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77화 (77/612)
  • < 희생과 기억 그리고...(3) >

    “......”

    새삼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자신만이 얻을 수 있는 스킬의 입수경로를 본의 아니게 알아내버린 셈이 되었으니까.

    살짝 놀란 유세현이 위치나 기후 등 좀 더 세세히 물으려던 찰나였다.

    천마의 손이 난데없이 그의 어깨를 향했다.

    어깨에 손을 얹으려던 의도로 보였으나, 천마의 손은 그대로 관통해 빠져나갔다.

    스스로의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는 천마의 입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아직 더 있지만. 이젠 여기까진 거 같구나.]

    “예?”

    유세현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천마가 팔을 뻗어 자신의 상태를 보여줬다.

    단단히 결집되어 육체를 구성하고 있던 마력의 덩어리가 손끝을 시작으로 조금씩 흩어지고 있었다.

    천마가 중얼거렸다.

    [끌끌끌. 본좌도 늙었군. 고작 가지고 있는 심법하나 넘겨줬다고 이리되다니...자리에서 일어나거라 제자야. 이제 이곳에서 나갈 시간이다.]

    유세현은 일단 그의 말마 따라 오른손을 지지대로 사용하여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움직일 때마다 관절과 근육 등 온몸의 세포가 비명을 내질렀지만, 그렇다고 이전처럼 완전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오만인상을 쓴 유세현이 이윽고 완벽히 자리에 섰을 때였다.

    빠직! 빠지직!

    새하얗기만 한 허공에 갑작스레 균열이 생기며, 파편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무너져가는 천마의 마력육체와 더불어 공간의 붕괴가 시작된 것이다.

    천마가 손을 들어 한쪽방향을 가리켰다.

    [그냥, 이 방향으로 쭉 걸어가면 된단다. 제자야.]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스승님.”

    [왜 그러느냐 아둔한 제자야. 시간이 없다. 말할 것이 잇거든 뜸들이지 말고 퍼뜩퍼뜩 말한 뒤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거라.]

    붕괴가 점차 가속되는 것을 확인한 천마가 재촉했다.

    고개를 끄덕인 유세현이 손을 뻗으며 말을 이었다.

    “...예, 그렇다면 정말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곳에서 같이 나가시죠. 스승님.”

    [...그게 무슨 뜻...]

    슈우욱!

    한순간 멍한 표정이 된 천마가 미처 전부 대답할 틈 없이, 마력으로 이루어진 천마의 몸이 빠르게 분해되며 귀걸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화등잔만해진 천마의 두 눈을 본 유세현이 나직이 말을 이었다.

    “스승님에게도 나쁜 것은 아닐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흡수의 속도가 너무 빠른지라 천마는 답하지 못했다. 그렇게 귀걸이 속으로 천마가 완전히 사라진 후였다.

    [영혼의 귀걸이가 천마의 혼을 수집했습니다.]

    떠오르는 알림창과 동시에 붕괴가 더욱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크윽...”

    유세현은 온힘을 다해 걸어 나갔다. 의사를 확실히 묻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이제 와서 돌이킬 수도 없는 법.

    그렇게 몇 걸음 더 걸었을 때였다.

    이전 에도 익히 본적 있던 익숙한 문구가 두 눈동자 위로 떠올랐다.

    [영혼의 귀걸이가 천마의 혼을 완벽히 잠재울 수 없습니다. 착용자의 시야가 천마에게 공유됩니다.]

    마왕 때는 왼쪽이더니, 이번에는 오른쪽 귓불이 잔잔히 떨린다.

    역시 강자들은 뭐가 달라도 다른 것일까. 이번에도 여지없이 시야공유라니.

    허나, 어렴풋 예상을 했던 만큼 별다른 감정은 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괜찮다고 생각했다. 마음한편으로 신경 쓰이던 것이 싹 쓸려 내려갔으니까. 이렇게 되면 천마는 분명 만족할 것이다.

    쿠구궁!

    그때, 발밑에 균열이 생겼다. 시간이 이제는 진짜 없다.

    유세현은 입을 악문 뒤 붕괴되는 길을 걸어 나가는데 더욱 박차를 가했다.

    * * *

    트드득!

    쿠구궁!

    붕괴가 시작된 것은 유세현이 있던 장소뿐만이 아니었다.

    루베르크의 주인각인을 통해 유세현의 생사를 확인하고, 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이강호와 김주희의 머리위로 암석이 굴러 떨어져 내렸다.

    암석을 베어 넘긴 이강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판도라에서 익히 경험해 본 덕에, 앞으로 대략 몇 분 후면 붕괴가 완전히 끝나는지 그는 알고 있었다.

    ‘좋지 않아...’

