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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81화 (81/612)
  • < 구름섬(4) >

    주홍빛의 풀숲을 헤쳐 가던 이강호의 눈이 뒤를 따라오고 있는 둘을 슬쩍 흘겼다.

    이전 정해두었던 것과 같이 향후의 계획을 위해서라면 그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힐 때가 되었다. 언제까지고 막무가내 식으로 이끌다 보면 간섭공간때와 충돌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

    이강호는 과연 유세현이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아니, 받아들이는 것을 떠나 어떻게 반응 할 지가 궁금했다.

    과연 그는 이 이야기를 듣고도 지금처럼 자신을 거리낌 없이 대해줄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것은 개인의 차가 있기 때문에 이강호도 예측 할 수 없다.

    그가 막 두 사람을 향해 운을 떼려던 찰나였다.

    순간적으로 눈을 번뜩 빛낸 유세현이 별안간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야, 강호야.”

    “왜?”

    “우리한테 추적자가 붙은 것 같다.”

    “...호오.”

    이강호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빨리 따라붙는 것은 생각지 못했는데.

    에드워드라는 놈이 행동력이 이렇게 빠를 줄이야. 아니, 촉이 좋은 놈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 지금 놓치면 간파능력을 튕겨낸 만큼, 다시는 추격하기 힘들 것이라 판단한 것일 터다.

    하지만.

    ‘이건 나쁘지 않지.’

    대개 이렇게 급하게 추격해오는 놈들은 엉성하기 그지없다. 또한,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 움직이는 만큼 강자를 데려올 일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는 많이 나눠가져야 되니깐.

    “혹시 적의 숫자가 몇 명인지 파악 되냐?”

    “물론. 정확히 3명이야.”

    인원수를 들은 이강호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짐작이 딱 맞아 떨어지고 있는 것.

    “마력 수치는? 너 그런 거 잘 읽잖아.”

    “두 놈이 약 50%, 나머지 한 놈이 약 80%로 뱀파이어와 거의 비슷해.”

    “에드워드겠군.”

    “그렇겠지. 그나저나 어떻게 할 거야? 이거 두 놈은 만만하다 쳐도 에드워드는 아무리 봐도 상대가 불가능할거 같은데...”

    현재 유세현의 전체 스텟 상황은 E랭크 51%로 간섭공간에 들어갔던 당시보다 정말 살짝 올랐다. 갑작스러운 간섭공간의 붕괴 때문에 기다리다 못한 이강호와 김주희가 뱀파이어에게서 나온 코인을 전부 흡수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이강호는 전체적인 능력이 3%올라 약 58% 됐고. 김주희는 약 40%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과연 이정도의 스텟으로 추격자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이미 한번 스텟의 격차를 겪어 본 유세현은 불가능하다 판단했다. 허나, 그렇다고 자신들을 향해 직선 루트로 추격해오는 그들에게서 벗어나는 것 또한 쉽지 않아보였다.

    무작정 도망쳐야 된다고 말하지 않고 이강호의 의중을 물은 것도 그 이유.

    이강호라면 분명 최선의 파해 책을 구사할 것이다.

    김주희의 불안 섞인 눈빛 너머로 이강호가 말했다.

    “아니, 불가능하지 않아. 세 명을 잡자.”

    “흠...어떻게? 설마 나랑 김주희가 수치 낮을 둘을 처리할 때 동안 너가 에드워드를 붙잡고 있겠다는 건 아니지?”

    “물론이지. 그리고 애초에 지금 이 상황은 너가 생각하는 것과 전제조건이 달라.”

    “응? 전제조건이?”

    “응. 지금 너는 뱀파이어와 에드워드를 동일하게 보고 있나 본데 사실 이 둘을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지.”

    “그게 무슨 뜻...”

    “뱀파이어가 훨씬 강해. 그것도 압도적으로.”

    유세현이 지금까지 줄곧 고른 스텟을 지니고 있어 미처 생각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지, 구름섬의 여타 생존자들의 스텟은 그렇게 균일하지 않다.

