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61화 (61/612)
  • 재회(1)

    태양 문양이 새겨진 문이 출구 앞에 덜렁 나타났다.

    제단에서 본적 있던 문.

    정비를 하던 생존자들이 까무러치게 놀라 외쳤다.

    “뭐, 뭐지?”

    “다들 조심해!”

    여러번 당해 의심병이 생긴 생존자들은 알림창까지 믿지 못했다.

    유세현의 눈이 조심스레 이한별을 살폈다.

    이렇게 된다면, 내버려 두고 갈 수도 있고 데리고 빠져나갈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

    잠시 고민하던 그는 이한별의 몸을 번쩍 든 뒤, 생존자들을 뒤로하고 문을 열고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순간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 생존자들이 잠시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다 재빨리 뒤를 따랐다.

    * * *

    모든 대리자들이 조우하게 되는 탑의 중간지점.

    3번방으로 들어갔던 생존자들은 숲을 나아가던 도중 어이없게 통과가 되자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였다.

    “뭐, 뭐지? 왜 갑자기?”

    영문을 모르니 당연한 일.

    설명을 위해서 도우미가 밝은 빛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유세현을 흘끔 흘긴 도우미가 입을 열었다.

    “대리자 여러분들께서 지금 이 자리로 이동되신 것은...”

    도우미가 설명은 지극히 간단했다.

    방이 유지되고 있는 근원을 다른 생존자가 공략하는 바람에 더 이상 진행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

    모든 것은 유세현이 아키몬드를 잡았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생존자 한명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럼 지금부터 우리들은 어떻게 하면 되지?”

    “계속 앞으로 나아가시면 됩니다.”

    “...우리의 성장은?”

    “논외입니다.”

    튜토리얼이라 시스템은 애초부터 인간을 끝없이 강하게 만들기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다.

    한 없이 나약하기 만한 그들이 여타 종족과 맞설 수 있도록 강해질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

    그것이 튜토리얼의 취지.

    때문에 완전 공략된 던전은 마왕성처럼 사라져 두 번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즉, 권능이건 언데드 레이즈(Undead Raise)건 추후 이곳으로 잡혀 들어와 튜토리얼을 진행 하게 될 생존자들은 이 능력을 절대 얻지 못할 것이다.

    “그딴 게 어디 있냐! 그게 더 형평성에 더 어긋나지 않냐!”

    “그렇지 않습니다.”

    말이 그렇지 사실 준비되어있는 시련을 깔끔히 클리어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

    유세현이 만약 숨겨진 공간을 발견하지 못해 아키몬드를 완전히 소멸시키지 못했다면, 마왕성에서는 남태영이 성을 올라가다 죽는 불상사가 생겼더라면, 조건이 충족 되지 않아 마왕을 만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무, 무슨...”

    “설명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그럼 대리자 여러분 마지막까지 힘내주시기 바랍니다.”

    도우미는 언제나 늘 그랬듯 무미건조하게 자신의 할 말을 다 마치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남은 생존자들은 단번에 벙찐 표정이 되었다.

    코인을 먹으면서 차근차근 강해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데, 난데없이 한 단계 더 높은 장소에 억지로 끌려오게 된 것이니까.

    “누, 누구야! 거짓의 숲을 정화한 놈이!”

    몇몇은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바득바득 악을 쓰기도 했다.

    허나, 그런다고 나올 멍청이도 없을 뿐더러 나와 봤자 어차피 대들 수 없을 것이 뻔하다.

    전투를 제외하고 생각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이태광이 유세현의 어깨를 툭툭 쳤다.

    “동생! 인기가 많은데?”

    “......”

    굳이 일을 크게 만들 필요는 없다.

    조심히 이태광에게 주의를 준 유세현은 주위를 한 바퀴 돌며 행여나 이강호가 있나 살폈다.

    얼굴이 안 보이는 것이 아쉽게도 그는 아직 도착하지 못한 모양.

    하기야 헤어진 후 이제 11일이 지난 것이니 약속시간 까지는 아직 3이라는 여유가 남아있었다.

    ‘3일이라...’

    얼마나 가야할지 모르는 만큼, 시간에 맞추기 위해 너무 빨리 달렸다.

    유세현은 침침한 눈가를 중지와 검기로 꾹 짚었다.

    ‘피곤해.’

    이강호와 헤어진 후로는 단 한 번도 깊게 수면을 취해본 적이 없다.

    생존자들을 믿지 못하는 것에 대한 폐해.

    ‘빨리 왔으면 좋겠네.’

    유세현은 이강호가 있을 문을 지긋이 쳐다보다가 이태광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이한별이 깨어났는지 차렸는지, 이태광과 그의 팀원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유세현의 얼굴을 확인한 이한별이 아직 회복이 안 되어 덜덜 떨리는 손을 억지로 치켜세웠다.

    “세, 세현씨...”

    팀원을 전부 잃은 것에 대한 슬픔과 서러움이 잔뜩 어려 있는 얼굴.

    그녀가 중얼거렸다.

    “죄, 죄송해요...기껏 충고해 주셨는데...”

    퉁퉁 부운 눈에서 눈물이 볼을 타고 뚝뚝 떨어져 내린다.

    그녀의 팀원이 죽건 말건 실상 자신에게는 아무런 손해가 없는데 무엇이 그리 죄송하단 말인가.

