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59화 (59/612)
  • 아키몬드(3)

    “...!!”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기습. 이 말도 안 되는 속도는 대체 뭐란 말인가.

    “브, 블링크!”

    지금까지는 듣지 못했던 당황 섞인 음성과 함께 아키몬드의 몸이 갑작스레 모습을 감추며 유세현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먼 치 떨어진 곳에서 나타난 아키몬드의 붉은 안광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유세현이 미간을 좁혔다.

    능력을 잘 모르는 만큼 기회가 있을 때 일격에 끝내버리려고 했는데, 순간이동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니.

    지금까지 한 번도 이 마법을 선보이지 않은 것은 생존자들을 상대하는데 있어 그만큼 여유로웠다는 뜻이리라.

    유세현은 재빨리 자세를 낮게 다잡았다.

    호흡을 고르던 이태광이 중얼거렸다.

    “후우후우...거봐 내가 뭐랬어. 올 거라고 그랬지.”

    목소리를 들은 유세현의 두 눈이 그를 흘끔 흘겼다.

    잔뜩 펌핑 되어있는 근육과 붉은빛을 띠고 있는 피부. 상처는 생각보다 깊지 않지만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꼴을 보아하니 부작용이 있는 모종의 능력을 사용한 것이 틀림없었다.

    ‘멍청한 남자.’

    그가 보스를 잡지 못할 것이란 것은 팀원이 걱정되어 먼저 뛰어 들어갈 때부터 대충 예상했다. 성격으로 보건데 분명 팀원들을 구하기 위해 적의 전력도 확인하지 않고 처음부터 온 힘을 다해 무작정 덤벼들었으리라.

    멍청해도 너무 멍청한 남자.

    하지만 그런 성격이 지금에 와서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그는 과거 자신을 구하기 위해 대책 없이 한강다리까지 따라 올라왔던 이강호와 어딘지 미묘하게 닮아있었으니까.

    사람을 원초적으로 믿지 않게 된 만큼 그도 신용하는 것은 결단코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식이라는 가면을 쓰고 항상 형식적인 말을 내뱉는 사람보다는 훨씬 나았다.

    유세현은 이태광을 향해 물었다.

    “적의 능력. 아는 데로 말해주십쇼. 지금부턴 제가 상대 하겠습니다.”

    “...알겠어. 동생.”

    키메라에서 실력을 익히 확인한 이태광은 유세현을 말리거나 하지 않았다.

    그는 평소 말을 기똥차게 잘 하던 만큼, 간결하고 정확하게 지금까지 보아온 아키몬드의 능력을 설명했다.

    주위 사물을 얼리는 프로즌 디퓨전과 불의 화살, 삼중 방어마법 등 20초안에 모든 말을 들은 유세현이 정비할 틈을 주지 않고 아키몬드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놈 어딜!”

    어둠의 장막을 시작으로 프로텍트 쉴드과 프로즌 디퓨전이라는 3개의 마법이 동시에 아키몬드의 몸을 감쌌다.

    냉기에는 냉기.

    유세현은 곧바로 프로즌 디퓨전을 발동시킴과 동시에 양손으로 루베르크의 손잡이를 고쳐 잡고 일자로 크게 내리그었다.

    치지직!

    쨍그랑!

    여타 생존자와는 차원이 다른 힘에 무너지는 방어 마법.

    아키몬드는 지금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고위 흑마법인 어둠의 장막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다니.

    아키몬드는 상당한 마력의 소비를 감수하고 재차 블링크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네, 네놈 도대체 정체가 뭐냐!”

    아키몬드의 입에서 당황 섞인 어조가 튀어나왔다.

    마력탐지 마법인 마나스캔을 재차 사용해 확인한 지금, 그는 유세현의 몸 안에 어둠의 마력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왜 그의 존재를 지금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죽음의 숲에는 지금까지 자신밖에 어둠의 마력을 다루는 사람이 없었으니, 마력의 양과는 상관없이 신경을 전혀 쓰고 있지 않고 있던 것이 화근이다.

