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87화 (87/612)
  • < 발각(1) >

    “쒯...뭐야? 저 미친 새끼들은? 6개월 차에 저런 놈들이 있었어?”

    단번에 뒤바뀐 전장의 양상을 확인한 팀 헤르메스의 게릭 잭슨이 혀를 찼다.

    그의 주위에 위치해 있는 생존자들의 표정은 그야말로 얼음장처럼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이 보여준 힘은, 1년차인 그들로서도 발현할 수 없는 무위였기 때문.

    고작 단 두 명이서 쟁탈전의 판도를 바꾼 전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존재 하지 않았다.

    게릭은 고개를 돌려 팀 아돌프의 에단 호크와 팀 솔져의 이치하라 쿄타로를 지긋이 바라봤다.

    어차피 들킬 거 숨기는 게 있거든 다 말하라는 뜻.

    단번에 의미를 파악한 쿄타로가 인상을 와락 구겼다.

    “게릭, 너 설마 우리가 저놈들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지?”

    “...하긴...”

    앞서 무위를 보여준 두 사람이 만약 요새 3대 팀에 속해있었다면, 굳이 정보를 통제할 필요도 없거니와, 설사 어떠한 이유 때문에 잘 통제한다 하더라도 분명 어떤 식으로라도 소문이 퍼질 수밖에 없다.

    구름섬은 자유가 제한되어있는 만큼 무척 좁은 곳이었으니까.

    추측을 하는 게릭의 미간이 살며시 좁혀졌다.

    이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들이 팀 라이트나 아레스에 속해있다는 것뿐인데, 이것 또한 조금만 유심히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팀 라이트나 팀 아레스에 그들의 속해있었다면 꽉 쥐고 있는 저층계 던전의 공략 주도권이 일부나마 그들 쪽으로 넘어 갔을 것이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거듭 발생하는 모순.

    ‘대체 정체가 뭐지?’

    게릭은 직접 확인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 * *

    [쟁탈전에서 승리하셨습니다. 공헌도에 따라 석판이 차등 지급됩니다. 특수필드가 해제 됩니다.]

    환한 빛과 함께 수십 개의 3번 석판이 유세현과 이강호의 눈앞에 자리 잡았다.

    여타 생존자들이 평균 1~5개 정도 지급 받았다는 것을 감안하자면 무척이나 많은 개수.

    예상을 훨씬 웃돈, 아니 한 단계 초월한 소득이었다.

    이강호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이 정도라면 그곳도 갈 수 있겠군.’

    석판 수가 상당히 부족한 만큼, 원래 가려했던 던전은 높은 순도의 힘, 민첩 코인을 떨어트리는 아라크네의 굴이었다.

    허나, 이렇게까지 석판을 모았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단 한 마리의 보스몬스터만 존재하는 일반 던전이 아닌, 보다 강하고, 더 나아가 운 좋으면 스킬북까지 떨어트려주는 여러 보스급 몬스터가 존재하는 연계 던전을 갈 수 있는 것이다.

    석판을 챙긴 일행이 복귀를 위해 다시 능선으로 올라가려던 찰나였다

    생전 처음 보는 여럿 생존자들이 주위를 에워쌌다. 해코지 같은 것을 하기 위해서는 결코 아니었다.

    눈동자에 살짝이나마 경외가 담겨져 있는 것이 선두에서 전투를 치르다가 이강호의 얼굴을 확인한 자가 틀림없었다.

    이윽고 다가온 남자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저...안녕하십니까. 저는 팀 오리온의 김태진이라고 합니다. 대단하시더군요. 당신들 덕분에 이번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 말한 김태진은 이강호를 향해 간단히 악수를 청해왔다.

    피아식별 띠가 없는 것으로 봐서 그는 평소 던전을 두고 주둔지의 인원과 경쟁을 벌이던 요새의 인원들이었지만, 지금만큼은 모든 것을 떠나 그저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로 대하고 있었다.

    이강호가 손을 뻗어 악수를 받아주었다.

    “아, 예. 김태진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나중을 위해서라도 그들은 평소와 달리 다가온 사람들과 친근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 능선위에 오른 그들이 복귀하기 위해 각 진형 별로 나뉘었을 때였다.

    “하하! 세현 동생! 여기 있었구만!”

    팀을 정비하기 위해 한발 앞서 능선위로 올라간 이태광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합류했다. 이태광의 등 뒤로는 무수히 많은 새내기들이 즐비해있었다.

    일행이 골짜기에서 전투를 치르는 동안, 이태광 팀의 브레인 김길태가 새내기들에게 주둔지의 존재에 대해 정보를 뿌린 덕에 망명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억압과 부패속의 안전보다도 자유 속의 위험을 택한 자들!

    팀 라이트의 간부의 손짓에 따라 그들이 막 이동을 개시하려던 찰나였다.

