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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64화 (64/612)
  • 숲의 미로(2)

    유세현은 잠시 어떻게 할지 고심했다.

    의사 없이 움직이는 사체인 만큼, 전투에서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까지의 명령을 이행이 가능한지 알아야한다.

    그는 우선 속마음만으로 구울을 움직이는게 가능한지 살폈다.

    ‘앞으로 움직여라.’

    쿠구궁!

    저벅 저벅.

    사체 안으로 들어가 있는 어둠의 마력이 의사전달을 해주는 것인지 나무괴수들이 앞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멈춰라.’

    척.

    여지없이 명령에 따라 단번에 움직임을 멈추는 나무괴수.

    가만히 지켜보던 김주희가 조심스럽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굳이 말할 필요 없이 그냥 의사전달이 되나 보네요?”

    “그런 거 같다.”

    이로서 첫 번째 실험은 성공.

    곧바로 다음 실험으로 넘어간 그가 두 나무괴수를 서로 마주보게 했다.

    그리고 한쪽에는 단순한 파괴하라는 전투명령을, 다른 한쪽에는 회피하라는 명령만 내렸다.

    트트득!

    전투명령을 받은 괴수가 돌격하자, 단번에 빠르게 몸을 움직이며 공격을 피하는 나무 괴수.

    슈우욱! 펑!

    거칠게 공격을 해오는 수 십 개의 나뭇가지를 피하다 못한 나무괴수의 몸통이 일부 부서져나갔다.

    확연히 들어나는 문제점.

    유세현은 황급히 전투를 중지시켰다.

    옆에 서있던 이강호가 대놓고 툭 말했다.

    “회피만 할 줄 알고 방어를 하지 못하네.”

    “그러게. 이번에는 우선순위를 정해서 명령을 내려 볼게.”

    만약 구울이 컴퓨터 프로그램인 시퀀스처럼 순차적으로 반응을 할 수 있는 존재라면 이 방법이 통하리라.

    유세현은 최우선 순위로는 회피. 두 번째 순위로는 방어를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허나.

    트트득! 펑!

    구울이 된 나무괴수는 또 다시 맹렬한 공격에 허무하게 육체의 일부를 내주었다.

    이강호가 고개를 절레 절레 저었다.

    “세현아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인거 같다.”

    언데드 레이즈(Undead Raise)라는 마법 자체가 본래 압도적인 물량으로 적을 휩쓸기 위해 만든 창시 된 마법이다.

    그러니 명령체계가 단순한 것은 어찌 탓할 수 없다.

    유세현은 쓴 입맛을 다셨다.

    “쩝.”

    그도 그럴 것이 구울 하나를 일으키는 데는 마력이 엄청나게 많이 소비 되거니와 거칠게 움직일수록 힘의 원동력이 되는 어둠의 마력 또한 빨리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빠져나가는 마력의 양으로 보건데 나무괴수가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잘해야 1시간 정도.

    이럴 바에는 차라리 물리저항력이라도 높은 머드골렘을 쓰는 편이 나을 것이다.

    ‘유니크 F 랭크 스킬이라 당장에도 쓸만할 줄 알았는데...’

    아니, 능력자체는 사실 뛰어나다. 단지, 현재로서 이 스킬을 남발하기에는 총 마력이 턱없이 부족할 뿐이다.

    ‘여유가 있을 때만 사용하는 편이 좋겠군.’

    그 외에는 구울을 생성할 마력으로 암흑투기를 사용한다면 좀 더 손쉽게 처리하는 게 가능하다.

    깔끔히 결론을 내린 유세현은 길을 나아가는 이강호의 바로 앞에 나무괴수를 세웠다.

    걸어도 걸어도 끝없이 이어지는 길.

    숲의 미로에 막다른 길이란 없었다. 단지 길을 잘못 들면 공간이 뒤틀려있어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오는 것일 뿐.

    또한 미로의 길은 변덕스러워 3명이 겨우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좁아지기도 하고, 1000명이 나아갈 수 있도록 커지기도 했다.

    이강호는 최대한 적당한 수의 몬스터가 나오는 길을 찾아 나아갔다.

    수백 마리가 몰려 있는 곳을 한 번에 처리하면, 여러 색의 증표를 많이 얻을 수 있지만, 3차 튜토리얼의 몬스터의 수준이 대부분 E랭크 초반부인 것을 감안하자면 포위 되었을 때 감당이 안 되는 것을 고려한 것.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은 날이 저물기 전까지 도합 붉은 증표 196개, 푸른 증표 151개까지 얻을 수 있었다.

    “일단 오늘은 여기서 쉬자.”

    “알았어.”

    일행들은 곧장 야영할 준비를 시작했다.

    이강호가 장작을 모아 스킬로 모닥불을 만들고, 유세현이 나무괴수에게 경계를 서게 한다.

    일러둔 명령은‘범위내로 생명체가 포착되면 나뭇가지를 세게 흔들어 알리라는 것.’

    나무괴수에게서 채취한 수액을 빨아 마시고 영양분을 보충한 유세현이 증표를 살펴보며 이강호에게 물었다.

    “강호야 증표 티켓으로 안 바꿀 거냐? 무슨 다른 생각이라도 있는 거야?”

    “아, 그거? 더 모아서 아이템을 구입할 생각이야. 꼭 필요한 게 있거든. 아직은 증표의 수가 모자라서 안 쓰고 있던 건데...뭐, 어차피 다른 아이템도 하나씩은 구입할 생각이었으니 지금 보는 것도 괜찮겠지. 다들 모여 봐.”

    이강호의 말에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세 방향으로 퍼져있던 유세현과 김주희가 재빨리 자리를 옮겼다.

