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80화 (80/612)
  • < 구름섬(3) >

    그런 욕심 많은 그들이 간파스킬을 방어한 특이한 능력을 지닌 새내기를 들을 가만히 둘 것인가.

    물론 가능성은 있다. 어디까지나 확률이 현저하게 낮을 뿐.

    만약 E급 80%수준에 달하는 인원들이 흑심을 품고 5명 정도만 무리 지어 기습을 해온다면, 스텟이 상대적으로 낮은 이강호와 유세현으로서는 어이없게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움직이려면 사람들의 눈 때문에 대놓고 처단할 수 없는 지금이 제격.

    이강호는 그윽한 눈초리로 천막을 봐라봤다.

    과연, 김주희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궁금했다.

    * * *

    ‘특수 스킬이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 그런 거라면...누가 알아내어 채가기 전에 내가 가지고 싶군.’

    다음사람을 부른 에드워드는 일단 눈앞의 일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곳은 천호의 요새. 구름섬에 생존자들 중 약 2/3가 몰려있는 곳이니 만큼, 새내기들이 이곳을 떠날 거란 생각은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스윽.

    이윽고 부름을 받은 여자 한명이 천막 내부로 들어왔다. 무심코 이름을 물어보기 위해 고개를 든 에드워드의 시선이 별안간 멈춰 섰다.

    고무줄로 질끈 묶은 머리카락과 다 낡아빠진 레더아머. 피를 그야말로 한바가지 뒤집어 쓴 여자는 그 어느 새내기들보다도 훨씬 몰골이 지저분했다. 연이은 강행군으로 씻을 시간도 좀처럼 주어지지 않은 탓이다.

    허나.

    ‘오~장난 아닌데?’

    그럼에도 여자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큰 눈망울과 오똑한 코. 그리고 동양인답지 않은 흰 피부까지.

    오밀조밀하면서도 뚜렷한 이목구비로 인해 생긴 청순하면서도 온화한 인상은 동양풍의 미녀 그 자체를 자아냈다.

    또한 몸에 딱 붙는 지저분한 레어아머는 오히려 그녀의 몸매를 더욱 강조하고 있었다.

    얼굴은 청순하면서도 몸매는 요녀 같은 것이 그야말로 남자의 로망.

    그런 에드워드의 노골적인 시선을 김주희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가 강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녀는 되려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저...앉아도 되나요?”

    “아하하. 다, 당연하죠. 앉으세요. 진즉 말했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아, 예.”

    스윽.

    에드워드는 김주희가 앉는 순간 까지도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이윽고 면담이 시작됐다.

    에드워드는 늘 그랬던 것처럼 간파스킬을 사용했다. 정보를 확인한 에드워드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켰다.

    평균 스텟 40%.

    일반 생존자로서는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수치이다.

    ‘무...무슨.’

    허나, 놀라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의 두 눈이 스킬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저, 정령소환...이건 뭐지? 아니 그보다 피의 장막. 피의 장막이라고?’

    피의 장막.

    유니크 A랭크의 방어마법.

    일부 체력과 마력을 소비하는 이 스킬을 에드워드는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

    빌어먹을 구름섬 4층의 지배자. 높은 스텟과 바퀴벌레 같은 생명력 때문에 생존자들의 천적으로 군림한 몬스터.

    그런데 그 스킬을 이 여자가 가지고 있다니.

    ‘이, 이 여자 뭐야? 뭐냐고?’

    처음에는 단순히 얼굴만 아름다운 여자인 줄 알았다. 남자에게 몸을 바쳐 가까스로 목숨을 연명하며 이곳에 도달한 생존자인줄 알았다.

    그녀의 탁월한 미모는 그 정도의 가치는 되니까.

    하지만.

    이건 예상하고 너무 다르지 않는가.

    단순히 얼굴만 아름답다고 생각한 그녀는 그가 그간 봐온 새내기 중에서도 가장 역대 급의 높은 스텟 수치를 자랑했다.

    무슨 수로 이런 힘을 얻은 것인가.

    자연스레 그녀가 가지고 있는 스킬이 탐이 났다. 하지만 그보다도 이 여자를 자신의 소유로 만들고 싶다는 더한 욕구가 더욱 강렬히 그를 사로잡았다.

    그녀가 아무리 강하다 할지언정 스텟의 차이는 확연했으니까.

    팀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보다 좋은 조건을 내세워 잘만 어필한다면 분명 얻을 수 있다.

    에드워드는 요새 내부의 권력과 그로인해 발생된 1~3층 던전의 우선권 등 팀의 장점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만약 우리 팀으로 오시게 된다면, 다른 새내기들과 달리 최상의 대우를 약속해 드리겠습니다. 여차하면 1층의 메인 아이템도 얻을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에드워드가 이윽고 말을 끝냈다.

    지금까지 줄곧 가만히 듣고 있던 김주희가 입을 열었다.

    “왜 그런 대우를 저에게만?”

    한껏 의문이 담긴 목소리.

