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85화 (85/612)
  • < 쟁탈전(2) >

    “세현아 다른 6개월 차 놈들은?”

    “11시 방향에 6마리. 1시 방향에 2마리. 11시 방향이 더 가까워. 그곳부터 가자.”

    “오케이.”

    셋은 전장을 누비는 장수같이 숲 일대를 휩쓸었다.

    그들이 등장하는 장소는 여지없이 형세가 순식간에 뒤집어진다.

    나약한 새내기들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구세주이자 구원자 같은 존재.

    여타 선배 격 생존자들이 전면전에만 신경 쓰느라 그 누구도 이곳에 오지 않은 것을 감안 했을 때, 유세현 일행은 안면이 있고 없고를 떠나 새내기들이 의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한 생존자가 김주희의 발자취를 뒤따르며 외쳤다.

    “적을 죽입시다! 승리!, 아니 우리는 살아 돌아갈 수 있습니다!”

    “우워워어!”

    새내기들은 매서운 속도로 이동하는 셋의 뒤를 최대한 열심히 뒤따르며 남겨놓은 새내기 고블린들을 처리해나갔다.

    그렇게 약 10분이 더 흘렀을 때였다.

    챙!챙!

    “죽어라! 괴물들아!”

    “키륵. 인간 따위가!”

    숲의 저편으로 고블린과 맞서 싸우고 있는 생존자들의 음성이 들려왔다.

    각 종족간의 비명이 뒤엉키고 병장기간의 마찰음이 균일한 것이 제법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모양.

    이곳에도 선배 고블린들이 있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말도 안 되는 현상이었지만, 유세현은 곧 이해할 수 있었다.

    “크하하하하! 쬐그만 한 것들이 언제봐도 제법이구나!”

    미래의 전쟁군주 이태광.

    그가 바스타드 소드를 휘두르며 선배 격 고블린 한 마리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었다.

    이태광의 마력이 35%, 고블린의 마력이 40%인 것을 생각하자면 사실상 위치가 바뀌어야 정상인 상황.

    유세현은 피식 웃었다.

    단순히 무기만 이용하는 게 아닌, 신체 모든 것을 사용하는 것이 역시 언제 봐도 그의 격투센스는 탁월하다. 또한 몸이 살짝 붉어져있는 것이 어쩌면 벌써 고유특성을 개화한 것인지도 모른다.

    유세현은 선배 고블린을 돕기 위해 이태광에게 달려가고 있는 고블린 세 마리를 잽싸게 처리했다.

    무심코 눈을 흘겨 이를 확인한 이태광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크하하하! 이거 세현 동생 아니야? 봐봐! 역시 살아있었잖아!”

    “어? 세현씨?”

    그 말에 주위에서 이태광을 보필하고 있던 이한별, 장원석, 김길태의 시선이 유세현을 향했다.

    유세현은 살짝 고개만 끄덕인 뒤 적을 주위에 있던 적을 처리해나갔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인사가 아니기 때문.

    서걱!

    촤악!

    안 그래도 팽팽한 싸움에 유세현 일행이 가세하자 고블린들이 몰살당하는 것은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다.

    주위에 더 이상 고블린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이태광 일행이 유세현을 향해 재빨리 뛰어왔다.

    “흐하하하! 세현 동생 그간 잘 지냈어?”

    “예. 그...형님도 잘 지내셨습니까.”

    “크하하! 두말하면 잔소리지!!”

    이태광은 역시 언제 봐도 유쾌한 사람이었다. 아니, 가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태광이 다짜고짜 물었다.

    “그보다 세현 동생.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던데 대체 어디 쪽에서 지내고 있는 거야?”

    “아, 그거 말...”

    말을 하던 유세현의 두 눈이 대뜸 전방을 향했다. 무수히 많은 적의 군세다 한 차례 더 밀려오는 것이 느껴진다.

    시간이 없음을 느낀 유세현은 재빨리 말을 이었다.

    “명확히 말씀드리자면 현재 제 팀은 요새를 벗어나 있습니다.”

    “요새를? 흠...그래서 못 찾았던 거군. 그런데 아무리 동생이라도 그건 너무 위험하지 않나?”

    구름섬에 온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태광 또한 적들이 얼마나 강한지는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무리하지 않고 외각을 치는 쪽을 맡았던 것이고.

    그런데 요새를 벗어나다니?

    주둔지의 존재를 선배 격 생존자들이 되도록 함구하는 만큼, 그들은 아직 주둔지의 존재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다.

    그저 요새의 인원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

    이를 눈치 챈 유세현이 재빨리 피아식별 띠를 차고 있는 오른팔을 내밀었다. 제대로 설명만 해준다면 그 또한 이곳으로 넘어올 가능성이 무척이나 크다.

    상위 팀의 통제를 받는 것은 자유로운 그의 체질상 전혀 맞지 않을 것이기 때문.

    “지금 저는 요새의 북동쪽 약 100km에 위치해있는 다른 주둔지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이 띠를 차고 있는 사람들이 저희 주둔지 사람들이죠.”

