자들이 유세현 일행이 있는 주거 지역으로 이동해왔다.

    팀 라이트와 팀 아레스.

    쟁탈전에서 강한 무위를 선보였던 둘을 스카웃하기 위해 두 팀의 간부가 나란히 대동한 것이다.

    < 발각(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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