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70화 (70/612)
  • 도태된 자들의 무덤(2)

    빌딩의 내부.

    창문 틈 사이로 행여나 생존자들이 들어올까 관찰하고 있던 한영철은 밝은 빛을 보기 무섭게 옆에 있던 조장 김두식을 향해 보고했다.

    “두, 두식씨 두식씨!! 새, 생존자들이 들어왔어요!”

    “...오! 진짜요? 몇 명인데요? 한번 봐봐요.”

    책상에서 누워 있던 김두식은 재빨리 일어나 창문으로 향했다.

    바깥 길에는 정말로 생존자들이 있었다.

    남자 2명에 여자 1명.

    생각 보다 너무 적은 수다.

    잠시 동안 밝아졌었던 김두식의 표정이 빠르게 다시 수그러들었다.

    이곳에 진입한지도 어느덧 4일.

    그들이 처음 도착했던 장소인 철의 미로는 누군가에 의해 이미 몬스터의 씨가 말라있었다.

    200명이라는 인원을 고스란히 데리고 내부미로로 들어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증표의 수.

    그들은 결국 어쩔 수 없이 애써 모은 증표로 아이템을 사 이곳 회색의 미로로 진입했다.

    몬스터의 수가 많기를 바라면서.

    허나, 이 주위를 둘러본 그들은 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팀보다 한발 앞서 도착한 100명가량의 생존자 팀이 그나마 남아있던 몬스터를 처리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다시 결정을 해야 했다.

    몬스터를 찾아 움직일 것인가, 아니면 빼앗을 것인가.

    불안한 마음만큼이나 고민은 짧고 결정을 빨랐다.

    그들은 곧장 2배가량 되는 수적 우세를 이용하여 어둠을 틈 타 기습을 가했다.

    결과는 대승.

    비록 30명의 사망자가 나왔으나 팀원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 내에 미로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면 죽는 것은 매한가지다.

    그들은 곧바로 증표를 모았다.

    남색 증표 1900장에 주황색 증표 1400장으로 상당한 양이었지만 팀원 모두를 내부미로로 이동시키기에는 수량이 그래도 부족 했다.

    때문에 팀원들은 불안한 만큼이나 증표를 넘겨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팀 자체가 붕괴될 수도 있는 상황.

    결국 총책임자인 조진영은 한 가지 대책을 고안해 냈다.

    이 회색의 도시에서는 남색과 주황색의 티켓 사용이 불가능한 만큼, 이곳에 들어오는 여타 생존자들을 덮쳐 증표를 얻은 후, 비로소 팀원이 전부 나아갈 수 있을 때 티켓을 분배 하겠다는 것이다.

    제법 타당하고 공평한 말이었지만 그렇다고 한 사람에게 관리를 맡긴다는 것은 무척이나 불안한 일.

    허나, 마땅히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한 생존자들은 감시원을 붙이는 것을 조건으로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각 구역을 나눠 맡아 행여나 들어올지 모르는 생존자들을 감시하게 되었다.

    하지만.

    ‘젠장, 고작 세 명이라니...’

    몬스터 수만큼 남아있는 사람 또한 얼마 없을 뿐더러,

    그렇다고 증표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3명이 90장이 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행하는 악행이 고작 코흘리개 푼돈이나 뜯는 셈이 되는 것이다.

    이래서야 어느 세월에 티켓을 다 모을 수 있단 말인가.

    그때, 한영철이 번쩍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저, 저는 빨리 보고를 하고 올게요!”

    “자, 잠깐만!”

    김두식은 황급히 한영철의 손을 붙잡으며 만류했다.

    영문 모를 행동에 한영철의 고개가 갸우뚱 옆으로 기울여졌다.

    “왜, 왜요? 사람이 적어서 건물 틈으로 모습을 감추면 찾기 힘들어지잖아요. 빨리 움직여야...”

    “그래서 붙잡은 거예요. 우리끼리 처리하죠.”

    팀장 조진영의 최측근이 아닌 김두식은 그를 완전히 신용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팀원을 살리기 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지만, 무릇 사람이란 게 위기가 닥치게 되면 순식간에 돌변 할 수 있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감시원을 회유한다면? 그래서 증표를 가지고 도망이라도 치게 된다면?

