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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82화 (82/612)
  • < 주둔지(1) >

    몸을 돌의 성분과 비슷하게 만들어주는 스킬. 때문에 단순한 번개라면 충격이 상당히 완화되는 게 정상이다. 기껏해야 피부 겉 표면이 살짝 그을리는 정도.

    허나.

    “끄아아악.”

    이 흑빛의 번개는 그가 지금까지 경험해본 일반 전격과는 차원이 달랐다.

    안 그래도 흉폭한 어둠의 마력이 천마신공에 의해 그 패도적인 힘까지 더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근원으로 발동한 마왕의 흑뢰.

    전기가 통하고 안 통하고를 떠나 자체적으로 발산하는 지독한 고열에 에드워드의 겉가죽이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재빨리 발동시킨 스톤스킨과 새내기들을 죽이고 올려놓은 속성저항력이 아니었다면 순식간에 새까만 재가 되었을 것이다.

    어떻게 새내기들이 이런 무지막지한 스킬을 지니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입을 악문 에드워드가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억지로 발을 움직였다.

    무겁다. 몸이 무척이나 무거웠다. 마치 수십 톤 두꺼운 무게추를 단 쇠사슬이 온몸을 감싸고 있는 듯한 느낌.

    ‘이, 이게 뭐야 도대체.’

    휘몰아치는 패닉 속에서는 그는 움직였다. 이대로 가만히 있게 된다면 100% 죽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 개새끼들아아아아!”

    후웅!

    그는 마침내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쌍욕과 함께 흑뢰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눈을 희번덕 뜬 에드워드가 재차 외쳤다.

    “다 죽여 버리겠어! 나와!”

    타다닷!

    허나, 튀어나온 말과 달리 에드워드의 몸은 전력으로 자리를 이탈하고 있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또한 느끼고 있던 것이다.

    스텟의 우위성을 떠나 이대로는 전혀 승산이 없음을.

    그가 그렇게 미처 몇 걸음 가지 못했을 때였다. 녹아내린 오른쪽 뺨으로 이글거리는 열기가 느껴졌다.

    화염계열의 스킬을 익힌, 적어도 1.5년 차의 선배 격 생존자가 시전한 듯한 뜨거운 열기.

    연소될 틈도 없이 새까맣게 재가 된 풀잎사이로 거대한 불기둥이 그를 덮쳤다.

    ‘이, 이건 피해야 돼!’

    버틸 수 없다 판단한 그가 온힘을 다해 도약했다.

    허나 그것은 함정, 이미 다 짜여 있던 각본에 불과했다.

    높게 치솟은 에드워드의 머리위로 새까만 그림자가 드리웠다.

    한 차례 빨리 도약한 유세현이었다.

    에드워드를 향해 오른손을 펼친 그가 마음속으로 읊조렸다.

    ‘천마혈사장(天魔血死掌).’

    콰광!

    순간적으로 터져 나온 검붉은 빛과 함께 구현된 마력의 파동이 에드워드의 전신과 그 주위를 덮쳤다.

    신체에서도 최약 부위인 눈동자가 터져나가고, 전신의 근육이 갈기갈기 찢겨진다.

    그렇게 흉악한 빛이 한차례 수그러든 뒤 남아있는 것이라곤 손바닥 모양으로 깊게 파여진 지면과 그 중앙에서 온몸의 사지와 오장육부가 터져나가 절명한 에드워드 뿐이었다.

    이것이 패자의 무공.

    “허...”

    그 강한 힘에 유세현 또한 살짝 당황했다. 익히 스킬의 위력을 시험해 본적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모든 마력을 쏟아 부운 적은 없었기에 이렇게까지 강한 줄은 몰랐던 것이다.

    범위에 드는 모든 것을 이렇게 초토화 시키다니.

    숲에서 지켜보던 김주희가 놀란 표정이 되어 뛰쳐나왔다.

    “서, 선배님! 대, 대단하세요!”

    “그러게 정말 대단하네.”

    이강호도 한마디 거들었다.

    하지만 그가 이런 말을 내뱉은 것은 단순히 천마의 무공 때문이 아니었다. 익히 소문을 들었던 그는 천마의 무공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었으니까.

    정작 놀란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유세현의 주력기라고 할 수 있는 암흑투기.

    에드워드는 이 암흑투기를 맞고 좀처럼 몸을 가누지 못했다.

    무려 E랭크 80%라는 힘을 지닌 그가!

    즉, 뱀파이어가 그의 암흑투기에 잘 견뎌 냈던 것은 순전히 높은 어둠 속성 저항력을 지닌 특성 때문이라는 뜻이 된다.

    이강호는 천마신공을 얻은 유세현이 얼마나 괴물이 되었는지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정정한다.

    암흑투기만 제대로 활용만 한다면 E랭크 80%의 스텟을 지닌 5명을 상대할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도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후...정말 장난 아니군.’

    이강호는 일단 놀라움을 뒤로하고 에드워드의 시체를 살폈다.

    무공이란 것이 본디 육체 외부보다도 내부를 파괴하는데 특화되어 있어서 그런지 에드워드가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의 상태는 생각보다 양호했다.