    뚜둑!

    유세현이 말없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목 관절을 풀었다.

    의미없는 대화를 나눠 적에게 자신의 정보를 주는 것만큼 우매한 것도 없다.

    유세현이 한발을 앞으로 내딛은 순간이었다.

    아키몬드가 손을 치켜세웠다.

    “감히 이 몸의 말을 무시하다니!”

    쾅! 쾅! 쾅!

    영안실에 위치해 있던 시체보관용 철문이 전부 개방되었다.

    전투를 벌이고 있는 구울과는 별개로, 추가 된 수십 구의 구울이 유세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버티기도 힘든 생존자들로써는 힘을 보태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

    그때였다.

    쿠오오

    영안실에 위치한 구울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무엇인지 단번에 깨달은 아키몬드가 경악을 내질렀다.

    “그건! 설마! 암흑투...”

    솨아악!

    말을 끝마칠 세도 없이 칠흑같이 어두운 검신이 아키몬드의 경추를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재차 블링크를 사용하여 멀찍이 떨어진 아키몬드가 마법서 들어올렸다.

    몸이 이전보다 잘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 이렇게 속박되어 계속 의미 없이 마력을 소비하다가는 당하고 만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기를 사용했다.

    “데스 오로라!”

    쉬이이

    자신이 되살린 언데드들의 결속력을 보다 높이고, 더 나아가 육체까지 강화시키는 어둠의 권능 중 일부.

    암흑투기에 의해 짓눌리고 있던 언데드들이 조금씩 움직임을 되찾기 시작한다.

    “큭! 빨리 부숴!”

    “지금 못 부수면 우리 모두 끝장이다!”

    생존자들은 더욱 열심히 검을 내질렀지만, 아키몬드의 영창이 그들을 절망으로 인도했다.

    “어딜! 다시 되살아나라! 언데드 레이즈(Undead Raise)”

    끝나지 않는 아귀지옥이 다시 시작된다.

    유세현은 구울을 부숴나가며 계속해서 아키몬드의 몸을 노렸다.

    하지만 블링크라는 스킬로 계속 도망치고, 구울로 발을 붙잡는 이상 어둠의 마력이 떨어질 때까지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그의 두 눈이 아키몬드의 마력량을 살폈다.

    블링크라는 마법이 마력소비가 크다지만 워낙 그릇이 커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밀려 본적 없는 만큼 아키몬드가 당황해서 그렇지, 그는 마왕을 제외한 실질적으로 지금까지 만난 그 어떤 몬스터보다도 강했다.

    이런 식의 전투가 지속된다면 총량이 적은 자신이 마력이 더 빨리 떨어진다.

    숙련도가 거의 100%에 달했다지만 암흑투기는 유지하는 데는 그만큼 상당한 마력이 소비되기 때문.

    유세현이 왼쪽 귓볼을 만지작거렸다.

    하루에 한번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능력이니 만큼, 의존하기 싫어 아껴두었지만 지금을 써야될 때였다.

    그는 우선 골렘의 핵을 손에 쥐었다.

    파앗!

    마력을 흘리자 자이언트 머드골렘의 육중한 몸이 커다란 영안실의 일부를 가득 채웠다.

    유세현은 바로 머드골렘에 뒤에 몸을 가렸다.

    1차 튜토리얼에서 우연히 본적이 있는 생존자들이 깜짝 놀라는 반면, 약점을 알고 있는 아키몬드는 되려 광소를 내뱉었다.

    “크흐흐흐! 그 따위 것으로! 숨어봤자다!”

    높은 물리저항력에 비해 취약한 하기만 한 마법저항력.

    아키몬드가 시전한 불의 비가 골렘을 덮쳤다.

    투두둑!

    불에 닿기 무섭게 빠르게 진흙이 되어 분쇄 되가는 머드골렘의 육체. 허나, 이것은 유세현의 노림수였다.

    아키몬드가 있는 곳의 좌표를 확인한 유세현이 마음속으로 영창 했다.