    붉은 증표를 손에 든 이강호가 곧장 아이템을 사용했다.

    “증표 사용.”

    말과 동시에 3D 홀로그램처럼 눈앞으로 튀어나오는 목록.

    아이템은 통과용 티겟 외에도 굉장히 다양한 것들이 있었지만 유세현은 우선 티켓의 정보부터 확인했다.

    -붉은색 티켓.

    효과: 적색의 땅 외부지역에서 사용 시 적색의 땅 내부지역으로 이동한다.

    -푸른색 티켓.

    효과: 철의 미로 외부지역에서 사용 시 철의 미로 내부지역으로 이동한다.

    -녹색 티켓.

    효과: 숲의 미로 외부지역에서 사용 시 숲의 미로 내부지역으로 이동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간단하다.

    알맞는 지역에서 알맞은 티켓을 사용한다면, 탑을 나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

    지금까지 얻은 증표의 색깔과, 자신들이 있는 현 위치 대조한 유세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거 악질인데?”

    “동감이다.”

    이강호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몬스터에게서 나오는 증표와, 이 장소에서 사용 할 수 있는 증표가 전혀 다르다.

    그야말로 악질적인 장난.

    뒤늦게 확인한 김주희도 살며시 입술을 곱씹으며 말했다.

    “이곳에서 얻은 티켓을 사용하려면 다른 장소로 이동을 해야 되겠네요. 선배님.”

    “그렇지.”

    “아이템을 사려던 이유가 있었군. 강호야 목록 좀 더 내려 봐라.”

    이강호가 마우스를 드래그 하듯 검지를 살며시 내리자 목록이 바뀌었다.

    유세현은 빠르게 아이템의 효과를 읽어나갔다.

    -바람의 깃털

    효과: 사용자의 낙하 속도를 현저하게 줄인다.

    가격: 푸른색 티켓 3장.

    -긴급 이탈 스크롤

    효과: 1km내에 몬스터가 위치하지 않는 안전한 곳으로 몸을 이동시킨다.

    가격: 노란색 티켓 5장.

    -워프게이트

    효과: 지정해둔 곳으로 포탈을 열 수 있다.

    가격: 붉은색 티켓 50장.

    그 외에도 많은 아이템이 있었지만, 눈에 확연히 띠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잘 만들어진 지도

    효과: 미로의 외, 내부 지리와 현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다.

    가격: 붉은색 티켓 100장, 푸른색 티켓 100장, 녹색 티켓 100장, 노란색 티켓 100장, 주황색 티켓 100장, 남색 티켓 100장.

    유세현이 지도가 그러져있는 목록에 검지를 갔다 대며 말했다.

    “너 이거 살 생각이지.”

    “역시, 잘 아네.”

    “어딘가를 들르겠다는 거군...”

    단순히 탑을 탈출하려는 것이라면 굳이 지도는 필요 없다.

    이제 남은 일은 13일.

    분명 못해도 1~2일 정도만 투자한다면 티켓을 사용할 수 있는 알맞은 땅에 도착 할 테고, 그 이후에는 탐지 아이템을 구입해 적절히 이용한다면 출구를 찾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기 때문.

    굳이 숨길 생각이 없었던 이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들를 곳이 있어.”

    “이번에도 스킬?”

    “흠...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이번 거는 확실하지 않아.”

    이강호가 확답을 하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유세현의 두 눈이 살짝 커지고 김주희는 창대를 꽉 움켜쥐었다.

    “용암동굴처럼 강한 몬스터가 나올 수도 있겠네요...”

    “그보다 더 할 수도 있어.”

    그 누구도 협곡 내부에서 돌아오지 못했다고 일컬어지는 만큼, 사실상 난이도는 불명확 했다.

    이강호는 협곡에 낙하해 들어 갈 것을 대비해 바람의 깃털을 3개 구입한 뒤 상점을 종료했다.

    그러자 김주희가 말없이 운디네를 소환해 모닥불을 껐다.

    증표을 각각 100장씩 아니, 190장씩 모으기 위해서는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것을 그녀 스스로도 알고 있는 것.

    이제는 취침에 들 시간이었다.

    그들은 곧장 불침번을 정했다.

    초번 초는 이강호와 김주희.

    유세현은 양 옆으로 경계를 서고 있는 둘 사이에 끼어 털썩 누웠다.

    마땅한 침구류도 없어 등을 직접 땅에 맞대고 자야 되지만, 그간 증가한 속성 저항력 덕에 차갑지는 않았다.

    며칠 만에 누워서 자는 것일까.

    그간 이강호를 기다리며 간간히 수면을 취해서 그런지 잠은 생각보다 잘 오지 않았다.

    유세현은 차분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까만 어둠속에서 별이 반짝거리는 게, 디지털화 된 시계가 박혀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강원도에 위치해 있던 군부대에서 보던 밤의 하늘과 똑같은 풍경이다.

    ‘자야지...할 일이 많다.’

    유세현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가족이 면회 왔던 당시의 일이 불현듯 떠올랐다.

    치킨과 피자를 시켜주며, 조금만 더 참으라고 격려하던 부모님.

    사회에 나가면 효도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하던 자신.

    그런 자신을 비꼬던 얄밉던 여동생.

    부모님은 그날 귀가 중 트럭사고로 돌아가셨고 여동생 유혜인은 실종 되었다.

    ‘젠장, 왜 또 이런 생각이...’

    유세현이 입술을 깨물려던 순간이었다. 낱말 하나가 뇌리 속을 번뜩 스쳐지나갔다.

    ‘실종?’

    거기 까지 생각한 유세현의 몸이 반사적으로 튀어 올랐다.

    왜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을까. 튜토리얼이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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