    “...주둔지라고? 요새 말고 다른 곳이 있었어?”

    “예. 이곳은 요새보다도 훨씬 자유롭습니다.”

    “호오...”

    아니나 다를까 이태광의 눈이 번뜻 빛났다. 유세현의 입 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이 정도까지 왔다면 나올 말은 정해져 있다.

    “동생. 혹시 그쪽으로 이동하는데 조건 같은 게 있나?”

    “없습니다.”

    “흐흐흐흐. 그렇단 말이지...그렇다면 동생. 혹시 이 전투가 끝나면 우리도 같이 데려가 줄 수 있겠어?”

    “어렵지 않죠.”

    “흐하하하! 좋아! 좋아!”

    이태광은 호쾌하게 웃으며 땅에 박아놨던 바스타드 소드의 손잡이를 다부지게 쥐었다.

    스륵 스륵

    비록 마력을 읽지 못하지만, 인기척을 적의 느꼈기 때문.

    “그럼 동생! 끝나고 보자고!”

    “예.”

    파앗!

    그들은 말과 동시에 적을 향해 달려 나갔다.

    * * *

    전체적인 형세는 인간측이 유리했다.

    지능을 얻은 지 얼마 안 된 고블린 보다도 팀윅이 훨씬 잘 맞았기 때문이다.

    허나, 그럼에도 인간진형은 사원을 쉽사리 점령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그 이유.

    높은 능선 위에서 시야 확대 아이템으로 사원을 지켜보던 팀 헤르메스의 충추간부 게릭 잭슨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쒯! 얼마나 코인을 쳐 몰아 준거야?”

    그는 현재 한 고블린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만 한 큰 키에 족히 2배 이상 되는 등치.

    이전 쟁탈전에서도 인간 측의 골머리를 썩게 만들었던 변종 고블린이었다.

    변종에 의한 능력인지, 스킬인지 모를 높은 재생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

    이전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훨씬 강해진 이 변종 고블린은 사원 중심부에 서서 양날도끼로 인간 측 생존자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저놈을 죽여야만 고블린놈들이 포기를 할 텐데...”

    상처가 빠르게 수복되기 때문에 속전속결로 목을 베어야 하지만, 여타 고블린들의 방해 때문에 난관을 겪고 있는 상황.

    게릭의 옆에 있던 동기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어쩔 수 없잖아. 우린 참가할 수가 없는데. 우리 애들이 잘 하길 바라야지.”

    “...흠. 그렇긴 하겠지만...”

    게릭은 좀처럼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허나, 동기의 말처럼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이기기를 기원해주는 것 밖에 없었다.

    이윽고 비등비등 해진 형세는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측이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 * *

    “키아아아아!”

    고블린측 진형에서 터져 나온 포효가 골짜기를 가득 메웠다.

    승리의 함성이었다.

    사원을 공략하러간 인간 세력이 고블린 측의 떠오르는 샛별, 카르차만을 기어코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좁은 골짜기에서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점점 수세에 몰리고 있는 인간진형.

    그리고 이를 능선 꼭대기를 점령하는데 성공한 유세현 일행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뒤에는 어느새 수많은 생존자들이 몰려 있었다. 수세에 몰린 사원과 달리 외각 지역 전투 자체는 승리한 것이다.

    이강호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좋지 않아.”

    “...확실히.”

    유세현이 보기에도 상황은 심각했다.

    지금까지는 잘 퇴각 하고 있다지만 퇴로가 막히는 순간 괴멸의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

    이강호는 조심히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쟁탈전 자체에 별로 신경 쓰고 있지 않았기에 까먹고 있던 일이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확실히 인간세력은 여기서 상당한 타격을 입는다.

    향후 3개월간은 모든 쟁탈전을 포기할 정도로.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그가 하려던 일의 기간이 늘어나게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쓸데없는 시간을 소비하게 되는 것.

    ‘흠...뭔가 이상해. 분명히 처음에는 우리 쪽이 우세했던 거 같은데.’

    턱을 짚은 이강호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는 유세현을 향해 물었다.

    “세현아. 혹시 저 중에서 특이한 마력을 가진 놈이 있냐?”

    “특이한 마력? 기다려봐.”

    유세현은 의식을 집중시켰다. 그러자 특이하지는 않지만 상당히 높은 마력을 지닌 적이 느껴졌다.

    양으로만 따지자면 에드워드와 비등비등하거나 살짝 높은 정도.

    에드워드가 새내기들을 등쳐먹으며 엘리트의 길을 걸었던 걸 감안했을 때, 이는 가히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개 6개월 차 생존자들이 상대가 될 리가 없는 것!

    내용을 들은 이강호가 나직이 말했다.

    “세현아 우리가 나서서 처리해야겠다.”

    “...너무 눈에 띠는 거 아니야?”

    “눈에 띠는 건 상관없어. 더 이상 우리가 있는 곳은 요새가 아니니깐. 되려 팀 라이트와 팀 아레스는 좋아할 가능성이 높아. 그리고 언젠가는 힘을 한번 과시해야 했기도 하고.”