    아니, 최악의 경우에는 대놓고 생존자들을 버리는 것이다.

    과반 수가 넘는 인원이 내부미로로 이동할 수 있는 만큼 버려진 인원들은 억울해도 찍소리도 못하게 되는 것.

    김두식은 초조했다.

    물론, 시간이 넉넉하다면 이런 생각이 들진 않았을 것이다.

    허나, 아무리 봐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즉 이 균형이 유지되는 마지노선은 길어봐야 2~3일 정도라는 뜻.

    김두식에게는 어찌되었건 당장의 마음의 안식을 찾아줄 자그만 한 보험이 필요했다.

    의도를 파악한 한영철이 떨떠름하게 말했다.

    “서, 설마 우리끼리 나눠 갖자는 뜻인가요?”

    “바로 그거죠.”

    “...그래선 룰의 의미가...”

    “어차피 증표도 얼마 안가지고 있을 사람들입니다. 어차피 몇 개 없을 테니까. 그냥 우리 선에서 끝내자는 거죠. 만약 틀켰을 때는 제가 잘 얼버무리겠습니다.”

    “...뭐, 그렇게 말하시면 할 말이 없긴 하지만...근데 만약 적이 강하면 어쩌려고요?”

    “그런 사람이 지금 이 장소에 있겠어요?”

    그렇다. 지금까지 외부미로를 떠도는 자들은 대부분 도태된 자들.

    그러니, 인원 10명이라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김두식은 마무리 쐬기를 박았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끼리 합니다.”

    “...알겠습니다.”

    대기하고 있던 10명의 인원이 세부설명을 듣기 무섭게 생존자 3명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 * *

    ‘왔나.’

    어깨 뒤로 느껴지는 인기척에 대충 수를 헤아린 이강호는 걷고 있던 발걸음을 멈췄다.

    이쯤까지 오면 굳이 연기를 할 필요가 없다.

    몸을 돌린 그가 일부러 모두가 들을 수 크게 소리쳤다.

    “거기 있는 거 다 안다. 나와라.”

    스르륵.

    그 말에 미행하던 생존자들이 거짓말처럼 건물 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저마다 병장시를 하나씩 손에 꼬나 쥐고 있는 그들은 이강호가 낌새를 눈치 챈 것이 살짝 놀랐는지 의아함을 표정을 짓고 있었다.

    10명의 얼굴을 한번 훑은 이강호가 나직이 물었다.

    “왜 우리 뒤를 쫓은 거지?”

    “...가지고 있는 증표를 다 내놔라.”

    독기가 잔뜩 담긴, 그러나 살짝 어눌한 말투.

    일행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들임 어떤 심정을 지닌 사람들인지 단번에 파악하는 것이 가능했다.

    스스로의 악의가 아닌, 생존을 위해 어쩔 수없이 검을 겨누는 자들.

    어찌 보면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지만,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결국 몬스터와 다름이 없다.

    그렇다. 그들은 그저 인간의 탈을 쓴 몬스터다.

    일행의 입이 굳게 닫혔다.

    휘어진 매부리 코가 돋보이는 남성 한명이 답답한지 생존자들의 앞으로 나섰다.

    “증표를 내놔라. 그럼 죽이지는 않겠다.”

    모순 적인 말이었다.

    추후 이곳에서 언제, 어디서 또다시 대면하게 될지 알고 살려둔단 말인가.

    줄 생각 없지만, 막상 증표를 가져가도 베어 넘길 것이 분명하다.

    일행의 표정이 착 가라앉았다.

    곧, 창대를 붙잡은 이강호의 싸늘한 음성이 그들에게 울려 퍼졌다.

    “...그게 너희들의 선택이냐?”

    목숨이 노려지고 있는 사람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당당한 행동.

    때문에 깜짝 놀란 것은 되려 기습을 한 생존자들이었다.

    저 세 명은 이 수적 우위가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앞으로 튀어나온 남자, 김두식의 이마에서 땀이 살짝 흘러내렸다.

    뭔가 등골이 싸한 것이 느낌이 좋지 않다.

    하지만 느낌은 느낌일 뿐.

