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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63화 (63/612)
  • 숲의 미로(1)

    회귀 전 이강호는 동료이자, 5대 세가에 속하는 남궁세가의 차녀 남궁시영에게 무림인들이 판도라로 넘어온 뒤에 발생한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들은 적이 있었다.

    무림맹의 맹주가 누군가에게 암살당한 일.

    그로인해 정파와 사파가 치고 박고 싸우다가 괴멸 직전까지 간 일.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사건이 있었지만, 제일 큰 사건은 단일 문파로 최강을 자랑하던 마교의 교주 천마의 실종 사건.

    무공 수위로만 보자면 가히 무림 최강이라고 평가되던 그는 너무도 허무하게 판도라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자리를 탐낸 마교의 부교주가 누군가와 결탁하여 없앤 것이라 소문이 맴돌았지만 진위를 확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몇몇 문파들은 무너진 입지를 재차 다지기 위해, 사라진 비급을 찾아 천마의 흔적을 찾아 헤매고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발견했다고 했지.’

    그들이 흔적을 발견한 장소는 바로 구름섬과 이어져 있는 판도라의 초입부분.

    하지만 차원이 달라 구름섬으로의 개입이 불가능 하자, 무림인들은 그동안 관심을 가지지도 않던 던전을 클리어하고 아이템까지 사용해 가며 구름섬으로 가는 게이트를 여는 수고를 보였다.

    허나, 결과는 실패.

    구름섬 보다도 한 단계 더 낮은 위치에 있는 튜토리얼이 이루어지는 탑에서 천마의 흔적이 재차 발견되었기 때문.

    그렇기에 회귀를 한 이후, 이강호는 천마가 어디에 잠들었을까 골똘히 고민했다.

    강한 무공으로 차원을 찢어 튜토리얼 장소까지 도망 쳤다지만 더욱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사실상 말이 안 됐기 때문.

    그렇게 생각하자 결론은 순식간에 나왔다.

    이강호는 이제부터 향할 튜토리얼의 최종 목적지를 떠올렸다.

    외부, 내부 각각 6개씩, 총 12개의 공간으로 나뉘어진 미로.

    공간이 잔뜩 엉키고 꼬여 출구를 찾기에도 급급한 그 미로의 중심부에는 도우미조차 발을 내딛는 것을 경고하는 장소가 단 한군데 있다.

    한번 출입하면 그 누구도 돌아오지 못했다고 일컬어지는 협곡.

    통칭. 죽음의 협곡.

    ‘그곳에 천마의 비급이 잠들어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제 남은시간은 13일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 관문인 미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의미에서 차원이 다르니까.

    “세현아 바로 출발하자. 김주희 너도 준비해라.”

    이강호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 유세현이 그의 옷깃을 붙잡았다. 아직 할 이야기가 더 있는 모양.

    이강호가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별건 아니고 너 지금 쓰고 있는 창 등급이 어떻게 되냐?”

    포켓을 뒤진 유세현이 손바닥을 내밀었다.

    점점 크기가 커지는 것이 새삼 신기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창이었다.

    * * *

    6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는 외부 미로.

    이 미로에는 법칙의 섬처럼 특수한 규칙이 적용되어 있다.

    그 첫째. 대리자들은 적을 죽이고 각 색의 증표를 모은 뒤 티켓으로 교환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둘째. 증표는 티켓 말고도 이 구간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아이템으로 교환이 가능하다.

    그리고 대망의 셋째.

    한번 죽은 몬스터는 다시 재등장하지 않는다.

    미로의 입구에서 마지막 글귀를 읽은 유세현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이건 증표를 두고 생존자들끼리 서로 치고 박고 싸우라는 의미였으니까.

    이는 판도라에서의 적응을 위해 튜토리얼을 진행하고 있다는 도우미의 말과 심히 모순된다.

    “일단은 나아갈 수밖에 없나.”

    “그렇지.”

    셋은 손을 잡은 채로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문을 통과하며 바뀌었던 환경이 한차례 더 바뀌며 높게 치솟은 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벽은 식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변화한 환경을 살핀 이강호가 한마디 말했다.

    “숲의 미로네.”

    “숲의 미로?”

    “응. 데스크라토스 기억나지? 걔랑 비슷한 놈들이 살고 있다고 보면 돼.”

    “헛...”

    김주희가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분명 아슬아슬 이겼던 기억 때문이겠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유세현은 차분히 두 눈을 감고 마력의 흐름을 살폈다.

    지금까지 강한 적들은 그만큼의 충분한 마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마력의 위치만 읽으면 몬스터를 찾아내는 것은 쉽다.

    그런데.

    ‘뭐지? 못 읽겠어.’

    멀찍이 떨어져 있을 몬스터의 마력은 커녕 바로 옆에 있는 이강호의 마력도 읽을 수 없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못 읽도록 가림 막을 쳐놓은 느낌.

    유세현의 표정을 본 이강호가 재빨리 말했다.

    “마력의 흐름을 읽고 있는 거라면 포기해. 그런 법칙이니까.”

    괜히 전용 아이템이 존재하는 하는 게 아니다.

    유세현은 높게 세워진 담을 올려다봤다.

    온 힘을 사용하면 얼핏 다다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벽을 향해 뛰어 올랐으나, 벽은 단번에 순식간에 끝없이 늘어나 도약범위를 넘어섰다.

    이로서 남은 방법은 직접 움직이는 것뿐.

    길을 얼추 아는 이강호가 앞장을 섰다.