    만약, 제한시간 내에 탈출하지 못하면 간섭 공간 통째로 소멸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강호는 어쩔 수 없이 김주희를 먼저 이곳에서 내보내기로 결정했다.

    “김주희 먼저 이곳을 빠져 나가라.”

    “...아뇨, 저도 기다릴게요. 세현 선배 오면 셋이 같이 나가요. 선배.”

    “내 전속력을 따라오지 못 할 거면 얌전히 말 들어라. 지금 이 상황에서 너까지 챙겨줄 여유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나가있을게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김주희는 더는 고집부리지 않고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강호의 초조한 눈이 유세현이 사라진 장소를 향했다.

    ‘젠장, 빨리 와라.’

    앞으로 5분.

    5분 내에 못나오면 어쩔 수 없이 버리고 빠져나가야 된다.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더욱 가속되는 붕괴.

    이윽고 5분이 지났을 무렵이 이었다.

    이강호는 평소 그답지 않게 분을 이기지 못하고 허공에 주먹을 휘둘렀다.

    “으으!!”

    과거를 포함하여 무려 두 번.

    두 번이나 그에게 목숨을 구제 받았다.

    그런데 반대로 자신은 그에게 무엇 하나 해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지독한 무력감이 전신을 옥죈다.

    이강호가 어쩔 수 없이 몸을 돌린 순간이었다.

    환한 빛과 더불어 유세현의 몸이 모습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재회의 인사를 나눈틈도 없이 순식간에 유세현의 몸을 안아든 이강호가 절벽을 타기 시작한 것은.

    그들은 결국 떨어지는 암석을 전부 회피한 이강호의 날카로운 움직임 덕에 루베르크까지 회수하여 무사히 간섭공간을 벗어날 수 있었다.

    * * *

    바깥으로 빠져나온 그들은 평범한 협곡으로 탈바꿈 된 죽음의 협곡에서 하루 동안 휴식을 취했다.

    잘려나간 팔 등, 유세현의 몸이 기동하기 힘든 상태이거니와 아직 약 3일이라는 시간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출구가 별로 멀지도 않았고, 지도도 있었기에 그들은 사실상 마음만 먹으면 하루 만에 도달 하는 게 가능하다.

    그렇게 휴식을 취하는 동안 유세현은 천마와 만나 나눈 대화에 대해 이강호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용을 들어나가는 이강호의 눈가가 무척이나 매섭게 떨린다.

    결국 이강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반문했다.

    “천마신공을 승계 받았다고?”

    “...응. 정확히는 천마심법과 구결만이지만.”

    “...허.”

    판도라의 법칙에 있어 승계와 전수는 의미하는 바가 무척이나 다르다.

    단순히 알려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 전수에 비해 승계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고스란히 넘기는 것이기 때문.

    그리고 이는 무공을 삶의 전부로 여기는 무림인들에게는 목이 떨어져도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 승계라니...착각이겠지.’

    이강호가 물었다.

    “세현아 그럼 천마심법의 등급이 어떻게 되...”

    “에픽.”

    “...랭크는?”

    “트리플 S.”

    이강호는 기어코 말문이 막혔다.

    마왕과 천마의 능력을 고스란히 계승받은 자라니.

    그는 규격 외를 넘어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추후 그가 신교, 아니 마교로 잠입해 천마신공을 익히고 어둠의 권능을 제대로 다룰 수만 있게 된다면.

    ‘어마무시 하군.’

    생각 하는 것만으로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과연 그는 얼마나 강해지게 될 것인가. 이강호로서도 정확한 판단이 서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이것만큼은 분명했다.

    유세현이 스텟 S랭크를 찍는 순간 개인적으로 그를 대적할 수 있는 자는 거의 없어지게 될 것이라는 걸.

    이강호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허나, 놀라움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말을 이어가던 유세현이 피식 웃으며 검지로 귀걸이를 가리켰다.

    순식간에 옆으로 다가온 김주희와 이강호가 빤히 살폈다.

    정보는 본래 착용한 당사자만이 볼 수 있지만, 당사자가 보여줄 상대를 인식하면 아이템의 소유자가 아닌 사람들도 정보를 관람하는 것이 가능했다.

    아이템명: 영혼의 귀걸이

    등급: 유니크 [B Rank]

    상세정보: 영혼석으로 만들어진 귀걸이 입니다. 오랜 시간 밴시 퀸의 몸속에 위치해 있어 죽은 영혼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생겼습니다. 마왕과 천마의 영혼을 수집한 상태입니다. 귀걸이가 사용자에게 항시 귀속됩니다.