    증표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 또한 이곳에서 죽기 싫은 한 생명체였으니까.

    “너희가 정한 거다. 나쁘게 생각마라.”

    김두식은 뽑았던 검을 앞으로 겨눴다. 나머지 9명들이 기다렸다는 듯 세 명을 향해 튀어나갔다.

    비율로만 따지자면 무려 3대 1의 전투.

    때문에 김두식은 순식간에 결판이 날것을 의심치 않았다.

    아니, 의심치 않았을 터인데.

    “끄아아악!”

    전투를 시작한지 10초도 되지 않아 여기저기서 아비규환이 터져 나왔다.

    적의 비명이 아니다.

    김두식의 눈에 장난감처럼 힘없이 픽픽 쓰러져가는 팀원들이 보였다.

    두 남자의 검과 창이 휘양찬란하게 공간을 가를 때마다, 압도적인 힘에 의해 들고 있던 싸구려 등급의 검이 깨지고, 방패가 잘려나간다.

    “무, 무슨...”

    “끄아아악.”

    미처 말을 틈 없이 팀원 한명의 목이 또 떨어져나갔다.

    김두식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이게 지금 무슨 장난 같은 상황이란 말인가.

    6명...무려 6명이 한순간에 당했다.

    현실인지 환상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후방에 위치해있어, 아직까지 살아남은 3명이 경악어린 비명을 질렀다.

    “두, 두식씨! 야, 약할 거라면서요!”

    “도, 도와주세요. 두식씨! 두식씨!”

    그들은 애타게 김두식을 찾았다. 조원들 중에서 그나마 제일 강한 것은 조장인 그였으니까.

    허나.

    타다닥!

    김두식은 이를 외면하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뒤를 돌아 뛰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 그는 팀원들보다도 자신의 안위가 훨씬 중요했다.

    “두, 두식씨!”

    순식간에 버려진 3명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들은 도망치고 싶었지만. 등을 보이는 순간 싸늘한 사체가 된 동료의 꼴이 날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놓칠 수 없지.”

    자리를 굳건히 지키기만 하고 있던 이강호의 발이 사뿐히 앞으로 움직였다.

    촤악.

    횡으로 휘두른 이강호의 미늘창의 도끼날이 3명의 목을 순식간에 가른다.

    너무 깔끔한 마무리였던지라 그들은 아마 죽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악의를 품지 않고 있던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

    투드득.

    잘린 3개의 머리가 채 지면에 떨어지기 전 앞으로 튀어나간 이강호의 주위에서 세 개의 불덩이가 일렁였다.

    2서클 마법 파이어볼.

    유니크 등급인지라, 1서클 마법인 파이어 에로우보다 위력은 살짝 떨어지지만, 속도 면에서는 훨씬 우월하다.

    이강호는 김두식에게 파이어 볼을 날리기 무섭게 미리 준비 해두고 있던 다트를 던졌다.

    콰과광!

    핏!

    빗겨나가는 불덩이에 속에서 정확히 어깨에 들어가 꽂히는 다트.

    불덩이를 피하는데 여념이 없던 김두식은 자신이 다트를 맞았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챌 수 없었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은 오직 이 자리를 빠져나가는 것 뿐.

    이윽고 김두식이 건물 저편으로 모습을 감췄다.

    헝겊으로 루베르크의 검신에 묻어있던 피를 닦은 유세현이 이강호를 향해 말했다.

    “바로 쫓을 거야?”

    “흠...글쎄. 잠시만.”

    이강호가 증표를 찾기 위해 죽은 생존자들의 소지품을 뒤적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판단을 내린 이강호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역시 뒤에 다른 놈들이 더 있었군.”

    10명가량의 소수인원으로 이루어진 팀이라면, 자신들처럼 개개인이 증표를 지니고 있는 게 정상이다.

    한 사람이 관리해봤자 불신만 늘고,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일이 그렇듯 무조건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확률이란 게 존재하는 만큼 이강호의 추론은 맞아 떨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뭐, 직접 확인해보면 되겠지.’

    죽은 생존자들에게서 코인을 흡수한 이강호가 곧장 몸을 돌려 김두식이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그 뒤를 유세현과 김주희가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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