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몬드(4)
투두둑!
단번에 조각조각 나뉘어 지면에 떨어지는 앙상한 뼈.
제한시간이 끝난 흑암은 대기 중으로 빠르게 흩어져갔다.
유세현은 땀에 찌든 머리칼을 쓸어 올린 뒤 전리품을 취하기 위해 로브를 들쳤다. 시체를 본 그의 어깨가 살짝 움찔거렸다.
“뭐지?”
빌딩 때와 같이 스킬은 커녕 코인 조차도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재빨리 해골의 뼈 사이를 뒤져봤으나 결과는 마찬가지.
유세현이 마법서에 천천히 손을 얹자 마법서는 단숨에 재가 되어 으스러졌다.
자연스레 의문이 어린다.
‘설마 아직 살아있는 건가?’
그는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구울은 시간이 정지한 듯 행동을 완전히 멈춘 상태였지만, 완전히 부서지진 않았다.
유세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눈을 감고 마력의 흐름을 읽기 시작했다.
평소 느끼던 어둠의 마력 빼고는 딱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도대체 뭐지?’
유세현 조차도 지금 상황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대단한 보스몬스터가 아무것도 주지 않고 죽다니. 말이 안 되도 너무 안 된다.
“완전히 끝난 겁니까?”
고민하는 사이 지친 몸을 이끌고 김길태와 장원석이 천천히 다가왔다.
살려준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지만, 같이 목숨을 건 이상 받아야 할 것은 받아야 되지 않겠는가.
살짝 흥분되는 마음으로 아키몬드의 시체를 살핀 김길태와 장원석의 눈썹이 자신도 모르게 꿈틀거렸다.
텅 빈 사체를 보며, 혼자 다 흡수했다고 생각한 것.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아무리 구해줬다지만...’
합리적인 사람인만큼 일부 나눠줄 것이라 생각 했던 김길태는 마음속으로 지긋이 혀를 찼고, 장원석은 조심히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당장 멱살을 잡아 따지고 싶었지만, 무력의 수준이 다르다.
뇌내 속에서 펼쳐지던 그들이 망상이 완전히 굳혀지려는 순간이었다.
어느새 접근한 이태광이 유세현을 향해 직접적으로 물었다.
“동생, 코인이 안 보이는데 벌써 다 흡수 한 거야?”
유세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는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뭐?”
깜짝 놀라 반문을 한 것은 마음속으로 유세현을 향해 열심히 욕을 남발하고 있던 장원석이었다.
눈가가 잔잔히 떨리는 게 믿을 수 없다는 표정.
하지만 그가 들킬 거짓말을 굳이 할 이유는 딱히 없었다.
팀의 브레인답게 재빨리 판단을 내린 김길태가 턱을 짚었다.
“처음부터 없었다는 말입니까?”
“예.”
“...너무 이상하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뭐 좀 확인 해보겠습니다.”
무엇인가를 깨달은 마냥 김길태가 신속하게 출구 쪽으로 뛰어갔다.
무형의 벽에 가로 막혔던 이전과는 달리 너무도 쉽게 빠져 나갈 수 있다.
“출구를 보니 몬스터는 아무리 봐도 죽은 것 같습니다만...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부를 살펴봐야겠습니다.”
유세현은 영안실 깊숙이 들어가며 하나하나 상황을 정리했다.
‘벽은 사라졌고 구울도 멈췄다. 하지만...’
구울 내부에는 아직 어둠의 마력이 아직 남아있었다.
그렇다는 뜻은 구울이 죽은 게 아니라 명령권자가 죽어서 멈췄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는 개방된 철문을 포함하여 영안실 이곳저곳을 세세히 살폈다.
하지만 아무리 영안실을 뒤져도 나오는 것은 없었다.
행여나 무엇인가가 있을 줄 알고 발 빠르게 움직였던 장원석이 인상을 구겼다.
“형님, 아무리 찾아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 강한 보스가 아무것도 주지 않았을 리가 없고요! 저거 분명 혼자 코인 독식하고 뻘쭘하니까 발뺌하고 있는 거라니까요?”
“...좀 더 찾아보자. 그가 발뺌할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없어.”
김길태는 장원석을 달랬다.