    단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스킬이 안 나왔다는 것.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스킬은 사실 그렇게 잘 떨어지는 것이 아니니까.

    지금까지 보스몬스터에게서 스킬북이 잘 떨어진 이유는 그들이 있었던 장소가 생존자들의 성장을 위해 만들어진 튜토리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에드워드도 별로 위험하지 않는 새내기들만 노려 온 것!

    그는 그저 탐욕스러운 이기적인 인간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런 자들은 강해져봤자 타종족의 군세 앞에서 허무하게 마음이 꺾인다.

    결국엔 있으나 없으나 마나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주섬주섬 에드워드의 장비를 벗긴 이강호는 그것을 전부 유세현에게 내밀었다.

    “세현아 일단 이거 벗겨서 포켓에 좀 넣어놔.”

    “안 사용하고?”

    “그렇게 되면 팀 헤르메스에 걸릴 가능성이 크니깐. 장물로 내놓을 생각이야.”

    “장물?”

    유세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사실 지금 어디로 향하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이강호의 뒤를 따라왔을 뿐이다.

    ‘아...그러고 보니 아직 말을 안했구나.’

    이강호는 일단 하던 것을 전부 멈추고 두 명을 불러 앉혔다.

    “뭐야 갑자기? 이거 뒷정리부터 해야 하는 게 우선 아니야?”

    “괜찮아. 어차피 에드워드가 직접 온 이상 오늘은 더 이상 추격이 없을 테니까. 그보다 너희 둘에게 털어놔야 될 말이 있어.”

    그렇게 말하는 이강호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에드워드의 추격 때보다 더한 중압감이 셋 사이에 흘렀다.

    “그래 말해봐.”

    유세현의 또한 진지한 두 눈동자로 그를 응시했다. 김주희는 그저 묵묵히 마른침을 삼켰다.

    그렇게 이강호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사실...”

    * * *

    장장 한 시간에 걸친 길고도 짧은 이야기가 끝났다.

    모든 이야기를 전부 설명하기에는 당연히 시간이 부족했기에 이강호는 자신이 겪었던 큰 물줄기를 토대로 앞으로 향할 판도라의 정세를 털어놨다.

    그리고 그 결과.

    “어...”

    김주희의 영혼은 반쯤 가출한 상태였다. 이강호가 회귀를 밝혔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지금까지 해온 행동을 모두 종합해 봤을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아니, 되려 머릿속에 이상한 정보가 갑자기 들어왔다는 말보다도 훨씬 믿음이 간다.

    그렇다면 그녀가 이렇게 된 이유.

    구름섬 너머에 있을 판도라에 대한 심각성을 들었기 때문이다.

    용과 몬스터, 마족과 천족. 상상할 수 없는 괴물들이 판을 치는 세계라니. 그리고 인간 진형의 세력이 그리 좋지 않다니.

    동공에 지진을 일으키는 김주희를 뒤로하고 유세현이 차분히 도출해낸 결론을 말했다.

    “흠...한 마디로 그들과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판도라로 가야 된다는 거지?”

    “응. 할 일이 많아.”

    인간진형에 악영향을 줄 적을 미리 제거한다. 그리고 여타종족보다 한발 앞서 판도라 내부로의 길을 개척한다. 해야 할 일은 정말 넘치고 흘렀다.

    유세현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차피 해야 될 일이라면 하는 게 맞다.

    “그래서? 이곳에서 해야 될 일은?”

    “우선은 크게 세 가지로 잡고 있어.”

    이강호는 자신이 이전부터 생각해두고 있던 것을 말했다. 이태광의 언급에 유세현의 표정이 한층 복잡 미묘해졌다.

    “...이태광?”

    “응. 내가 저번에 한번 물은 적이 있었잖아.”

    “...그랬지. 그런데 사람은 왜?”

    “잘 만하면 추후 크게 쓰일 수도 있거든. 좋은 쪽으로.”

    “......”

    유세현이 머리를 박박 긁적였다. 그 어설프고도 애매하게 맺은 형제의 연을 말해야 하는 것일까 말아야하는 것일까.

    아니, 애초에 모든 것을 떠나 그는 다른 사람 밑에 있을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유세현은 이강호가 어떻게 대처할지 모르는 만큼 설레발을 치지 않고 일단 보류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무슨 말인지는 알았어. 그보다 지금부터 아이언연합으로 갈 생각이란거지?”

    “바로 그렇지. 거기서 만약 된다면 장물을 석판으로 교환할 생각이야.”

    “오케이. 빨리 마무리나 하자.”

    “그래.”

    유세현과 이강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뒷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넋이 나가 있던 김주희가 정신을 차리기 무섭게 황급히 그들을 향해 뛰어갔다. 어차피 이미 예정되어있을 암담한 미래라면,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돌아온 그에게 선택받은 게 다행이라면 정말 큰 다행이었다. 아니, 버려질 뻔한 것을 스스로 선택 받게 했다. 김주희는 지금처럼 자신이 대견스러울 때가 없었다.

    “서, 선배님! 도와드릴 게요!”