    ‘흑뢰.’

    치지직!

    콰과광!

    영안실 내부의 공기가 전기방전을 일으키며 수 십 갈래의 새까만 번개가 아키몬드와 주위를 지키는 구울들을 향해 마구마구 떨어졌다.

    어찌나 위력이 센지 저항력이 약한 구울들은 형체도 못 남기고 재가 될 정도.

    마왕이 빌려준 스킬은 그만큼이나 강했다.

    허나.

    “크흐흐...정말 위험했다.”

    흙먼지 속에서 아키몬드의 음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리 방어마법이 견고해도 이것은 막을 수 없을 터인데.

    유세현이 의문을 가지던 찰나, 멍청하게도 떠들기 좋아하는 아키몬드가 알아서 설명을 해주었다.

    “크하하하! 어둠의 장막을 사용하고있는 나에게 흑뢰를 날리다니 아둔하구나!”

    어둠의 장막이 어둠속성 방어마법인 만큼, 동일한 속성공격에 상당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유세현은 이빨을 뿌득 갈았다.

    이렇게 되면, 기껏 살아남은 생존자들에게는 미안한일이지만 암흑투기를 풀고 장기전으로 가야된다.

    암흑투기가 완전히 통하지 않는 지금 마력이 다 떨어지게 되면 상대하기 더욱 불리해진다.

    그가 암흑투기를 거두려는 순간이었다.

    [암흑투기의 숙련도가 100%가 되었습니다. 권능에 의해 암흑투기의 랭크가 S에서 SS로 승격됩니다.]

    “...?!”

    전혀 예상치 못한 알림창이었다.

    등급이 바뀌지 않는 것이 불변의 진리인줄 알았는데.

    ‘이런 경우가 생기다니.’

    권능을 얻게 된 것은 정말 엄청난 변수라고 이강호에게 익히 듣긴 했었지만, 그런 변수가 지금 발생할 줄이야.

    ‘어디해볼까.’

    유세현은 의식을 집중하여 남은 어둠의 마력을 전부 암흑투기에 쏟아 부었다. 일정 이상으로는 먹지 않던 암흑투기가 어둠의 마력을 미친 듯이 빨아들인다.

    쿠구궁!

    이전과는 한 차례 차원이 다른 압박이 그들을 옭아맨다.

    지능이 없는 구울은 물론이거니와 정신력이 강한 리치까지.

    아키몬드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사실 유세현의 정신력은 어찌어찌해서 버틸 수는 있다.

    문제는 올라간 능력의 랭크와 그 근원이 되는 마력.

    인정하기 싫지만 자신보다도 훨씬 짙고, 보다 더 순수한 마력이 그의 정신력을 보완하고 있었다.

    “이, 인간주제에!”

    아키몬드가 광기를 내뿜었다.

    틈을 타 접근한 유세현이 조용히 귀걸이에 내제되어 있는 두 번째 스킬을 영창 했다.

    ‘흑암.’

    사아아아!

    몸에서 발생한 새까만 안개가 주위 공간을 가득 메운다.

    시전자를 제외하고는 모든 오감을 차단하는 결계형 흑마법.

    눈이 멀고, 냄새를 맡을 수 없으며, 들리지 않는다.

    “제기랄!”

    아키몬드는 장소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황급히 블링크를 사용했지만, 빠져나가기 무섭게 곧바로 흑암이 주위를 에워쌌다.

    “블링크! 블링크! 블링크!”

    아무리 여러 번 이동마법을 사용해도 벗어날 수 없다.

    구울만 암흑투기에 제압당하지만 않았어도 어떻게든 방도가 있을 터인데.

    아키몬드는 정말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어, 어떻게 내가! 리치까지 된 내가! 어떻게 고작 인간 따위에게!”

    수세에 몰린 아키몬드가 가지고 있는 모든 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허나, 아무리 공격이 강해도 맞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단번에 접근하여 3중 방어마법을 깨부순 그의 검이 광기어린 아키몬드의 몸을 무자비하게 난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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