    몇 분을 걷자, 새파랗게 우거진 커다란 나무 다섯 그루가 일렬로 나열되어있는 커다란 공터가 나타났다.

    썩은 고목이었던 데스크라토스와 달리 겉보기에는 영락없이 나무 그 자체.

    화르륵.

    이강호가 미늘창에 내제 되어있는 스킬을 발동시키자 날 부분이 뜨겁게 발화했다.

    이강호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등급이 높은 주 무기가 좀처럼 나오지 않아, 내심 안타까워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유세현이 단번에 해결해준 것.

    스릉.

    유세현도 말없이 검을 뽑아들었다.

    둘은 시선이 살짝 교차하기 무섭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타다닥!

    공격하자는 대사 따위는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각자가 뭘 해야 되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뒤늦게 반응한 김주희가 앞으로 돌격하며 재빨리 운디네를 소환했다.

    “운디네! 우린 맨 끝에 있는 걸 노릴 거야!”

    “어, 알았...오! 세현 오빠네? 다시 만난거야? 왜 나 바로 안 불렀어? 내가 다시 만나며 바로 불러달라고 했지?”

    “아쫌! 그런 건 조금 있다가 얘기하고 빨리 움직이기나 해! 계약 잊었냐?”

    “어휴...알았어! 알았어! 성질머리 더러워서 움직인다 움직여!”

    이강호와 유세현이 2마리를 상대하고 김주희가 1마리를 상대한다.

    우수한 스텟을 이용한 단순한 각개 격파.

    창대를 이용해 몸을 띠워 날아오는 나뭇가지 공격을 피하며, 조금씩 적의 사지를 부숴나가는 김주희의 움직임을 본 유세현이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단순하게 찌르기만 하던 이전에 비해 확연히 달라진 창술.

    그는 김주희가 실력이 늘은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격투센스가 좋은 게 아니었다. 그녀는 단지 누군가의 움직임을 단순히 모방하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까지 봐왔던 생존자들 중 가장 합리적인 창술을 사용하는 한 남자의 움직임을.

    아마 이강호가 짬을 내어 조금 알려준 것이리라.

    순식간에 두 마리를 처리한 유세현은 살짝 고민했다.

    ‘지금부터라도 무기를 창으로 바꿀까?’

    루베르크는 형태변환이 가능한 아이템.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미늘창과 비슷한 모양으로 구현하는 게 가능하다.

    또한 이강호에게 강습을 받는다면 김주희 보다도 더 잘할 자신이 있었다.

    허나, 그는 고민 끝에 이내 고개를 저었다.

    검의 리치를 이용해 몬스터를 상대하는 법, 파고드는 법, 반격하는 법등 이미 검술에 많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한계가 느껴진다면 모르는 일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굳이 무리를 하면서 까지 갈아탈 필요는 없다.

    유세현은 몬스터에게서 떨어진 붉은 증표 2개를 줍기 무섭게 이강호를 향해 말했다.

    “강호야 김주희 제법 잘 가르쳤다?”

    “가르쳐?”

    이강호가 단번에 반문했다. 유세현은 그 말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이강호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쟤한테 하나도 가르쳐준 게 없어.”

    “...응?”

    그렇다면 어깨너머로 배웠다는 말인데 믿기지 않았다. 그간 봐온 바, 김주희는 스텟을 떠나서 상당한 몸치였으니까.

    그만큼 노력을 했다는 뜻인가.

    “선배님! 저도 처리했어요! 두 분은 역시 너무 빨라요!”

    그때 김주희가 해맑은 미소와 함께 촐랑촐랑 뛰어왔다. 뒤따라온 운디네가 유세현의 어깨에 차분히 착지했다.

    “세현오빠 오랜만이야~”

    “아...그래. 오랜만이다.”

    이 정령은 언제 대해도 항상 불편했다. 마력이 어둠의 마력으로 바뀐 뒤로는 한동안 다가오지 않아 좋았었는데, 운디네는 특이한 성격답게 굉장히 빨리 적응해 버렸다.

    운디네가 조심스럽게 유세현의 뺨에 몸을 기댔다.

    “아, 좋다~강호 오빠는 너무 뜨거워서 말이야. 차라리 흉흉한 게 낫지.”

    “......”

    영문 모를 칭찬 앞에 유세현은 이제 그러려니 하고 궁금했던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강호야 혹시 이거 색깔 별로 몇 개 모아야 티켓으로 전환 되는지 아냐? 모르면 한 번 사용해볼까?”

    “아니. 알고 있으니깐 사용하지 마. 너도 대충 느꼈겠지만 한 번 사용하면 되돌릴 수 없어.”

    “그럼 몇 개가 필요한데?”

    “1인당 30개.”

    “오케이.”

    역시 정보를 지닌 사람이 있다는 것은 든든하다.

    그간 정보가 없어 얼마나 조심 또 조심했던가.

    유세현은 고생한 만큼 차분히 고개를 끄덕인 뒤 일행을 향해 말했다.

    “이번에 얻은 능력으로 쟤네 한번 살려 볼 테니까. 쟤네 움직여도 놀라서 부수지 마.”

    “알았다.”

    “예! 선배님!”

    둘의 대답을 들은 유세현은 마음속으로 차분히 영창을 했다.

    ‘언데드 레이즈.’

    트드득!

    이강호의 스킬에 의해 불타 사라진 2마리를 제외한 나머지 3마리가 꿈틀거리며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한다.

    끝없는 물량으로 생존자들을 괴롭히던 아키몬드의 능력.

    되살아난 나무괴수는 명령을 기다리듯 유세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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