툴툴대던 장원석은 자신의 말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직접 철문까지 들어가 장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는 등 한 번 더 샅샅이 뒤져나갔다.
장원석을 바라보던 유세현의 미간이 천천히 좁아졌다.
지금 장원석이 뒤지는 철문을 제외하고는 정말 남은 곳은 없었다.
그는 한 번 더 마력의 흐름을 주의 깊게 살피기 시작했다.
병동 내부 아니, 거짓의 숲에 항시 흐르고 있던 일정한 어둠의 마력.
이 어둠의 마력 때문에 자신이 찾기 못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죽은자의 도시에 있을 때, 어둠의 마력을 적게 지닌 구울의 접근을 감지하지 못했던 것처럼.
지금까지는 거짓의 숲에 위치한 마물들이 이전 등장했었던 일반적인 구울보다 보다 더 많은 어둠의 마력을 지녔기에 감지가 가능했지만, 지금 아키몬드는 살아있다는 가정하에 상당한 부상을 입었을 것이 틀림없다.
아키몬드가 일반 구울과 같이 마력이 줄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는 것.
스륵.
온 신경을 곤두세워 집중하던 그는 순간적으로 머리위로 무엇인가가 스쳐지나 간 것을 느꼈다.
유세현은 곧장 고개를 들었다.
언뜻 보기에는 얇은 실같이 보였지만, 자세히 살피니 어둠의 마력이 틀림없다.
실은 천장으로 이어져있었다.
유세현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모든 상황에는 이유가 따르기 마련. 아무 것도 없을 리가 없지 않는가.
파앗!
쾅!
도약한 유세현이 주먹을 후려치자, 지금까지는 죽어도 파괴되지 않던 병동의 천장에 구멍이 뚫렸다.
“어?”
“태광형님! 길태형님!”
“지금 가마!”
사람들이 단번에 몰려든다.
그사이 재차 도약한 유세현은 지금까지 꽁꽁 숨겨져 있던 5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 착지했다.
그곳에는 손바닥 만 한 작은 크기의 상자 하나가 2m남 짓하는 나무관 위에 올려져있었다.
작은 상자내부로 마력의 실이 점점 몰려드는 것을 확인한 유세현이 다가가려는 순간이었다.
쾅!
관의 문짝이 활짝 열리며 왼팔과 왼다리가 떨어져 나가 육체가 절반밖에 없는 해골이 튀어나왔다.
당장이라도 꺼질 듯한 촛불처럼 매섭게 흔들리는 붉은안광.
아키몬드였다.
“네, 네놈이 여길 어떻게...”
몬스터는 정작 아키몬드 이건만, 아키몬드가 유세현을 괴물 보듯 중얼거렸다.
유세현은 아무말 없이 단번에 아키몬드의 육신을 도륙한 뒤 상자를 손에 쥐었다.
마력이 모이는 것으로 봐서 이것이 아키몬드의 약점임을 단번에 깨달은 것.
부서져나간 해골의 머리에서 당황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머, 멈춰!”
말을 무시하고 연 상자 안에는 새빨간 구슬이 있었다.
뜨지 않는 정보는 아이템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유세현의 루베르크를 있는 힘껏 내려치려는 순간이었다.
“멈춰라! 멈춰! 멈춘다면 너가 원하는 걸 뭐든지 들어주겠다!”
생각지도 못한 거래.
유세현의 싸늘한 시선이 아키몬드를 향했다.
“뭘 해줄 수 있다고 그런 말을 하는 거지?”
“뭐든! 내 능력이 닿는 한에서라면 뭐든 해 주겠다.”
무척이나 자신감 넘치는 말투.
새삼 마왕 때의 일이 생각났다.
죽고 싶어하던 그는 자신에게 마심원을 승계했다. 이강호 또한 남태영에게 태양심법을 계승받았다.
그렇다면 이 보스 몬스터 또한 자신에게 스킬을 전수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뒤늦게 도착하여 상황을 지켜보던 장원석이 고함을 질렀다.
“저 녀석이 약속을 지킬 것 같아? 부숴버려라! 그게 죽어나간 생존자들에 대한 예우다!”
서걱!
