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62화 (62/612)

재회(2)

하루, 이틀. 점점 시간이 점점 흐름에 따라 방을 너머 온 생존자들이 다시금 차례차례 중간지점으로 몰려들었다.

유세현은 그때마다 마력을 살폈지만 이강호처럼 뜨거운 화기를 지니고 있는 것은 없었다.

‘이번에도 아니네...’

그가 다시 신경을 끄려던 찰나 한 남자가 유세현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새삼 익숙한 얼굴이었다.

과대 이용석.

몸을 굽힌 채 고개만 살짝 들고 있는 유세현의 얼굴을 확인한 이용석의 눈매가 가늘게 좁아졌다.

“이거 설마 설마 했는데. 진짜 너였네? 오랜만이다 유세현?”

“...그러게요. 오래간만입니다. 과대 형.”

“잘 지냈냐? 이강호랑 김주희는 어디가고? 혼자 있는 거야?”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질문을 하는 이용석은 이전과는 다르게 훨씬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증가한 마력의 양을 보니, 갈라선 이후로 부단한 노력을 한 것이 보인다.

‘그래봤자 김길태 정도의 수준이지만.’

별로 좋은 인연이 아니었던 만큼, 유세현은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단번에 말을 끊었다.

“굳이 제가 그걸 말씀드려야 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다 무슨 일로?”

“하! 짜식. 성격 하나도 안 변했네? 이유가 있겠어? 그냥 궁금해서 와 본거지. 한철아! 학과 애들 좀 데리고 일로 좀 와봐라!”

뒤를 돌아본 이용석이 팀을 향해 손짓을 하자, 휴식을 취하던 200명 중 30에 가까운 인원들이 그의 지시를 따르듯 일사불란하게 이동해왔다.

유세현이 고개를 돌려 수많은 인원들을 살피자 이용석이 다분히 팔짱을 끼었다.

거만한 표정을 보건데 자신의 현 위치를 과시하려는 의도가 틀림없다.

모든 것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코인도 속 좁은 그의 성격만큼은 어쩔 수 없던 모양.

유세현을 알아본 일부 인원들이 잽싸게 주위를 감싸며 인사했다.

“오! 세현아! 오랜만이다! 살아 있었구나!”

“세현 선배님!”

진심으로 반가운 표정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들의 기억에서 유세현은 합리적인데다 무척이나 강했으니까.

슬그머니 다가온 이한철이 이용석의 팔을 툭 건드렸다.

“형...”

“걱정 마라. 이전 같은 상황은 오지 않아.”

제단에서는 유세현과 이강호에게 질질 끌려 다녔을 뿐더러 애써 꾸려놓은 팀 또한 빼앗길 위기를 겪었다.

만약 그들이 팀을 먹으려는 의중만 있었더라면 권한은 이용석에게서 이강호에게로 단번에 넘어갔을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수치와 굴욕.

그래서 이용석은 그들과 갈라선 뒤부터 무작정 앞으로만 나아가지 않고, 직접 몬스터를 찾아다니며 처리해 나갔다.

훨씬 더 강해지기 위해서!

그리고 그러한 행동을 반복하는 동안, 조금씩 일반 생존자들의 세력까지 흡수해 입지를 한 층 더 단단히 다졌다.

그는 이제 이전과 달리, 힘이던 세력이던 밀리지 않을 자신감이 있었다.

더군다나 뭔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강호가 없는 유세현은 이빨 빠진 범에 불과하다.

이용석이 유세현을 향해 질문공세를 퍼붓던 학과생들을 향해 근엄하게 말했다.

“자, 인사 나눴으면 다시 돌아가서 정렬하자. 시간도 부족한데 앞으로 나아가야지.”

“예! 팀장님!”

단 한마디였음에도 학과생들은 하던 것을 멈추고 마치 상명하복 하듯 빠릿빠릿 움직여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흡사 군대를 보는 듯한 느낌.

