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결(2)
어이가 없어진 이강호가 이전 못 다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지금 그 말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너희들이 이 스킬북을 가지겠다는 소리냐?”
“......”
불명 불만을 터놓던 학과생들의 입이 굳게 닫혔다.
확실히 결과적으로만 보자면 아누비스에게 별다른 충격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강호가 다시금 스킬 북에 손을 얹으려던 순간이었다.
재차 앞을 막아선 이용석이 다급히 외쳤다.
“그, 그럼 결투를 하자! 차라리 결투를 해서 깔끔히 정하자고! 어때?”
“......”
그 순간 이강호의 표정이 평소와 같이 되돌아갔다.
결투.
그에게 있어서 이 단어는 결코 생소한 단어가 아니었다.
과거, 그러니까 회귀 전에는 약한 여러 팀들이 힘을 합쳐 강한 던전을 클리어한 뒤, 결투를 해서 전리품을 나눠가진 경우가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인원수가 우세한 쪽이 무조건 적으로 중요 전리품을 쟁취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잠시나마 유행했었던 시스템.
이강호는 이용석의 얼굴을 살폈다.
벌겋게 물든 것이 잔뜩 흥분하여 별 생각 없이 내 뱉은 말이 분명하다.
허나.
‘딱히 틀린 말은 아니군.’
그들과는 좋던 싫던 이곳까지 함께했다. 고의는 아니지만 김주희가 방해한 것 또한 엄연한 사실.
그들을 몰살시키고 스킬 북을 쟁취하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나, 그것은 이강호의 모토가 아니었다.
뒤통수를 노린 것과, 방법을 찾아 제안을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행동이니까.
합리적인 타당한 방법이 있다면 그걸로 푸는 게 맞다.
이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게 하지.”
“...뭐?”
의외로 흔쾌히 수락하자 되려 이용석이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
유세현이 이강호의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왜, 장단에 맞춰주는 거야?”
“...맞는 말이긴 하니까.”
물론, 이용석의 제안이 완전히 정당한 것은 아니다. 제대로 싸웠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주도권을 빼앗겼을 테니까.
허나, 김주희. 아니 운디네가 먼저 일을 벌린 이상 더 이상 왈가왈부하는 것은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행위였다.
그럴 바에는 깔끔히 결과에 승복 시키는 게 나으리라.
이강호가 단번에 조건을 내걸었다.
“단판. 1선 승제. 그걸로 끝이다.”
그는 이런 곳에서 시간을 많이 소비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자 이용석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게 해. 대신 우리도 조건을 하나 걸겠어.”
“뭐지?”
“너는 결투에서 빠져라.”
솔직히 말해 이용석은 귀신같은 창술을 구사하는 이강호를 도저히 당해낼 자신이 없었다. 허나, 이것을 반대로 해석하자면 이강호를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뜻.
결투를 직접 제안한 마당에, 사람을 가린다는 것이 정말 우스운 일이었지만, 이강호는 못 들어 줄 것도 없었다.
어차피 승리는 셋 중 누가 나가도 확정적인 일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이강호가 유세현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부탁한다.”
짧고 간결하지만 굳은 신뢰를 담고 있는 말.
유세현은 당해내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휴...알았다 알았어.”
“선배님! 화이팅!”
“......”
유세현은 되도 않는 김주희의 응원 속에서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이용석 또한 몸을 정비하고 앞에 나아가 섰다.
둘은 서로를 마주봤다.
이용석의 입가에는 자신감을 동반한 조소가 단단히 맺혀있었다.
그가 가시가 단단히 돋친 언사를 내뱉었다.
“이렇게 설욕전을 치르게 될지는 정말 몰랐는데. 안 그러냐 세현아?”
“......”
이전 제압당한 일을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대체 얼마나 속이 좁은 것인지.
굳이 대답 할 가치를 못 느낀 유세현이 묵묵히 고개를 돌려 이한철을 바라봤다.
시작하라는 신호.
이한철은 1분 만에 합의 본 룰을 곧바로 읊기 시작했다.
“이 결투는 둘 중 한 사람이 항복을 선언하거나 전투속행이 불가능해졌을 때 승자가 정해집니다. 단, 상대방을 목숨을 빼앗았을 시에는 패배로 간주되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상!”
파앗!
이한철이 손을 내리기 무섭게 두 사람의 몸이 빠르게 자리를 박찼다.
이용석은 곧장 가지고 있는 여러 스킬을 일제히 사용했다.
“스트랭스. 진동분쇄. 바람의 축복.”
비등비등한 스텟을 지닌 존재이니 만큼 처음부터 전심전력을 다하는 것이다.
중심지에서 단번에 격돌하는 두 사람!
치이익!