    사용효과: 영혼수집.(2명제한)

    수집한 영혼: 루시뷀트. 독고천

    사용가능 스킬: 흑암(黑暗)(1일 1회), 흑뢰(黑雷)(1일 1회), 천마혈사장(天魔血死掌)(1일 1회),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1일 1회)

    정보를 읽은 이강호는 영혼에 내재된 혼의 정체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마왕에 이어 천마의 혼까지 수집하다니.

    이 아이템은 더 이상 유니크 등급이라고 할 수 없다. 아니, 웬만한 등급의 레전더리 아이템보다도 훨씬 뛰어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일사용이라고는 하나 그 무엇도 이렇게 위력적이고 효율이 좋은 스킬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니까.

    “효과는...”

    “지금사용하면 내 몸 부서진다.”

    “...내일 보여줘라...”

    튜토리얼의 범주 에서 벗어났던 만큼, 간섭공간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어마 무시한 수확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강호와 김주희도 예외가 아니었다.

    순도 높은 코인과 스킬.

    이강호는 이번의 전투로 피의 칼날 스킬을, 김주희는 피의 장막 스킬을 얻었다.

    본래라면 피의 장막은 유세현에게 돌아가야 했지만, 붕괴직전까지 그가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에 김주희가 흡수했다.

    “죄송해요 제가 선배가 드셔야 될 코인을 흡수해서...”

    “뭐, 어쩔 수 없던 거니. 신경 쓰지 마라.”

    불가항력이었던 만큼 유세현은 쿨하게 넘어갔다. 아니, 되려 김주희가 생존자들을 상대로 애썼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만큼, 흡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 판단한다.

    김주희는 이전에 비해 확실히 변했다.

    “옙!”

    염치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입을 싹 닫는 것만 제외하면.

    * * *

    미로의 끝이자 탑의 꼭대기.

    제한시간이 끝나고 문이 닫히자, 모습을 드러낸 도우미가 생존자들을 향해 박수갈채를 보냈다.

    짝.짝.짝.

    [축하드립니다. 이것으로 대리자분들께서는 모든 튜토리얼을 수료하셨습니다.]

    동시에 그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튜토리얼 종결을 알려 왔지만 그 누구도 기뻐하는 사람은 없었다.

    앞으로 더욱 험난한 세계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 탓이다.

    [지금부터 대리자 분들께서는 구름섬으로 이동하여 생활하시게 될 것입니다. 최대 거주 가능 시간은 2년. 그 사이에 대리자분들께서는 판도라로 나아가는 길을 찾아 나아가셔야 됩니다.]

    “...만약 못 나아간다면?”

    생존자 한명이 답이 뻔히 보이는 질문을 던졌다. 도우미가 곧장 답했다.

    [죽습니다.]

    예상 모범 답변이었기에 사람들은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딱.

    생존자 전원의 얼굴을 훑은 도우미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원뿔의 형태로 이루어져있던 지붕이 반으로 갈라지며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1~2년차 생존자들이 모여 있는 구름섬으로 통하는 길.

    [이곳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이동위치는 고정되어있어 흩어질 염려는 없으니, 제일 선두에 있는 사람부터 바로 출발하시면 되겠습니다.]

    “...에잇!”

    슈우웅! 파앗!

    한 명, 또 한 명.

    사람들은 저마다 탄성을 지르며 빛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그렇게 사람은 점차 줄어 이윽고 제일 늦게 탑에 도착한 그들의 차례가 왔다.

    그들은 단번에 빛을 향해 뛰어들었다.

    쉬이익!

    마치 중력이 역전된 듯 세 명의 몸이 빠르게 솟구치고 이내, 뭉게뭉게 피어오른 새하얀 솜같이 생긴 벽을 뚫고 통과했다.

    풍!

    중력 역전현상은 벽을 통과하기 무섭게 사라졌다. 고개를 돌리자 생존자들이 한껏 어벙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구름 같은 새하얀 땅. 그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는 주홍색의 나무.

    정말 하늘에 올라온 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신비로운 곳이었다. 아니, 탑을 올라왔으니 실제로 상공에 있는 것이리라.

    유세현이 그 어느 때처럼 마력의 흐름을 읽은 순간이었다.

    “헉!”

    입에서 헛바람 섞인 경악이 터져 나왔다.

    간섭공간의 뱀파이어와 비슷한 마력을 지닌 수백 마리의 생명체가 엎어지면 코 닿을 만 한 거리. 전방 30m앞에 위치해 있었다.

    “가, 강호야...너 너도 느꼈...”

    당황한 유세현이 채 말을 끝내기 전이었다.

    “거기 새내기들! 전부 주모오옥!!”

    모든 것을 압도하는, 고막을 후벼파는 듯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전방에서 울려 퍼졌다.

    < 희생과 기억 그리고...(3) > 끝

    ⓒ Kings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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