    구름섬에 도착하여 강자들을 확인한 김주희는 어떻게 해야 될지 무척이나 많이 고민했다. 계속 이강호와 유세현을 따라가야 되는가, 아니면 더욱 강자가 있는 다른 팀에 붙어야 하는가.

    예전의 그녀였다면 당연히 후자를 바로 선택했겠지만, 지금은 되려 이강호와 유세현 쪽으로 상당히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허나, 그럼에도 그녀가 망설이고 있는 이유.

    그것은.

    ‘너무 지쳐...’

    이강호와 유세현은 너무도 독보적이다. 쉬지 않고 적을 죽이며 계속 강해진다.

    그리고 그것이 김주희에게는 부담이었다. 그들을 계속 따라가기 위해서는 이 생활에 완벽히 적응을 해야 되는데, 이는 항상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는 것과도 같다.

    그녀는 살짝이나마 편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제가 김주희씨를 인재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제 눈은 지금까지 거의 틀리지 않았죠.”

    에드워드의 말을 듣고 완전히 결심이 섰다.

    그가 지금 발산하는 눈빛은 이전 이용석과도 같은 늑대의 눈빛이었다. 아니, 더 나아가 무슨 꿍꿍이가 있는 듯한 느낌.

    아무리 좋은 조건이면 뭐하겠는가. 믿음이 전혀 안 가는데.

    눈치와 더불어 촉도 좋은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런 세계에서 조금이라도 편해져 보겠다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거람...’

    자신이 여유가 생긴 것은 강해진 덕분이다.

    허나, 편안함은 강함과 반비례한다. 지금이야 미리 높여둔 스텟으로 버틸 수 있다지만.

    ‘그래서는 앞으로 힘들어지겠지...’

    더군다나 두 사람 같이 믿음이가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아니, 그들을 이미 한번 경험해 본 이상 이보다 더한 신뢰를 주는 존재를 만나기란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김주희는 인정했다.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음을.

    자신 스스로가 벗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음을.

    턱.

    김주희는 석판을 꺼내어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에드워드의 두 눈이 살며시 커졌다.

    설마, 이런 파격적인 조건에도 들어오지 않겠다고 하는 새내기가 있다니.

    “주희씨 이건...”

    “예. 죄송합니다. 들어가지 않을게요.”

    “...다시 생각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런 기회는 다신 없으실 텐데.”

    “...죄송합니다.”

    김주희는 말을 마치고 바깥으로 나왔다.

    그간, 여러가지 상념으로 인해 생겨났었던 압박감이 사라지며 새삼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선배님~”

    그녀는 쫄래쫄래 유세현과 이강호를 향해 뛰어갔다. 미처 반겨줄 틈도 없이 이강호가 빠르게 자초지종을 설명해나갔다.

    * * *

    “...그렇게 된 거군요. 어쩐지 계속 파격적인 조건으로 회유를 하더라니...”

    기분이 나빠진 김주희가 손톱을 살짝 물어뜯었다.

    이강호가 바로 말을 이었다.

    “아무튼. 우리는 지금 당장 이곳을 빠져 나갈 거다. 너는 어떻게 할래?”

    “...예? 그게 무슨 말씀...”

    “이제부터 우리는 반쯤 쫓기는 몸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는 좋은 스킬을 가지고 있는 먹잇감이니깐 말이야. 철회할거면 지금밖에 없어. 우리와 같이 이 요새를 나가면 그땐 되돌릴 수 없다.”

    “...같이 빠져나가요 선배. 이미 정했어요.”

    김주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강호와 유세현이 그들에게 붙잡힌다는 것은 가히 상상이 잘 안 됐음으로.

    이강호의 입꼬리가 다분히 올라갔다.

    이로서 그녀는 완벽히 한배를 탔다. 스스로의 의지로.

    “좋아 그럼 바로 빠져나간다.”

    세 명의 신형이 북적되는 요새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 * *

    구름섬에서 생존자들이 머물 수 있는 최대 시간은 2년. 그렇기에 각 팀에서는 년차와 스텟 순으로 계급이 나누어진다.

    1년 차의 경우 평균 스텟은 대략적으로 E랭크 80~85%.

    때문에 장장 8개월 만에 E랭크 80%에 도달한 에드워드는 팀 헤르메스에서도 제법 좋은 위치에 속한다.

    그리고 몬스터 공급량이 부족해 허덕이는 이 층계에서 그가 단 기간 내에 이렇게 까지 강해질 수 있었던 것에는 이유가 있다.

    ‘젠장. 어디 간 거지?’

    면담이 끝나기 무섭게 빠르게 3명의 행방을 찾아 나선 에드워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위치를 알아두었다가 어둠을 틈타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할 심상이었는데.

    팀 어디에도 그들의 명단은 없었다. 또한 개인적으로 팀을 만들지도 않았다. 그것도 세 명 전부가.

    ‘이 새끼들 설마...팀이었나?’

    순차적으로 천막 내부로 들어왔다는 점에서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못해 넘쳐흘렀다.

    에드워드는 금발을 손으로 쓸어 올렸다.