    몬스터가 넘쳐났던 튜토리얼과 달리, 이 구름섬 1~3층은 타 종족들로 인해 몬스터의 씨가 말랐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원하는 스텟 코인을 얻긴 커녕 강해지는데 필수 코인인 힘, 민첩, 체력, 마력 코인을 얻기에도 급급하다.

    그렇기에 구름섬 생존자들의 평균스텟 기준은 유세현이 생각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속성저항력이나 물리저항력 등을 포함한 전체 스텟이 아닌 힘, 민첩, 체력, 마력 이 네 가지로 별도의 평균 기준을 잡는 것이다.

    즉 그들은.

    “생각보다 저항력이 낮다는 말이네?”

    “그렇지. 부상을 대비해 저항력도 올리긴 올리지만 그것보다는 다른 쪽에 훨씬 힘을 주니깐.”

    그렇기에 인기 있는 던전도 이 4가지의 스텟 코인을 주는 던전이다.

    유세현이 차분히 턱을 짚었다.

    이강호의 말대로라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

    4가지 스텟을 제외하고는 생각보다 꿀리는 것이 없을 뿐더러 속성 저항력이 높지 않다는 건 상당히 크게 작용하기 때문.

    그의 능력을 고스란히 전해 받는 다는 뜻이 되니까.

    “진짜 해볼 만하네.”

    “그렇지.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야.”

    그들이 이렇게 빨리 추적을 개시했다는 것은 이짓거리를 한두 번 했다는 뜻이 아니다.

    즉, 새내기들을 많이 죽여 온 만큼, 높지는 않을지언정 생각보다 고른 스텟이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정면승부로는 사실상 승산이 그다지 높지 않은 것!

    그렇기에 이강호는 숲속 더 깊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더 빨리했다. 그에게는 생각이 있었다.

    잠시 멈춰선 이강호가 귀를 기울였다.

    솨아아.

    물소리가 들린다. 그는 그대로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따라 풀숲을 들쳤다.

    그러자 흰 대지를 가르고 있는 커다란 새빨간 색을 지닌 강이 나타났다.

    피처럼 붉다 하여 붙여진 강의 이름은 핏빛강.

    그들의 기습, 아니 매복이 이루어질 장소였다.

    * * *

    빠르게 숲을 가로지르던 로널드의 인상이 살짝 일그러졌다.

    끝임 없이 움직이던 냄새의 흔적이 갑자기 한 자리에서 멈춰 버렸기 때문이다.

    로널드는 곧장 에드워드에게 보고했다.

    “대장님 놈들의 흔적이 한곳에서 멈췄습니다.”

    “뭐? 어딘데?”

    “얼마 안 남았습니다. 바로 이 앞입니다.”

    “이 앞이라면...이런...”

    에드워드도 이 앞에 뭐가 있는 지는 잘 알고 있다.

    웬만한 생존자들도 건널 수 없는 거친 물살로 고블린과의 진형을 강제적으로 나눠준 핏빛강.

    아이언 연합방향으로 계속 나아갔으면 좋았을 것을 하필이면 그쪽 길로 갑자기 진로를 바꾸다니.

    에드워드의 미간이 좁혀졌다.

    ‘설마, 우리의 추적을 눈치 채고?’

    아무리 특수한 능력을 지녔다지만 설마 감지 스킬까지 있단 말인가.

    ‘후후후. 꼭 스킬이 떨어졌으면 좋겠는데.’

    에드워드는 추격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그 강은 건널 수 없는 강. 그들이 택한 행동이 대충 예상이 갔기 때문이다.

    결국 시간이 걸리나 안 걸리나의 차이일 뿐인 것이다.

    강에 도착하기 무섭게 에드워드가 로널드에게 물었다.

    “냄새는?”

    “이곳에서 완전히 끊겼습니다.”

    “그렇다면 잠수해서 이동하고 있겠군.”

    “예, 분명 그럴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제 후각을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죠.”

    “흠...”

    에드워드는 곧장 인원을 두 팀으로 나누었다.