그의 말과 동시에 유세현의 검이 라이브 베슬을 갈랐다.
전적으로 동감되는 말이었다.
생존자들을 학살한 몬스터의 말을 듣는 것 만큼 멍청한 것도 없다.
콰지직!
쨍그랑!
생명력을 담아놓은 라이프 베슬에 완전히 깨지며 애써 돌아오던 마력이 빠르게 대기로 흩어져간다.
아키몬드가 새어나가는 영혼을 보며 악을 질렀다.
“끄아아아! 아, 안돼! 안돼에에에!”
스스스.
형태를 유지하던 육체가 점점 부서져 내린다.
생존자들을 즐겁게 유린하던 몬스터의 비참한 최후.
“끄아아아 너이자시시이이익! 저주하겠다. 네놈을 저...”
아키몬드는 말을 채끝내지 못하고 완전히 부서져 사라졌다.
지금껏 애타게 찾던 코인과 스킬북이 두둥실 떠오르며 자연스레 이목이 쏠렸다.
스킬 명: 언데드 레이즈(Undead Raise)
등급: 유니크 [F Rank]
상세정보: 죽음을 다룰 수 있는 어둠의 마력을 이용하여 네크로멘서가 창시한 마법입니다. 죽은 자를 강제로 일으켜 따르게 만듭니다. 단, 영혼이 존재하지 않고 지능이 낮은 만큼 단순한 지시밖에 따르지 못합니다.
사용능력: 구울 생성.
소비마력: 1500
지금껏 생존자들을 곤경에 몰아 붙였던, 아키몬드가 사용하던 능력.
그 외 떨어진 코인들은 마법저항력과 마력코인이었다.
장원석과 김길태의 눈이 보름달처럼 커졌다.
대박 수준을 넘어선 초대박.
하지만 그들은 곧 절망 할 수밖에 없었다.
사태를 해결한 공로가 있는 만큼, 누가 이것을 가져갈지 뻔히 알고 있던 것.
이에 해당되는 당사자가 모두를 향해 당당히 말했다.
“스킬 북과 마력 코인 4개를 제가 먹겠습니다.”
“......”
더군다나 스킬북 으로만 끝나지 않고 코인까지 먹겠다고 한다. 팁이라는 것은 전혀 모르는 지독한 인물.
“괜찮으시죠?”
“물론이지!”
흔쾌히 수락하는 것은 이태광 뿐이었고, 지친 몸을 추스르고 올라온 사람들의 표정은 전부 똥 씹은 표정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유세현이 없었으면 전부 죽었을 터인데.
그들은 코인 4개와 스킬북이 유세현의 몸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잠자코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려가도록 하죠.”
분배가 끝이 나자 생존자들은 좁은 공간에서 영안실로 내려왔다.
그러자 그제야 격렬한 전투 때문에 보지 못했던 죽은 생존자들이 눈에 밟혔다.
같이 이곳에 들어온 약 300명이라는 인원 중, 살아남은 사람은 다 합쳐봐야 40명.
이것도 김길태가 대응을 잘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지금 이곳에 서있는 사람은 이태광과 유세현 단 둘 뿐이었을 지도 모른다.
처참하기 그지없는 결과.
생존자들은 씁쓸한 눈으로 죽은 이를 바라봤다.
목이 떨어져 나간 김우성, 심장이 부서진 유한동.
충고를 등한시 했던 이한별의 팀은 실질적으로 완전한 전멸이었다.
유세현이 출구로 빠져나가려는 찰나였다.
시체더미가 일순간 꿈틀댔다.
‘구울? 아니군.’
순수한 마력을 확인한 그가 불덩이에 맞아 새까맣게 그을린 시체를 옆으로 밀어냈다.
“하아 하아...”
그곳에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이한별이 있었다.
처음 들어올 때부터 쓰러져 있기에 진즉 죽은 줄 알았는데.
‘혼자 살아 남았다라...’
이것이 팀원을 아끼는 그녀에게 있어 악운일까, 천운일까.
아니 애초에 이 몸으로 당장에 이곳에서 빠져 나갈 수는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고 있던 때였다.
[거짓의 숲이 완전히 정화되었습니다. 어둠의 힘이 물러납니다. 게이트가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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