검과 도끼의 날이 맞닿기 무섭게 스파크가 튀고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이용석은 스킬의 부과 효과가 있는 만큼 힘에서 만큼은 결코 밀리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허나.
유세현이 지긋이 힘을 주자 예상과 달리 팔이 점점 안으로 굽어지기 시작한다.
“어...어?”
숨죽여 지켜보던 이한철의 눈이 휘둥그래지고 생존자들의 입에서 단번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순수 무력 부분에 있어서 그가 밀리다니.
어느새 미소가 싹 사라진 이용석의 눈이 매섭게 떨렸다.
여태까지 봐오던 것과 다른 이 강대한 힘은 대체 뭐란 말인가.
“유세현...너 씨발...이게 도대체 무슨 힘...”
이용석은 말을 채 잇지 못했다.
손목을 재빨리 비틀어 궤도를 바꾼 유세현의 검신이 왼쪽 팔을 노려왔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을 허용하게 되면 결투는 단번에 종결된다.
깜짝 놀란 이용석은 황급히 백 덤블링을 했다. 칼날이 팔목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하며 표피를 갈랐다.
주르륵. 똑똑.
방울진 피가 모래에 뚝뚝 떨어진다.
이용석은 심호흡을 하며 다치지 않은 오른쪽 손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쳤다.
“후우, 후우...”
전투를 시작한지 불과 1분도 지나지 않았건만, 심리적 압박감에 의해 이용석의 전신에서는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두근거리는 심장도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는다.
켈투자드 때와 한없이 비슷한 상황.
‘내가 또 쫄았다고?’
이전 일을 떠올리자 분노가 재차 들끓었다.
이용석은 마음속으로 마치 최면을 걸듯 되뇌었다.
‘아니야. 나는 강해졌어. 그러니깐 이길 수 있다. 나는 저놈보다 강해!’
“으아아아아!”
눈동자에 핏발이 잔뜩 선 이용석이 거친 함성과 함께 유세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모습이 이강호의 눈에는 죽을 지도 모르고 불을 향해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보였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이용석이 배틀엑스를 우측에서 좌측으로 횡으로 휘두르는 순간이었다.
사르륵.
낮게 도약한 유세현이 공격을 회피하기 무섭게 양발을 이용해 배틀엑스의 날을 그대로 짓눌렀다.
지켜보던 사람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저게 실제로 가능한 일이었다니.
“크윽...바, 발 안 치워?”
이용석은 모래에 파묻힌 배틀엑스를 빼내기 위해 끙끙대며 안간힘을 썼지만 누르고 있는 유세현의 발힘이 어찌나 센지 죽어도 빠지지 않았다.
그 자세 그대로 유세현의 검신이 곧장 이용석의 왼팔을 향했다.
무장해제 시킨 것은 무장해제 시킨 것이고 마무리는 해야 됐었으니까.
분을 못이긴 이용석이 이가 으득 갈렸다.
그는 결단코 유세현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나마 알량하게 생각나는 것이라고는 배틀엑스에 내장되어있던 예리한 절삭력을 가진 스킬 [바람도끼]뿐이건만 도망치기위해 배틀엑스를 놓는 순간 바람도끼 스킬의 사용은 불가능 해진다.
‘젠장...’
설상가상. 엎친 데 덮친 격.
그렇다면 이제 남은 방도는 하나였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이용석은 유세현의 검이 팔에 다다르기 직전 크게 외쳤다.
“바람도끼!”
콰과광!
이용석의 모든 마력을 잡아먹은 바람도끼가 거칠게 난동을 피우며 모래바람이 한 차례 거세게 휘날렸다.
이용석은 그제야 배틀엑스에서 손을 놓은 뒤, 뒤로 물러나 숨을 죽이고 상황을 지켜봤다.
모래바람이 막 가라앉으려던 찰나였다.
타다닥!
발소리와 함께 검은 그림자가 모래바람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왔다.
유세현이었다.
“미친!”
이용석은 깜짝 놀라 욕을 내뱉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서걱.
섬뜩한 음색과 함께 잘라진 단면에서 뿜어져나온 새빨간 선혈이 모래를 붉게 적셨다.
툭.
동시에 잘려나간 팔이 모래로 떨어졌다.
“끄아아악!”
이용석은 갑자기 밀려오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모래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너무도 일방적이여서 허무한, 승부라고도 할 수도 없었던 승부.
유세현이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이한철을 향해 말했다.
“판정내려.”
“...유세현 승.”
판정이 내려지기 무섭게 대기하고 있던 이강호는 곧장 스킬 북을 흡수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생존자들은 하나 같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팀원 들 중 최강자인 이용석이 별다른 타격도 주지 못한 채 이렇게 무참하게 짓밟히다니.
‘수준이 달라.’
‘괴물.’
생존자들은 저마다 마음속으로 한마디씩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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