    “나는 상류 쪽을 뒤져볼 테니 너희는 하류 쪽으로 향해라. 여자는 그렇다 쳐도 두 놈은 너희와 비슷할지도 모르니까 발견하는 즉시 바로 신호탄 날리고. 알겠냐?”

    “...새내기들이 저희와 스텟 수준이 비슷하다는 말씀이십니까?”

    “응. 그럴 가능성이 높아. 그러니깐 전투는 피해. 알겠지?”

    “예, 알겠습니다.”

    파앗!

    이윽고 에드워드가 상류로 자취를 감췄다.

    하류로 나아가던 로널드는 몇 발자국 움직이지 않아 갑작스레 멈춰 섰다. 그가 따라 멈춘 칑탄을 향해 말했다.

    “야. 칑탄. 이번 작업 왠지 촉이 오지 않냐?”

    “무슨 뜻이야?”

    “아니, 생각해봐 말이 된다고 생각해? 새내기들이 우리랑 비슷한 스텟을 지니고 있다는 게?”

    “...말이 안 되긴 하지.”

    “그렇지? 그렇다면 에드워드가 거짓말을 하는 이유가 뭘까?”

    “......”

    굳이 대답할 필요도 없었다. 현재 두 사람의 생각은 일맥상통하고 있었으니까.

    로널드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끼리 작업하자.”

    “들키면?”

    “에이, 급류에 쓸려내려 간거 같다고 구라치면 되지. 그리고 여자 쪽은 얼굴이나 몸매나 장난 아니라던데 우리도 한 번쯤은 먼저 먹어봐야 되지 않겠냐?”

    “흠...”

    “특별히 먼저 쓰게 해줄게.”

    “킥. 좋아 그럼.”

    마지막 말에 이윽고 칑탄에 입에 비릿한 미소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로널드의 눈빛이 별안간 날카롭게 빛났다.

    하류방향 100m조금 너머에서 놈들의 냄새가 잠시나마 다시 재발견 된 것!

    분명 숨을 쉬러 나온 것이리라.

    “칑탄. 그놈들 찾았다.”

    “킥. 그럼 빨리 가서 처리하자고.”

    순식간에 100m를 주파한 칑탄과 로널드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새내기들의 수준은 아무리 높아봐야 E 랭크 20% 정도였기에 그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단순히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를 제거하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허나.

    ‘뭐, 뭐야?’

    ‘...헙!’

    보다 더 깊은 수심에서 세 명의 새내기들이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뛰어 들어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로널드의 두 눈이 커졌다. 지금 생각나는 단어는 오직 하나.

    ‘함정?’

    세 명의 몸 주위에는 푸른색의 특수한 막이 감싸여져 있었다.

    발을 휘젓고 있지 않는 것을 보니 물살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모양.

    싸한 느낌을 받은 로널드가 칑탄에게 퇴각 신호를 보내려던 찰나였다.

    김주희가 외쳤다.

    “운디네!”

    “아쿠아 토네이도!!”

    물속에서 물의 정령은 그야말로 최강.

    운디네가 발동시킨 거대한 소용돌이가 빠져나가려는 칑탄과 로널드의 육체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곧바로 임전태세에 들어갔다.

    회전하는 소용돌이를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산만하기 그지없지만 당황하지 않고 대처만 확실히 한다면, 스텟이 높은 자신들이 우위 할 것이라고 그들은 믿었다.

    허나.

    슈우욱!

    서걱.

    “커헉. 부르륵. 읍!”

    맹렬한 속도로 접근하여 쇄도해 들어오는 유세현의 검을 미처 전부 방어하지 못한 로널드는 경악을 터트리다 자신도 모르게 입속으로 밀려들어오는 물에 황급히 입을 닫았다.

    지금 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란 말인가?

    ‘제, 제길! 일단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된다!’

    로널드는 그들의 몸을 보호해주고 있는 막이 있는 이상 승산이 없다 판단했다.

    ‘젠장. 새내기 따위한테 이걸 써야 되다니.’