    “어허~어딜 가려는 거지? 너희들의 진형은 그쪽이 아닐 텐데?”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팀 아돌프의 에단이 이태광과 유세현 사이에 정확히 끼어들며 새내기들을 막아섰다.

    이에 생존자 한 명이 울분을 담은 목소리로 외쳤다.

    “너희의 무모한 요구 때문에 우리팀원들의 절반이 죽었어! 우린 이들을 따라가 망명하겠다! 너희들의 말은 이제 듣지 않아!”

    “...호오. 그곳이 상상이상으로 많이 위험한 건 알고 가는 건가?”

    “물론이다!”

    “오오~”

    에단의 입 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그가 계속 이어 말했다.

    “뭐, 사실 망명해도 상관없어.”

    “...그렇다면 당장 거기서 비...”

    “하지만 말이야. 그래도 룰은 지켜야지?”

    “...그게 무슨 말...”

    생존자들은 생뚱맞은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에단이 마법처리가 된 포켓에서 무엇인가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돌로 만들어진 기록서였다.

    에단이 돌을 검지로 툭툭 치며 말했다.

    “너희들 말이야. 개인적으로 팀 만들 때 이 문서 작성했지? 여기에 보면 조항이 있는데 말이지 지금부터 내가 자세하게 설명...”

    그다음 이어지는 설명은 무척이나 간단했다.

    조항에는 팀을 임의로 해제할 시 소유하고 있던 석판을 모두 반납해야 한다고 써져있던 것!

    생존자들은 왜 이 조항이 존재하는지 몰랐던 만큼 항의를 했다.

    “너희들! 주둔지에대해서 알려주지도 않고!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 하냐?”

    “...당연히 말이 되지. 여기에 알려주라는 법이 있나?”

    “...그게 무슨...”

    “너희들 말이야.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게 있나본데, 요새가 없었으면 너희는 주둔지 애들을 만나기도 전에 벌써 뒤졌어. 응? 튜토리얼도 거친 주제에 여기가 아직도 현대 사회처럼 물렁물렁하게 보이나? 이게 부조리하게 느

    껴져? 진짜 부조리가 뭔지 보여줄까?”

    에단의 주먹이 스윽 올라갔다.

    그때였다.

    뒤에서 나타난 게릭이 그를 만류했다.

    “에단, 거기까지 해라. 우리를 따르는 새내기들도 보고 있다는 거 잊은 거냐?”

    “...쳇! 내가 참는다.”

    부릅뜬 눈으로 새내기들을 한번 훑은 에단은 이내 인파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이래서 팀 아돌프 놈들은...

    게릭은 한숨과 함께 차분히 말을 이었다.

    “우선 에단이 오해의 여지가 있게 발언한 것에 대해 내가 사과하겠다. 그럼 바로 다시 설명하도록 하지. 이 조항은 그간 요새를 무료로 사용하게 해준 것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너희들은 생각보

    다 요새를 오래 사용하지 않았다. 허나, 하루든 이틀이든 적다고 해서 만든 룰에 예외를 둘 수도 없는 법이지. 이것은 너희가 이해해 주기 바란다.”

    “......”

    요새의 대한 대가 지불.

    그렇게 말하니, 생존자들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게릭이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주둔지로 가는 것을 다시 한 번 고려해봤으면 한다. 주둔지는 너희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으로 위험한 곳이다. 특히 너희 새내기들은 더욱더. 설마 재미로 여타 팀들이 요새에서 지내고 있다고 생각

    하는 건 아니겠지? 우리는 이래봬도 경계 및 식수경로확보 등 너희들을 위해 제법 신경 쓰고 있다.”

    “......”

    그렇게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음에도, 게릭의 언사에 새내기들의 동공이 파르르 흔들렸다. 새내기 한 명이 항변하듯 외쳤다.

    “그, 그렇게 신경을 쓰는 주제에 우리들을 왜 사지로 밀어 넣은 거냐!”

    “...사지? 너희가 간 외각 지역에는 비슷한 수준의 놈이 왔을 텐데?”

    “강한 놈들이 섞여있었다!”

    “그래서?”

    게릭의 말이 갑자기 퉁명스럽게 바뀌었다. 때문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새내기들이었다.

    “그, 그래서라니...”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거지? 강한 놈들이 섞여있던 게 뭐 우리 탓인가? 아니면 강한 놈이 포함되어있으니 성장을 포기하겠다는 뜻이냐? 어차피 포기하면 도태되어 죽는다는 건 튜토리얼을 거쳐 온 너희가 제일 잘 알고 있을

    텐데?”

    게릭의 말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들었을 때 얼추 옳았다. 허나, 쟁탈전 시스템에 대해 완벽히 파악한 사람들이라면 분명 게릭의 말을 개소리라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쟁탈전은 1개월 단위로 잘라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1개월 차는 1개월 차끼리, 2개월 차는 2개월 차끼리 쟁탈전을 벌일 수 있는 것이다.