    그렇기에 이것은 유세현에게 하는 사죄가 아니다.

    이것은 죽은 팀원에게 하는 사죄.

    괴로움에 몸서리치던 이한별이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콱 붙잡았다.

    “제, 제가...좀 더 확실히 다그쳤다면...그랬더라면...”

    엄청난 자괴감.

    이태광을 포함한 그의 팀원들이 머리를 긁적이며 이내 고개를 돌리는 반면, 유세현은 무릎을 굽혀 이한별을 향해 그 어느 때처럼 정중하게 말했다.

    남을 위로하는 취미는 없지만, 해야 할 말은 해야 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은 한별 씨의 탓이 아닙니다.”

    “...아뇨, 이건 제...”

    “다시 말하지만 한별 씨의 탓이 아닙니다. 한별 씨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의 탓이죠. 그러니 죄책감을 가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말이 있다.

    위기가 다가오는 것을 모르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위기라고.

    유세현은 분명 충고했고, 이한별도 각 조장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이를 믿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그들의 책임이었다.

    결과가 이렇게 것은 어찌 보자면 너무도 당연한 이치.

    “......”

    굳게 닫힌 이한별 입가가 매섭게 떨렸다.

    유세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앞으로 나아가는 문이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끼이익.

    경첩이 맞닿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기분 나쁜 음색이었다.

    “후우...제기랄.”

    “어떻게 하지?”

    입구를 본 생존자들의 시선이 지금까지 안면이 없던 여타 팀을 향했다.

    뒤치기를 당할 수 있는 만큼, 무작정 많이 몰려다닌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지만 추후 몬스터의 난이도를 고려하자면 일단은 같이 다니는 게 훨씬 났다고 판단했기 때문.

    뒤통수만 신경 써 이대로 팀을 꾸려 간다면 자칫 잘못하다가 몬스터에게 전멸당할 수도 있다.

    그들은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는 등의 모습을 보이며 팀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잠시 이런 생존자들의 동향을 살펴보던 이태광이 유세현을 향해 다가와 말했다.

    “세현 동생 지금 바로 출발 할 거야? 여자 상태 보니 하루면 어렴풋 거의 완치 될 거 같은데...어때? 빨리 온 만큼 하루 있다가 가는 게?”

    이태광은 동행할 것을 이미 확정지은 모양이었다.

    유세현이 살짝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죄송하지만 저희의 동행은 여기까지인거 같습니다. 형님.”

    “...응?”

    난데없는 말에 이태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따로 가야되는 이유라도 있어 동생?”

    “예.”

    “뭔데 그게?”

    “이곳에서 기다렸다가 같이 가야 되는 인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쿨 하게 무시했지, 이런 말은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위기의 순간 때도 도망치지 않고, 팀을 구하기 위해 한걸음에 보스의 방으로 뛰어 들어간 이태광의 우직하면서도 단순하고 정직한 성격이 조금 마음에 들었기에 주는 정보.

    “허...같이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어?”

    “예.”

    “허...거참 신기하네.”

    보통사람이라면 왜 떨어졌냐고 물어봤겠지만 이태광은 그러지 않았다.

    별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새삼 이태광 다운 반응이다.

    볼을 긁으며 잠시 무엇인가 생각하던 그가 연이어서 말했다.

    “그런데 일행이 오게 되면 그 친구들까지 같이 껴서 가면 되잖아. 굳이 따로 가야겠어?”

    “그렇게 되면 코인을 아예 못 드시게 될 텐데요?”

    “......”

    이태광의 눈이 살짝 커졌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답변이었다는 뜻.

    그는 이내 호쾌하게 웃기 시작했다.

    “흐하하하! 그런 뜻이었나! 역시 동생은 정말 재미있어!”

    “......”

    유세현은 굳이 답하지 않았다.

    내뱉던 웃음을 뚝 끊은 이태광이 차분히 입을 열었다. 말을 내뱉는 그의 눈은 방금 전과 달리 매섭게 빛나고 있었다.

    “그래...형이 되서 동생보다 약할 수는 없지. 따로 가도록 하지. 다음에 봤을 때는 내가 더 강해져있을 거야.”

    되도 않는 자신감...은 아니었다.

    그는 확실히 지금까지 봐왔던 그 어떤 생존자보다 능동적이고 강했으니까.

    이번에는 유세현이 먼저 악수를 청했다.

    “지금까지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래, 다음에 보도록 하지. 동생.”

    몸을 서서히 회복한 이한별은 결국 이태광의 팀에 포함되었다.

    그들은 안전한 이 중간지대에서 하루를 쉬고 튜토리얼 최종장소를 향해 떠나갔다.

    팀의 맨 끝 자락에 위치한 이한별이 문으로 들어가기 전 유세현에게 다시 한 번 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인사였다.

    유세현은 그들이 사라지자마자 제일 구석진 곳으로 가 벽에 등을 맞대고 앉았다.

    이로서 중간지대에 남아있는 것은 오직 그뿐.

    자연스레 한숨이 나왔다.

    “후...”

    이강호의 도움 없이 이루어진 첫 생존.

    무수히 많은 일이 있었던 만큼 느끼는 바가 많았지만, 유세현은 그중에서도 무조건적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얼른와라.’

    그는 마력의 흐름에 주의하며 지친 몸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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