    그래야만 이 종족을 제거하는데 좀 더 편히 조력을 받을 수 있다. 또한 그들은 이 쟁탈전을 끝으로 당분간 구름섬 3층에서 머물 생각이었다.

    즉, 생존자들과 마주 할일이 없는 것이다.

    “흠...그렇다면 그건 둘째치더라도 스텟이 비슷비슷한 놈들이 많아서 위험 할 것 같은데.”

    “그건 그렇지. 속전속결로 끝낼 생각이야. 그래서 말인데 네가 꼭 좀 해줬으면 하는 일이 있다.”

    “뭔데?”

    “길을 열어줘. 그러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길이라...”

    유세현은 길을 열어달라는 게 무슨 의미인지 단번에 이해했다.

    “적은 에드워드와 비슷한 놈이야. 내 암흑투기 없이 가능하겠어?”

    “충분해. 내 스텟도 상당히 올랐고 무엇보다 저놈들은 뱀파이어가 아니니깐.”

    “후...그런 거라면 알았다.”

    이강호의 이런 확답은 믿을 수 있다. 유세현은 곧장 최단 루트를 살폈다.

    그들이 곧장 이동을 개시하려던 찰나였다.

    순식간에 접근한 이태광이 일행의 앞을 가로막았다.

    누가 전투에 미친 사람 아니랄까봐 귀신같이 내용을 들은 것이 분명했다.

    “흐흐. 동생. 설마 나를 내버려 두고 가려고?”

    “...6개월 차 놈들은 제법 강합니다. 형님”

    6개월 차의 기본 스텟은 E 랭크 40~50% 사이.

    비록 유세현과 이강호의 우월한 스펙에는 따라올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외각을 선택했던 것은 저 개미떼 같은 무수한 물량 때문이다.

    때문에 아무리 이태광이 이번전투로 인해 더 강해졌다고는 하나 유세현은 그가 감당할 수 없으리라 판단했다.

    허나.

    “크하하하. 그런 건 걱정마라! 나는 괜찮으니까!”

    쾌활하게 웃는 이태광은 묘한 자신감을 보였다.

    평소 그의 성격으로 따지자면 단순한 호기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로 고유 능력을 개화한 것일 수도 있는 상황.

    유세현은 쓰윽 이강호를 쳐다봤다.

    판단을 내려달라는 뜻.

    아주 잠시 고민하던 이강호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이태광의 합류가 확정되었다.

    “알겠습니다. 함께 가시죠.”

    “흐하하하! 그래야지!”

    “그럼, 형세가 별로 좋지 않으니 바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유세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몸을 날렸다. 비탈길을 탄 몸이 속도를 더해가지만 균형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곧 그 뒤를 이강호, 김주희가 따랐다.

    차례가 다가오자 이태광이 발을 뻗으며 외쳤다.

    “길태야! 잠시 갔다 온다. 여기서 기다려라!”

    “혀, 형님! 또 어디를 혼자서!!”

    재빨리 반응한 김길태가 황급히 되물었지만, 이미 이태광은 그 자리에 없었다.

    그들은 흡사 기차처럼 일렬로 줄지어 빠르게 능선을 내려갔다.

    마력을 파악해 이동하고 있는 것이라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그렇게 몇 분을 뛰어 내려갔을까.

    귓속으로 전장의 뜨거운 함성소리가 울려 퍼졌다.

    “캬캬캬캬캬캬!”

    “키야아아아아!”

    문제는 그 함성소리가 적군 쪽에서 나는 것이라는 것.

    유세현은 몸을 은폐시켜주고 있는 풀숲을 빠져나가지 직전 외쳤다.

    “이강호! 이곳에서 빠져나가거든 바로 11시 방향으로 뛰어!”

    “오케이! 나도 읽었어!”

    촤악!

    이윽고 풀숲을 빠져나간 4명의 망막 속으로 개떼처럼 무리지어 달려가고 있는 고블린들의 모습이 들어와 박혔다.

    줄곧 전투를 하며 피를 잔뜩 뒤집어쓴 탓에 후각이 예민한 고블린도 아직 미처 반응하지 못한 상황.

    유세현은 어떻게든 좀 더 많은 피해를 입히기 위해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 순간이었다.

    수십 마리나 되는 고블린들의 목이 일행을 향해 일제히 돌아갔다.

    잔뜩 핏발이 선 눈.

    “키륵? 인간? 인간이다!”

    고블린들은 뛰어가던 경로를 바꿔 맹렬히 돌격해왔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유세현이 손을 재빨리 앞으로 뻗었다.

    동시에 그는 천마심법을 운용하여 끌어올린 어둠의 마력 전부를 쏟아 부었다.

    천마의 무공이 흉흉한 어둠의 마력을 단번에 빨아들인다.

    하루에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천마의 절기!

    ‘천마혈사장(天魔血死掌)’

    콰과광!

    에드워드때와는 한차례 차원이 다른, 검붉은 빛이 일대를 광활하게 집어 삼켰다.

    < 쟁탈전(2)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