    “그럼, 저 숲에서 덩쿨 같은 거나 구해와라. 이 주위에 몬스터는 없으니까.”

    “옙!”

    그들은 솜 같은 뭉치들을 모아 다시 땅을 메꾸고 세 명의 시신은 나무덩굴을 이용해 돌에 묶어 강에 가라앉혔다. 영화에서도 흔히 쓰이는 처리방법이었기에 생각해내는 데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

    이윽고 어느 정도 흔적을 숨긴 그들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 * *

    아이언 연합.

    요새에 위치한 거대 팀들의 부조리를 견뎌내지 못하고 뛰쳐나온 생존자들이 만든 집단이다.

    공평성을 중요시 한다는 원칙아래 뭉친 그들이었기에 요새와 달리 연합부지 내에서 마땅히 큰 규제가 없는 것이 특징.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는 팀 라이트와 팀 아레스가 양대 산맥이 되어 아이언 연합을 이끌고 있다.

    “뭐야? 그럼 요새랑 비슷한 거 아니야?”

    “아니, 큰 차이가 있어. 수도 적거니와 여긴 요새보다 훨씬 위험하거든.”

    “위험하다고?”

    “응.”

    아이언연합의 주둔지는 고블린의 진형과 상당히 가까운 곳에 위치해있다.

    즉, 그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끌어안고 있는 셈.

    그렇기에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그들은 보금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무익한 살육을 벌이지는 않는다. 아니, 되려 강자를 좋아한다.

    사실상 일행이 행동하기에는 좀 더 편한 장소.

    “원래는 이태광 때문에 그곳에 있으려고 했던 거였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따로 접근할 수 밖에 없다.

    이강호는 깔끔히 미련을 접고 검지를 들어 앞을 가리켰다. 손가락을 따라 요새를 최대한 본 따 만든 연합의 주요 거점이 눈동자에 맺혔다.

    * * *

    “정지! 누구냐! 증명패를 보여라!”

    외각을 경계하던 경계병이 일행을 향해 외쳤다. 유세현과, 김주희는 이강호를 따라 양손을 머리위로 올렸다.

    상황설명은 일은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이강호에게 이미 전임한 상태다.

    “6개월 차 된 생존자 입니다. 아이언 연합에 망명을 신청하기 위해 왔습니다.”

    “...이유는?”

    “팀 헤르메스의 중견간부와 불화가 있었습니다.”

    “으음...”

    단 한마디에 불과했지만 예민했던 경계병의 심기가 빠르게 누그러지는 것이 유세현의 두 눈에도 확실히 보였다.

    그 또한 분명 비슷한 일로 이곳으로 망명해 온 것이리라.

    “기다려 봐라. 책임자를 불러오도록 하지.”

    말과 함께 높은 담벼락 저편으로 모습을 감춘 경계병은 시간이 조금 지나 돌을 잘라 만든 기록용 일지를 읽고 있는 여자와 함께 정문으로 빠져 나왔다.

    “망명을 신청한 분이라고 하셨죠? 저 성함이...”

    일지에서 시선을 뗀 여자가 고개를 들어 올린 순간이었다.

    “아...”

    유세현과 여자의 몸이 순간적으로 뻣뻣하게 굳음과 동시에 두 눈동자가 맹렬히 떨렸다.

    “세...세현이?”

    “......”

    여자가 아는 체 그의 이름을 불러왔지만, 유세현은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

    분위기를 파악 못한 경계병이 끼어들었다.

    “오, 다혜씨 아는 사이에요?”

    “...아, 예.”

    확실히 아는 사이가 맞긴 했다.

    한때는 죽도록 사랑했던, 허나 이제는 꼴 보기도 싫은, 유세현이 모든 것을 잃고 괴로워 할 때 갑작스럽게 이별통보를 내리고 떠난 전 여자친구 김다혜.

    그게 눈앞에 서 있는 여자의 정체였다.

    “오랜만이네 세현아. 옆에는...그...강호였었나?”

    “...예. 맞아요. 아직 제 친구도 기억하시네요.”

    “......”

    생각지도 못했던 존칭 때문인지 김다혜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이윽고 잠시 뒤 살짝 한숨을 내쉰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세현아...굳이 존칭 쓸 필요 없어. 그냥 말 편히 해. 괜찮으니깐.”

    “아뇨. 직책이 있을 텐데 그럴 수는 없죠. 그보다 수속 진행해 주셨으면 합니다.”

    김다혜를 바라보는 유세현의 두 눈은 어느새 평소대로 돌아와 있었다.

    김주희를 스캔하듯 슬쩍 훑은 김다혜가 계속 말했다.

    “저분은?”

    “김주희. 팀원입니다.”

    “...저분도 6개월 차?”

    “예.”

    어느새 대화는 이강호가 아닌 유세현이 이어나가고 있었다.

    김다혜는 그에게 몇 가지 간단한 질문을 던졌고, 유세현은 그것에 사무적으로 답했다.

    수속은 생각보다도 훨씬 빠르게 진행되었다.

    연합 주둔지 안으로 들어서자 김다혜가 안내를 시작했다.

    < 주둔지(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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