    고작 한 시간도 지나지 않은 지금 설마 자신이 노릴 수도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빠져나가다니.

    탐욕스러운 그의 마음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들이 도망을 쳤다는 뜻은, 그만큼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에드워드는 자신보다 낮은 계급의 수하 한명을 은밀하게 불러 세웠다.

    그리고는 석판 3개를 내밀며 말했다.

    “야, 로널드 이거 추적 가능하냐?”

    “...추적 말씀입니까? 설마...”

    대답하는 로널드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이제 6개월 차에 들어선 그는 한번 우연히 합을 맞춘 이후로 종종 이렇게 같이 일을 벌일 때가 많았다.

    에드워드가 피식 웃었다.

    “짜식 알면서 묻긴...이번에는 기똥차게 예쁜 여자도 있어. 가능해? 불가능해?”

    “...그런 거라면 안 되는 것도 무조건 가능하게 만들어야죠.”

    “크크. 너는 이래서 마음에 들어. 자 빨리 해봐.”

    “옙.”

    석판을 받아든 로널드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냄새로 상대방을 추적 할 수 있는 탐지스킬.

    냄새로 몬스터를 분간할 수도 있었기에 로널드는 이것으로 팀 헤르메스에서 인정을 받았다.

    석판에서 코를 뗀 로널드가 지긋이 말했다.

    “찾았습니다. 제법 빨리 이동하고 있는데요?”

    “그래? 어디 방향인데?”

    “...음. 그게...”

    대답하려던 로널드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아이언 연합이 주둔해있는 있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뭐라고? 에이 설마. 그놈들 새내기인데? 정확한 거야?”

    “예. 거의 정확히 일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방금 말했듯이 꽤 걷는 속도가 빨라요. 이 정도라면 내일 모레면 도착할 거 같은 데요.”

    “허...”

    에드워드의 실소 섞인 헛바람이 터져 나왔다.

    만약 알고 가는 것이라면 이는 놀라움을 넘어선다.

    로널드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약 여기서 조금만 더 멀어지면 저도 더 이상 추적 할 수 없게 됩니다.”

    “흠...”

    에드워드는 잠시 망설였다. 본래라면 E랭크 50%의 스텟을 지닌 로널드와 둘이서 사냥을 나섰겠지만.

    김주희의 스텟이 약 40%감안했을 때 스텟을 파악하지 못한 두 명의 능력을 더 높게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등골을 타고 흐르는 왠지 모를 꺼림직 한 감각.

    에드워드는 결국 수하를 한 명 더 늘려 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로널드. 게릭한테 적당히 보고하고 올 테니. 넌 칑탄 불러서 대기하고 있어.”

    “칑탄까지 데려가는 겁니까?”

    “어, 그래. 혹시 모르니깐.”

    “알겠습니다.”

    둘은 갈라졌다. 그리고 잠시 뒤 추격이 시작되었다.

    * * *

    이강호는 회귀 전 구름섬에서의 할 일을 명확히 정해뒀었다.

    첫째는 전쟁군주 이태광과의 접촉.

    둘째는 던전을 이용한 빠른 성장.

    그는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 안에 이 구름섬을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판도라의 형세가 인간 진형에 안 좋게 작용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

    ‘7층 던전을 클리어 한다.’

    구름섬 7층.

    사실 이 7층은 발 딛은 사람이 몇 되지 않는 유명무실한 장소다.

    같은 대리자 신분으로 위치해 있는 고블린들이나 코볼트들의 잦은 견제가 성장부족으로 이어져 사실상 6층의 몬스터조차도 상대하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허나, 어딜 가도 예외는 있는 법.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7층으로 올라가 던전을 클리어한 사람들이 있었다. 현대인들보다도 한 발 앞서 이곳에 도착한 이들.

    구름섬에 커다란 벽을 쌓아올려 요새를 만든 장본인이자, 판도라에 인간 진형을 일으킨 선구자.

    아르카드 제국인.

    그들은 제국을 수호하는 마법사와 기사들 그리고 강해진 병사를 바탕으로 이 종족들을 섬멸하고 7층의 던전까지 클리어 한 뒤 마침내 손에 넣었다.

    판도라에서도 그 얻기 힘들다던 유니크 SSS 랭크의 아이템.

    이프리트의 화염 창.

    아르카드의 국왕에게 인정받은 이강호가 레전더리 등급의 아이템인 화신의 멸화창을 얻기 전까지 애용한 아이템이었다.

    아무쪼록 같은 아이템이 나올 확률은 높지 않지만, 그래도 높은 랭크의 아이템은 먹을 수 있는 것은 먹어두는 게 맞는 법.

    이강호는 아르카드인들이 했던 것과 같이 이 종족들이 힘을 쓰지 못하도록 전부 갈아엎을 생각이었다.

    얼마 후에 이루어질 게이트의 활성화 이후.

    지금까지 강한 힘으로 그들을 지켜주던 1.5~2년차 사이의 강자들이 전부 판도라로 이동하게 된다면.

    < 구름섬(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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