유세현이 그 여느 때처럼 무표정하게 서있는 반면, 이용석은 입맛을 다셨다.

‘김주희. 그년에게 이걸 못 보여주는 게 아쉽군.’

여우같은 그녀가 이 장면을 봤었더라면 얼마나 땅을 치고 후회할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똥차는 이강호였고, 벤츠는 이용석이었으니까.

둘이 일부러 다른 길을 선택해 나아갔다는 것을 모르는 이용석은 이강호와 김주희가 죽은 것으로 멋대로 판단했다.

“그럼 수고해라 세현아~살아있다면 또 보자고~”

이용석은 마지막으로 비아냥스럽게 말하며 그대로 팀으로 돌아가 버렸다.

팀을 자신의 일부라고 생각하던 이태광이나 이한별과는 천차만별 차이나는 행동.

이것이 이 세계에 존재하는 일반적인 사람이다.

“후...”

유세현은 몸을 다시 벽에 기댄 채 이용석이 출발하는 것을 바라봤다.

그렇게 이틀 더 지나, 15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위치해 있던 4개의 문중 하나가 난데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강호와 김주희가 들어갔던 문!

‘이건!’

유세현이 재빨리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생존자들이 하나둘씩 공간에 나타났다.

반쯤 넋이 나간 얼굴을 보니, 이전처럼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는 눈치.

마력의 흐름을 읽자 타오르는 마력을 지닌 남자는 이미 이 장소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무려 보름 만에 이루어진 재회였다.

* * *

그들은 반갑게 인사를 하고,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강호와 김주희가 들어간 방의 시련은 불타는 대지.

그들은 활활 타오르는 땅을 계속해서 나아가며 적을 죽여야만 했다.

기본적인 것은 거짓의 숲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물량으로 압도했던 거짓의 숲과 달리 불타는 대지는 수는 적지만 강한 몬스터가 많았다는 것.

“그래서 뭐 얻은 거라도 있어?”

“있지.”

유세현의 물음에 이강호가 오른쪽 손을 내밀었다.

손등에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특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타락한 불꽃도마뱀을 잡고 얻은 유니크 A 랭크스킬.

불꽃의 각인.

이강호가 본보기로 능력을 사용하자 오른쪽 주먹에 직접적으로 불길이 치솟았다.

화끈거리는 열기를 보니 상당한 온도임에도 본인은 뜨겁지 않은 모양.

추가적인 설명을 들으니 일정거리까지 내 뿜는 것도 가능한 것 같았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각인이 된 부위에서만 발화를 할 수 있다 점.

김주희가 미소를 머금은 표정 그대로 박수를 쳤다.

“대단하죠? 강호 선배님 아니었으면 방을 완전히 공략하는 건 불가능했을 거예요!”

“확실히 그러네. 그래서 넌?”

유세현의 시선이 이번에는 김주희에게로 향했다.

김주희가 그 큰 가슴을 자랑스럽게 주먹으로 탁탁 쳤다.

“저도 한몫했죠!”

사실이었다. 그녀가 계약한 물의 정령 운디네는 타오르는 대지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에게 상극인 존재.

여우 짓만 할 줄 알았던 그녀는 크낙사스 이후로 완전히 바뀌어 한 명의 역할, 아니 수 십명의 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다.

스텟이 모든 것이 아니기에 전투력 면에서는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마력의 총량으로만 따지자면 이태광을 웃도는 정도.

김주희가 말을 이었다.

“그보다 정말 걱정 많이 했어요. 선배님.”

“정수의 효과 때문에 안 죽었다는 건 알고 있었을 텐데?”

“에이! 그거랑 이거랑은 별개죠.”

자연스레 넘어가 것이 김주희 다운 언사였다.

이번에는 이강호가 유세현을 향해 그간 있었던 일을 질문했다.

유세현은 이태광과 이한별을 만난 것부터 시작하여 새로운 얻은 스킬의 효과 및 능력의 랭크가 올라간 것에 대해 전부이야기 했다.