    굳이 6개월 차의 쟁탈전에 무리하게 껴서 1개월 차의 적을 찾으러 다닐 필요가 없는 것!

    이는 생존 시 무조건적으로 석판 1개를 지급 받을 수 있는 시스템 보상을 노린 대형 팀의 만행이었다.

    허나.

    ‘그걸 내가 말해 줄 필요는 없지.’

    유세현은 가만히 있었다. 요새의 대형 팀의 눈에 띠어봐야 좋은 것 하나 없기 때문.

    게릭이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았다.

    “그래서? 석판 주고 주둔지로 갈사람?”

    “......”

    결국, 설득당한 새내기들은 처음의 포부와 달리 요새 쪽으로 대거 이동해 나갔다.

    이내 남게 된 것은 이태광의 팀과 약 400명가량 되는 인원 뿐.

    그중에서는 정말 웃기게도 이용석의 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본디 요새로 돌아가려 했지만, 유세현의 얼굴을 우연히 확인하기 무섭게 자리에 남았다.

    여태까지 여러 가지 일이 있었던 만큼, 유세현이 선택한 주둔지 쪽이 좀 더 나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수하에게 석판을 걷도록 명령한 게릭의 비로소 유세현과 이강호를 바라봤다.

    이 두 명이 그 말도 안 되는 능력을 보여준 신예.

    ‘어디한 번 슬쩍 떠볼까.’

    게릭은 일단 당당히 둘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팀 헤르메스의 게릭 잭슨입니다. 멀리서지만 활약은 익히 잘 지켜봤습니다. 정말 장난이 아니시던데요.”

    “...유세현입니다.”

    “이강호입니다.”

    어차피 나설 때부터 이리 될 줄 알고 있었기에 둘은 차분히 답해주었다.

    이름을 들은 게릭의 고개가 옆으로 갸웃 움직였다.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최근에.

    ‘뭐지? 어디서 들었었지?’

    관자놀이를 짚은 게릭은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허나,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한번 잊어버린 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자신의 단순한 착각일 수도 있다.

    결국 포기한 게릭이 은근슬쩍 다음질문을 유도하려던 찰나였다. 다가온 그의 부하가 석판이 든 보따리를 내밀며 말했다.

    “전부 회수했습니다.”

    “...아. 진짜? 벌써?”

    “예.”

    아직 한마디밖에 못 나눴건만, 게릭은 부하가 너무 수완이 좋은 것도 때로는 안 좋을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입맛을 쩝 다신 게릭이 둘을 향해 말했다.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뵐 수 있으면 뵙겠습니다.”

    “예. 수고하시기 바랍니다.”

    결국, 그들은 그렇게 단 한마디 나눈 것을 끝으로 각자 다른 길을 향해 나아갔다.

    * * *

    천막의 내부.

    자신의 개인 집무실로 돌아온 게릭은 기억이 날듯 하면서도 나지 않는 찜찜함에 머리를 꽁꽁 싸맸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유세현과 이강호의 이름이 계속 빙글빙글 맴돌고 있었다.

    ‘분명 어디서 봤었는데...어디서...’

    고뇌하던 그의 시선이 이번 들어온 새내기들의 플로필을 간결하게 집필해 놓은 돌로 된 문서로 향했다.

    ‘설마...’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적었던 것을 빠르게 읽어나갔다. 아주,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허나, 역시나 이름은 쓰여 있지 않았다.

    ‘하...그럼 그렇지 뭐. 그 정도 힘을 가지고 있는 놈들이 고작 1개월 차일리가 없지.’

    실망한 그가 문서를 옆에 고스란히 내려놓은 순간이었다. 자신이 집필해놓은 문서 옆으로 비슷한 문서가 문득 눈에 띠었다.

    익숙하지 않은 필체.

    어디 좀 갔다 오겠다고 하고 나갔다가 그대로 실종된 에드워드가 마지막으로 집필한 문서였다.

    마지막으로 에드워드의 보고를 받은 사람이 그였기에 재수 없게 임무까지 짬을 당한 것!

    “미친놈이 나가서 뒈질 거면 곱게 뒈질 것이지.”

    나직이 욕을 내뱉은 게릭은 쓰여 있는 글을 아무 생각 없이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마동필, 주용월...

    읽어 내려가는 그의 두 눈에는 생기라고는 없었다. 이제는 일말의 기대도 하지 않기 때문에.

    무심코 그가 다음 문서를 확인한 순간이었다. 무엇인가를 발견한 그의 두 눈이 점점점 확장되어갔다.

    이내 보름달처럼 동그랗게 변한 게릭의 눈.

    “미친...이게 무슨...”

    그의 두 망막에는 믿을 수 없는 글자가 맺혀있었다.

    < 발각(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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