    들고 있던 그의 검신이 붉은 빛을 발산한다. 자신을 몇 번이고 위기에서 지켜주었던 비장의 스킬.

    ‘폭렬검!’

    콰앙!

    강한 폭발과 함께 그 반동으로 로널드의 신형이 높이 솟아올랐다.

    물 밖으로 빠져나온 로널드는 황급히 낙법을 사용해 충격을 감소시키고 자세를 다잡았다. 안타깝게도 칑탄은 빠져나오지 못한 모양.

    ‘젠장. 새내기 맞아? 무슨 이런 놈들이...’

    함정을 짜고 기다리는 게 보통 주도면밀한 것이 아니다.

    ‘설마 냄새도 일부러?’

    그리 생각하자 황급히 에드워드를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품에 있는 신호탄을 향해 손을 옳긴 순간이었다.

    쿠구궁!

    “헉.”

    무거운 중압감이 전신을 짓눌렀다. 덜덜 떨리기까지 하는 손.

    “씨, 씨발 이게 무슨...”

    몸이 좀 처럼 잘 말을 듣지 않는다. 마치 내 몸이 아닌 것 마냥.

    “제, 제압 스킬? 미...미친. 나를 제압한다고? 나를? 새내기가?”

    그는 현 상황이 믿겨지지 않았다. 물속에서 어이없게 당한 것은 둘째치더라고 이렇게 전신을 속박하는 능력이라니.

    “크으...!”

    그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손을 억지로 움직여 신호탄을 꺼냈다.

    그에게 이제 남은 희망은 강한 스텟을 지닌 에드워드뿐이었다.

    가까스로 손을 치켜 올린 그가 신호탄을 발사한 순간이었다.

    푸훙!

    물속에서 별안간 솟구친 흑빛섬광이 그가 있는 공간을 갈랐다.

    * * *

    삐이이잉!

    펑!

    ‘발견했나!’

    에드워드는 신호탄을 확인하기 무섭게 하류로 달려갔다. 저 멀리서 물에 쫄딱 젖어있는 부하 두 명의 신형이 보였다.

    에드워드가 지긋이 혀를 찼다.

    ‘기어코 일을 먼저 저지를 모양이군.’

    적이 강할 수있다고 그리 일러뒀거늘 분명 혼자 해먹으려다가 힘에 부치니 도움을 청해온 것이리라.

    ‘저놈들도 못쓰겠군.’

    그는 추후 둘을 은밀하게 제거할 계획을 가졌다. 한번이라도 딴 맘을 먹은 놈들은 대개 그 끝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자신처럼.

    “칑탄! 로널드! 책임은 나중에 묻겠다. 그놈들은 어디 있지?”

    “......”

    둘은 답하지 않았다. 그저 비틀거리며 에드워드에게 다가갈 뿐이다. 에드워드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너희들 지금 내말 무시...”

    그가 질타를 하려던 찰나였다.

    “키아악!”

    괴성을 내뱉은 칑탄과 로널드가 별안간 에드워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흰자위가 돌아간 것이 한눈에 봐도 정상이 아닌 상태.

    “뭐야?”

    그는 재빨리 검으로 둘의 가슴을 베어버렸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니, 되려 더욱 거칠게 달려들었다.

    주인의 명령을 무작정 따르는 언데드.

    그들은 몸이 부서지던 뭉게지던 찌부러지던 끝까지 적을 노린다.

    콰득.

    이윽고 몸의 절반이 날아간 칑탄의 턱이 에드워드의 왼쪽어깨를 물었다.

    “크아악.”

    황급히 떼어낸 에드워드가 일이 뭔가 잘못 되도 톡톡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 순간이었다.

    파지직!

    몸을 짓누르는 무영의 힘과 동시에 칠흑의 뇌전줄기가 머리위로 쏟아졌다.

    정신이 팔려있던 그로서는 절대 회피할 수 없는 빠르기.

    에드워드는 황급히 방어스킬을 사용했다.

    “스, 스톤스킨!”

    < 구름섬(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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