내용을 전부 들은 이강호의 눈가가 평소와 달리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조우한 사람의 이름부터 스킬의 랭크 업까지 단순히 듣고 넘어가야할 꺼리가 하나도 없다.

“만났던 사람의 이름이 이태광이라고 했지?”

“응. 지금까지 만났던 생존자 중에서는 그나마 제일 나은 사람이었어.”

그나마 제일 나은 사람.

상대방이 정말 특이한 면모를 보여주지 않고 서야, 유세현의 성격상 단기간에 이런 말이 입에서 튀어 나오기는 힘들다.

이강호는 점점 의문이 확신으로 바뀌어가는 것을 느꼈다.

“흠...생김새가 어떻게 생겼었는데? 등치가 컸어?”

“응. 거의 산 같았지 거기다가 팔에 문신도 있고. 생김새는...연쇄살인마 느낌?”

‘역시!’

상당히 추상적인 말이었지만 이강호는 자신이 추측한 사람이 틀림없다는 것을 단번에 깨달았다.

단순하지만 우직한 성격으로, 생존자들을 한데 모아 판도라 내부로의 길을 개척해낸 인물.

전쟁 군주. 이태광.

설마 그가 이곳에서 같이 튜토리얼을 받고 있었다니, 측근이 전부 죽어 정보를 얻지 못한 만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강호가 포섭하려고 생각하고 있던 인원 중에 하나였다.

성격상 그는 절대로 팀원을 배신하지 않으니까.

‘더군다나 고유특성도 장난이 아니지.’

특성명 광전사.

전투를 하면 할 수록 점점 더 강해지는 특이능력.

비록 가지고 있는 스킬의 위력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지만, 순수하게 강해진다는 것은 적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호러 그 자체다.

팀원을 구하기 위해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 하지만 않았더라면 판도라 인간진형의 역사에 두고두고 길이 남았을 만한 인물.

“설마...그 사람과 대립했냐?”

이강호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사람이 좋은 건 둘째 치고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는 필히 경쟁을 해야 되었을 테니까.

유세현은 정말 다행이도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응? 아니 그건 아니야.”

굳이 형, 동생 했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이용해 먹으려고 수락한 제안이었던 만큼 큰 의미가 없기 때문.

이강호가 내심 마음속으로 안도를 한 뒤 다음 내용으로 넘어갔다.

“스킬의 랭크 업도 했다고 했었지?”

“응. 암흑투기가 S에서 SS급으로...프로즌 디퓨젼의 랭크가 올라가지 않는 걸로 봐선 어둠계열의 스킬에만 적용되는 거 같은데, 새로 익힌 스킬에도 통할지는 숙련도를 올려봐야 알거 같아.”

그야말로 혁신적인 이야기.

이게 사실이라면 유세현은 그 누구보다도 강해질 수 있는 열쇠를 지닌 셈이 된다.

‘만약 스킬을 에픽 등급까지 올리는 것이 가능하다면...’

모든 이를 압도하던 마왕의 그 강한 힘을 유세현이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

전신의 신경이 고양되며 몸이 자연스레 떨리기 시작한다.

이강호는 주먹을 꽉 쥐었다.

한번 돌아온 이번에야 말로 비로소 이길 수 있다.

종족의 운명을 건 12개의 신물조각 쟁탈전을.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이강호는 주위로 마력을 흩뿌려 유세현의 기운을 살폈다.

뭔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전에 비해 마력이 상당히 잘 갈무리 되어있었다.

허나, 그래도 효율적으로 세세히 컨트롤하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생명체라면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한계.

하지만 이강호는 이 한계를 넘어서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자신도 가지고 있는 스킬. 내공심법.

내공심법을 익힌 자는 마력의 기척을 일부 숨길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보다 더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니 그에게도 심법이 필요했다.

그것도 일반 싸구려 내공심법이 아닌 상승 내공심법이.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